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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을 배움에 있어 수년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고뇌하였다. 이는 나의 주의식이 약하고 사람 마음이 많고 두려운 마음이 심한 것과 연관되며, 근본적인 집착에 가로막힌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한 마디로 뒤떨어진 제자다.

나도 예전에 법을 외운 적이 있고, 비교적 익숙하게 외운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다른 수련생이 법을 읽을 때, 나는 기본적으로 책을 보지 않고 따라잡을 수 있었다. 물론, 예전에 법을 외울 줄 몰랐을 때, 법을 외우기 시작하니 아주 좋았고,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수련상태도 비교적 좋았다. 예를 들어, 사상 속에 강렬하게 반영되는 색욕 염두가 아주 담담해졌고, 심성관도 쉽게 넘었다. 그래서 나는 법을 외우는 것의 좋은 점을 알았다. 하지만 훗날 비교적 익숙하게 외울 수 있게 되면서(지금에서야 여전히 익숙하게 외운 것이 아님을 알았는데, 책을 보지 않고서는 내용이 비교적 긴 소제목은 전혀 외워내지 못한다) 사상이 딴 데로 가게 됐는데, 통독할 때 사상이 딴 데로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며, 어떻게 법공부 해야 마음에 들어올 수 있는지를 모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천천히 악성순환이 형성되었으며, 발정념은 수년간 기본적으로 형식으로 흘렀다. 게다가 발정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만 하면 사상적으로 너무 하기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느꼈는데, 정념을 발할 때 사상은 허튼 생각을 했다. 그 후에 시간이 되기만 하면 즉시 일어나 다른 일을 했다. 항상 수련생의 법을 외우는 교류문장도 보긴 했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보기 싫어졌는데, 나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본능적으로 법공부에 저항력이 생겼는데, 특히 ‘전법륜’이 그랬다. 낮에는 직업과 집안일로 바쁘다가 저녁이 되어 법공부 시간이 되면 사상 교란으로 법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본능적으로 둥타이왕(動態網)에 접속해 시간을 보냈는데, 사실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실컷 보고 난 후에 시간이 10시 정도가 될 때, ‘전법륜’을 들고 읽었다. 하지만 읽고 읽다 보면 강렬한 곤마(困魔)가 왔다. 그래서 먼저 한숨 잔 후에 다시 보자고 하고는 깊이 잠들어버렸다. 기본적으로 12시 발정념을 아주 적게 했으며, 때로는 3시 때로는 4시 때로는 5시에 깨어났다. 깨어났을 때, 심정은 극도로 낙담했는데,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설령 시간이 족하더라도 연공, 특히 동공에서 고요해질 수 없었기에 거기에 서서 연마하면 사상은 곧 야생마가 질주하듯 전혀 조용해질 수 없었다. 후회를 말로 다 할 수 없었고, 동공도 연마하기 싫어졌다. 정공 한 세트만 연마하고, 다음 날 저녁 자신을 다시 새롭게 조정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기본적으로 지난밤처럼 반복되었다.

어떻게 노력해도 저녁의 좋지 못한 상태를 돌파할 방법이 없었다. 때로 노력에 의해 상태가 조금 좋아지기는 했지만, 나중에 다시 그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연공은 작심삼일이 되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진상도 적게 알리고 단지 집에서 자료를 인쇄하는 등 대법을 실증하는 일만 했다. 사실상 나도 상당히 고뇌했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정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안을 향해 찾았다.

사실 수년간 나는 마음속으로는 수련을 잘하고 싶었으며, 정진하고자 하는 소망을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소망은 소망이고, 실제 상태는 곧 이런 끊임없는 후회 속에서 지나왔다. 예전에 나름 큰 노력을 들인다고 들였는데, 예를 들면, 다른 수련생처럼 밤에 침대에서 자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법을 외우다 졸음이 오면 잠깐만 졸았다. 하지만 일주일 견지하고는 더는 견지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그래도 인위적으로 침대에서 자지 않는 것을 견지했는데, 예를 들면, 소파에 앉아있거나 방석을 깔고 바닥에 앉았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잠이 들었는데, 언니는 나에게 극단으로 갔다고 일러줬다.

