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9년 봄, 중간고사를 두 달 앞둔 아들이 신체와 정신이 불편해져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다며 휴학을 권했다.
남편은 아들을 중점고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많은 학원에 보냈다. 우리가 계속 자랑으로 생각하던 아들이었는데, 중간고사라는 결정적인 시기에 문제가 생겼다. 아들의 병세가 심해지면서 온 가족은 심한 고통에 빠졌다. 아들은 입맛이 떨어졌고 양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메스꺼워했다.
아들은 삶의 희망을 잃었다. 누구와도 연락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두려워하고, 떨며, 의심스러워했다. 그는 반 친구들이 말을 걸면 자신을 비난한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온종일 휴대폰을 갖고 놀았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이런 아들의 상태를 보고 나는 아주 괴로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은 마음이 안정되면 아빠에게 “제가 이 병에 걸린 것은 엄마가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이에요. 아빠와 엄마가 항상 싸우고, 제가 어릴 때부터 안도감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사당(邪黨: 공산당) 당원으로, 사당의 박해가 두려워 내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고 했다. 내가 대법 수련을 견지하면 항상 미친 것처럼 나와 말다툼하고, 침실 유리문, 인터넷 공유기, 옷장, 커피 테이블 등 아주 많은 물건을 부쉈다. 그리고 파룬궁에 관한 어떤 일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 이혼을 강요하며 몇 달간 나를 집에서 쫓아낸 적도 있었다.
아들은 이렇게 두렵고 답답한 환경에서 자랐다. 다행히 남편은 다른 곳에서 일하며 집에 자주 있지 않았다. 아들은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는 걸 알았고 내 수련을 지지했다. 어릴 때는 나를 따라 법공부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회환경에 오염되어 점차 대법에서 멀어졌다.
처음에 아들이 아플 때 나는, 인생이 막 시작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이런 무서운 병에 걸렸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했다. 어느 날, 수련생이 나를 위해 발정념을 해주러 왔다. 그녀는 사부님의 시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명리정(名利情) 닦아버리고 원만하여 창궁에 오르네 자비로 세계를 보나니 그제야 미혹 속에서 깨어나네”[1] 나는 반드시 아들에 대한 정을 닦아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끔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놀러 갔는데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아들은 긴장했고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아들의 손을 꼭 잡았는데 아들의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두 부자가 차에 탈 때 나는 아들의 허약하고 가련한 뒷모습을 보았다. 정에 빠질 때마다 나는 곧바로 경계하고 수련생이 일깨워줬던 사부님의 시를 외웠다. 나는 정(情)과 고통에 빠질 때마다 외웠다. 그러자 아들의 병이 재발할 때도 점차 내 마음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우울증 치료제는 부작용이 아주 컸다. 아들은 복용 기간이 길어지면서 항상 구역질이 나고, 밥을 절반 정도 먹으면 토하려 해서 더는 먹을 수 없었다. 수면제 같은 약을 먹으면 졸음이 왔다. 한번 자면 온종일 잤고 몸에 힘이 없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으면 병이 재발했고, 좋지 않은 염두가 두뇌 속에 가득 차 계속 자신의 손목을 긁었다. 나는 집에서 칼이나 컴퍼스, 가위 등을 숨겨뒀다.
나는 대법 사부님만이 아들을 구할 수 있음을 알았다. 아들이 파룬따파를 수련해야만 사부님께서 그의 운명을 바꿔주실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은 절대로 아들이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내가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아들을 수련하게 하자고 말하면 그는 히스테릭하게 나에게 소리쳤다. 그는 가산을 탕진하더라도 아들을 고쳐야 하며, 아들이 나를 따라 수련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내가 아들에게 법공부 하기를 원할수록 아들은 더욱 저항했다. 가끔 힘을 주어 아들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법공부를 하게 도와줬지만, 아들은 내키지 않아 하며 한 단락을 읽었고, 다시 누워 귀찮아하면서 못 읽겠다고 했다.
어느 날 나는 자신의 집착심을 발견했다. 나는 아들이 수련에 들어와서 신체를 건강하게 회복하고, 남편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기적을 보고 구원받기를 원했다. 나는 남편이 구원받기를 바랐지만 아주 많은 방법으로도 그를 구할 수 없었기에 이런 방법으로 그를 구하고 싶었다. 구세력은 보고 이렇게 할 수 있다. ‘아들의 신체를 정상으로 회복하지 못하게 하면 그는 구원받을 수 없지. 그를 구원하지 못하면 아들의 신체도 회복될 수 없지.’ 구세력은 이것을 구실로 내 수련에 장애를 조성하고, 동시에 박해를 진행했다. 내가 이런 방식으로 남편에게 진상을 알려 구원받게 하려 했기에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고 악순환이 반복됐다. 남편을 구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반드시 이런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자신의 이런 집착심으로 인해 구세력에 꼬투리를 잡히고, 아들을 해치고 남편을 구하지 못했다고 인식했다.
