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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眞)을 닦은’ 경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지난 6개월 사이에 나는 두 번 꿈에서 점화를 받았다.

첫 번째 꿈에서 나는 한 광장에서 열린 홍법(洪法, 법을 알리다) 활동에 갔다. 긴 통로를 지나가야 했는데 걸어가면 너무 늦어서 옆에 장애인용 전기 오토바이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인 척하고 차를 탄 후 광장으로 몰고 가서 부스를 찾았다. 몇몇 수련생이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이때 나는 여전히 장애인용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용 오토바이에 타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보면 대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대법에 먹칠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깨어났는데 이 꿈은 너무 분명하게 점화해주신 것이었다.

두 번째 꿈에서는 큰 홀에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방금 연설을 다 들었다. 나와 한 연장자가 큰 홀에 들어섰을 때 한 사람이 우리에게 “연설자는 가기 전에 문제(수수께끼)를 하나 남겨놓았습니다. 대변과 나무입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생각하지 않고 쐐기(수수께끼의 답)라고 말했다. 이 연장자는 많은 사람에게 쐐기는 틈에 삽입해 물체를 고정하는 쐐기이고 나뭇조각이라고 설명했다. 전자(대변)는 쐐기 모양을 낼 수 있지만 고정하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꿈에서 나는 수수께끼 배후의 내포는 ‘진짜 재료’가 되어야지 ‘유명무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이전에 골무(頂針, 같은 음인 ‘頂眞’은 성실하다는 뜻) 두 개를 잃어버린 일을 연상하고 또 잇따라 나타난 점화에서 나는 이것은 나에게 ‘진(眞)을 닦으라는’ 문제임을 강력하게 의식했다. 그런데 자신이 ‘진실하지 않은’ 표현이 무엇인가? 한번 또 한 번의 점화를 줄곧 사고했지만 큰 돌파구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걸린 걸까?

생각하다가 몇 년 전 한 가지 지난 일이 생각났다. 한번은 수련생이 매번 미국에서 대형 법회를 열 때 사부님께서 법회에서 설법하신다고 말했다. 사부님을 뵙는 것은 제자들에게는 정말 매우 기대되는 일이다. 그러나 일부 진상 알리기 거점은 사람이 지키고 있어야 했기에 어떤 수련생은 법회 현장에 갈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스스로 물었다.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사부님이 너무 그립기에 내가 해외에 나간 후 첫 번째 법회라면 나는 이 한 번만 가겠다. 그 후의 법회는 자율적으로 거점을 지키고 법회 현장에 갈 기회를 다른 수련생에게 양보하겠다.’

나는 이렇게 할 것 같았지만 천성 때문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더 좋은(경지가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을 견지했다. 어디서든 열심히 하고 규칙을 지키며 다른 사람을 돌보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려 했다. 유치원 다닐 때 ‘어린 어른’이 되어 때론 아주머니 역할을 했고 40살 때 내가 연장자 같다고 말한 동료가 있었는데 나는 그들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고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상황에서 내가 대가를 치러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안으로 찾으면서 이 일을 다시 생각했다. 그렇게 매번 기회를 양보해서 시간이 길어지자 다른 사람은 나의 양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을 여전히 잘 대해줬지만, 자신감이 떨어지고 상실감도 들었다. 자신의 언행이 무시당하고 상대방이 이해해주지 않은 그런 상실감, 본질에서 좋은 명성을 얻지 못한 상실감이다. 그 속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성취시켜주는 데는 자신의 명예, 명성에 대한 추구를 만족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았다. 이 명을 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가?

더 깊이 들어가 자기를 살펴본 후 ‘명(名), 리(利), 정(情)’ 세 가지 중에서 스스로 가장 중히 본 것이 ‘명’이라고 느꼈다. ‘이익’은 필경 몸 밖의 재물이라 태어날 때 가지고 오지 못하고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그다지 중하게 보지 않았다. ‘정’도 다른 사람, 일, 재물에 관련된 희로애락이기에 평소 매우 중히 보았어도 중요한 시점에서 선택할 때 그래도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명’은 자신의 ‘명’이기에 가장 중히 본 것이다.

