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광위(姜光宇)
[밍후이왕] 그것은 한 맑고 아름다운 봄날 아침이었습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침실로 쏟아져 들어왔고, 창밖의 즐거운 새소리와 함께 저는 게슴츠레 눈을 떴습니다.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들고 습관적으로 바탕화면을 여니 평소처럼 미수신 메시지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중에 몇 건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던 친구에게 온 것들이었습니다. 전날은 ‘뉴센추리 필름(new century film, 新世紀影視基地)’이 출품한 수상작인 영화 ‘귀로(歸途)’가 인터넷에 정식 상영되었습니다. 그날 밤, 영화 링크를 많은 친구에게 보냈는데, 그중에 이미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옛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유명 배우 장광위가 22년 수련의 길을 회고하며 허스(合十)하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를 표하고 있다.(뉴센추리 필름 제공)
영화 ‘귀로’의 주연 장광위가 웨일스 국제영화제 최우수 남자 배우상을 수상하다. (오른쪽 상단) ‘귀로’가 2019년도 ‘The Greatest Show of All Time’ 영화제에서 영예롭게 최우수 극본상을 수상(뉴센추리 필름 제공)
“영화 다 봤어, 정말 감동적이더라! 이렇게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있다니, 다들 정말 대단해. 네가 그렇게 좋은 신앙을 찾을 수 있어서 나도 기쁘다.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랄게!”
“축하해. 영화 정말 좋았고, 네 연기도 정말 좋았어. 재밌었어! 파룬궁(法輪功)이 그렇게 신기한 줄 정말 몰랐어. 시간 내서 네가 줬던 그 책을 좀 봐야겠다. 정말 고마워. 모든 일이 다 순조롭길 바랄게!”
“영화 다 봤어. 정말 감동이었어! 정말 실화야? 파룬궁이 정말 그렇게 신기해? 네가 정말 연기를 잘해서 네가 직접 겪은 일인 줄 알았어.”
“와, 진짜 감동적이다. 보면서 펑펑 울었어! 이렇게 좋은 영화를 공유해줘서 고마워.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아, 자신의 신앙을 찾을 수 있는 네가 부럽다. 너는 참 사는 것도 즐겁고 잘 풀리는 것 같아! 항상 즐겁게 지내길 바랄게!”
……
보다 보니 제 눈이 갑자기 좀 흐려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이 흐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사고는 순식간에 1998년의 그 봄날로 날아갔습니다.
1998년의 4월 어느 날, 그해 베이징의 봄은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옹정왕조(雍正王朝)’의 제작진은 베이징 교외에 있는 ‘대각사(大覺寺)’에서 드라마 촬영을 했습니다. 사원의 규모는 크지 않았고, 유리기와에 몇 겹의 붉은 벽으로 이루어진 정원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사방이 사계절 푸른 송백[蒼松翠柏]에 골짜기에서는 새가 지저귀고, 새벽에는 종소리, 저녁에는 북소리가 울리던 그곳은 말할 수 없이 수려하고 고즈넉하지만, 오히려 좋은 수행 장소였습니다.
바로 이곳 대각사에서 저는 처음으로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알게 되었고, 파룬궁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습니다. 몇 해가 지나고 이날을 다시 회상해 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제 생명의 대각(大覺)이 바로 우연한 것 같은 이런 기연 속에서 슬며시 다가왔습니다.
영화 ‘귀로’ 중에 주인공인 왕하오천(王浩晨)이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의 사진 앞에 무릎 꿇고 두 손을 허스한 채로 통곡하며 자신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사부님께 감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1998년 겨울 그날 밤에 사부님 법상 앞에 공손하게 무릎 꿇고 두 줄기 맑은 눈물을 흘리며 허스한 채 이런 서약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수련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고, 뜻을 굽히지 않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매번 이 일을 회상할 때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그런 감격, 아주 오래전부터 느꼈던 그런 갈망, 알 수 없는 기쁨, 생명의 가장 본원에서 느낀 다시 태어난 듯한 그러한 격동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샘처럼 솟아오릅니다.
그날 이후로 생활 속에서 좌절과 곤란에 부딪힐 때나, 제 앞길에 망망함과 곤혹스러움이 느껴질 때면, 저는 그날 밤의 정경을 떠올립니다. 그러면 한 가닥 비할 수 없이 따스하고 자비로운 에너지가 저를 향해 쏟아져 제 온몸의 모든 세포를 감싸고 온몸의 모든 신경을 따뜻하게 해주어, 저는 계속해서 걸어 나갈 용기와 힘을 다시 얻게 됩니다.