작년에 장기간 저녁 법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매일 속수무책으로 둥타이왕을 보며 시간을 허비했다. 2013년에 아랫다리가 부었다가 나중에 원망하는 마음이 매우 심한 것을 찾아내고서 좋아졌는데, 이번에는 왼쪽 아랫다리가 부었다. 마음속으로 걱정이 됐는데, 위탁관리반을 운영하면서 매일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숙제를 도와줘야 했기 때문이다. 한쪽 다리는 크고 한쪽 다리는 작아 바지도 입기 힘들어 다리 폭이 넓은 바지를 사야 했지만, 해결책은 아니었다. 나는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12시 발정념을 하지 않으며, 매일 둥타이왕을 봐서 조성된 것임을 알았다. 게다가 사람 마음이 많은 것이 원인이었다. 이로써 나는 어쩔 수 없이 왜 정진하지 않는지, 왜 주의식이 약한지, 왜 그런 사람 마음을 늘 제거해 버리지 못하는지를 근본적인 데서부터 찾았다. 나는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그에게 내가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기점에서 수련하기에 정진하지 못하며, 앞으로는 사심을 제거하는 데 착수해야겠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훗날 나는 밤 12시 발정념을 1시경까지 견지했고, 아울러 사람 마음을 찾아내 그것을 제거했다. 다리는 몇 달 후에 서서히 부기가 빠졌다.

그러나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주의식이 강하지 않고 사상업이 심하여 법공부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법을 배운 후에는 마치 배우지 않은 것과 같았는데, 일할 때는 각종 질투심, 평형 되지 않는 마음이 곧 야생마처럼 뛰어올라 전혀 조용해지지 못했다. 게다가 또 사상업에 따라 불평, 불만을 가졌고, 주의식이 마찬가지로 강하지 않은 어머니(수련생)께도 이렇게 말해 어머니께도 교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말하고 나서 후회했는데, 이기심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수련이 어째서 나에게는 이렇게 어렵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상업을 제거하기 위해 나는 사부님의 ‘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을 외웠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걱정스러워 법에서 거듭 충고하셨다. 이 집착의 근본상태와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을 제자에게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반복적으로 외웠고,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이 두 단락 법에만 의지하는 것은 부족했고, 필경은 ‘전법륜’을 잘 배우는 것이 관건이었다.

올해 초에 교류문장 한 편을 보았는데, 이 수련생은 법공부 함에 수량을 추구하지 않고, 법을 외울 때 매 한 글자가 눈앞에 펼쳐지도록 요구한다고 했다. 나는 깨우침을 얻고 천천히 법공부 방식을 총결했으며, 한 단락을 반복적으로 읽었다(물론 밍후이 교류문장을 보니 이렇게 하는 수련생도 있었다). 나의 특수한 정황은 법을 읽으면 마음에 들어오기가 어렵고, 사실상 사상업의 교란이 너무 많아 이런 물질이 나와 법의 사이를 벌어지게 했다.

만약 한 단락을 단지 한 번만 통독하면 사상업은 전혀 제거되지 않는데, 이렇게 읽으면 아무리 많이 읽고, 설령 한 강의를 다 읽는다 해도 무엇을 읽었는지를 모르고, 사상업은 마찬가지로 사상 속에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한 단락을 반복적으로 읽었는데, 몇 번을 읽든 이 한 단락의 매 한 구절이 모두 마음에 들어올 때까지 읽었다. 즉, 사상이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을 때까지 읽고, 이어서 다음 단락을 읽었다. 다음 단락도 매 한 구절의 표면 의미가 분명하게 눈앞에 펼쳐질 때까지 읽고, 이후에 다음 단락을 읽었다. 이렇게 읽어 나아가니 2시간 동안 몇 단락밖에 읽지 못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고 수량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렇게 읽으면서 나는 한 가지 좋은 점을 체득했다. 바로 여러 번 법을 읽으면 마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인데, 법을 비교적 잘 읽을 때, 발정념도 단번에 사상이 집중되어, 때로는 40분가량 발정념할 수 있었다. 매번 법공부를 시작할 때, 사상이 비교적 조용해지지 않았기에 이 방법으로 읽어야만 했다.

