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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신법, 일상생활 속에서 집착심을 닦아버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9년 중학교 다닐 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한 후 나는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고 무슨 일을 하든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먼저 생각했다. 그러나 대법의 요구에 비춰보면 나는 자신이 진선인(真·善·忍)의 표준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1. 원망하는 마음을 닦아버리다

나는 첫째를 낳을 때 순산하느냐 아니면 제왕 절개하느냐 하는 문제로 시어머니와 의견이 맞지 않았고 게다가 모순이 점차 커졌다. 시어머니가 듣기 싫은 말을 한 데다 나는 이런 고난을 겪은 적이 없어 좀 참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또 내 앞에서 시아버지에게 말했다. “나는 손녀를 돌보러 온 거지, 며느리를 돌보러 온 게 아니에요.” 나는 더 상심했다. 그 기간 나는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아 고통 속에서 살았다.

한번은 설거지할 때 원망하는 염두가 오른쪽 뇌로 들어왔는데 사부님의 목소리도 오른쪽 뇌로 들어와 나를 설득해 나는 고통스럽지 않았고 사상도 매우 평온해졌다. 그때 아직 깨닫지 못해 이상하다고만 느꼈다. 약 3년 6개월이란 시간을 거쳐 나는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항상 자신을 규범화하고 억제하고 각 방면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수시로 첫 일념에 원망을 저지했다.

시어머니와 관련된 일이기만 하면 나는 정념정행하기에 노력했고 원망하는 사상을 극복하기에 노력했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자신이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1]의 경지에 도달한 것을 발견했다. 구체적인 표현은 시어머니와 모순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 나의 첫 일념에서 다시는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이상하게 여겨졌다. 왜 화나지 않지?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것처럼 평온했다.

나중에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것은 3년 넘는 시간에 겪은 많은 마찰에서 내가 항상 자신을 바로잡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법의 표준에 도달한 것임을 깨달았다. 즉 바로잡는 과정에서 내가 한번 해내면 사부님께서 좋지 않은 사상 물질을 조금씩 제거해주신 것이다. 늘 견지하고 결과를 구하지 않고 자신을 바로 잡으면 마지막에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다. 수련인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신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얕보는 마음을 닦아버려야 한다.

2. 두려운 마음과 의심을 닦아버리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할 때 붙잡힐까 봐 두려워 마음이 매우 괴롭지만 어떻게 돌파할지 모르면 나는 먼저 사부님께 빌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두려웠다. 한 번은 물건 살 때 새 진상 화폐 2장을 썼는데 가게 주인이 많은 사람 앞에서 진상 화폐를 골라내고 “아주머니가 나에게 준 돈은 무슨 돈입니까?”라고 말하고 나에게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그곳에 멍하니 섰고 두뇌는 텅 비었다. 약 20여 분 기다린 후 사장이 와서 돈을 바꿔준 후에야 나는 떠나갔다. 그 후로 다시 돌파하기 매우 어려웠다. ‘후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돌파해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다. “내가 사부님께 빌었는데 왜 아직도 이런 두려운 마음이 있는가? 이런 두려운 염두는 100% 신사신법이 아니잖은가? 이것은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일념을 내보내면 천지가 다 안다. 내가 사부님께 한 번 빌면 사부님께서는 아신다.” 그 이후로 나는 법을 실증하러 나갈 때면 사부님께 한 번만 빌고 사람 생각을 통제하고 정행(正行)했다.

말은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다. 진정하게 의심을 닦아버릴 때 많은 고난을 겪은 후에야 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후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돌파할 때 집에 돌아가면 의심하는 염두가 들어와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때 온갖 두려움이 머리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미행한다, 집 문 앞에 감시카메라가 있다, 맞은쪽 문에서 경찰이 감시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경찰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전화벨이 울려도 경찰을 연상했다……

이런 것에 대해 나는 매번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이런 부정적인 염두를 나는 믿지 않는다. 나는 반드시 이런 부정적인 사유를 억누르고 억제할 것이다. 그것에 따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참 억누르고 억제하면 좀 좋아졌다가 좀 지나면 다시 올라왔고 다시 억누르고, 억제하고 따라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에서 튀어나왔다. “네가 이렇게 억누르고, 억제하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가?”

대략 반년 동안 계속 머리에 이런 가상이 나왔으나 현실로 변하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떠오르는 생각과 맞섰다. “네가 나를 두려워하게 하면 나는 사부님을 확고하게 믿고 정념정행하겠다.” 서서히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나는 두려운 마음을 이렇게 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내가 ‘불법 사이트’에 접속했다면서 나의 신분증 번호를 입력하라고 했다. 나중에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갑자기 겁이 났고 두려웠다. 인터넷 저쪽에서 나를 감시할까 봐 두려웠다. 알 수 없이 유난히 두려웠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즉시 나를 붙잡으려는 것 같았다. 이런 부정적인 사유에 대해 나는 먼저 사부님을 생각하고 마음을 안정시킨 후 인터넷에 접속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의 능력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는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고 접속하기에 가장 안전하다. 의심하는 염두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

바로 이때 경찰차가 우리 집 아래층에 왔다. 나의 두려움과 의심하는 마음이 급속하게 올라와 억제하지 못하고 베란다에 가 보았고 온몸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때 나는 그것에 따라 생각하지 않도록 즉시 자신의 의심하는 생각을 억누르고 억제했다. 그러나 또 마음이 올라왔다. ‘당신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신을 체포하지 않을 줄 아는가?’ 나는 즉시 이 생각을 부정했다. ‘나는 사부님만 믿는다.’ 그러나 마음이 여전히 올라왔다. ‘그들이 왜 아직도 올라오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줄곧 ‘나는 사부님만 믿는다.’는 이 일념을 지켰다. 이렇게 줄곧 경찰차가 떠나갈 때까지 억누르고 억제했다.

