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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다섯 명이 실증하다

글/ 광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 5월 대학에 다닐 때 법을 얻었다. 친구의 소개로 ‘전법륜(轉法輪)’을 읽은 후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으나, 그래도 졸업 전에 법을 얻은 것이 기뻤다. 24년의 수련과정을 돌아보니 시련 속에서 깨닫고 성장했으며 비바람 속에서 지나왔다. 기쁨과 감동도 있었고 쓰라림과 눈물도 있었다. 오늘 여러 해 동안의 작은 깨달음을 써내어 사부님의 ‘크나큰 불은(佛恩)’과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리고자 한다!

최근 몇 년간 나는 계속 한 중학교에서 묵묵히 일하며 ‘진선인(真·善·忍)’의 씨앗을 뿌렸는바, 수확이 아주 풍성했다. 나의 업무 태도를 보고 사람들이 대법에 대한 태도를 바꾼 사례를 몇 가지만 들어보고자 한다.

1. “신앙은 자유다. 당신이 일을 잘하면 다른 것은 상관하지 않겠다”

나는 1996년 5월, 대학을 다닐 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그해 7월에 이곳 중학교로 배치되었다. 법을 얻은 기쁨을 숨길 수 없어 동료와 교류하며 대법 서적을 선물했다. 그중에는 교장(첫 번째 교장)도 있었다. 그는 책을 다 보고 나서 “이 책은 아주 좋습니다. 요구가 너무 엄격해서 나는 해내지 못할 것 같아요. 당신은 잘 닦도록 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일을 적극적으로 착실하게 처리했다. 열심히 하면서 불평하지 않고 여러 팀의 청소와 물 긷기를 도왔으며, 상사나 동료와 잘 지냈다. 그 몇 년 동안 그들은 내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남을 잘 도와주고 세상과 다투지 않는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학생 몇 명을 데리고 교내에 현수막을 걸고 연공 음악을 틀었다. 이것은 교내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1999년 7·20 이후 내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상사들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라고 핍박했다. 그러나 진상을 아는 교장은 “신앙은 자유다. 당신이 일을 잘하면 나는 다른 것은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대법이 박해받던 초기, 그(교장)와 교감은 용감하게 악인과 맞서며 나와 대법 자료를 보호했다. 내가 여러 번 불법으로 구류되었을 때도 그는 원망 한마디 하지 않고 나를 인계받아 직장으로 데려왔다. 내가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처분받았을 때도 그는 내 숙소에 있던 대법 서적을 손상되지 않게 잘 보존해 주었다.

그는 선행(善行)으로 인해 2003년 승진했으며, 이후 몇 차례의 시련도 전화위복이 되었다. 최근 그를 만났을 때도 여전히 같은 말을 했다. “신앙은 자유다.”라고.

2. “괜찮다. 이후 안전에 주의하면 된다”

두 번째 교장은 이전의 교감이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박해하던 초기에 그는 불법적인 무리에 용감하게 맞서며 기지를 발휘해 내게 대법 자료를 옮기라고 했다. 그가 선행으로 인해 복을 받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우직한 그는 교장이 될 만한 재목이 전혀 아니었지만, 승진했다.

2006년 8월 어느 날,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교장의 전화를 받았다. 어느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파룬궁(法輪功)과 관계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곳에 가니 교장과 학교의 간부 몇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내게 별말 없이 인사한 다음 앉으라고 하더니 요리를 주문하고는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식사 후에야 교장은 내게 “당신을 나오라고 한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듣자니 당신이 9학년 졸업반 여학생에게 호신부를 줬다는데, 그중 진상을 모르는 학생의 부모가 당신을 정부의 교육 감독 책임자에게 고발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정부 책임자가 진상을 아는 사람이라 이 일을 잘 정리했지요. 당신이 이후 안전에 주의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교장의 몇 마디 말에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을 기뻐했다.