이런 집착심을 발견한 후 나는 많이 놀랐다. 이후에 나는 또 명(名)을 구하는 마음을 찾았다. 아들이 중점고등학교에 입학해 조상을 빛내고 친척들 앞에서 과시하고 싶었다. “보세요. 내 아들은 달라요!”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가 게임을 하며 밥을 먹지 않는 것을 보면 밥을 침실로 가져갔고 먹는 것을 지켜봤다. 아들이 마른 것을 보면 더 먹여서 살을 찌우려 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들이 말랐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했는데, 이것은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 허영심, 체면을 중시하는 등의 사람 마음이었다.
올해, 남편은 아들의 입학원서를 처리했다. 남편은 아들의 지원서를 작성할 때 일반 고등학교로 작성했다. 나는 옆에서 “아들의 성적이 중점고등학교 수준으로 오르면, 중점고등학교를 쓰지 않아도 갈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묻고 나서 나는 잠시 우두커니 아들을 바라봤다. 아들이 이런 모습인 것을 보고도 나는 이런 아들에게 명(名)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깨달았다. 구세력은 이런 정과 아들을 병에 빠뜨려 나를 끌어내리고, 내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걸어 나오지 못하게 해서, 수련인의 세 가지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나는 이 엄중한 집착에서 걸어 나와야 했다. 끊임없이 안으로 찾는 중에 나는 아들의 병을 점차 가볍게 보았다. 아들의 병과 정서는 점차 평온해졌다. 몇 년 전에 아들은 한약과 양약을 모두 끊었고, 병세를 기본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일체 시간과 기회를 이용해 나가서 사람을 구했다.
2020년 초봄 오후 10시경, 아들은 집안이 답답하다며 나가서 산책을 좀 하겠다고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나가라고 했다. 12시경, 나는 나쁜 꿈을 꾸었고 놀라서 깼는데 아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즉시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는 못 살겠다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서둘러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나는 사부님 법상 앞으로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아들을 구해달라고 빌었다. 아들이 어리석은 일을 저질러 대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들이 어디 있는지 몰랐고, 전화도 연결이 안 돼서 문자를 보냈다. “네가 가면 엄마는 어떻게 살아? 엄마가 너를 이렇게 키우기 쉽지 않았다. 절대로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 돼.” 다시 몇 번 더 전화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또 문자를 보냈다. 쓰고 보내고, 또 쓰고 보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전화를 거는데 결국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들의 감정에 호소해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도리를 말해줬다. “대법 사부님은 살생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아들아, 사부님을 생각하고, 엄마를 생각하렴. 엄마가 너를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네가 가면 엄마는 어떻게 살아? 너는 반드시 좋아질 거야. 어디 놀러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니? 엄마가 내일 보내줄게.” 반복된 설득과 격려로 아들은 마침내 고층건물에서 내려왔다.
아들은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서 29층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했고, 교사와 학생들도 모두 알았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내 마음속에 아주 무거운 그림자가 남았다. 아들이 풀리지 않는 일에 부딪히면 자살할까 봐 걱정됐다.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러 나갈 때도 마음속이 편치 않았고, 진상자료를 나눠주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나는 이 일에 대해 말했다. 교류 중에 사부님께서 갑자기 한 가지 이치를 깨닫게 해주셨다. ‘마음을 내려놓고 할 일을 하라. 당신이 그 마음을 붙들고 내려놓지 않으면 어떤 작용도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 마음을 내려놓았고, 착실하고 평온하게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며칠 전, 수련생 언니가 외지에서 돌아왔다. 우리는 함께 나가서 사람을 구했다. 서로 호흡이 맞아서 잘 협조했고, 오후 내내 30~40명에게 삼퇴를 권했다. 원래 또 나가서 사람을 구하기로 약속했는데 아들에게 발생한 일로 인해 교란받을 줄 생각지 못했다. 아침에 아들에게 밥을 먹으라고 했지만 먹지 않겠다고 했다. 점심때 나는 아들에게 뭘 먹고 싶은지 물었지만 안 먹겠다고 했다. 원래 말랐고 170cm가 넘는 키에 50㎏도 되지 않았다. 나는 정이 다시 올라와서 참지 못하고 “온종일 안 먹으면 굶어 죽을 생각이니?”라고 한마디 했다. 아들은 “응, 굶어 죽을 거야.”라고 말했다. 아들은 초조하게 집에서 한 바퀴 돌고 나서 잠시 후에 문을 박차고 나갔다.