저는 이 힘, 비할 바 없이 자비롭고 홍대한 이 힘은 바로 우리의 위대하신 사부님—리훙쯔 대사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22년의 생명 노정을 되돌아보면, 걸어지나 온 길은 사부님의 보호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항상 제게 묻습니다. 당신이 수련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요?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만약 어느 날 당신이 정말로 수련하게 된다면, 생명의 진정한 동력은 외부의 물질세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 강대한 신념에서 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오직 정법 중에서 수련해야만 이런 힘을 구비할 수 있습니다. 이 힘은 당신의 생활을 더욱더 튼실하고 즐겁게 해 줄 것이고, 이 힘은 삶의 세차고 거센 파도 속에서 당신의 생명을 받쳐주는 작은 배를 평안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일단 당신이 어떻게 해야 이런 힘을 얻을 수 있는지를 명백히 알게 되면, 당신은 이렇게 쉽게 오지 않는 기연을 더없이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저 그를 더욱 잘 간직하겠다는 생각만 할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1999년 7월부터 파룬궁 수련자들은 어쩔 수 없이 참혹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나긴 대재난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이 20여 년에는 감동적이면서 눈물짓게 하는 무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앙을 수호하고 진상을 널리 전하기 위해 파룬궁 수련생들은 그 당시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참혹하고 무수한 대가와 희생을 감당했습니다. 그들 중의 한 일원으로서 저는 자랑스러움과 슬픔을 느낍니다.
자랑스러운 것은, 제가 대단한 ‘진선인(眞·善·忍)’ 신앙 수호자 무리의 일원이라는 것인데, 평생 여한이 없습니다.
슬픈 것은, 하늘에 가득한 거짓말로 감행된 이 참혹한 박해에서 진정으로 재앙을 당한 것은 이런 수련인이 아니라, 기만당하고 원한을 강요당한 그런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 몇 년간 있었던 몇 가지 일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첫 번째, 그것은 박해가 발생한 후인 1999년 8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중국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CCTV)의 새해 가극에서 이미 저를 이 극의 서브 남자주인공으로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은 모든 배우에게 반드시 보증서를 쓰라고 했고,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촬영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호하게 이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머리를 들고 제작팀 정문을 나설 때, 마음속으로 방금 자신의 용기와 결단력에 더욱 긍지를 느꼈습니다.
사람이란 흔히 이러합니다. 마음속에서 자신에게 하나의 도덕적 잣대와 사람됨의 척도를 세워주면 무슨 일이든지 최대한 이것으로써 가늠할 것입니다. 그러나 외적 행위가 이 준칙을 위배할 때는 마음속으로 자신에 대한 깊은 혐오감이나 죄책감을 느끼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항상 말하는 ‘자기가 자기를 못마땅해한다.’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긍심과 도덕적 숭고함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도덕적인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느낌은 결코 낯 설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CCTV 가극의 서브 남주의 기회를 잃은 제 마음속에는 조금의 유감과 실의가 없었고, 반대로 기쁨과 자긍심으로 충만했습니다. 저는 제가 이미 ‘진선인’ 신앙에 대해 더욱더 굳건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저의 수련은 아직 9개월도 채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제작팀을 벗어나 막 차를 타고 귀가하려 할 때 핸드폰이 울렸는데, 다른 한 제작진이 저에게 어떤 감독을 만나보라고 부탁하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또 그런 서명을 요구한다면, 흥, 이것도 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아, 보아하니 미래의 연예인 길은 점점 더 걷기 힘들어지겠구나!’ 이런 생각을 품고 저는 그래도 그 감독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당시에 연기는 제 유일한 생활 내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에 들어서자 응접실 소파에 한 회백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는데, 두 눈이 빛나고 생기가 넘쳤습니다. 옆에 있던 조감독이 그 남자를 판(範) 감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자리에 앉은 후 판 감독은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냈습니다. “최근에 다른 역할을 받은 게 있는가?” 저는 “하아”하고 허탈하게 웃으며 “감독님이 계신 곳에 오기 전에 막 서브 남주 역할을 밀어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판 감독은 “어째서?”라고 물었고, 저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거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판 감독은 무려 1분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이 빠진 얼굴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그러더니 시원스레 웃으며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젊은 친구 좀 보게, 자네 정말 대단하구먼. 정말 탄복할 일이야. 자네의 이 진심과 용기에 맞서서 만약 자네가 원한다면 내 캐릭터는 자네 것이네!” 계약서에 사인하고 정문을 나서는데, 한바탕 시원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서쪽으로 지는 불그레한 햇빛을 마주한 제 입가에는 한 가닥 미소가 걸렸습니다. 그것은 절대 의기양양한 미소가 아니고 순수한 기쁨과 진리를 명백하게 깨달은 후에 환하게 짓는 미소였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한 수련인으로서 당신의 것이라면 곧 당신의 것이라는 이치를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 수련의 원칙을 견지하면 절대 까닭 없이 우리에게 무엇을 잃어버리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동쪽에서 잃은 것을 서쪽에서 찾았습니다. 수련의 이치는 모두 생명의 득실(得失) 사이에 있습니다.