3. “사람마다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2007년 8월, 세 번째 교장이 교사 회의에서 상급 기관의 파룬궁 박해 관련 문서를 전달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진상을 알았던 전임 교장 두 분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가 아직 진상을 모르는 것 같으니 알려줘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회의가 끝나자 나는 간략하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좀 딱딱한 태도로 말하기를 “안 됩니다. 나는 상부에서 하라는 대로 합니다. 이것은 원칙 문제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결코 용기를 잃지 않고, 한동안 지나 기회를 봐서 그에게 자세하게 얘기했다. 그는 이번에는 부드러운 태도로 “당신의 성품에 관해 들었습니다. 좋습니다. 당신 혼자 연마하십시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에게 널리 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1+1은 2로서 맞는 답인데, 다른 사람이 1+1은 3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맞습니다. 이것은 원칙 문제입니다. 상부의 명령이기 때문에 잘못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옳다고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두 차례 대화에서도 그의 마음의 매듭을 풀어줄 수 없었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도하든, 개인제고를 하든, 박해를 반대하든 모두 법을 실증하고 있는 것으로서, 당신들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만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법을 실증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이다. 우리는 또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기에 당연히 대법의 아름다움을 속인에게 펼쳐 보여야 한다. 일상생활과 일 중에서도 우리는 일체를 잘하고 바른길을 걷도록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해야 한다. 이런 것과는 별개로 나는 개인적으로 그에게 편지를 썼으며 진상 CD도 동봉했다. 그러나 그때는 효과가 그리 분명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후 1년의 업무 관계를 통해 그는 180도로 변했다. 그는 “사람마다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 그렇게 자발적으로 일하면 내가 관리할 필요도 없을 것인데.”라고 했다. 그 후 그는 삼퇴(중국공산당 3대 조직에서의 탈퇴)했다. 2008년 올림픽 전에 그는 상부의 각종 압박을 버텨 내며 사악이 내게 가하려는 어떤 압박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각성한 생명으로 인해 감동했으며 그의 선택을 기뻐했다!

4. “이런 인재는 꼭 남도록 해서 나를 돕게 할 것이다. 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2012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나의 업무 배정 때문에 여러 번의 부서 회의에서 논쟁이 그치지 않았다. 교무처는 내가 기기실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며 내가 계속 그 일을 맡게 하려고 했다. 사람을 교체하면 나처럼 잘하지 못해 상사에게 질책을 들을까 봐 걱정한 것이다. 그러나 교장(네 번째 교장)은 내게 기숙사 관리를 맡겨 숙직을 서게 하려고 생각했다. 그는 정교(政敎, 사상정치 교육)주임에게 남모르게 “그녀가 기숙사 관리를 맡는다면 나는 마음 놓고 편히 잘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정교주임은 “그녀 같은 수련인은 무엇을 맡겨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교장은 “맞습니다. 이런 인재가 다른 부서로 가려고 하면 나는 꼭 그녀를 남도록 해서 나를 돕게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해 개학하고 첫 번째 교사 회의에서 각자의 업무를 배정받았다. 나는 여학생 기숙사 관리를 맡게 되었다. 교장은 특별히 나를 칭찬하며 부서원들의 낡은 사고방식을 지적했다. 부서원 대부분이 내가 부서를 옮기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편제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에서도 많은 교사는 부서를 옮기기 싫어했다. 심지어 자신의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하며 불만을 품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첫째, 교장이 준 수업 기회를 포기했고, 둘째, 이전 부서에 남을 기회를 포기하고 자원해서 여학생 기숙사 관리자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교장에게 “저는 수련인으로서 일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2]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기회를 타인에게 주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내 선택을 매우 만족해했다. 이전에 나는 그에게 “현재 사회의 각 업종에서 파룬궁(法輪功) 수련인을 초빙하려고 합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진심으로 “그렇습니다. 우리 학교에 당신 같은 여교사 5명이 여학생을 지도한다면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교장이 여기로 전근해 오지 않았을 때는 어땠을까? 이전에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그는 중공의 거짓말을 믿고 파룬궁을 적대시하며 진상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사악의 요구대로 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학생과 교사에게 해를 끼쳤으며, 밍후이왕(明慧網)에 들어가 보고도 반성할 줄 모르고 오히려 앙심을 품고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한 수련인을 모함하기도 했다.

그는 전근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대법 진상을 듣기 싫어했다. 내가 그의 딸에게 션윈(神韻)을 보라고 준 것도 딸을 해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개의치 않고 시간이 나면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선악에는 응보가 따른다는 하늘의 이치를 말해주었다. 그러나 일할 때는 더욱 엄격하게 대법의 요구대로 하며 자발적으로 했으며,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내 모습을 눈여겨보았으며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대법제자의 일언일행이 마침내 대법을 싫어하는 두꺼운 얼음을 녹여버렸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사람을 구하는도다”[3]였다. 이렇게 해서 또 한 생명이 구원되었다!

2013년 11월, 국보(國保)대대장이 전(全) 시(市) 중학교 교장 회의에서 파룬궁과 파룬궁을 수련하는 교사를 모함했다. 이에 나는 교육국장에게 편지를 써서 대법의 결백을 돌려줄 것과 수련하는 교사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했다. 이 시기에 현지와 국내외 대법제자가 협력하여 관련 부서와 관계자에게 계속 전화하고 진상 편지를 써 보내자 사악은 매우 두려워했다. 대대장은 이런 결과를 못마땅해 하며 빌미를 찾아 나를 붙잡아 박해하려고 했다. 2014년 1월 초 어느 날, 국보대대장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내게 죄를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오자 상사는 나를 만나지 못하게 하며 나를 보호했고, 파출소 사람들 앞에서 나를 높이 평가하며 우리 집 주소를 물어도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며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가 그녀를 교육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렇게 되자 대대장은 불평을 늘어놓으며 돌아갔고 이 일은 일단락되었다.

