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기자 선룽 취재보도) 위안룬샹(袁倫祥)은 가오슝(高雄)중학교 졸업 후, 순조롭게 양밍(陽明)대학교 의학과에 합격해 25살에 타이베이 룽민(榮民) 총의원 비뇨기외과 의사가 됐다. 현재 대만대병원 부속병원 윈린(雲林)에서 일하면서 종양의학센터 요로암 팀의 간사다. 여러 해 동안, 그는 비뇨기과 종양수술과 다빈치 로봇팔 최소침습술에 정통했고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훌륭하지만, 더욱더 완벽을 추구해 외부인들의 눈에는 젊고 유망하며 기술이 월등한 명의가 됐다.
하지만 의사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인턴에서 레지던트가 되기까지 갈고 닦는 과정은 수행하는 제자를 방불케 했다. 그는 “한 문의 공부(功夫)를 배우는 것 같았어요. 손에서 손으로 입으로 전수하는 멘토링을 통해 들어가고 나가면서 청소하고 약을 바꾸며 상처를 간호하고 몸을 뒤집어 도뇨하며 밤새 당직을 서는 등 어떠한 잡일도 모두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했으며, 선생님이 무엇을 말하면 그것을 해야 했어요”라고 말했다. 이 한 단락의 기본기를 다지는 중요한 순간, 끈기와 체력 그리고 인내와 수고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거쳐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간신히 비뇨기 외과의사 양성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직 진정하게 자신을 이끌어줄 심오한 비밀을 지닌 스승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마음속에 어렴풋이 어떤 느낌이 있었어요. 여러 해 동안 의학 분야에서 습득한 지식 기능은 마음속의 생명에 대한 의문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욱 심오한 것을 찾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으며 이생의 추구는 바로 이것뿐인가 줄곧 생각했어요.”
2012년 정월 초하루 위안룬샹은 자국의 오랜 친구인 타이베이 룽중(榮總)병원 감염과 주치의 정위안위(鄭元瑜)가 찾아와서야 비로소 그에게 희망의 창이 열려 생명의 서광이 비춰 들어오게 되었다! 알고 보니 정 의사의 누나가 뇌하수체 위축 질병 시달림으로 약물치료 효과에 한계가 있고 의사가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한 후 매우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정 의사도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다섯 가지 공법을 배워서 수련하는 과정에서 오래된 관절통, 목, 등 통증과 치질이 사라지는 것이 증명됐다.
좋은 친구의 진정성 있는 소개를 들으면서 위안룬샹은 호기심에 금빛이 반짝이는 보서(寶書) ‘전법륜’을 열심히 읽었다. 그날부터 그는 더 이상 내려놓지 않게 되었다. “보고 나서 저는 마침내 생명 속의 진정한 스승님을 찾았습니다!” 위안룬샹은 정법의 귀중한 시간을 다그쳐 ‘전법륜’과 모든 경서를 빠르게 다 읽었다. “읽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느낌이 있었어요. 머리가 열려 과거의 사유가 열렸어요. 예전에 이해하지 못하던 많은 것을 법을 배우면서 점차 깨닫게 됐어요. 그때 저는 ‘누가 우주, 인류, 지구의 역사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는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고난 속에 광명이 있다
마음속의 강한 감동을 금치 못한 위안룬샹은 ‘전법륜’이 한 권의 천서(天書)고 만고 이래에 아무도 말한 적 없는 천기(天機)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오랫동안 갈망하고 추구하던 것에 대한 마음이 놓이는 해답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수련은 공염불이 아니었다. 그가 도를 얻고자 하는 자신감으로 하루를 맞이할 때마다 심한 시험이 시작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러 사람 눈에 비친 저의 모습은 수술을 잘하는 의사였어요. 하지만 수련을 시작한 뒤, 모든 것이 순조롭지 않았어요. 한 환자가 수술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어요. 당시 이런 확률은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었지만 발생했어요. 이는 저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어요!” 위안룬샹은 내면에 후회와 낙담으로 가득찼으며 사무실 안에 숨어서 흐느껴 울었다. 염치불구하고 사과했고 마음속의 가책과 실패는 가족의 상심한 정도와 거의 같았다.
