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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는 마음을 수련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몇 년간 나는 혼자 수련하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굽은 길을 적게 걸으려고 정법노정을 따르며 밍후이왕 보는 것이 매일 빼놓을 수 없는 습관이 됐다. 특히 대법수련 중의 신기한 이야기와 수련 체득을 보기 좋아했다.

많은 수련생이 자신이나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재난을 당했을 때 사존의 보호 아래 위험이 사라졌다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신체가 심하게 다치거나 악성 질병을 앓았지만 수련을 강화하고 심성을 제고하자 신체가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됐다고 했으며, 어떤 이는 자신의 생활과 직장 일로 곤경에 빠졌으나 부단히 안으로 찾자 사정이 호전됐다고 썼다. 이런 문장을 많이 보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가지 습관적 사유가 형성됐는데 근무 중 곤란이 생기면 나는 재빨리 안으로 찾게 됐고, 집착을 잘 찾기만 하면 심성은 제고됐으며 곤란은 쉽게 해결됐다. 일의 성과가 좋지 않을 때 나는 계속 자신의 명리심을 청리했는데 명리심이 올라오면 제거해 버리자 일의 효과도 좋아졌다.

그런데 한 가지 집착을 찾아 발정념으로 제거해 버리거나 의도적으로 배척해 버린 후에도 일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왜 그럴까?’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반년 전 나는 정강이뼈가 골절돼 병상에 누워 끊임없이 안으로 찾으니 확실히 많은 집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과시심, 색욕심, 명리심, 분노, 원망심, 질투심, 쟁투심, 조급심, 두려움 등등인데 나는 끊임없이 찾아내 발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해 버린 다음 다리가 호전됐는지 살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집착을 찾아 깨끗이 제거하고 계속 다리 상태를 살펴봤다. 항상 좀 맞지 않는 것 같았지만 법을 배우고 안으로 찾음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냉정하게 자세히 돌아보니 자신이 법을 배우고 안으로 찾는 것은 눈앞의 곤란을 해결하거나 사부님께 내 신체의 고통을 없애 달라고 하는 것임을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법을 배우고 안으로 찾는 배후에는 매우 강한 집착 즉, ‘구하는 마음’이 감춰져 있었다.

이런 구하는 마음을 찾은 이후 나는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번 골절이 어쩌면 21년 전 법을 얻은 지 오래지 않았을 때의 바르지 않은 생각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전법륜(轉法輪)’ 제3강에서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생명 위험에 부딪혔을 때 놀라긴 했지만, 위험은 없었던 네 가지 사례를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왜 자동차에 한 번 부딪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아주 큰 업력도 갚을 수 있고 사부님의 보호 아래 있기에 생명 위험도 없을 텐데’하고 생각했다. 당시 생각은 분명 법의 위대하고 초범성을 실증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었고, 강렬한 구하는 마음이었다. 이 같은 재난을 구하는 생각은 점차 기억이 흐려졌지만, 구세력은 잊지 않고 오늘의 화근으로 심어둔 것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허약체질이어서 어려서부터 병고가 많았기에 질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서부터의 큰 소원이었다. 달리기, 중의(中醫) 연구, 태극권과 가짜 기공을 꾸준히 해왔지만 타고난 허약체질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릴 적 친척 집에 간 것이 기억나는데 고기 삶는 냄새에 속이 역겨워 음식을 먹지 못했다. 한번은 버스를 10km 정도 탔는데 다음 날까지 토했고 심지어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도 눈을 뜰 수 없었다. 16살 때 신경쇠약에 걸려 잘 자지 못했고 낮이면 정신이 몽롱했다. 19살 때 실습을 나가면 매일 점심은 볶은 국수를 먹어야 했는데 한 달이 지나자, 동급생들은 괜찮았지만 나는 급성 설사에 걸렸고 이후 만성 장염으로 변했다. 기름을 좀 많이 넣은 요리를 먹으면 즉시 장이 꼬르륵거리며 설사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건강의 기본 조건이지만 한창 청년 시절인 나에게는 꿈같은 얘기나 사치였다.

