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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사존의 자비와 법을 얻는 어려움

글/ 북미 대법제자

[밍후이왕] 2020년은 내가 파룬따파 수련에 발을 들여놓은 23번째 해이다. 지나간 일을 회상해 보면 마치 어제 같다.

사존의 1994년 광저우 설법을 회상

나는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빠는 십 대 때부터 기공을 연마했다. 내가 11살 때 오빠는 날 데리고 그의 기공 사부에게 가서, 나도 그의 제자로 삼으라고 청했다. 당시 그 기공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를 한참 동안 보고 나서 오빠에게 말했다. “네 여동생을 데리고 돌아가렴. 얘는 사부가 있어. 나는 얘 사부의 발가락에도 못 미쳐. 네 여동생이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방에 있는 너희들 모두 합쳐도 얘보다 못해.” 당시에 이 기공 사부가 오빠랑 농담을 한 줄 알고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는 그 후로 정말로 나를 그의 기공 사부에게 데려가지 않았다. 그 몇 년은 계속되는 기공 열풍으로 이상하고 희한한 기공이 많이 나돌고 있었고, 어린 내 마음에도 기공이 진짜와 가짜가 있으며, 가짜가 더 많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1994년 나는 한 언론사의 인턴이 됐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베이징에서 온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다. 당시 아주머니는 아주 보기 좋은 배지를 몸에 달고 있었는데 너무 맘에 들어 물었다. “이건 뭐예요?”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파룬 배지란다.” 나는 이 배지 아래 ‘진선인(眞善忍)’ 세 글자가 있는 걸 보고 말했다. “아! 이 세 글자가 정말 좋아요. 너무 맘에 들어요!” 그 말을 듣자 아주머니는 나를 붙잡고 말했다. “너는 파룬궁과 인연이 있구나! 리 선생님이 마침 너희 광저우(廣州)에 와서 마지막 전수반을 연단다. 꼭 가서 들으렴!”

‘파룬궁’ 세 글자를 처음 들었는데 가서 듣고 싶었다. 아주머니는 표가 아침에 벌써 다 팔렸다고 했다. 어떡하지? 내 친구도 같이 가고 싶어 했다. 당시는 언론사에서 발급한 기자증이면 표를 사지 않아도 직접 강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내 기자증을 친구에게 주고 나는 사원증을 들고 갔다.

12월인데 날씨가 매우 맑았다. 광저우 체육관 입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긴 줄을 섰다. 놀랍게도 긴 줄이 체육관을 한 바퀴 돌았지만 아주 조용했고 전국 각지에서 온 소수민족도 매우 많았다. 고원에서 온 어떤 이는 보따리를 메고 있었고, 신장(新疆)에서 온 어떤 이는 손에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좌석을 양보한 아이였다. 내 앞에 있던 여자아이가 한 노년 여성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이 표는 회의장 강단을 마주하고 있어요. 저는 사부님 설법을 여러 차례 들었어요. 저랑 바꿔요. 저는 바닥에 앉아도 괜찮아요.”

나는 매우 어렸을 때부터 천목이 열렸다. 다 커서도 다른 사람은 내가 보는 걸 못 본다는 걸 몰랐다.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본 것은 환각이라 생각했기에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이 일을 말한 적이 없다. 그날 회의장 밖에서 갑자기 천목으로 키 큰 천신(天神) 모양의 사람 몇 명이 보였다. 고대의 차림새에 체육관 바깥 기둥만큼 크고 입구마다 두 명에서 네 명의 큰 신이 손에 각각의 법기(法器)를 들고 보초를 섰다. 그때도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했다. 내가 본 것을 또 환각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나와 친구는 기자증을 가지고 들어갔다. 그때 나는 정말로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기자증을 믿고 표도 안 사고 잘난 체하며 친구와 스스럼없이 회의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체육관에 빈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빈 자리를 찾을 수 있는지 몰라, 마냥 회의장을 따라 걷다가 뜻밖에도 한 모퉁이에서 빈자리 두 개를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존의 자비셨다. 우리에게 법을 얻어 수련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사존께서 강의를 시작하셨다. 내 사상에는 곧 각종 좋지 않은 생각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 생각들은 마치 커다란 먹구름처럼 내 머리 전체를 빽빽이 뒤덮었다. 의심, 불경, 온갖 엉망인 사상업력을 나는 도저히 구별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똑똑히 분간할 수도 없고 또 구별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그건 사실 나의 관념일 뿐이며, 진정한 나의 주의식(主意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주의식이 사상업력에 단단히 눌렸기에, 의심과 불경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생각해 조용히 사존의 설법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회의장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놀랐다. 정말이지 너무나 조용했다. 사존께서 강단에서 강의하시는데 아래에는 바늘이 땅에 떨어져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 사이 몇 차례, 즉시 회의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위의 조용한 경청에 다시 한번 놀랐다. 사존께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자신 몸의 병이나 가족의 병을 생각하라고 하실 때, 회의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친구는 나와 인사하고 회의장을 나갔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자리를 떠나 출구로 향했던 나는 강단에서 강의하시던 사존께서 내가 나가는 것을 보면서 강의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깜짝 놀랐다.

