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2018년 워싱턴DC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방금 말했듯이, 저층의 그런 사악은, 구세력 저층의 것을 포함하여, 그것들은 진짜로 사악하다. 그것은 당신이 수련성취하지 못하게 하려 하고, 그것은 당신을 살해하려 한다.”[1] 대법제자에 대한 구세력의 교란은 각양각색 형식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틈이 있으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고 우리를 수련 성취하지 못하게 한다. 병업에서 심성 교란까지 그것들은 각종 형식을 바꾸며 갖은 수단을 써서 제자의 정념을 파괴한다. 우리가 그것들을 똑똑히 볼 수 있는 지혜와 변별할 능력이 구비되면 지배받지 않고 정념으로 그것들을 해체하며 이런 교란과 파괴를 해체할 수 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병업관은 쉽게 분별할 수 있는 보이는 교란이다. 그 외 한 가지 숨겨진 교란은 극히 미혹성이 있어 쉽게 분간하기 어렵다. 흔히 정념이 강하지 않으면 쉽게 그것에게 좌우지 되고, 그런 강요된 느낌을 자신으로 여긴다. 수련에서 우리는 모두 기분이 좋지 않고 초조하며 불안하고 소침한 각종 사람 감정이 나타난다. 정념이 강한 제자는 덩굴을 따라 참외를 따는 듯이 안으로 찾아 이런 감정이 조성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집착심이 이런 감정을 조성했는지 보고 증상을 찾아 정념으로 그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의 사상이 어느 유형의 생명에 부합되기만 하면, 그것이 즉시 작용을 일으키는데, 당신은 오히려 당신 사상 내원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고, 당신은 자신이 이렇게 하려고 한 것으로 여긴다. 실은 단지 당신의 집착 때문에 그것들이 작용을 일으켰고,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의 집착을 강화했다.”[2]
우리가 사상의 교란을 받을 때, 또 그것을 분간하지 못할 때 다른 공간의 생명은 사람의 집착을 이용해 당신 공간장에 나쁜 물질을 던져서 집착하는 마음을 강화한다. 때로 그 일념은 어디에서 오는지, 심지어 우리가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자신이 이렇게 사고했다고 생각해 그것에 따라가며, 그 속에 빠져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일념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진아(眞我)에서 나온 것인가? 우리는 사고한 적이 있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이 후천적인 관념이 아주 강하게 변하면 그는 곧 사람의 진정한 사상과 행위를 지배하는데, 이때에 사람은 아직도 자신의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은 거의 사람마다 이러하다.”[3] 특히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그런 느낌은 매우 진실인 것 같고 그 느낌이 자신 마음이 괴로워하는 것 같기에 더욱 분간하기 어렵다.
병업관은 비교적 쉽게 분간할 수 있는데, 이것이 교란이라는 것을 알고 당신은 즉시 발정념을 하고 집착심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바르지 않은 생각이나 사람의 감정은 오히려 쉽게 붙잡기 어렵고 그것이 교란이라는 것을 알기 어렵다. 수련에 소질이 있는 제자를 제외하고는 분간하기 어렵다.
이것이 교란이라고 분간하지 못하면 그 사상에 따라 계속 생각할 수 있고 혹은 행위에서 그 생각에 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이미 교란받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즉시 분간하지 못하면 그것을 배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집착심이나 관념은 계속 확대되고 고통 속에 빠져든다. 어떤 사람은 잠시 마음속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사람의 방법으로 회피한다. 예를 들면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핸드폰을 보는 등등이다. 당신을 동영상을 보게 하고 핸드폰을 보게 하려는 생각, 그 자체는 진아에서 온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외부의 교란이다. 만약 그에 따라가면 구세력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가 정진하지 못하게 하고 떨어뜨리려고 한다. 이런 사람의 방법은 당신에게 잠시 번뇌를 잊게 하고 잠시 고통을 해소하려 하지만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아울러 이런 인터넷 내용은 사람의 각종 칠정육욕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의 집착심과 사상업력을 강화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의기소침해지고 상태는 갈수록 나빠진다.
또 어떤 사람은 흔히 고통이 일정한 정도에 이르러 비로소 반응이 있는데 마치 어디에 문제가 있는 느낌이고 수련 상태에 있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 집착심은 오히려 확대되고 사상에 나쁜 물질이 형성돼 그에게 에너지를 보충한 것이라 다음에 없애버리려면 더욱 어려울 것이다.
