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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위하는 기점에서 중생 구도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제자들은 매일 압력을 무릅쓰고 걸어 나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救度)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의 많은 수련생이 박해받는 소식을 매일 볼 수 있다. 이것은 악의 박해이고 파멸되는 것은 중생이다. 정진하는 많은 대법제자는 시간이 부족하고 진상 알리기에 바쁘다 보니 마음을 조용히 하고 중생 구도 중에 어떻게 자신을 수련하고 어떻게 심성을 제고하여 법의 표준에 도달한 것인가를 생각할 시간이 적다.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런 변화 과정을 총결해보겠다.

나와 아내 수련생은 지난 몇 해 너무 많은 박해를 겪었기에 매번 큰 압력을 무릅쓰고 나간다. 최근 2년은 달랐다. 주변 수련생과 늘 소통하고 토론 연구하여 구세력의 박해는 ‘본인의 동의를 거친 것’인데도 이런 동의를 본인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달았다.

박해받은 경험이 기억에 남아 형성된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버릴 수 없었다. 무슨 일을 하든 먼저 자신이 한 일을 박해와 연결했다. 예를 들면 세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갑자기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거나 경찰 사이렌이 울리면 나는 즉시 긴장했고 다른 공간의 압력이 바로 커졌다. 악당이 줄곧 숭상하는 조건반사 이론처럼 구세력이 줄곧 사용하는 수단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명시하셨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1]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하라고 한 것이기에 구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한다는 것을 대법제자는 모두 안다. 그러나 우리가 본인이 박해받을 수 있다거나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악이 박해하도록 본인이 허용하는 것이고 악의 박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장기간 도둑의 심리를 가지고 총을 한 번 쏘고 장소를 바꾸는 마음으로 줄곧 악을 매우 크게 본 것이다. 적극적으로 제거한 것이 아니라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악의 박해를 피했다.

장사를 하는 한 수련생은 가게에 오는 고객에게 매일 진상을 알렸다. 그의 아내 수련생은 그에게 발정념 해줄 때 중생이 구원받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내심에 박해받는다는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년간의 경험에서 그들은 진상을 알리는 것과 박해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매우 분명하게 알았기에 경찰이 와도 고객을 대하듯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모든 것이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진상 알리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 되었고 밥 먹고 장사하는 것처럼 이 일을 박해와 연관시키지 않았다.

본인의 심리 상태가 바르지 않으면 관련된 본인의 환경도 바르지 않게 된다. 한번은 수련생들이 진상 자료를 차에 싣고 인근 현에 진상 알리러 갔다가 진상을 모르는 세인이 신고하여 수련생들이 모두 공안국에 연행되었다. 가족 수련생들이 소식을 듣고 함께 모였다. 한 수련생이 우리 빨리 가서 박해에 가담한 경찰을 구하자고 제안했다. 수련생은 모두 사부님께서 책임지신다. 세인이 박해에 가담하면 위험하기에 그들을 구하러 가자고 했다. 이렇게 수련생들은 기점을 바로 잡았다. 경찰을 포함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결과 이 일념을 바로잡자 중생도 변했다. 그곳 경찰의 태도는 모두 매우 좋았다. 수련생은 진상을 분명히 알렸을 뿐만 아니라 체포된 수련생들도 곧 집으로 돌아왔고 차도 되찾아와 아무 손실도 없었다.

점오 상태에 있는 한 수련생이 한 말이다. 수련생이 박해받을 때 구출에 참여한 많은 수련생은 다급하게 수련생이 돌아오길 바라지만 박해에 가담한 세인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다. 구세력은 대법제자가 얼마나 이기적인가 보라. 그들 자신만 생각한다고 말한다. 대법제자는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다. 더욱이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해야 한다. 신 우주의 표준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기에 대법제자는 정말 중생을 위해 책임지고 중생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자면 중생을 자비롭게 여기고 중생이 박해에 가담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평소에 본인의 일사일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비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한다면 환경에는 사악한 요소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중생도 나의 평소 심리 상태에는 구우주 생명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른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적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모든 부정적인 사유를 청리했다. 한번은 가게에 두 사람이 왔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려 했는데 이 두 사람이 물건 사러 온 사람 같지 않았다. 다시 그들의 눈빛을 보고 나는 이 두 사람이 사복 특무라는 것을 즉시 의식했다. 이 두 사람은 아주 사악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거기에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의 압력을 받아 마음이 불안정했고 긴장되어 악에게 박해의 빌미를 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얼굴색은 변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였다. 압력이 매우 큰 것을 느꼈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근처에 있는 수련생에게 가서 한참 앉아있었다. 그는 나에게 마음이 불안정할 때 속으로 사부님의 이미지를 생각하라고 했다. 한참 생각했더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사실 여전히 신사신법 문제였다.

