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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할하노라’ 경문을 배운 후 약간의 느낀 점

글/ 후베이(湖北) 대법제자 정싱(正省)

[밍후이왕] 나는 1998년 법을 얻은 대법제자다. 20여 년 동안 줄곧 수련에 정진하지 못했고 세 가지 일도 하지만 심성 제고는 아주 느리다. 요 몇 년 우리 집에서 작은 꽃을 피워 자료를 만들어 주변의 일부 수련생에 제공했다. 자료를 만들면서 자신이 반드시 좋은 수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수련에서 이전보다 마음을 쓰게 됐다.

몇 년 동안 비록 수련생처럼 그렇게 큰 관과 난이 없었지만 병업관은 아직 좋았다 나빴다 했는데,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최근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신경문 ‘다시 방할하노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수련에서 소홀히 한 큰 문제를 찾았다. 지금 글로 적어 수련생과 교류하려 하는데, 만약 법에 부합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성취하는 것은 더욱 큰 과위이며, 동시에 제각기 천체 한 지역의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구도(救度)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고, 게다가 고층생명이라 이렇게 큰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제고의 표준에 있어 요구함이 지극히 엄격하다. 성취하는 과위가 크기 때문에, 각 방면의 난도(難度)도 크며, 미혹 속에서 수련하는 난도도 높다. 다수는 간고한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고, 자신에 대해 느슨히 하지 않지만, 도리어 또 자신의 진실한 수련상황은 모르고 있다. 높이 수련하고, 책임이 크면 신체는 더욱 엄격하게 봉인된다. 사부 외에, 어떠한 생명도 대법제자의 진실한 정황을 알게 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직접 신우주(新宇宙)의 순도(純度)에 연관되기 때문이다.”[1]

며칠 전 나는 숨이 차는 병업 가상이 나타났다. (사실 이전보다 증상이 많이 가벼워졌다) 숨이 막히고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지 못했다. 죽을 좀 먹어도 힘들었고 손발이 차갑고 움츠려들어 화장실 가는 몇 걸음도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틀 밤을 자지 못하고 먹는 것도 잘 먹지 못해 전혀 힘이 없었다. 처음에는 정념이 좀 있어 그것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듭 속으로 법을 외우고 발정념했다. 그러나 이틀을 버티다가 견디지 못해 고민을 딸에게 말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수련했는지 몇 년 동안 왜 늘 이런 상태일까? 안으로 찾아야 할 마음도 다 찾아보았고, 마땅히 닦아버려야 할 것도 모두 닦아버렸고, 갚아야 할 것도 모두 갚아 버렸는데, 나는 감당하는 것이 이미 한계에 달했다.” 딸(수련생)에게 발정념 해달라고 했다. 딸은 때때로 천목으로 볼 수 있다. 발정념한 후 딸은 그가 본 상황을 나에게 알려줬다. 나는 어느 생에 만리장성을 건설하고 있을 때 족쇄로 만리장성을 건설하는 사람의 목을 조이고 채찍으로 그들을 호되게 때렸다고 한다. 나는 듣고 놀랐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갚아야 할 것은 갚아야 한다. 이렇게 묵묵히 며칠 감당하고 정상 상태로 회복했다. 그다음에는 딸이 아무 이유 없이 이가 아팠는데, 그때는 영문을 몰랐다. 사부님의 경문 ‘다시 방할하노라’를 보고 나와 딸은 모두 깨달았다. 딸은 이후 더는 봐주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에게도 봐달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다시 방할하노라’ 경문에서 말씀하신 것을 보았다. “수련생이 수련한 것이 어떠한지, 수련생이 어떤 병업이 있는지 보면서, 책임을 지지 않고 제멋대로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교란이다. 수련생이 무슨 집착이 있는지 봐준다는데, 그것은 당신이 수련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가 수련하는 것인가?”[1] 나는 매번 병업 가상이 나타날 때 마땅히 수련생에게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묻지 말아야 한다고 깨달았다. 나는 지름길을 가려 했고 고생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들은 병업이 별로 없어 잘 수련한다고 생각하고 그녀들을 숭배했고 그녀들이 잘못된 방향을 잡아준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매번 사부님께서 주신 제고하는 기회를 붙잡아야 하지 고뇌하고 애원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 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2]

21년 동안 나는 끊임없이 같은 병업이 나타났는데, 모두 친척(수련생)과 딸(수련생)이 내 곁에서 지켜주었다. 시간을 길게 끌어 그녀들은 처음에 부드럽게 법에서 나와 교류하다가 나중에 직접 나를 지도했다. 나는 두말없이 그녀들의 말을 따랐는데, 심지어 습관이 되었다. 때로 병업 상태가 나타나면 그녀들이 나를 지도하지 않아도 그녀들에게 찾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어떤 때 깨달아서 내가 어떻게 하려 할 때도 마음이 불안했는데, 그들이 머리를 끄덕이고 인정해야 마음이 편했다. 딸은 매번 육친정에 끌려 내가 괴로워할까 봐 한바탕 잔소리했다. 나를 지도한 후 딸은 이유 없이 이가 아팠는데, 나는 여전히 이따금 병업 상태가 나타났고 전혀 변화가 없었다.

동시에 나와 내 주변에도 이런 좋지 않은 현상이 나타났고 어떤 때는 아주 심각했다. 나는 어떨 때 상태가 좋을 때 다른 수련생이 병업관을 넘기고 있는 것을 보고 수련생을 도와 판사 역할을 한다. 그들의 수련에서 부족한 점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그런 후 지도까지 하는데, 법리를 잘 말해 청산유수다. 말투는 질책하고 얕보고 원망하며 잘난 체하는데, 어떤 때 말하면 수련생은 얼떨떨했는데, 어떻게 수련할지 모른다.