머리를 돌려 강단을 보니 사존께서 나를 보고 계셨다. 당시 사상업력에 통제당한 나는 간도 크게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출구 계단까지 쭉 갔다. 바로 그 순간, 사존께서 강단에서 한 말씀이 전기충격처럼 나를 명중시켰다. “어떤 사람은 와서 도술을 부려 싸우려 하는데 나는 그 마음을 접으라고 권합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연분(緣份)을 말하는데 온 것은 곧 연분입니다.” 내 몸 전체가 이 말에 굳어졌다. 사존을 등지고 있던 몸이 휙 돌아와 계단에 앉았다.

계단에 앉아서, 강단 위의 사존께서 어떻게 나에게 직접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의아해하는 한편, 사존께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알고 계셨는지 놀랐다. 이렇게 마루에 앉아서 또 20여 분간 설법을 들었다. 20여 분 후 먹구름 같은 사상업력이 다시 몰려왔다.

나는 어릴 적부터 생명의 원천과 같은 문제를 곤혹스럽게 생각했다. 늘 자신의 기억이 잠겨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나를 묵묵히 바라보는 눈이 자꾸만 느껴졌다. 비록 어려서부터 천목으로 볼 수 있었지만 천목이 무엇인지 몰랐다. 게다가 오랫동안 여러 가지 기괴한 기공 현상에 눈과 귀를 흐리는 바람에 기공 현상에 대한 선입견과 오만하고 무지한 습관이 형성됐다. 구세력은 바로 이 모든 것을 이용해 1994년에 대법을 얻었어야 할 내 기연(機緣)을 가로막았다.

내가 마루에서 일어나던 순간,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한 걸음 한 걸음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무대 위의 스승님께서 내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시는 순간이 아직도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몇 년 후에 사존의 법을 읽었다. “내가 당신에게 성불하라 하고 당신에게 수련하라고 한 만큼, 수련 중에서 당신은 당신의 후천적인 관념을 제거해야 하며, 당신을 대체한 사상 업력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런 것들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려 하면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제거되지 않으려고 한다. 마침 그것이 당신의 대뇌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의 사상을 동요케 하고 당신의 사상으로 하여금 안정되지 않게 하며, 당신으로 하여금 법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고 법을 믿지 않게 하며, 당신에게 이것저것을 하게 하는데, 심지어 비자각적으로 나쁜 일을 하게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예전에 수련하지 않을 때, 사람을 욕한 적이 있고 나쁜 일을 생각한 적이 있어 이런 업력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좋다, 그럼 사상 업은 모두 당신 사상에 반영된다. 사람을 욕하는 말이라거나, 당신에게 법을 믿지 못하게 한다거나, 심지어 나를 욕하게 한다. 나는 당신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당신이 나를 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죄는 아주 클 것이다. 나를 욕하는 것은 당신의 사상 업이지만, 수련 중에서 당신이 그것을 배제해 버리지 않으면 바로 당신이 나를 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것을 배제하고, 그것을 배척하기만 하면 당신은 당신이 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업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마(魔)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공동으로 그것을 제거하여 당신 자신을 찾아와야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의식,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위해 살고 있다.”[1]

1994년에 대법을 얻었어야 할 나는 사상업력을 자신으로 여기는 바람에 소중한 기연(機緣)을 놓쳐버렸다

이미 나를 책임지고 업력을 없애주신 사부님

1994년 12월 21일 광저우체육관을 빠져나온 날부터 나는 인생에서 끝없는 시련을 겪었다. 이 난들은 맹렬하고 갑작스러워 나를 무너뜨릴 뻔했다.