두 번째는 2000년 4월 25일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그날은 중난하이(中南海) 서문에 가서 청원했다는 이유로 재차 구치소로 보내진 날이었습니다. 저는 24시간 감금되었다가 풀려났습니다.
베이징의 화려한 등불이 밝혀지는 초저녁 거리를 걷다가 문득 고독함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큰 중국에 뜻밖에도 제가 자유롭게 수련하고 조용히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더는 한 곳도 없었습니다. 눈을 들고 사방을 둘러보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미래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마음속이 갑자기 쥐어뜯기고, 처량하게 방황하는 한 가닥 정서가 저를 뒤덮었습니다. 저는 힘없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깊이 잠들었습니다.
그 후의 나날 동안 저는 좀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연예계의 방탕한 생활이 빈번히 저를 향해 손짓했습니다. 저는 그 세계의 친구들에게 이끌려 수련 후에 더는 드나들지 않았던 나이트클럽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지난날 마음대로 흥청망청 보내던 청춘 시절이 마치 저를 다시 유혹하는 것 같았고, 저는 맥없이 발버둥 치다가 저항을 포기했습니다.
그때 저는 ‘전법륜’을 조심스레 치워두고, 수련을 슬며시 마음속에 감춰두었습니다. 저는 한 마리 타조처럼 거만했던 머리를 살짝 모래 속에 묻고 스스로를 기만하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렀어. 이제는 생활을 좀 향수하자. 그렇다 해도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잖아.”
그러나 저는 오히려 즐겁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즐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당초에 제가 대법 수련에 걸어들어올 수 있었던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항상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 생애에 큰 성취와 엄청난 부, 명예를 가졌다 해도 끝내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잖아.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사는가?’ 사후를 생각하기만 하면 남는 것이라곤 백골 몇 조각과 황토 한 줌뿐이었습니다. 저는 견딜 수 없이 전율하고 비할 바 없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는 제가 생명의 의의와 목적을 늘 생각하는 계기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제 예전의 생명을 칠흑 같은 방에서 배회하며 전진하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그럼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마치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을 비춰 그 앞길을 환히 밝혀주고, 짙은 안개를 흩어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밝은 빛이 인도하는 것은 한 갈래 희망찬 길로서, 이 길은 가시덤불이 빽빽하고 험난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끝없는 광명, 생명의 영원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고험—진선인 신앙에 대한 참혹한 진압과 박해, 생과 사의 고험 앞에서 저는 용감하면서 단호하게 생사관을 지나왔지만 따스함과 향락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머뭇머뭇 유랑하다 예전의 즐거움을 되찾을 방법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다시 망망함과 고통에 빠졌습니다.
그 나날 동안, 저는 정말로 의기소침해져 있었습니다.
하루는 예전 우리 연공장의 한 대법 수련생이 갑자기 제게 전화로 선물을 줄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말한 그 암호의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마음속으로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저는 즉시 그와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정했습니다.