예전에 수없이 많은 죽음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고 부상자를 돌보면서 마주했던 것은 칭찬과 감동이었다. 그러나 환자가 그를 필요로 할 때 그는 오히려 다시 메스를 들 용기를 잃어버렸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생명의 난관은 오히려 일파만파로 번져 경기 상황이 갑자기 나빠졌을 뿐만 아니라 집안이 엉망이 되었으며 상사와도 충돌이 생겼다. 진퇴양난,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그는 시종일관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때 마치 사부님께서 잘 안배해주신 것만 같은 환자 한 분이 있었어요. 계속 저를 찾으면서 제가 집도할 것을 요구했어요. 저는 그를 다른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고 자신에게 능력의 한계가 있으며 사망사례도 있다고 알려줬어요. 하지만 저를 완전히 신뢰했고 어떻게 권유해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어요.”
길이 바로 앞이라 물러설 여지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위안룬샹은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메스를 들고 전장에 나섰다. “제가 수술을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법 공부를 하고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며, 모든 두려워하는 마음의 집착을 없애 가장 좋은 상태로 수술에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메스를 들고 연 후,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어요. 저는 제가 지나왔으며 모든 것이 또다시 고난 속에 광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 단락의 시련을 돌이켜보면서 위안룬샹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밀어주지 않으셨다면 또 어떻게 이 한 난관을 마음을 굳게 먹고 발을 내딛어 뛰어넘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큰 시험에 부딪힌 위안룬샹은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저는 비교적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자신의 기술만을 중시하면서 수술이 순조롭지 않으면 환자의 상황이 나쁘고 누군가 잘 준비하지 않았다며 먼저 책임을 밀었어요. 그러나 심하게 한 번 넘어진 후 저는 이번 수술은 전체 팀들의 협력이며 의사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어요. 수술이 잘 된 것은 여러 방면의 세부사항이 잘 준비됐기 때문이에요.”
위안룬샹은 션윈예술단 공연을 관람하는 과정에서 매우 큰 계발을 받았다. “션윈 공연의 모든 사람이 무대 위에서 정체가 되도록 서로 부각시켜 줘야 비로소 매 하나의 음표와 매 한 가지 동작이 모두 완전무결하게 맞춰질 수 있었어요.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몇 번 더 달려가서 자료를 더 많이 찾아보며 환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조수의 일을 조율하고 마취사와 소통하고 심지어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철수할 지 계획을 세우는 등 매 한 가지 일을 모두 반드시 세심하게 잘해야 합니다. 수련은 곧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며 매 한 세부사항을 중시해야 하며 이 한 층의 이치에 부합하고 평범함 속에서 비로소 초범성을 체현할 수 있으며 비로소 진정하게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상서로움과 경지를 체득하다
특히 목숨과 관련된 긴박한 시련을 겪으면서 위안룬샹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공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크고 바쁜 환경 속에서 그의 마음의 안정과 고요함을 유지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병원의 빈틈없는 힘든 작업 스트레스는 때로 저를 숨 막히게 해요. 마취가 작용을 일으키지 않고 조수의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람을 찾을 수 없고 기계가 임시 고장인 등의 경우를 포함해 수술실 안에서도 종종 매우 돌발적인 상황에 부딪힐 때가 있어요. 어떤 작은 요소 하나만 있어도 방해의 목적에 도달하기에 충분해요. 하지만 제가 수술하기 전에 빈 장소를 찾아 연공하면 수술 효과가 유난히 좋아요. 수많은 의외의 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요. 심지어 전반 수술과정 내내 즐기면서 했고 귓가에 환자의 심박 수와 자신의 목소리만 들렸어요. 그런 평화롭고 순정한 정념의 장은 저를 불현듯 ‘상서로움’의 참뜻을 깨닫게 했어요”라고 말했다.