우선은 내가 인턴으로 일하는 직장인데, 나의 월급을 압류하는 것 외에 갑자기 나를 해고하려 했다. 이유는 이렇게 우둔한 수습생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전에는 내가 잘했는데 어떻게 점점 더 우둔해지는지, 이제는 간단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일직선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고 이상하다고 했다. 나를 고용 대기 부서에 보내서 일정 기간 관찰한 후에 해고하려 했다.

나는 자신이 언제부터인지 자신감에 찬 인턴에서 아무 소용없는, 쓸려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내가 왜 직선 하나 제대로 못 그리냐는 의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몸 상태도 나빠졌다. 왠지 모르게 열이 나고 아프고, 한 번씩 그럴 때마다 업무 능력도 따라서 크게 떨어지곤 했다. 그 외에도 부모님께서 갑자기 나에게 즉시 이사를 나가 스스로 독립해서 생활하라고 하셔서, 본래 돈이 없는 상황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가장 대화가 잘 통하던 친구는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떠나고 아무런 소식이 없다. 사귀던 남자친구도 오해 때문에 갑자기 나와 헤어지자고 했다.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은 나의 월급날에 갑자기 나타나 빚 독촉을 했다. 집에 돌아오니 나를 가장 사랑하셨던 외할머니가 어느 날 아침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산도 허물고 바다도 메울 것 같은 이 모든 시련은 3년간 하루도 나를 떠나지 않았고 거의 숨돌릴 틈을 안 주었다. 심지어 꿈을 꿔도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악몽이었다. 종종 악몽 속에서 소리 지르고 나서 놀라 깨곤 한다. 내 인생은 암울했고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늙고 초췌해졌다고 한다. 괴로운 것은 그때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연이은 고난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것 말고는, 나 자신조차도 갑자기 찾아온 이 모든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3년이 지났다. 내 상황은 점점 나아지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더는 열이 나거나 아프지 않았고, 가족들은 더는 나를 내쫓지 않았다. 인턴을 하던 부서도 마침내 나를 받아들여, 먼저 간단한 잡일을 하도록 배치했다. 열심히 저축한 월급으로 빚도 갚았다.

어느 날 이웃이 나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이었다.

이 이웃은 미술 편집자이자 예술가로 광저우 화성(花城) 출판사에서 직무를 맡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복사 용지 한 묶음을 건네주며 자신이 예술 창작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이 그녀에게 큰 힌트를 주었다고, 나도 한번 읽었으면 한다고 했다. 당시 복사한 종이 뭉치를 건네받고 “왜 아무런 표지도 없어요?”라고 묻자 그녀는 “그래요, 왜냐하면 이건 제가 사무실 다른 동료로부터 빌린 건데, 교정 원고라서 내일 돌려줘야 해요. 이 책이 화성 출판사에서 출판될 거라고 들었어요”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보기 시작했다. 눈에 들어온 것은 글씨체가 비교적 큰 제목이었다. ‘인류의 타락과 각자(覺者)의 출현’[2]. 나는 갑자기 깊이 끌려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기 시작했다.

“인류의 타락은 예수가 말한 하와(夏娃) 그때부터 시작한 것만이 아니다. 이 지구는 문명과 원시(原始)의 시대가 한 차례뿐만이 아니었고, 사전(史前)의 문명 그것 역시 훼멸됐다. 때때로 지구는 철저히 훼멸되거나 혹은 새롭게 바뀌어 완전히 새로운 지구로 만들어졌다. 인류는 겁난(劫難)을 말하지 않는가? 사실 종교에서 하는 말이다. 매번 어느 시기에 이르면 한 차례 큰 겁난이 일어나고, 매번 어느 시기에 이르면 한 차례 작은 겁난이 일어난다. 작은 겁난에서는 어느 일정 지역의 인류가 훼멸되는데, 어느 일정 지역이 몹시 나쁘게 변하면 바로 그것을 없애버린다. 지진이 일어나거나, 대륙판이 가라앉거나, 모래폭풍으로 덮어버리거나, 혹은 무슨 전염병이 돌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인데, 작은 겁난은 국지적이다. 큰 겁난, 그것은 거의 전 인류적인 겁난이다. 이런 큰 겁난은 오래고 먼 연대를 거쳐서야 비로소 한 차례 일어난다. 이 지구의 운행과 물질의 운동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도 법칙이 있다. 운행과정 중에 일어나는 큰 겁난은 인류가 완전히 훼멸 상태에 처함을 말한다. 하지만 소수 사람이 살아남아 일부 사전문화를 계승하여, 마치 석기(石器)시대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노동도구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다음 한 세대에는 더욱 나빠지며 많은 것들이 모두 실전된다. 다시 원시상태에서 번성해나가 문명과 과학기술이 나타난다. 인류의 부패에 따라 또 겁난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성(成)·주(住)·괴(壞)의 주기적 변화가 시기를 달리하여 일어난다.”[2]