일이 지나고 교장이 내게 “이전에 어떤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나를 찾아왔다면 나는 당신을 학교에서 내쫓았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부님의 ‘크나큰 불은(佛恩)’에 힘입어 진상을 알게 되었기에 사람이 철저히 변했으며, 이지적으로 선량한 선택을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울고 싶었다. 한 사람의 변화에 많은 시간과 심혈을 들이신 사부님의 커다란 자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한 생명도 구도를 포기하신 적이 없다. 그 순간 나는 ‘불법자비(佛法慈悲)’의 내포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국보대대장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5월 초, 또 한 번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상사는 또 그들을 문밖에서 가로막았다. 파출소에서도 그들은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상사와 교사가 나의 일하는 태도와 인품을 높이 평가했다. 국보대대장은 내가 평소 밖에 나가 자료나 스티커를 배포하는 것을 보았는지 물었다. 주임 교사는 정의롭고 엄숙하게 “그녀는 일이 매우 바빠서 하루 24시간 모두 학교에서 지냅니다. 못 믿겠다면 CCTV를 보아도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울러 “국가가 규정한 14종의 사교(邪教)에 파룬궁은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법률 조항이나 인터넷에도 파룬궁이 사교라는 규정은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용감하게 말했다. 대대장은 그럴듯하게 둘러대며 인터넷에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상사와 주임이 정의롭게 제지하여 사악의 계획은 다시 한번 헛수고가 되었다.

학교 상사는 두 차례나 기지를 발휘해 대법제자를 보호하여 그에 상응하는 복을 받았다. 두 학기 동안 굵직굵직한 성과가 많이 있었고 상도 많이 받아 교장이 기뻐하며 웃음 지었다.

2014년 9월 개학해서 알게 되었는바, 학교에서 감원된 많은 사람이 초등교육에 지원했고, 나보다 학력이 높은 교사도 정리되어 갔다. 나는 학력이 중학교 표준에 미치지 못했는데도 교장은 그의 말대로 나를 남도록 했다.

5. “막 왔을 때는 당신을 잘 몰랐기에 상부의 임무 배치가 내키지 않았으나, 지금은 당신의 성품을 잘 알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

2019년 7월, 또 교사 임용 시기가 되었다. 초·중학교 교장은 윤번으로 초빙되는데, 새 교장(다섯 번째 교장)으로 바뀌었다. 나는 학력 문제 때문에 처음에는 초빙되지 못했다. 교장은 두 번째는 초빙을 쟁취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결국 또 남아있게 되었다.

개학한 지 오래지 않아 파출소에서는 방학 동안 사람을 보내 나의 행적을 사진 찍어 보고하라고 했으며, 교장은 동료에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동료에게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며 그녀에게도 좋지 않다고 알려주고, 교장에게는 내가 말하겠다고 했다. 나는 교장에게 이것은 위법행위이며, 이렇게 하면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고 하고는 대법 진상을 알려주었다. 교장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압박을 받아 이렇게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나는 일하는 중에도 예전처럼 대법의 요구에 따랐으며, 일을 자발적으로 하며 불평하지 않았고 동료와도 화목하게 지냈다. 대법을 좋지 않게 보던 그의 견해는 나의 언행으로 인해 반년도 되지 않아 바뀌었다. 12월 초, 우리 지역 대법제자 거의 모두가 교란과 납치를 당했으나, 내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가 압박을 무릅쓰고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는 정법위원회와 파출소에서 나를 괴롭히려고 직장에 와서 사람을 내놓으라고 했으나,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신은 나를 찾으면 되지 그녀를 찾을 필요가 없어요. 그녀는 여기서 매우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후 교장은 “내가 막 왔을 때는 당신을 잘 몰랐기에 상부의 임무 배치가 내키지 않았으나, 지금은 당신의 성품을 잘 알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바른 선택을 기뻐했다. 선량한 본성이 살아난 것이다. 사악에 협조하던 사람이 거절하게 되었고 최후에는 드디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주:
[1] 리훙즈(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길을 바르게 걷자’
[2] 리훙즈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3] 리훙즈 사부님 시사: ‘홍음2-법정건곤’

 

원문발표: 2020년 7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7/21/4083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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