1998년 11월 어느 주말, 나는 친구들과 돌아다니다 거리에서 파룬궁(法輪功)을 소개하는 현수막 속 사진들을 봤다. 이전에 몇 가지 기공을 연마해 봤으나 신체에 무슨 변화가 없었기에 나는 기공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지나가다 힐끗 몇 번 봤는데 그중 몇 마디 말이 내 관심을 끌었다. 대강의 뜻은 심성을 제고하면 공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이 공을 연마하면 좋겠다. 심성을 제고하기만 하면 공이 자랄 수 있을 것이고 공이 자라면 자연히 병도 나을 것이다. 나는 착실한 사람이고 나쁜 일을 하지 않는데 내 개성과 인품과도 맞지 않겠는가? 얼마나 편리한가’하고 생각했다. 얼른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빌렸고 이때부터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비록 공을 자라게 하고, 병을 치료하고 싶은 강렬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이후 수련하는 중에 확실히 신체가 계속 좋아졌다.

1999년 7·20 중공(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일부 수련생이 계속 걸어 나와 법을 실증했는데 어떤 사람은 체포되고 수감됐다. 어느 수련생의 정확하지 않은 교류를 들으니 감옥이 다른 공간에서는 무슨 절이라고 하며, 그 속에서는 집착을 제거함이 빠르고 공도 빨리 자란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차분하지 못했으며 냉정하게 대법으로 이 말이 정확한지 따져보지 못했다. 머릿속은 온통 감옥에 들어가면 공이 빨리 자랄 것이란 생각이었다.

2000년 8월 사부님의 경문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가 발표되자 나는 공이 자라는 것과 원만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졌다. 오래지 않아 나는 ‘소원대로’ 구치소에 약 20일 수감됐고 벌금 5000위안에 공직에서 배제된 채 관찰대상이 됐다. 나중에 사부님 설법을 배우고 나서야 감옥은 전혀 수련 장소가 아니며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형식임을 알았고, 그제야 그 곤란은 자신이 구해온 것임을 깨달았다.

2013년 상반기, 우리 지역 수련생 한 사람이 비밀리에 성 소재지의 어느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아내가 이 소식을 알고는 나에게 “당신도 조심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고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잡을 테면 잡아가라지”하고 한마디 했다. 3개월 후 나는 정말로 붙잡혀 갔다. 세뇌반에서 나는 당혹스러웠는데 ‘내가 어떻게 붙잡힐 수가 있지? 나는 매우 조심했었는데.’ 세뇌반에서 감옥 경찰과 면담 때도 실질적인 증거를 내놓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에야 나는 불현듯 깨달았는데 이것 역시 내가 구한 것이었다.

내 모든 수련 과정을 돌아보니 구하는 마음이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되고 있었고 매번의 큰 난과 박해도 구하는 마음과 관련이 있었다. 병이 낫기를 구하고, 공이 자라기를 구하며, 층차 제고를 구하고, 명성을 구하며, 이익을 구하고, 권력을 구하며, 안일을 구하고, 원만을 구하는 등등……. 이렇게 여러 해를 수련했지만 나는 줄곧 그것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더욱이 깨끗이 제거해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사부님은 ‘전법륜’ 제2강의 한 단락에서 특별히 ‘구하고자 하는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구하는 마음의 엄중함을 볼 수 있다. 나는 읽고 외우고 했는데 어떻게 그것을 중시하지 못하고, 그것을 제거해 버리지 못할 수 있으며, 그것이 내 공간장에서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존재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자신의 법을 배우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봐야 했다. 착실한 수련을 중시하지 못했고,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가늠하지 못했으며,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지 못했다.

정법은 거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기에 더는 미적거릴 수 없으며, 이런 바르지 않은 것이 내 수련을 교란하게 해서는 안 되고, 중생구도를 교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원문발표: 2020년 9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18/4118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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