앞의 이 단락을 다 보고 나는 놀라 소리쳤다. “이건 누가 쓴 겁니까? 모든 글자가 다 진실이며,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진실한 글을 본 적이 없어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살아 있고 진실합니다.” 내 맞은편에 있던 이웃이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리훙쯔(李洪志)입니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책상을 넘어뜨릴 뻔했다. “그럴 리 없어요. 3년 전에 제가 그분의 강의를 들으러 갔었는데 내가 본 이 글들과는 전혀 느낌이 달랐어요.”

이웃은 듣자마자 나를 째려보면서 씩씩거렸다. “당신 3년 전에 강의를 들었다고요? 왜 저한테 말 안 했어요?! 당신은 정말이지, 당신에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이웃은 화가 나서 나를 꾸짖느라 내가 의자에 주저앉아 입을 딱 벌리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자비로운 사존께서는 내가 법을 얻을 수 있도록, 날 구하기 위해 3년간 내 몸에 있는 거대한 업력을 제거해 주시고, 또 내가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사부님의 성함을 보지 못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 오후, 나는 거듭된 요청 끝에 그 복사본을 꼭 껴안고 아직 인테리어를 하고 있던, 아무도 없는 직장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굶주린 듯 목마른 듯 조용히, 한 글자 한 글자 ‘전법륜 2[轉法輪(卷2)]’를 다 읽었다. 기억에 남은 건, 그때 다 보고 나서 갑자기 너무 졸려서, 점심때 직장 점심 휴식 시간에 쓰던 침대 의자를 끌어내 잤다는 것이다. 깨어났을 때 매우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머리가 마치 지우개에 한 번 지워졌거나 아니면 깨끗한 물에 씻겨서 특별히 깨끗해진 것 같았다. 지난 3년간의 원한이 하나둘씩 사라져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담담한 마음만 남았다. 그 느낌은 매우 신기했는데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가 없었다.

업력을 없앤 후 마침내 진정으로 대법을 얻다

20여 년이 지났다.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고생하는 것은 정말 나쁜 일이 아니라고, 고생하는 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만약 사존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내 사상 업력이 그렇게 큰 줄 몰랐을 것이고, 얼마나 큰 업을 지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고생하고 업력을 소멸해야만 대법을 얻을 수 있다.

앞의 말을 이어서 하면, 이웃집에서 ‘전법륜 2’를 다 보고 나니 ‘전법륜’이 보고 싶었다. 전전해 친구에게 의뢰해 우한(武漢)에서 우편으로 두 권을 받아 한 권은 이웃에게 주었다. 책을 받은 그 날, 근무 중에 책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15분 간격으로 서랍을 열고 만져 보면서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왜 아직도 퇴근 시간이 안 됐을까?’

그날 저녁을 먹고 방문을 닫고 8시부터 단숨에 책을 다 읽자 날도 밝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지식인 가정에서 여러 가지 책을 보면서 자랐지만, ‘전법륜’은 한 글자 한 글자씩 다 읽었는데 그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출근해야 했기에 당황한 마음을 내려놓고 ‘전법륜’을 큰 종이봉투에 넣어 안고서 출근했다. 그리고 서랍에 넣어 놓고 수시로 서랍을 열어 보았다. 퇴근 후에는 얼른 밥을 먹고 방문을 닫은 뒤 두 번째로 봤다. 또 한 글자 한 글자를 다 보았는데, 날이 훤히 밝았지만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때는 3일 연속 매우 답답했다. 하지만 단념하지 않고 이어서 다시 보고 또 봤다. 네 번째, 새벽녘에야 마침내 ‘진선인(眞·善·忍)’세 글자를 알아차렸다. 기억 속에, 그 며칠은 별로 잠을 자지 못했다. 5일째 되는 날, 다시 한번 보고 나니 조금 더 깨닫게 됐다. ‘원래,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준 책이구나.’ 엿새째 되는 한밤중이 되자, 나는 또 한 가지를 알아차렸다. ‘원래 이것은 사람들에게 수련을 가르치는 보서(寶書)구나!’