그 후 나는 자주 반성했다. 완전히 다른 생명을 위한 신 우주의 생명이 나처럼 이렇게 문제를 사고할까? 당시 내가 중생이 죄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면 이 두 생명을 위해 생각하고 자비롭게 그들에게 박해에 가담하지 말고 대법과 대법제자를 잘 대해야 미래가 있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더라면 일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이기적인 근본 원인을 안 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평소 크고 작은 일에서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을 위하고 다른 생명을 책임지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자신을 적게 생각할수록 압력이 덜했고 박해 요소가 점점 존재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나와 자주 연락하던 수련생이 납치되었다. 그녀는 당시 우리가 늘 교류하던 법리가 생각났다고 한다. 이런 경찰을 책임져야 하고 그들이 정말 대법제자를 박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심리 상태를 조정하고 완전히 그들을 위해 생각했다. 진상을 알리면서 본인이 정말 자비로워지자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곧바로 모두 온화해졌다. 마지막에 수련생에게 병업 가상이 나타나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처음에는 자기를 위하던 데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변했을 때 경찰은 그녀를 최소 7년 형을 선고받게 하려던 데에서 무조건 그녀를 집에 돌려보냈다. 이 변화는 하루 사이에 발생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명시하셨다. “진정한 선이란 수련자가 수련과정 중에서, 잘 수련하는 과정 중에 이미 수련된 진짜 선을 말한다. 중생을 마주할 때, 당신은 아직 잘 수련되지 못한 사람의 일면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수련이 잘 된 신(神)의 부분을 완전히 표현해 낼 수 없다. 반드시 당신은 이지적이고 청성하여 수련인다워야 하며, 자신의 책임과 자신의 정념이 주도적으로 된 후에야 비로소 당신의 진정한 선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인과 신(神)의 다른 점이다. 이것이 자비로서, 그는 의식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며, 사람의 선하고 악하고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善惡喜好)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나를 잘 대한다고 해서 내가 당신에게 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대가가 없고, 보수를 따지지 않으며, 완전히 중생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선(慈善)이 나오기만 하면 그의 힘은 끝없으며, 어떤 좋지 않은 요소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 자비가 클수록 그 힘은 더욱 크다. 과거 인류사회는 올바른 이치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으며, 사람은 여태껏 모두 징벌이라는 수단으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이 사람의 이치가 되었다. 사람이 신(神)이 되고자 한다면 사람의 상태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럼 이런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며, 자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2]

대법제자가 본인의 행위가 옳은지를 알려면 복잡한 환경에서 쉽게 알아차릴 수 없거나 해내기 어렵다. 본인의 마음이 법의 표준과 요구에 도달하려면 평소에도 대체로 자비롭고 평온한 심리 상태를 유지해야 갑자기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곧바로 대법의 요구 표준으로 조정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개시하셨다.

“그때에 가서 누가 정말 당신을 괴롭히더라도 당신의 그 크나큰 자비심이 작용하여 당신은 되받아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과 같지 않도록 해 주는 힘이기도 하다.

당신이 겁난에 부딪혔을 때, 그 자비심이 당신을 도와 난관을 넘게 하며, 동시에 나의 법신(法身)이 당신을 지켜주고 당신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 하지만 난(難)은 꼭 당신이 넘도록 한다.”[3]

대법제자의 길은 매우 좁다. 무사무아(無私無我)의 표준에 도달하는 것이 신구 생명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私)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면 머리에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낡은 생명의 요소이기에 대법을 실증할 수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2-두려울 것 뭐냐’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파룬궁-제3장 心性(씬씽) 수련’

 

원문발표: 2020년 8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6/4101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