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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와 도끼를 가는 것

글/ 익명 수련생

[밍후이왕] 어릴 적에 ‘도끼를 가는 나무꾼’이라는 이야기를 봤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노인이 시장에서 날을 갈지 않은 도끼 두 자루를 사다가 두 아들에게 나눠주면서 나무를 해오라고 했다. 한 아들은 도끼를 갈지 않고 사용해 많은 공을 들였지만 나무를 조금밖에 해오지 못했으며, 다른 아들은 먼저 시간을 들여 도끼를 잘 간 다음 크게 공을 들이지 않고 많은 나무를 해왔다. 일부 사람들이 사부님께서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해 극단적으로 매일 나가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면서 법공부를 하지 않아, 결국 사악이 틈을 파고들어 박해당한 교류 문장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법공부는 도끼를 가는 것이 땔나무 하는 일을 지체시키지는 않듯이 보기에는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바로 대법에 동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집착심과 업력이 부단히 제거되고 층차가 끊임없이 제고되며 자신의 역량도 커진다. 층차가 제고될수록 사악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해 박해당하지 않으며, 우리가 하는 일은 더욱 대법의 위력을 갖게 되고 우리는 속인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능력이 작아져 기(氣)와 기(氣) 사이의 제약이 없는 것처럼 사람을 구하는 일을 많이 해도 종종 효과가 좋지 않다. 이는 도끼가 무디면 나무를 많이 패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여기까지 쓰면서 사부님께서 번거롭게 여기시지 않고 우리에게 법공부를 중시해야 한다고 알려주신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법공부는 마땅히 정말로 심혈을 기울여 마음에 닿게 해야 하며 형식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집착심은 끊임없이 ‘닳아서’ 없어지는데, 다른 공간에서 이 과정은 진실한 상황이다. 도끼를 잘 갈았는지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집착심이 얼마나 ‘닳아’ 없어졌는지는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자신의 느낌은 은폐되고 반복될 수 있으며 증가되거나 변화될 수 있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 단순히 도끼를 가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데, 그것이 수련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정말로 착실하게 법공부를 많이 하면 다른 두 가지 일도 동시에 잘할 수 있다.

 

원문발표: 2020년 10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1/4129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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