우리 육체적인 소업, 특히 가부좌할 때 다리가 아픈 이런 업력은 비교적 잘 보인다. 육체적 고통은 이를 악물고 견지하고 버티면 업력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사상과 정신에서 형성된 이런 업력과 물질도 고생을 통해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고생은 아마 당신의 기분이 좋지 않게 할 수 있고, 소침하게 할 수 있다. 이런 마음고생은 내가 보기에 역시 일종 고생이다. 그것도 없애야 비로소 잘 지낼 수 있지 않겠는가? 육체적 괴로움을 없애면 우리는 업력이 없어진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다. 마음속 괴로움과 고통이 없어져도 마음이 확 트이게 되고 더는 어떤 일로 고민하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보기에 역시 업력이 없어진 표현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정신과 물질 그것은 일성(一性)이다!”[4]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 물질이 흡입되어 들어간 후 바로 당신 신체 속에 한 개의 얇디얇고 옅디옅은 당신을 형성하는데, 한 번에 곧 가능한바, 그것의 독성이 크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다시 흡입하면, 이 얇디얇고 아주 옅디옅은 당신이 조금 짙게 변하며, 또 흡입하면 그것은 더욱 짙어지고, 흡입할수록 더욱 짙어지는데, 그것은 곧 갈수록 강대해진다. 그것은 당신의 전반 신체의 구조마저 다 있고 사유도 다 있는바, 완전히 하나의 독물로 구성된 마성(魔性)의 당신이다.”[5]
우리 바르지 않은 생각, 집착심, 관념 등은 사상과 정신에서 함께 물질을 형성하고, 심지어 그런 사유의 신체를 형성했다. 단지 우리가 보이지 않아 똑똑히 그것이 물질과 업력으로 형성됐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할 뿐, 그것을 없애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므로 사상에서 만약 우리가 이런 사상 속의 각종 좋지 않은 것, 법에 있지 않은 생각, 그런 기분이 좋지 않은 소극적인 마음 등을 포함해, 그것을 업력과 좋지 않은 물질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근본적으로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그것을 없애는 것은 더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번은 나는 그런 감정이 진아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분간 후 그 감정 배후의 집착심을 찾았다. 나의 진정한 자아가 뛰쳐나와 그 거짓 자아를 보면 그것은 선하지 않고 관대하지 않으며 완전히 이기적인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것은 본래 선천적인 내가 아니고 그것을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똑똑히 그것을 내 몸에서 벗겨버렸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왜 정신병 환자는 제도하기가 어려운가? 바로 그가 확실하게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상업력을 뚜렷이 분간할 수 있고, 어느 사상은 내가 아님을 뚜렷이 분간할 수 있음은, 신수련생으로서는 몹시 어렵다. 해냈다면 정말로 대단하다. 대법으로 가늠하라. 사실 모든 좋지 않은 사상은 모두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이 점을 해낼 수 있다면 곧 뚜렷이 분간할 수 있다. 오, 이 사상은 좋지 않으니 마땅히 없애버려야 하고 제거해야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 자체가 바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가.”[6]
내 생각에 분간하는 것은 첫걸음이고 관건적인 첫걸음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인식하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없애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정념으로 배척하거나 발정념 과정에서 점차 그것을 없앤다. 아울러 사부님께서 법에서 우리에게 명시해주셨다. “사실 모든 좋지 않은 사상은 모두 당신이 아니다.”[6] 우리는 마땅히 법으로 가늠해야 하고 ‘신이라면 이렇게 생각할까?’를 떠올리면 된다. 법에 있지 않은 사상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수련은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다. 우리는 마땅히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고 어떤 나쁜 사상과 염두에 좌우지 되면 안 되며 정법시기 마땅히 도달해야 할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많은 수련생은 집착심에 대해 분간하려고 하지만, 기분이 나쁘고 소극적이며 소침하고 짜증나며 초조하고 무료한 사람 마음이 올라올 때 오히려 쉽게 분간하지 못한다. 사람의 감정에 빠져들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렇게 상태가 계속되면 중생구도 효과에 영향을 준다.
이런 상황이 있는 수련생은 이런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다른 형식의 교란을 똑똑히 알고 되도록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수련인이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를 갖고 조사정법의 홍류에 뛰어들길 바란다.
이상은 이 층차에서 깨달은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8년 워싱턴DC 법회’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뉴질랜드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서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9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26/4122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