글/ 호주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수련인은 정념(正念)이 충족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정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흔히 우리는 정념은 법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사부님 설법을 통해 반드시 자신을 진정한 연공인으로 여기고 진정으로 수련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20여 년의 수련을 하면서 ‘전법륜(轉法輪)’을 그렇게 많이 읽었으나 오늘에야 그 ‘진이 아닌(不真)’ 가짜 나를 명확하게 보아내고 제거한 후에야 ‘진정(真正)’이라는 두 글자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진정’이라는 두 글자는 ‘진(真)’이 앞에 오고 ‘정(正)’이 뒤에 온다.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하는 ‘진인(真人)’이어야 비로소 ‘정념’이 충족될 것이며 성의(誠意)가 있을 수 있고 진정으로 타인과 사회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각종 좋지 않은 요소를 막아내고 자신의 수련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내가 어떻게 자신의 그 ‘진이 아닌’ 것을 발견하고 제거했는지 교류하려 한다.
최근 우리 지역 수련생은 중대 사건 앞에서 어떻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진상 편지를 잘 쓰며 릴레이로 발정념을 잘할 것인지 토론했다. 나도 참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뚜렷한 효과가 보이지 않았으며 보이고 들리는 것은 일부 수련생이 힘 빠진 모습과 소극적인 태도였으며 나도 그러했다.
바로 이 무렵 나는 선명한 꿈을 꾸었다. 한 법회 현장에서 혼자 문밖에 앉아 유리 문을 통해 수련생을 바라보면서 소외감을 느꼈다. 갑자기 사존께서 앞에 나타나셨고 나는 사존께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 느낌을 하소연했으며 이에 사존께서는 자비롭게 나에게 많은 법을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꿈에서 깨어나 사존께서 방금 하신 말씀을 떠올려 보려고 했으나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우리 지역에서 법회 준비작업이 시작된다는 통지를 받았고, 법회 원고 팀에도 참여하게 됐다. 나는 그 꿈도 법회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흔쾌히 승낙했다 그 꿈도 이 일 때문이라는 생각에 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나는 비로소 사부님의 무량(無量)한 자비를 깨닫게 됐다.
1. 수련생이 선의로 나의 ‘진이 아님’을 지적했다
얼마 후 늘 나와 수련에서 서로 돕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하는 수련생 A와 통화로 수련 체득을 교류했다. 내가 지난 1년 동안 비교적 큰 심성관에서 억울함과 괴롭힘을 당하고, 다른 수련생의 좋지 않은 사람 마음에 대해 원망했던 일에서 어떻게 노력해 자신을 수련했는지 이야기했으나 A는 내가 이렇게 어렵게 수련해왔는지에 대해 인정은커녕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가끔 표면에서는 누군가가 당신을 억울하게 하고 괴롭혔으나 진정한 원인은 아마 당신이 다른 수련생들을 같은 방식으로 대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자신이 최근 겪은 수련 사례도 들었다. 나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지만, 억지스럽다고 생각했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이렇게 한마디 했다. “사실 저라는 사람은 매우 단순합니다.” 수련생 A는 즉시 반박했다. “당신은 항상 당신이 단순하다고 말하지만, 저는 당신이 전혀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년간 당신과 지내오면서 저는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진(真)’을 매우 중요하게 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제 삶의 가치관이자 입신(立身)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제 가치관과 상충되는 무언가가 있어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울면서 말했다. “저는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알고 있다면 분명 그것을 원치 않을 겁니다.”
수련생 A가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은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자신의 원칙을 바꿉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비록 저에게 이렇게 하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저에게도 이렇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선(善)’과 ‘인(忍)’을 비교적 많이 닦았으나 ‘진’을 닦음에 부족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만약 그러하다면 반드시 ‘진’을 닦는 데 더 주의하겠습니다.”
이번 교류로 수련생 간에 진정성 있는 선의적인 교류는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그 후 나는 A가 최근에 진상편지를 잘 쓰기 위해 노력하며 ‘선’과 ‘인’을 닦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교류를 통해 서로 수련을 잘하겠다는 이 마음이 즉시 가지(加持)를 받았고 서로에게 작용을 일으켰다.
2. ‘진이 아님’을 발견한 원인과 결과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자신의 진정한 원인을 찾았을 때, 당신이 그것을 정시하며 그것을 인정할 때, 당신은 그 일이 즉시 변하고”[1]
그날 밤 수련생 B와 항목의 일부 준비에 대해 논의할 때, 수련생 C가 이것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B가 말했다. “모두 함께 논의해 결정하고 그때 다시 C에게 알려야 합니다.” 내가 즉시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C에게 더는 알리지 말아야 합니다.” B도 즉시 말했다. “안 됩니다. C에게 알려야 합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주었다. “네, C에게 알려드리죠.” 나는 말하면서 이 ‘진이 아님’을 붙잡았다. 나는 이 ‘진이 아님’을 보고 말썽을 일으키기 싫어하는 마음과 반복해 더 논의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C가 지나치게 자신의 것을 고집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날 유치원에 출근하여 5살 된 여자아이만 교실 밖에서 밥을 먹고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들어간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위안의 말을 건넸다. “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야!”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옆에 갑자기 다른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나는 이 여자아이만 칭찬해 주면 다른 아이가 상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얼른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너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야!” 말을 마치면서 또 이 ‘진이 아님’을 깨달았다.
