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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신사신법(信師信法)해 최후의 길을 잘 걷다

글/ 쓰촨 대법제자 밍신(明心)

[밍후이왕] 어떤 사람이 나에게 “농촌 할머니로서 법을 얻은 지 겨우 몇 달 만에 박해를 마주했는데, 20년간 어떻게 견지해낼 수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나의 체득은 이러하다. 수련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우리에 대한 시험이 존재한다. 우리가 만난 고비에서, 어려움에서도 한결같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 행해야 하고 마지막 한순간까지 느슨히 해선 안 되며, 빗나가지 말아야 걸어올 수 있고 마지막 원만까지 나아갈 수 있다.

내 경험으로 조금이나마 터득한 걸 이야기하려 한다. 문제 있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1. 기적이 십 리 밖 여러 마을에 퍼지다

나는 쓰촨 산골지역 농촌 여성이고 법을 얻기 전에 자궁암으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1999년 1월 13일, 한 파룬궁수련생이 TV와 비디오 플레이어를 빌려오고 일부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 우리 집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 학습반을 열었다. 수련생은 나를 침대에서 부축해 거실에 앉게 했다. 나는 화면에서 사부님께서 부처님 모습인 것을 보았는데, 가부좌하시고 높은 곳에서 천천히 내려오시자 보통 사람의 형상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나는 놀라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빨리 보세요. 보살님이 오셨어요”라고 말했다. 수련생이 “그분은 우리 사부님이십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집중해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나는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을 내려놨고, 병이 있다는 생각을 내려놨다. 나는 모두 알아들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을 아주 잘하신다고 느꼈다.

어릴 때부터 집이 가난해 학교에 며칠 다니지 못했고, 배운 글자는 모두 잊어버렸다. 비디오를 본 후 나는 막내에게 ‘전법륜’을 읽어달라고 했다. 그다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다. 저녁에는 등잔불 아래서 한 글자 한 글자씩 법을 배웠다.

이렇게 일주일도 안 되어 나는 발에 힘이 생겼고 더는 하혈하지 않았으며 아랫배의 극심한 통증도 사라졌다. 오랜 세월 동안 앓았던 두통, 온몸이 아픈 고질병도 나아졌다. 나는 일어서서 연공할 수 있게 됐고 밥도 짓고 집안일도 할 수 있었다. 완전히 활력이 넘치고 건강한 사람이 됐다.

누가 약을 먹지 않고 침도 맞지 않으며 연공해서 병이 나아졌다고 믿겠는가? 아울러 신체 각 방면은 모두 신기할 정도로 잘 회복됐다. 내 몸에서 일어난 파룬따파의 기적은 십 리 밖 여러 마을에 전해졌고 우리 마을, 우리 진(鎭), 이웃 마을, 이웃 진의 많은 사람이 우리 집으로 달려와 어찌 된 일인지 보았다. 우리 집 앞의 큰 제방은 연공장이 됐다. 구경하러 온 사람, 연공하러 온 사람들이 많을 때는 백 명도 넘었다.

그때 우리는 열흘에 세 번의 단체 연공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단체 법공부를 했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오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올 수 있게 했다. 단체 법공부를 할 때 글을 아는 사람은 글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한 단락 한 단락 천천히 읽었다. 그 진지한 기세를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감개무량하다. 그것은 행복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대법의 아름다움은 우리 산촌에 전례 없는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줬다.

2. 법회에 참가하다

내 건강은 10여 일 만에 회복됐고, 수련생들은 나를 시(市)에서 열리는 파룬따파 학습반에 참가할 것을 추천했다. 허름한 시골 버스는 산을 감도는 도로에서 예닐곱 시간 동안 요동쳤다. 나와 이웃 마을의 수련생이 시내에 도착하자 도시 수련생들이 팻말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 웃는 얼굴이었고 열정적으로 우리에게 숙식을 제공해줬다.

파룬궁수련생 간에는 그렇게 사이가 좋았고 귀천의 구분이 없었다. 나처럼 깊은 산골에 살면서 도시에 가본 적이 없는 시골뜨기도 매우 감동했다. 식사할 때 수련생들은 그릇에 남은 반찬을 각자가 조금씩 나눠서 먹었고 식탁마다 똑같았다. 식탁마다 남은 밥과 반찬이 없었고 떨어진 반찬이나 밥알도 없이 깨끗했다. 나는 매우 놀라고 감동했다. 나는 파룬궁수련생들이 일반인이 아님을 보았다.