내가 구한 것은 ‘내가 가장 좋다’는 좋은 명성이다. 지난 일을 하나하나 돌이켜봤다. 대학에 다닐 때 한번은 내 의자에 있던 방석이 보이지 않았는데 2달 후 학기 말에 갑자기 나타났다. 한 동창생이 나에게 ○○가 도서관에 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내 방석을 가져간 거라고 알려줬다. 당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내 거니깐 가져갔겠지, 다른 사람 거라면 감히 가져가기나 했을까’하고 생각했다. 그 이외에 그녀에게 어떤 좋지 않은 생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행위는 측면에서 나의 선량함, 인의를 돋보이게 한 것이기에 나의 ‘좋은 명성’을 집착하는 이 마음을 만족시켰다.

‘제일 잘한다’(정신 측면이 고상함)는 이 일념이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기에 이 역시 자신의 수련에서 내려놓아야 할 집착임을 줄곧 의식하지 못했다. 더 추적해보면 ‘좋은 명성’을 구하는 본질은 바로 위사(爲私)를 기점으로 한 ‘사아(私我)’에 대한 집착이다.

생각하면서 나는 자신이 ‘좋다’를 추구하는 마음이 정말 여간 강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초등학생 때 나는 환경이 허락해서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되도록 앉아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 입은 옷은 모두 면 소재 바지여서 오래 앉아있으면 바지 무릎이 불룩해져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항상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의 어떤 행위가 좋고 어떤 행위가 좋지 않다는 걸 의식적으로 관찰했다. 좋은 것은 따라 배우고 좋지 않은 것은 거울로 삼아 늘 더 완벽해지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나다. 어린 나이에 사상이 이렇게 복잡했고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자기 이미지를 매우 중시했다. 다른 사람 안중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마음에 뒀다. 어머니는 내가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것을 보고 이전에 나에게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 일을 하고 있는데 누가 늘 너를 보겠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내가 ‘진실하지 않은’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점점 찾은 것 같았다. 당신이 당신의 ‘명성’을 마음에 두고 있을 때 당신은 애써 결점, 부족한 점을 덮어 감출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애써 좋게 표현할 것이고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 잘할 것이다. 사심이 없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진실하지 않은’ 표현이 아닌가! 표현, 표현 모두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역시 내가 왜 매번 진심 어린 장면을 보거나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고 늘 눈물이 글썽해지는가 하는 원인이다. 그때 자신의 ‘진실하지 않은’ 것이 그것에 의해 씻기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정말 창호지를 뚫어놓은 것처럼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수십 년간 줄곧 이런 강한 ‘좋은 명성’에 대한 집착을 추구했기에 일 처리를 할 때 앞뒤를 재보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일을 잘하지 못할까 봐 늘 두려웠고 내려놓지 못했다. 결국 이것을 돌보면 저것을 놓치게 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면 정말 너무 후회되고 심지어 뼈저리게 뉘우칠 일이다(어떤 일은 정말 자신에게 기회가 있다면 다시 하고 싶다). 이 마음은 또한 자신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하는 데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틀림없이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줄곧 이 마음을 잡고 놓지 않고 있는 우둔한 제자가 깨닫지 못한 것을 보시고 조급해 각종 방법으로 여러 번 점화해주신 것이다.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이것은 ‘진아(眞我)’의 본래 소원이 아니라 모두 누적해온 업력, 사람 마음, 후천적 관념으로 구성된 ‘가짜 나’의 행위임을 알아야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 당시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좋지 않은 일을 이렇게 많이 한 ‘자아’를 절대 계속 가져서는 안 된다.’ 말을 마치자 정말 다른 공간에서 한 층의 입자가 떨어진(걸러져 나간) 것을 느꼈다.

몇 달 전에 발정념할 때 구결을 다 외우고 ‘몌(滅)’ 자를 외울 때 무슨 물건이 가려진 것처럼 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념을 내보낸 후 가려졌던 것이 사라져 ‘몌’ 자를 얼마나 크게 생각하면 그만큼 커졌다.

앞으로 수련의 길에서 자신이 더 착실하게 각종 사람 마음과 집착, 후천적 관념을 닦아버리고 끊임없이 ‘진선인(真∙善∙忍)’ 우주 특성에 동화되어 진실한 자신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무한한 감격,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하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0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21/4078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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