첫째 여자아이는 평소에 내가 장난감을 정리할 때도 같이 도왔고, 뭐든지 열심히 했으며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 정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두 번째 아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고 그 아이에게 잘해주기 위해 아무렇게 그 ‘진이 아닌’ 말을 했다.
그 후 며칠 나는 집에서 남편(수련생)을 위해 요리할 때 여러 번 ‘진이 아님’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야채 만두를 만들 때 남편이 고기를 잘 먹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맛을 내기 위해 조금의 소시지를 넣었다. 소시지를 잘게 썰어서 기름에 볶은 후 기타 야채와 버무리면 고기인 줄 모른다. 이렇게 하면 맛도 훨씬 나아 남편도 잘 먹었다. 만약 지금처럼 마음을 써서 진을 닦지 않았다면 이것도 ‘진이 아님’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만약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남편도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내가 이런 일을 털어놓고 사과할 때 그는 너무 기뻐하며 재치 있게 말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죠?”
남편은 서양인이라 언행에 원칙을 지키는 편이고 나의 방식이 그와 다를 때 그는 항상 예의 바르고 유머러스하게 나에게 지적해주며 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대수롭잖게 여겨왔고 참답게 닦지 않았으며 이런 작은 일은 수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수련생 D와 법공부를 할 때 사존의 이러한 말씀을 읽었다. “가짜 부처, 가짜 보살의 사상은 극히 나쁜 것으로서, 돈을 구한다. 그것은 다른 공간에서 생겼으며, 그것은 사상이 있게 됐다. 그것은 조그마한 이치를 알고 있어 그것이 감히 크게 나쁜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조그마한 나쁜 일은 감히 한다.”[2]
이 말씀에서 나는 특히나 놀랐고 약간 두려움도 생겼다. 왜냐하면 내가 그 ‘진이 아님’으로 그 ‘조그마한 나쁜 일’을 그렇게 많이 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이 감히 크게 나쁜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조그마한 나쁜 일은 감히 한다.”[2]라는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오늘 나는 법공부에서 이것이 ‘가짜부처, 가짜 보살’의 언행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럼 내가 장차 가짜 부처, 가짜 보살로 수련 성취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진상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 속에 담긴 정보가 진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3. ‘진이 아닌’ 가면을 벗고 ‘진아(真我)’로 다시 태어나다
그날 퇴근 후 나는 참지 못하고 A에게 전화로 알렸다. “저는 그 ‘진이 아님’을 찾아냈어요! 당신의 선심(善心)이 일깨워줬어요!”
그 후 나는 전에 그 ‘진이 아닌’ 일들을 떠올렸고 하나씩 그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바로잡은 후 내 몸과 마음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곳곳마다 ‘진이 아님’을 발견하고 제거했을 때 ‘진아’가 다시 태어났다.
생명은 층층이 아래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점차 대법에서 멀어졌고 무거워졌는데 사람은 그것을 압력이라고 한다. 지금은 이런 무거움이 단번에 제거됐다. 이틀 동안 집 안에서 이렇게 가볍고 유쾌함을 느낄 때, 나는 자연스럽고 즐겁게 뜀박질을 했다. 50대인 내가 단번에 천진한 소녀가 된 것 같았다.
이것은 또한 서양인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 그들과 같은 단순하고 자유로운 언행과 흐림 없는 미소를 갖게 했다. 이는 내가 오랫동안 바라던 진정한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이 또한 사존께서 말씀하신 “우리가 실질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은 좋지 못한 것인데”[2]라는 법문을 실증했다. 지금의 나는 수련생, 가족, 동료와 모두 마음을 터놓고 교류할 수 있다. 최근 수련생들은 나와 교류할 때 나의 진과 정념, 즐거움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10여 일 동안 ‘진이 아님’을 닦는데 몰두하는 동안, 나는 날마다 ‘진선인(真·善·忍)’의 법광(法光)에 싸여 있었다. 사존의 점화에 깊이 감사드린다. 또 수련생 A를 배치해 주셔서 날마다 제시간에 열심히 법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고 법에서 선한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매우 교활하고 깊이 감춰져 익숙해진 ‘진이 아님’을 아주 원활하고 빠르게 닦아버릴 수 있었다. ‘진이 아님’을 닦아버리며 다른 집착심도 발견했는데, 예를 들면 질투심과 과시심 그리고 그런 비교적 극단적인 사유방식들인데, 예전에 비해 더 쉽게 발견하고 버릴 수 있었다.
만약 오늘에 이르러서도 진을 닦아내지 못했다면 예전에 선과 인에 치중해 수련한 것은 모두 거짓이며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것이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은 우주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바로 그로써 가늠한다.”[2] 대법에 따라 가늠했을 때 사실 ‘진이 아닌’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칭호에 어울리지 못하며 더욱이 진정한 수련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북미 제1기 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10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6/4134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