우리는 단체로 연공하고 법공부하며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보고, 수련생의 심득 교류를 들었으며 또 우한 수련생들이 체육관에서 홍법하는 영상을 보기도 했다. 대법의 수승(殊勝)함, 대법제자의 풍모, 수련생들의 감동적인 수련 이야기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학습반의 수확을 고향으로 가져가 수련생들과 교류했다. 모두 대법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지는 형세를 알게 됐는데, 많은 격려를 받았다.

3. 마(魔)는 도(道)보다 높을 수 없다

1999년 4월 25일, 베이징에서 만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평화롭게 청원한 ‘중난하이(中南海)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마을은 그때부터 긴장됐고 각 방면에서 교란받았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단체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없었다. 7월 20일에 이르러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그 천지를 뒤덮는 사악한 기세가 덮쳐왔다. 나는 박해 주요 대상이 되어 붙잡혀 수감됐다. 정부와 경찰은 나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 생각났다. “어떠한 압력도 모두 불법(佛法)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견정(堅定)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고험하는 것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법에 대하여 아직 견정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1] “관건적일 때,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2] “그 마(魔)는 영원히 도(道)보다 높을 수 없다.”[3]

사부님의 법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번 박해는 수련인에 대해 한차례 중대한 시험이다.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파룬따파가 그렇게 좋고, 사부님도 그렇게 좋으며, 파룬궁수련생은 그렇게 고상한데 정부가 파룬궁을 얼마나 모함해도 내 마음속 진실을 바꾸지 못한다.’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한 것인가는 나는 명백히 알고 있다. 나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갈 것이다. 나는 단호히 믿을 것이다. 결국 사악은 정의를 이기지 못하며 파룬궁은 결국 사악을 이겨낼 것이다.

그 당시 그 혹독한 형세에서 사부님의 법은 나에게 거대한 힘을 주었고 내가 대법을 굳건히 수련하겠다는 결심과 신심(信心)을 가지(加持)해 주었다. 나는 수련생들과 교류했고 무슨 두려워할 게 없다며 “오는 대로 우리가 받읍시다,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가 떠맡읍시다”고 말했다.

공안 경찰이 집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고 내 비디오 플레이어를 빼앗아갔다. 내가 파룬궁의 ‘두목’이라고 말하며 몇 차례 구치소, 세뇌반으로 납치해 수감했다. 한번 수감되면 10여 일 혹은 몇 달이었다. 나는 공안, 정부가 보증서와 삼서(三書: 수련 포기각서)를 쓰라고 하고 대법 수련을 포기하라는 지시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법을 알리고 사부님께서 나를 죽음에서 구해주신 진상을 말해주며 파룬따파가 좋음을 실증했다.

내가 ‘전향’하지 않자, 2001년 1월 27일 명절 전날 밤, 현 공안 국보(국내안정보위국), 진(鎭) 정부 간부, 마을 간부, 파출소에서 여러 명이 우리 집에 쳐들어왔다. 우리 집 식구 3대를 모아놓고 온 가족 앞에서 나에게 압력을 행사했다. 가족들 앞에서 연공하지 않겠다고 말하라고 했다. 어딘가에서 나온 진상 자료와 스티커를 내가 배포하고 붙였다며, 자료 출처를 물으며 협박했다. 그들에게 협조하면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공안국에 가야 하는데, 괴로운 나날을 보낼 거라고 했다. 그들은 이렇게 깊은 산속에 있고 배움도 짧은 농촌 여성이 파룬궁을 배운 지 겨우 며칠도 안 되니, 한 번 놀라게 하면 굴복할 줄 알았으나 그들은 잘못 생각했다. 그들은 대법의 위력을 과소평가했고, 수련인 마음속의 움직일 수 없는 확고함은 우주 대법에서 온다는 것을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설득하기를,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감히 수련하지 못하는데 당신도 하지 마세요. 하루가 멀다고 당신을 잡으러 오고 당신을 가두는데 가족들 마음도 매우 초조합니다”고 말했다. 그렇다. 가족도 박해의 고압 속에서 고난을 감당하고 있었다. 또 손자들은 진학에 영향받고 입대할 수 없으며 공무원 시험을 칠 수 없다고 협박했다. 나는 여러 번 수감됐는데, 가족들은 돈을 써도 나를 만날 수 없었고 나를 구할 수 없었다. 며느리는 또 집문서로 보증해 나를 보석하려 했다. 나는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이야말로 나쁜 일을 하는 것이고 깊은 밤에 약탈하러 온 강도와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이고 정정당당하다고 말했다. 사부님을 따라 이 공을 반드시 수련할 것인데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보겠다고 말했다.