한번은 내가 알고 지내던 노년 수련생이 뇌출혈 병업 가상이 나타났다. 나는 들은 후 수련생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고 처음에 수련생에게 ‘처방전’을 주었다. 밤 연공시간에 밍후이왕에서 1기에서 몇십 기 ‘해체당문화 교류문집’을 다운로드했다. 이튿날 ‘처방전’을 수련생에게 주면서 많이 들으라고 했다. 그녀는 그때 행동이 불편했다. 수련생은 받지도 않고 듣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원망심이 생겼다. ‘내가 밤 연공시간을 허비했는데, 당신은 여전히 감사히 받지 않는구나. 그렇게 자아와 당문화가 심각해 수련하기 힘들겠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했다.’ 돌아가는 길에 USB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때 나는 깨닫지 못했고 단지 수련생에 대한 정이 깊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지도하려 하고 잘난 체하며 수련생을 위해 ‘처방전’을 준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깨닫지 못했다. 몇 해 동안 만난 사람 중에서 내가 수련을 잘한다고 인정한 사람도 있었고, 나의 ‘처방전’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때때로 나를 만나 교류하려는 수련생도 있었다. 한동안 만나지 못하면 내가 자신들을 도와 제고할 수 있다고 법공부팀으로 오라고 연락 온다. 즐거움에 피곤한지 모르고 달려갔다. 간 후 처음에는 서로 교류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강연했다. 이 과정에서 나의 여러 가지 사람 마음, 명리심, 과시심, 거만, 오만, 질투심, 승부욕 등 마음을 키웠고 갈수록 팽창했다. 이것이 어디 수련인의 상태인가, 수련인 같지도 않다. 구세력은 기회를 찾아 나를 수련시켰는데, 장기적으로 병업에 거듭 시달리게 했고, 사람을 구하는 시간을 많이 잃게 했다. 이런 신체로 어찌 법을 실증할 수 있겠는가?

딸은 늘 나에게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말하고 상태가 좋으면 잘난 체하고, 상태가 좋지 않아 병업 상태가 나오면 풀이 죽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은 수련을 잘하는데 왜 이 모양이냐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병업 가상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고, 오면 빨리 나아지기를 바랐다. 나는 딸이 말한 것이 이치가 있다고 느꼈는데, 내가 정진하지 않는 것 외에 또 사람 마음으로 집착한다. 그것은 이 속에는 수련생이 단지 내 표면만 보고 나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위로 치켜세우는 요소가 있지 않은가?

내 주변의 한 수련생이 설 전에 뇌출혈 상태가 나타나 많은 수련생이 그녀를 도와주러 갔다. 심지어 한 팀 한 팀 가서 그녀와 함께 먹고 자고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효과도 없다. 우리 일부 수련생은 나와 같은 잘못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수련생이 말했다. “나는 주간(周刊)을 보는 것이 법을 보는 것보다 마음에 와닿고 제고가 빠르다.” 그러나 주간의 수련생 문장은 모두 수련생이 각자 다른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고 아무리 잘 깨달아도 그의 것을 법으로 보면 안 된다.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하루아침 법 얻어 위로 돌진하는도다’[3]를 보고 도처에 다니며 자신이 ‘진선인(真·善·忍)’을 벗어났다고 말하고, 수련생도 빨리 벗어나라고 말하며, 진상을 알리지 말고 다른 공간에서 사람을 구하라고 하며 어느 협조인은 구세력이 파견해 왔다고 말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모두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무리 수련생을 선동해 갈수록 더 심각해졌다. 우리는 전에 제지한 적이 있지만 그는 제멋대로 해,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이런 현상을 밍후이왕에 발표해 밍후이 편집부에서 그들에게 통지를 보내 일깨워 주기를 바랐다. 밍후이 수련생은 우리에게 그에게 시장을 주지 말고 그와 엮이지 말라고 답장을 했다. 그 수련생은 이 일을 알고 밍후이왕에 글을 보낸 수련생을 추궁했는데, 우리는 그와 상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 수련생은 그들 한 무리 사람을 이끌고 허튼소리 한다. 이번 사부님의 경문이 그들을 일깨워주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내가 이런 현상을 쓰는 것은 나와 같은 부족한 곳이 있는 수련생은 깨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정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고 자신을 잘 개변할 기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제때 급정거하지 않으면 난법의 큰 죄를 조성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우리는 또 대법제자이고 법의 한 입자다. 대법을 수호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고 또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일부 승려들이 일단 속인의 말과 그 자신의 견해로 불법을 말하거나 혹은 책으로 써낸다면 그는 즉시로 사람을 그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그는 불경의 함의(涵義)에 정의를 내렸다. 석가모니부처가 한 그처럼 높은 말과 그처럼 많은 함의를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수련됨이 아주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한 말을 수불(修佛) 하는 사람이 믿게 된다면 그는 사람을 자신의 사상 틀 속으로 끌어들여 한정짓게 된다. 이런 현상은 비록 그가 마치 여러 사람들에게 부처를 배우라고 한 것과 같이, 표면적으로는 좋은 일인 것 같지만 불법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법을 파괴하는 데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다.”[4]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법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모두 자신이 인식하는 틀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렇다면 그는 불법을 교란했는가 아니면 불법을 수호했는가?”[4]

층차의 제한으로 법에 있지 않는 점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다시 방할하노라’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최후일수록 더 정진하자’
[3] 리훙즈 사부님의 시사: ‘홍음3-관감’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불교중의 교훈’

 

원문발표: 2020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27/4096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