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탕산(唐山) 대법제자
[밍후이왕] 탕산시 펑룬(豐潤)구 ‘6·18사건’이 있은 지 한 달이 좀 더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납치·교란당한 수련생은 30여 명이며 가산을 몰수당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비교적 일찍이 악한 경찰이 사람을 납치하고 가산을 몰수한다는 소식을 알게 된 수련생과 납치·교란당한 수련생은 강한 발정념으로 사악을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손실은 가슴 아팠고 교훈은 깊이 새겨졌습니다. 우리 펑룬구의 매 대법제자는 개인 수련과 정체 협력에서 어떤 누락이 있어 사악한 세력이 이처럼 광적으로 틈을 타게 되었는지 반드시 심각하게 반성해봐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하지 않지만 강한 집착을 지니고 원만할 수 없으며 이는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지 못해 맴돌고 있을 때, 사부님의 신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가 밍후이왕에 발표돼 반복해서 배운 뒤 억눌렸던 심정이 확 트이면서 냉정하고 이지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구의 대법제자는 줄곧 끊임없이 각종 장소에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키면서 정말 곳곳에 꽃을 피워왔습니다. 다른 도시의 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소 ‘두드러진’ 표현이 있었으므로 일부 수련생을 이끌어 그 과정에 나와서 참여하게 했고 효과는 확실히 매우 ‘기뻐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좋지 않은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많은 수련생도 알았습니다. 한동안 우리 구 대법제자의 ‘병업’ 현상이 비교적 심각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병업’의 시련 중에서 분발하여 시련을 돌파했고, 어떤 수련생은 장기적으로 ‘병업’의 시달림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병업으로 세상을 떠나는 현상도 잇따라 발생했고 심지어 30대, 40대인 수련생도 있었습니다. 그 원인을 캐보면 모두가 “속인의 마음을 없애지 않아 사악이 틈을 탔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집착심을 없애지 않아 사악에 의해 틈을 탔는가에 관해서는 일부 수련생들의 인식이 분명하지 못하며 심지어 곤혹스러워합니다.
이와 상응하여 또 다른 한 가지(많은 수련생도 아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이미 10여 년간 존재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대법제자라고 말하며 ‘사부님’께서 주신 ‘공능’을 ‘병업’ 과정에 있는 수련생에게 줘서 ‘병업’을 깨끗이 제거한다고 말했습니다. ‘잘 치료된’ 수련생은 또 그 사람에 대해 매우 감격해 하며 심지어 수련하지 않는 가족이 병이 나면 자신이 그 사람을 찾아서 보게 했습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병업’ 시련을 넘는 수련생들 사이를 오갔는데, 일부분 진상을 잘 모르는 수련생은 기만당했습니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이 평소에 단체 법공부와 발정념할 때 잠들며 코까지 골았다면서 병업이 있는 수련생에게 ‘청리’해준 뒤 구토 또는 기침하는 현상 등이 나타났다고 말했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를 보고도 개의치 않았으며 수련생이 지적했을 때, 그 사람은 오히려 그것은 일본 수련생에 대해 말씀하신 것으로 얼버무렸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가 발표된 후, 그 사람을 옹호하던 많은 수련생이 대략 깨어났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진하거나 피동적으로 그 사람이 ‘병업’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랐고, 또 수련생이 그들과 법에서 어떤 사람의 마음이 사악에 의해 틈을 타게 되었는지 교류가 필요하며, 그것을 없애야만 바로잡을 수 있고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수련의 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깨닫는 데까지 아마 하나의 과정이 더 필요할 수 있음) 개별적인 수련생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으며 여전히 그 사람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련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부님은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깊이 참여한 수련생, 당신을 구세력이 그냥 둘 수 있겠는가?”[1], “깨어나라! 가장 어려운 길도 모두 걸어 지나왔는데, 최후에 시궁창에서 배를 뒤집지 말라. 나는 당신들이 그 사람을 멀리하고, 그에게 시장을 주지 말 것을 건의한다.”[1]
이 일은 정법에 대해 심한 교란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10여 년 동안 지금까지 제지되지 않았지만, 원인은 두 가지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수련생도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사람 그 일에 대해서는 가볍게 묘사하며 몇 마디 쓰거나 말했지만, 그 사람이 듣지 않자 엄정하게 사태의 발전을 저지하지 않았고, 자신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며(이런 수련생이 비교적 다수임) 법을 위해, 수련생을 위해 책임을 지며, 자신을 위해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대법을 옹호하는 것은 우리의 도의상 거절할 수 없는 책임입니다. 정법을 심하게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사악에 틈탈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요?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이 평소에 대법을 실증하는 많은 일에 참여했고 표현도 매우 ‘적극적’이고 ‘자발적’이었기 때문에 일정한 미혹성이 있어 일부 정념이 부족한 병업 과정에서 시련을 겪는 수련생을 미혹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작은 범위를 형성하는 것으로 그 사람을 옹호했고 다른 공간의 사악에 틈탈 기회를 준 것입니다. 사악은 그 사람을 단단히 통제하고 이용하여 그 사람에 의해 미혹된 수련생들은 다른 정도의 독해(毒害)와 상해를 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펑룬구의 수련생은 지금 어떻게 해야만 이런 종류의 정법을 심하게 교란하는 행위를 제지할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는 사부님의 “그 사람을 멀리하고, 그에게 시장을 주지 말 것”[1]의 요구에 따라야 합니다. 그다음, 반드시 이번 사건이 대법에 조성한 손실을 만회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멀리하기는 쉽습니다. 대법에 조성한 손실을 만회하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법리상에서 이런 종류의 정법 교란 행위의 위해성을 똑똑히 인식해야 합니다.
필자는 이번 ‘6·18사건’은 이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을 옹호하고 심성을 제고하는 것은 우리 대법제자가 도의상 거절할 수 없는 책임입니다. 이상은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하며 참고용으로만 제공합니다. 정확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르게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
원문발표: 2020년 7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7/26/4095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