길이 아무리 길고 험난해도 대법의 지도와 사부님의 보살핌으로 나는 인생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을 했고, 가장 큰 시련을 겪으며 정법 수련의 관건이 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4. 굳건히 견지하고 사람을 구함에 있어 태만하지 않다

장기간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수련하면서 나는 순조롭게 책을 보고 법공부할 수 있었다. 또한 ‘밍후이주간’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고 우리가 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수많은 수련인이 겨우 알게 되는 천기를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두 말씀해 주셨으니, 우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장쩌민 박해를 폭로하는 그러한 포스터를 우리는 한 묶음, 한 묶음 준비해 수련생들이 나가서 붙이게 한다. 가기 전에 먼저 지역을 대략 살피고 저녁에 50km 밖에서부터 시작해 집 근처로 붙이면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진짜로 하늘과 땅을 놀라게 하는 장거였다.

정법 수련, 이 길고 긴 시간에서 심성을 제고하는 각종 시험이 시시각각 있었으며 각종 관(關), 난을 모두 우리는 마주해야 하고 돌파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부딪힌 관은 가족 정이었다. 우리는 필경 사악의 박해와 위험 속에서 사람을 구하기에 남편은 내가 하는 일을 무척 걱정했다. 매번 내가 가방을 메고 나가는 것을 보고 온종일 조마조마하다가 내 모습이 집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매번 중공 경찰이 나를 붙잡으러 올 때마다 불법 가택수사를 한다며 침대 위의 물건을 온 바닥에 던졌고 침대 바닥을 뒤집어 놓고 뒤졌는데 방안을 전부 뒤집어 놓았다. 매번 내가 붙잡혀간 후 집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됐고 남편은 반나절이나 집을 정리해야 했다. 남편에게는 굴욕이었고, 분노했으며 불안해했다. 아들 몇 명과 며느리 몇 명이 모두 잔소리하면서 나에게 연공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을 달래서 공부시키는 것도 힘들고 아이들이 학업을 마치는 것도 힘든데, 아이들의 앞날에 영향을 주지 말라고 했다. 나는 모순에 부딪히면 그것을 피하고 에돌아가면서 소극적으로 감당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랐다. 한번 또 한 번 인내심 있게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이전에 침대에 누워 잠자면서 죽음을 기다렸고 병 치료할 돈도 없고 돈이 있어도 병을 치료할 수 없었는데, 너희 누구도 나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대법과 사부님께서 나를 구하셨는데 이는 너희가 직접 목격한 것이다. 내 건강이 좋아져서 너희에게 밥을 지어주고 손자 한 명 한 명 업어서 키워주고 돼지, 소를 키웠다. 그 후로 너희에게 치료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너희가 말해봐라. 너희한테 얼마나 많은 부담을 덜어 주었니? 대법에 대해 사부님에 대해 너희도 마땅히 이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애들이 나중에 어떤 사업을 하려고 하는지는 자연스러움에 따라야 한다. 마땅히 어떠한 일이든 사부님께서 상관하고 계신다. 대법제자는 진상을 알려서 세인을 구하고 있다. 나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너희는 나를 따라 고생했고, 너희는 대법과 대법제자를 지지했으니 장차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4]

진상을 안 손자들은 대법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가 생겼다. 한 손자는 학교에 가다가 마침 나를 잡으러 온 경찰과 마주쳤다. 급히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나의 ‘전법륜’을 책가방에 넣고 집을 나갔다. 한 손자는 “할머니, 저는 공무원 시험을 보면 반드시 붙을 수 있어요. 근데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파룬궁을 연마하는 가족은 파룬궁을 다시는 연마하지 않는다고 서명해야 한대요. 저는 시험 보러 가지 않을 거고, 다른 일자리를 찾을 거예요. 할머니, 저는 할머니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 부담도 드리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지금 내 몇몇 손자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아주 좋은 일자리가 있다. 공무원 시험을 치지 않은 손자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1만 위안(약 173만 원)이나 되는 급여를 받는다.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대법제자 가족에게 주신 복이다.