위안룬샹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공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큰 환경에서 마음의 안정과 고요함을 유지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상서로움’은 일종의 심경이고 일종의 태도이기도 하다. 파룬따파에서 위안룬샹은 끊임없이 자아를 내려놓고 처지를 바꾸어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것을 배웠다. 그는 “과거 서양의학의 교육에서 저는 매우 빠르게 타인의 부족함을 보고 습관적으로 가서 질책하고 비판했어요. 상대방을 만나기만 하면 잘못을 트집 잡고 단점을 까발리는 것 같았어요. 이런 자아 인식은 자신을 주요책임자, 동료, 가족과 서로 어울려 지내면서 매우 큰 장애를 형성하게 했어요”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일하면서 저는 자신의 기술이 좋기 때문에 더 좋은 대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승진하지 못한 것은 주요책임자가 저를 돌봐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조율할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바꿨어요. 새로운 환경에 간 후, 비록 기술력으로 인해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오히려 소통이 잘 안 돼 주요책임자와 매우 큰 충돌을 빚었어요. 가정에서도 아내가 이것을 잘못하고 저것을 잘못한다고 생각했으며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타인의 문제뿐이었어요.”
끊임없이 법 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는 것을 통해 위안룬샹은 광대한 우주에 녹아들어 하찮아서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람 마음을 인식하게 됐고 이런 사(私)의 것은 모두 반드시 닦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법에서 저의 심경은 줄곧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어요. 처음에 저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때에 원치 않는 감정이 쌓여 오래도록 건너가지 못했어요. 나중에 저는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은 속인의 눈에 비친 부패한 좋은 사람이 아니라 우주가 인정하는 수련인이 돼야 하며 이것은 자연히 몸소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물질적인 금전과 외재적인 후광으로 바꾸어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팀원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게 될 때 저는 타인의 미움을 살까 봐 외면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과 태도로 환자의 입장에 서서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말해요. 솔직하게 그들에게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고 환자에 대해서도 더욱 애정과 인내심을 갖고 얘기해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비록 힘들게 일했지만 집으로 달려가 아내를 도와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목욕시켰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옛사람들의 부부유별의 함의를 더욱 이해하게 됐어요.” 위안룬샹은 ‘부부유별’이란 분업이 다른 것이지 지위가 다른 것이 아니며 필경 한 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 외에도 안정적인 경제수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가정주부예요. 우리는 또 남자아이 넷을 키워요. 경제적인 지출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아내와 논의하고 조율한 후 가정이 부족하지 않게 제가 노력해서 일하기로 했어요. 저도 힘이 닿는 한 가정을 돌볼 거예요. 아내의 이해와 지지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저도 뒷걱정이 없어요. 심지어 휴일에는 기업관리 석사 과정을 다니고 있어요.”
위안룬샹은 자신은 대법제자이며 아무리 나쁜 일을 만나더라도 모두 좋은 일이며 모두 자신을 승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저는 수련한 이래에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런 고생 속에서 승화된 즐거움은 먹고 마시고 노는 즐거움과 달라요.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저는 그것을 시험을 통과하는 것으로 간주할 거예요. 무슨 일이든 모두 그것을 좋은 일로 여겨 시련을 건넌 후 일을 보면 시야가 달라져 있어요. 전반적인 심경도 탁 트여서 밝아져요.”
위안룬샹은 은혜에 감사하며 말했다. “의학계에 만약 당신이 수술을 잘하면 당신은 연구를 잘못할 수 있고 당신이 연구를 잘하면 당신의 가정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이런 말이 있어요. 그러나 지금 저는 업무에서 학술상에서 가정에서 모두 잘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수련하는 것은 정법이고 ‘진선인(真·善·忍)’의 용련 속에서 제자는 갈수록 더 좋아질 뿐이기 때문이에요. 저도 자신이 반드시 잘할 수 있다고 믿어요.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0년 6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6/14/4076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