고비를 넘은 후에야 나는 이웃이 파출소에 임시로 근무해 경찰차를 몰고 집에 돌아온 것임을 알았다. 나는 일에 부딪혔을 때 의심하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바로 의심하는 마음을 닦아버릴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일을 겪고 경험을 총결하면 의심하는 마음에 따라 생각하지 않으면 실제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자가 신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우선 의심하는 마음을 닦아버려야 한다.

3.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꾸다

둘째 아들은 3살 전까지 화장실에 갈 줄 몰라 온 방에 대소변을 보았다. 나는 너무 화가 나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다. 속인은 ‘가성 자폐증’이라고 했고 수련생들은 구세력의 교란이라며 나에게 승인하지 말고 발정념하라고 했다. 당시 가족과 외부 압력에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나는 다른 수련생이 발정념한 경험에 근거해 이 일을 겨냥해 발정념했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어 화만 났다.

어느 날 나는 아들을 화장실에 데리고 가 강제로 소변을 보라고 했는데 그는 참고 소변을 보지 않고 여전히 거실에서 쉬했다. 나는 정말 방법이 없어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두었고 화도 내지 않았다. 귀찮아하지 않고 달갑게 아들의 똥오줌을 치웠다.

하루 반 지난 후 점심에 아들이 갑자기 화장실에 가 쉬했다. 나는 당시 놀랐다. 그때로부터 총결하지 않고 작은 일을 실천하도록 시도하고서야 무엇이 ‘내려놓는 것’이고 ‘집착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자신을 바꾸려고 할 때 아들에게도 작은 변화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사부님께서 나에게 ‘깨닫게’ 한 것임을 알았다. 내가 자신을 바꾸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모든 것을 바꿔주셨다. 깨달은 후 나는 자신을 착실하게 닦고 자기를 바꾸었으며 “상유심생(相由心生)”[2]의 법을 믿었으며 정행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집착심을 가지고 발정념하면 전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편안함과 안일함을 추구하고 자아를 감히 내려놓지 못하면 정행할 수 없으며 여기에는 법에 대해 확고하지 않은 점이 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신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자아를 닦아야 한다.

4. 환희심과 과시심을 닦아버리다

환희심과 과시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스스로 번거로움을 자초하고 한 층차에서 방황하게 되며 시간이 길면 층차가 떨어질 수 있다. 나는 2년 반이란 시간을 들여 점차 자신의 ‘병’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통제했다. 병이라는 관념이 막 싹 텄을 때 그것이 나의 대뇌에서 문자로 형성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고 환희심과 과시심이 나타나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다.

딸이 2살 반이었을 때, 어느 날 밤에 고열이 났다. 이전에 열이 나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염하기만 하면 아무 일 없었는데 이번에는 효과가 없었다. 당시 남편이 출장 가서 내 어머니(수련생)가 우리 집에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 빌었고 어머니는 정념을 내보내며 ‘파룬따파하오’를 염했으나 딸은 계속 경련을 일으켜 매우 두려웠다. 나는 속으로 좀 불안했다. 딸이 연속 두 번 경련을 일으켜 나는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고 머리가 텅 비어 있었으며 병원에 가야할지 좀 동요했다.

이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가서 사부님께 무릎 꿇고 잘못을 인정하거라.”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 꿇어앉아 절하며 말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어떻게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잠자던 딸이 눈을 뜨지 않고 갑자기 말했다. “엄마, 큰 부처님이 정말 아름다워요.” 나는 얼른 물었다. “어디에 계시냐? 몇 분이냐?” 딸은 서쪽 벽을 가리키며 “둘”이라고 말했다. 나는 벽을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딸은 열이 내렸고 잘 잤다.

이튿날 아침 나는 반대편 이웃의 아이가 병이나 어찌어찌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준비할 때 또 맞은편 건물 사람이 손녀가 병이나 어찌어찌했다는 말을 들었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었을 때 또 한 사람이 아이가 병이나 어찌어찌했다고 한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3번 ‘병’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모두 ‘거 봐. 대법을 수련하지 않으니 아이가 병이 난 거 아닌가? 약도 먹어야 하고, 우리는 대법을 수련하여 아이가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을 발견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이 환희심과 과시심이 아닌가? 평소 자신이 열등감이 있고 내성적이어서 과시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이번에 움직인 생각이 과시가 아닌가? 물론 내심의 과시를 드러내지 않아 나만 알고 있었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안으로 찾고 과시심을 닦아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의식주에 모두 과시하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항상 자신의 염두에 주의를 기울이고 항상 자신의 과시심을 억제했다.

진료소를 봤을 때 과시하는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병’에 대한 관념을 통제했다. 한 번은 딸이 열이 났는데 딸을 가까이하니 몸이 매우 뜨거웠다. 나의 대뇌에 ‘파(發)’자가 나타났을 때 즉시 통제하고 ‘사오(燒, 열이라는 뜻)’자가 나오지 못하게 했더니 딸은 즉시 뜨겁지 않았다. 정말 신기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기만 하면 모든 망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의 상태에 도달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려면 반드시 환희심과 과시심을 닦아버려야 한다.

그 이외에 또 한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3]를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 자신을 닦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꿔줄 수 있다.

다년간 나는 명리정(名·利·情)을 닦는 데 꾸준히 노력해 왔다. 어떻게 자신의 사상 염두를 닦고 집착심을 제거할 것인가를 깨달았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고 한 이 법의 한 층 내포를 진정으로 깨달았다. 착실한 수련과 총결을 통해 생활 속에서의 그런 집착심과 늘 범하는 실수를 폭로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총결한 후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이것이 바로 착실한 수련이고 제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도(道) 중에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제역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9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18/4118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