우리가 사부님 말씀을 듣고 법에 따라 행하기만 하면 수련의 길은 잘 걸을 수 있고 바르게 걸을 수 있다. 주변 가족도 복이 있게 되고 중생도 복이 있게 된다.

5. 최후일수록 더욱 중요하다

2020년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폭발했고 대법제자가 사람 구하는 것이 마지막, 가장 긴박한 고비에 이르렀다는 걸 우리는 깨닫게 됐다. 그러나 이때 나는 갑자기 심각한 병업 현상이 나타났다. 2020년 3월 중순 어느 날, 연공한 후 나는 온몸이 으슬으슬 춥고 이가 떨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그 후 고열이 멈추지 않았고 얼굴은 아주 크게 부었다. 온 얼굴에 물집이 생겼고 복부의 피부는 긁어서 아팠으며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야채수프를 마셨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은 너무 놀라서 나에게 병원에 가라고 설득하며 돈이 얼마나 들어도 괜찮다고 했다. 만약 집안에서 죽으면 영향이 아주 크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는 금방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구세력이 병업 형식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도 구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고”[5]라고 하셨다. 나에게 심각한 병업이 나타난 것은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집착이 구세력에 의해 틈을 타서 박해당하는지 봐야 한다. 나는 병업이 나타난 이틀 전에 연공 음악이 갑자기 중단됐다가 다음 날 또 정상으로 된 것이 생각났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점화하신 걸까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나는 깨달았다. 중공 바이러스가 폭발하고 밍후이왕은 천상의 변화, 정법 노정의 추진에 따라 다양한 내용의 진상 자료를 끊임없이 게재했다. 전단·책자·영상·오디오·포스터 등등. ‘밍후이주간’에서 보니 각 지역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을 잊고 사람을 구하고 있으며 무척 잘하고 있었다. 최근 나는 감시카메라를 두려워하고 사람에게 진상 자료 주는 것을 두려워했다. 두려운 마음이 가로막고 있었으며 나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도달해야 할 긴박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시기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고 전에 밤길 100리 길을 가던 기세와 비교하면 격차가 컸다. 나는 마땅히 심성을 제고해야 하고 이 상태를 개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안으로 자신의 집착을 찾으며 가족에게 “걱정하지 마. 나는 수련인이야. 사부님의 보호가 있기에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수련인 신체에서 나타나는 상태는 속인이 병에 걸린 표현과 같지만, 전혀 같은 것이 아니다. 돈이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가? 병원이 진짜로 목숨을 구할 수 있는가? 당신들이 보기에도, 일부 우한 폐렴을 앓았던 부자들이 병원에 가서 치료해도 죽지 않았는가?

현재 가정환경과 교통 여건이면 병원에 가기란 매우 쉽다. 그러나 생사관에서 가족 정의 유혹에 만약 내가 신사신법에서 조금이라도 정념(正念)이 부족했다면 그들은 강제로 나를 병원에 보냈을 것이다. 나는 다른 공간의 사악이 호시탐탐하게 나를 노릴 뿐만 아니라 내가 넘어지기를 바랐고 병원에 가서 치료하는 속인으로 변하게 한 후 그들은 진짜로 목숨을 빼앗으러 오려고 한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매일 괴로움을 참고 법공부·연공·발정념을 견지했다. 며칠 뒤 얼굴의 부기가 내려갔고 물집도 딱지가 생겼으며 고열도 멈췄다. 가족은 또 한 번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나도 생사의 큰 관을 한 번 넘었고 최후 단계에서 신사신법의 근본적인 시험을 겪었다.

내가 알기로는 일부 수련생들이 최후의 단계에도 각종 시험에 부딪힌 것으로 안다. 예를 들어 병업·게으름·자만·가족 정 등등이다. 우리가 최후 단계에 부딪힌 이런 관들은 모두 시험이다. 오로지 우리가 끝까지 사부님의 법에 따라 행하면 우리는 가시밭길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고, 최후에 원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깊은 산골의 한 농촌 여성에서 중생을 구하는 대법제자가 됐다. 모진 역경을 거친 20년간 매 한 걸음 모두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고 계셨고 나를 이끌어서 걸어오게 하셨다. 정법 수련, 천 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우리는 기다렸고 우리는 너무나 행운아다. 중생구도의 일을 잘해서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고생’
[5] 리훙쯔 사부님 경문: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원문발표: 2020년 8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7/4086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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