법이 마음에 들어오도록 법공부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법을 배우고 싶어졌다. 때로는 발정념하기 몇 분 전에도 그 시간을 이용해 한 단락을 몇 번 읽었다. 현재 나의 수련상태는 아직 완전히 잘 조정되지는 않았고, 밤에 곤마 때문에 수련상태가 좋았다 나빴다 하는 교란도 여전히 크며, 밖에 나가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의 두려움도 아직 심하지만 나는 돌파할 방법을 찾아냈다. 이렇게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렇게 뒤떨어진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수련생들이 사이트에 교류문장을 사심(私心) 없이 나눠주어 감사드린다. 그래서 나도 체득을 좀 써내고자 했는데, 비록 여전히 성숙하지 않았지만 이를 써내어 나와 같이 이런 상태에 있는 수련생이 조금이라도 참고하기 바란다. 사부님과 수련생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우리 이곳의 개별적인 수련생이 법공부를 함에 있어 좀 다른 사람과 비기려 한다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우리 이곳의 어떤 수련생이 하루에 세 강의를 읽는다고 하면, 다른 수련생도 따라서 배우는데, 이렇게 빠르게 세 강의를 읽으면서 질을 고려하지 않고, 다 읽고는 바삐 다른 일을 하러 간다. 수년간 현지에서 자료를 만들던 한 수련생이 작년에 병업으로 육신을 빼앗겼다. 그는 이 여러 해 동안 현지에서 그래도 큰 작용을 일으켰다. 예를 들어, 매년 탁상달력, 대련 등을 만들었고, 특히 박해가 비교적 심했던 그 몇 년간 주동적으로 이런 대법일을 감당하며 큰 작용을 일으켰다. 게다가 사악에게 납치당한 후에도 수갑을 찬 채로 파출소에서 탈출한 적도 있다. 한동안 집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다 집에 돌아와 계속 대법 일을 했다. 사악이 수차례 교란하고, 심지어 딸이 납치당했을 때도 자기 집의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도 않았는데, 사부님과 대법을 견정하게 믿는다고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일하는 마음 등 각종 사람 마음이 있었을 것이고, 법공부도 기본적으로 집에서 혼자 배웠기에 법공부가 형식으로 흘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전에 나는 그가 법공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매일 오후 한 강의를 읽었는데, 거의 임무를 수행하듯 했다. 한 강의를 읽고는 오늘의 법공부 임무를 완성하는 셈으로 쳤다. 그 후에 이어서 일을 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발정념도 거의 중시하지 않았는데, 발정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작년에 그가 병업으로 박해당한 것이 비교적 심각했을 때, 우리는 그의 집에 갔는데, 발정념에 대해 말하자 그는 뜻밖에도 어떻게 발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발정념도 지속하지 못했다. 그는 시내에 있는 수련생은 하루에 세 강의를 보고, 자기도 세 강의를 보는데, 법공부를 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결과, 며칠 후에 병업으로 끌려갔다. 물론, 그가 병업으로 끌려간 데는 또 다른 원인도 있는데, 주로는 수련이 형식으로 흘러 조성된 것이다. 이만큼만 쓰겠다. 다시 한번 사부님의 구도에 감사드리며, 반드시 정진하겠다.

동시에 수련생이 사심없이 사이트에 문장을 공유해 준 것에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20년 9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17/4118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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