그가 제게 준 선물은 사부님께서 박해가 시작된 후에 공개적으로 발표하신 첫 번째 경문 ‘심자명(心自明)’이었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도 제가 ‘심자명’을 보았을 때, 눈물을 쏟았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법은 중생을 제도하고 사부가 인도하나니돛 하나 오르자 억만 돛이 나부끼네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인심이 무거우면 바다 건너기 어렵도다”[1]
사부님의 시를 읽으며 저는 꼬박 30분 동안 울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이 몇 개월의 타락 때문에 수치심을 느꼈고, 제 내면의 나약함이 부끄러웠습니다. 사존의 홍대한 자비가 이 ‘심자명’ 한 수에 투과되어 제 마음속의 안개를 씻어주고, 제 생명의 용기를 고동치게 했습니다. 한 줄기 난류(暖流)가 순식간에 온몸에 솟아나고 오랜만에 그 즐거움이 슬며시 피어올랐습니다. 저는 길게 한숨을 쉬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거울 속의 자신은 마침내 즐겁게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견정한 용기를 지녔던 과거의 그 수련인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 번째 일은 영화 ‘귀로’를 찍던 기간에 발생했습니다.
영화 ‘귀로’의 제작을 완성하고 두 달 후인 어느 날 아침, 마침 유럽에서 여행하던 저는 제가 ‘미국 아콜라드 국제영화제’에서 2019년도 최우수 남자 배우상을 받게 되었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멍하니 이 소식을 접한 저는 중학생 때 단순히 연기를 좋아했던 것부터 대학 1학년 때 단호하게 학교를 그만두고 꿈을 좇아 베이징에 가서 수많은 고생을 하고, 많은 단역을 거쳐 마침내 인생의 첫 배우 계약을 따내고, 훗날 ‘옹정왕조’, ‘북방이야기(北方故事)’ 등등에서 오늘날의 ’귀로‘까지, 참으로 복잡한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저는 제가 정말로 이 예술을 연기하는 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심취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저는 일평생의 힘을 기울여 이 예술의 보물을 찾고,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배우들처럼 모두가 칭찬하는 배역의 형상을 남길 것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2001년 4월, 26세였던 저는 연예계 사업이 한창이던 황금시기에 어쩔 수 없이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향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는 조명 아래에 설 기회가 없다는 것이 한없이 아쉬웠습니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무언가를 사랑했었다면 당신은 그때의 제 심정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2017년이 되어 미국 ‘뉴센추리 필름’이 정식으로 설립되었고, 그곳에서 저를 섭외했습니다. 2018년, 저는 뉴센추리 필름의 첫 번째 장편영화 ‘귀로’의 촬영에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2019년에 ‘귀로’는 전 세계 4대륙의 여러 영화제에서 ‘최우수 영화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극본상’, ‘최우수 편집상’과 ‘최우수 남자 배우상’, ‘최우수 여자 배우상’ 등 34개 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연기예술에서의 성적과 영예가 갑작스레 제 삶에 찾아왔습니다. 이런데 어찌 제 마음속의 많은 감정이 교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귀로’를 본 친구라면, 어쩌면 영화의 끝부분에 나오는 그 장면에 인상이 깊을 것입니다. 생사의 겁(劫)을 경험한 왕하오천과 샤오쉐(小雪)가 태양이 막 떠오르는 해변을 걷고 있던 그때, 찬란한 노을빛과 함께 수많은 바닷새가 경쾌하게 춤을 추고, 한 가닥 강렬한 생명력과 생명이 희망으로 가득 찬 기쁨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 순간, 많은 관중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습니다.
이 장면을 찍은 것은 한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제작진이 해변에 와서 장비를 설치해놓고 동녘에 해가 뜨기를 기다리던 그때, 무수한 바닷새가 모래사장에 모여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맨은 반농담조로 “아, 이따가 이 새들이 함께 높이 날아오른다면 좋겠네요. 엄청 아름다운 장면을 찍을 수 있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아침노을과 함께 다 같이 날아오르는 새 떼, 그리고 가을빛 바닷물이 먼 하늘과 한 빛깔로 어우러져 있는 장면은 실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런데 동녘에서 막 해가 뜰 무렵에 모래사장에 모여 있던 수많은 바닷새가 마치 우리의 마음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날개를 퍼덕이며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새들은 렌즈의 범위 안에서 계속 빙빙 날았습니다. 마치 누군가 새들을 지휘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수한 바닷새는 완벽하게 카메라맨의 지령에 복종해 렌즈의 각도와 장비의 위치 변화에 맞추어 날다가 촬영이 원만히 끝나자 여운을 남겨두고 멀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을 남겼습니다.