그날이 또렷이 기억난다. 나는 책을 덮었다가 다시 작가 사진이 있는 페이지를 펼치고 사존의 사진을 보았다. 갑자기 사존의 사진이 움직이더니 매우 빠른 속도로 돌아가며,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사존의 복장이 덩달아 변하고, 시대를 달리하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중국인, 때로는 서양인의 모습이었다. 사존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나를 보고 계셨는데 매우 친절하고 익숙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후, 이분이 바로 생생세세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존임을 알아보고 ‘왕’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놀라고 설렜다. 잠긴 기억이 조금 열리면서 자신이 생생세세에 한 고생을 보았고 자신이 세상에 온 진정한 원인을 알게 됐다. 그날 저녁 펑펑 울었다. 얼마나 위험했는가? 만약 사존께서 나를 구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면 나는 사상업력에 해를 입을 뻔했다. 나는 울면서 결심했다. ‘진수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그 주말에, 나는 우리 구역에 있는 연공장 보도원을 찾아 모든 대법서적을 얻었다. 이렇게 1994년 사상업력으로 대법 수련의 기연을 놓쳤다가, 1997년에 업력을 없애고 진정으로 법을 얻어 수련했다. 시간을 따져보니 하루도 틀리지 않고 꼭 3년이었다.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이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사존의 가족

대법을 수련한 후 길에서 나를 본 지인들은 모두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처녀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더는 이전의 침울하고, 안하무인이며,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매일 ‘전법륜’을 깨끗한 종이봉투에 넣어 품에 안고 출근하고 다시 안고 퇴근했다. 한시도 대법과 떨어지기 싫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인도에서 때때로 강렬한 행복감에 저절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금생에서 마침내 사존을 찾게 되어 다행이고, 마침내 대법을 수련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사존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렸다.

법을 얻은 후, 두 가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사존께서는 내 가슴 위치의 검은 그림자 세 개를 직접 제거해 버리셨다. 사존께서 의념(意念)으로 날 위해 많은 업력을 없애주셨다고 알려주셨다. 사존께서는 또 나를 연꽃 호수에 데리고 가서 설법해 주셨는데, 사존의 눈은 별처럼 환했다. 사존께서 나에게 세상에 일어난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내가 과거에 쌓은 것이기 때문에, 내 수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에게 법을 잘 배우고 수련을 잘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를 다시 내 몸 안으로 데려다주셨다. 당시 꿈속에서 자신이 단전 부위에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으며 사존께서 뒤에서 나를 호위하심을 분명히 알았다. 깨어난 후 선퉁쟈츠파(神通加持法) 연공음악을 똑똑히 들었다. 나는 즉시 사존의 법상 앞에서 무릎 꿇고 절을 올려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렸다!

이로부터 파룬따파를 얻기란 쉽지 않고 불법(佛法) 수련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관념을 갖고 있으면 진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관념은 사람들이 법을 얻는 것을 막는 장애와 업력이며, 확실히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수련하는 길에서 늘 자신을 깨우쳐주고 관념에 이끌리지 않는 방법은 바로 안으로 찾는 것이다.

내가 수련한 후 천목은 한정된 경지에서, 사존께서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 중생과 연을 맺는 것을 보았는데, 모든 사람은 사존의 가족이었다. 스승의 제자인 만큼 세상의 중생을 소중히 여기고 주변의 모든 수련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또 이 글을 본 사람들이 대법이 세상에 널리 전해지는 구원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길 진심으로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존의 ‘홍음-緣歸聖果(연귀성과)’를 공손히 인용해 나의 심득 교류를 마치고자 한다.

연귀성과(緣歸聖果)

사부님 찾은 지 몇몇 해인가
하루아침 친히 뵈옵게 되었구나
법 얻어 되돌아 수련하나니
원만하여 사부님 따라 돌아가리라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휴스턴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2’

 

원문발표: 2020518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18/404938.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0/5/23/1851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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