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이라, 무엇을 누락이 없다[無漏]고 하는가? 작은 일은 없다.”[1] 저는 아무리 작은 일처럼 보여도 배후에는 모두 집착하는 사람의 마음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할까 봐 두려울 뿐, 인식하고 발견했다면 왜 그것을 닦아 없애지 않을까요!
매일 엄격하게 마음을 닦는 과정에서 저는 매 사람 마음에서 반영되어 나오는 그 일순간 미루지 않고 피하지 않으면 하나 또 하나를 건널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면 업력이 감소하고 우리에게 더욱 대법을 확고하게 믿게 합니다. 또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앴기 때문에 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뀜으로써 수련의 아름다움을 체득하게 되어 저는 수련에서 자신감을 더욱 키웠습니다.
1. 업무 중에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다
한 번은 한 동료가 제게 업무 운영 설명서를 작성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잘 작성한 뒤 그녀에게 확인받았지만 결국 그녀는 만족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날 저와 이 일에 관해 한 번 논의하자고 말했습니다. 일본인은 업무를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며 열심히 하므로 그 후, 우리는 회의를 열어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연구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작성한 것이 비록 잘못은 없지만 일목요연하지 못하며 일부분에서 제가 표 형식으로 작성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레이아웃 디자인 방면은 저의 취약한 부분이며 저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머릿속에 개념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제기했을 때, 저는 ‘정말 번거롭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사용할 수 있으면 됐지. 정말 쓸데없이 일이 참 많네.’라며 즉시 사람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이 ‘번거롭다’라는 생각이 올라오자마자 저는 즉시 포착했습니다.
최근에 비교적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사람 마음의 다양한 반응을 맹렬히 지켜보면서 사람 마음을 이끄는 모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저는 모두 놓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이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고유의 관념이 바로 자신이 만든 것을 사용할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혁신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을 바꾸려 하지 않아 부딪힌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시 자신에게 ‘이것이 바로 시련이 온 것이다. 상대방은 나를 시련을 건너게 하는 연기자이다. 나는 잘 건너야 한다.’라고 일깨웠습니다. 그 번거로워하는 생각이 단번에 사라졌습니다. 저는 ‘바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사람 마음인데 진정한 자아일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제게 요청했고 수정이 필요한 곳을 저는 열심히 기록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저는 마음속으로 ‘내게 어떻게 이렇게 지혜가 없을 수 있는가! 나는 반드시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아무런 부정적인 생각을 사용하지 않았고 자신이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정말 지혜가 샘솟았습니다. 표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키워드를 선택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나타났습니다. 저는 제자가 생각이 바르자 사부님께서 도와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십 분도 채 안 되어 저는 초안을 신속하게 그려냈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전반 업무 운영 설명서를 완전히 그녀의 요구에 따라 수정한 후 그녀에게 전송했습니다. 뜻밖에도 그녀는 제가 작성한 것이 바로 그녀가 원하던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예전의 저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자신의 사유에 가로막혀 자신의 수련 제고는 물론 속인 중의 업무까지 모두 영향을 받았습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영원히 혁신할 수 없었으며 고정된 패턴으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자신이 대법 수련으로 막 들어왔을 때는 마음속으로 ‘나는 대법을 수련하여 육도윤회로부터 해탈하겠다.’라고만 생각했고 ‘대법을 수련하여 이런 뜻밖의 수확이 있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대법의 무소불위에 감동했습니다. 속인 중의 일체마저 모두 제가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각종 신기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 소음에 대한 집착을 닦아 없애다
어느 날 밤, 저는 혼자 방 안에서 법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이때, 가족이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화장실이 제 방과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저는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매우 똑똑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법을 외우면서 자신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싶었지만, 전혀 고요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괴롭기 시작하면서 그 소리가 그토록 귀에 거슬리게 느껴졌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저는 건너가서 그를 질책하면서 즉시 끄게 했을 것입니다. 이번에 저는 사유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제가 왜 이 소리에 이끌려 움직이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삼계는 반대로 되기 때문에 사람의 이치는 우주의 바른 법리와 비교하면 역시 반대로 인식되는 것이다.”[2]
저는 곧바로 ‘사람이 이 소리를 소음이라고 생각해 짜증스럽게 생각한다면 나는 반대로 된 이치로 생각해보자.’라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조금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자신을 이런 외부 요인이 내 몸에 반응을 느끼지 않도록 했습니다. 점차 정말 그렇게 귀에 거슬린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략 20분이 지나서 그가 나왔습니다. 저는 자신의 입을 단속하며 그를 원망하지 않았고 반대로 마음속으로 저를 도와 또 하나의 시련을 넘게 한 그에게 묵묵히 감사했습니다.
저는 제가 해외에서의 이 환경이 국내의 감옥에 갇힌 수련생들이 시시각각 생사의 고험 앞에 직면해 있는 것과 달리 매우 느슨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수련의 표준은 수련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시시각각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조금씩 제고하는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살핌과 점화 그리고 착실하게 수련한 뒤, 고난 속에 광명이 있다(柳暗花明又一村)는 변화를 느낄 수 있고 날이 갈수록 저의 신사신법(信師信法) 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대법(大法)은 원용(圓容)하다’
원문발표: 2020년 8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6/4100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