이런 신기한 에피소드는 영화 촬영 중에 많이 일어났습니다.
2019년, ‘귀로’가 4개 대륙의 각종 영화제에서 중요한 수상 후보에 자주 올라 영화 홍보를 위해 저도 그중 일부 영화제에 참석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제는 2019년 9월에 참석한 영국 웨일스 국제영화제(Wales International Film Festival)입니다.
시상식 날 밤 사회자가 2019년 영화제의 ‘최우수 남자 배우상’을 발표하자 대형스크린에 영화 ‘귀로(Origin Bound)’와 제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이번 영화로 세 번째 ‘최우수 남자 배우상’을 받은 것입니다. 거의 18년 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 생명이 이것으로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남자 배우에게 이 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사회자에게 상을 받고 난 후에 무대 아래의 관중에게 더없이 자랑스럽게 수상소감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서두를 열었습니다. “저는 파룬궁 수련생입니다. 중국에서 현재 파룬궁은 중공 정권으로부터 잔혹한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이 바로 파룬따파의 진상입니다.”
그 순간 저는 더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 순간은 감동 외에도 감사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저의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세심한 자비와 보호로 저같이 이런 비천하고 무지한 생명도 조금씩 숭고함을 향해 갈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비할 바 없는 홍대한 흉금은 이토록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영혼도 성결한 빛을 꽃 피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파룬따파에 감사를 드립니다. ‘진선인’ 신앙은 22년의 제 수련 생애에서 줄곧 저를 채찍질하고 고무격려하면서 마음속의 양심과 선념을 굳게 지키도록 해 주었고, 제게 비할 바 없는 용기를 주어 사악의 탄압과 잔혹한 박해에 맞서 여전히 공명정대하고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마침 많은 영화제의 평가위원과 사회자가 말한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광명과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주인공은 마침내 위대한 신앙[法輪大法]을 찾았고, 이는 그 자신을 구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 점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지요.”와 같습니다.
‘귀로’가 이토록 많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보기에 바로 파룬따파 수련제자가 영화 속에서 펼쳐 보인 선량함과 관용, 굴하지 않는 의지가 전문평가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던 관객처럼, 아름다운 도덕의 숭고한 경지를 찾는 것은 선량한 생명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구동력입니다. ‘진선인’, 이 보편적 가치가 예술적 기법을 통해 사람들의 눈 앞에 펼쳐질 때, 이 수많은 생명이 고생스레 추구해 온 진리는 스크린을 통해 영화 관람자의 모든 내면을 직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생명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파룬따파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정말로 진상을 분명히 알게 된다면, 오래전의 기쁨과 즐거움을 반드시 되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20년의 봄은 특별했습니다. 심각한 역병은 겉보기에 번영하고 분주해 보이는 듯했던 인류사회의 장면을 정지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보기에는 강대한 현대사회가 뜻밖에 이런 한 번의 공격에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고 작은 바이러스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삶을 언제든지 파괴하고 소중한 삶을 마감시킬 수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생명의 의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인류의 미래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를 사고하기 시작합니다.
이 각도에서 말하자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이 역병은 아마도 그것의 순기능적인 측면도 있을 것인데, 우리에게 진지하게 사고하도록 합니다. 아주 평범하면서 어떻게든 명예와 이익을 좇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없는 문제를 사고하게 하고, 소크라테스부터 몇천 년 동안 인간을 괴롭혔던 문제들, ‘우리는 도대체 왜 왔고,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사고하게 합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경험하고, 또 이렇게 기나긴 길을 걸어온 후의 제가 당신에게 알려줄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친구여, 진심으로 ‘전법륜’을 한 번 봐 보세요. 진지하게 리훙쯔 선생님의 책을 읽어 보세요. 당신은 반드시 답안을 찾을 것입니다.”
대법을 수련하는 아름다움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대법 수련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통찰력과 순수함은 이토록 뚜렷합니다. 그것은 당신을 진정으로 즐겁게 하는 원천입니다.
제21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에 즈음하여 삼가 이 문장으로 저의 끝없는 기쁨과 위대하신 사존에 대한 끝없는 감사함을 표합니다. 22년의 수련 길을 되돌아보며 두 손을 허스하고 진심으로 이 한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리훙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홍음2-심자명(心自明)’
원문발표: 2020년 5월 18일
문장분류: 경축 5.13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18/4055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