지난번 경험 때문에 또 마음이 불안해졌다. 따라 나가서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했더니 전화가 꺼져 있었다. 나는 또 사부님께 아들을 구해달라고 빌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한편 계속해서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가슴이 탔다. 결국 아들은 돌아왔다. 하지만 기분이 여전히 좋지 않았고, 손목에는 긁힌 상처와 핏자국이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내 말투가 좋지 않았구나.”하고 사과했다. 아들은 자신의 행동과 내 태도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고, 우리에게 자신을 놓아달라며,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 가장 큰 걱정은 아들이 자살해서 생명에 영원한 후회를 남기는 것이었다. 대법에 먹칠할까 봐 두려웠다. 비록 수련생들은 이 두 가지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집착심을 제거할 수 없었다. 마음속은 아주 고통스러웠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음날, 수련생 언니가 와서 어제 왜 사람을 구하러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나는 “자살하면 그쪽에는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데 얼마나 고생스러울까요.”라고 어제 발생한 일을 말했다. 그녀는 듣고 매우 놀라며 “어떻게 아들이 그런 상태에 빠지게 했어요?”라고 했다. 내가 “아들은 항상 나에게 자신을 보내 달라고 하며, 더는 살 수 없다고 말해요.”라고 대답했다. 수련생은 “그것은 생명을 빼앗으려는 나쁜 생명이 한 말이지 아들이 한 말이 아닙니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뜨끔해서 “나쁜 생명이 말한다고요? 나는 아들의 자살이 대법에 먹칠할까 봐 걱정되고, 아들의 생명에 영원한 후회를 남길까 봐 걱정돼요.”라고 했다. 수련생은 “그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구세력이 만든 거죠.”하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다시 한번 놀라며 “구세력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게 해요?”라고 했다.
그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대법과 대법제자의 정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것은 모두 구세력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자신의 바르지 않은 일체 요소를 포함하는데, 이것이 바로 왜 내가 발정념을 대법제자의 세 가지 큰일 중의 하나로 했는가 하는 이유이다.’[2] 나는 이 말씀이 내포가 아주 깊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그제야 나는 명백해졌다. 내 생명에서, 수련에서, 구세력은 원래 아주 많은 부정적인 사유를 심어뒀다. 진상자료를 나눠줄 때 CCTV에 찍힐까 봐 두려워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이고 모든 중생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이 술 마시러 나갔다가 차를 몰고 늦게 들어오면 그가 잘못될까 봐 걱정했다.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이것은 구세력이 내가 이렇게 생각하도록 한 것이다. 생활과 수련 중에서 마주친 모든 부정적인 사유는 구세력이 내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한 것이지 자기 생각이 아니다. 수련에서 나는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문제를 사고했다. 복잡한 환경에서 마주친 일체는 마땅히 진선인으로 비교하고, 자신이 아주 높은 층차의 본질적인 자아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진선인으로 구성된 생명으로 돌아가야만 진정한 나 자신이다. 마음속이 갑자기 맑아졌다. 나는 진아(眞我)가 더욱 강해지고 갈수록 강대해졌고, 자신의 공간장이 점점 올발라졌다.
나를 붙잡고 있던 물질이 갑자기 부서져 오랫동안 내 마음에 있던 돌도 부서졌다고 느껴졌다. 온몸이 가벼워졌다.
오후에 아들이 수업에 갔다. 나는 계속해서 나쁜 사상을 제거했다. ‘아들이 버티지 못할까, 내가 데리러 갈까?’ 나는 이 나쁜 사상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좋지 않은 사상이, 자신이 아님을 구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들은 6시 반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돌아왔다. 이전 같았으면 나는 또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묻지 않았다. 나는 아들이 반드시 평안하게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7시가 지나서 내가 발정념을 마치자마자 문소리가 났다. 아들은 “다녀왔습니다.”며 목소리가 맑고 힘이 있었다. 나는 “잘 왔다!”고 했다. 아들은 “중3 중간고사 회의가 좀 늦게 끝났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식사를 거실로 가져왔고 아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게걸스럽게 먹었다. 내가 천천히 먹으라고 했지만, 여전히 덥석덥석 먹었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거실로 불어 들어와 우리는 오랜만에 심신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원만공성(圓滿功成)’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원문발표: 2020년 7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19/4089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