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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을 헤아릴 수 없기에 돈을 받지 않다

글/ 중국 대법제자 룽룽(容容)

[밍후이왕]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 나는 기자였으며 중국에서는 언론인[傳媒人]이라 부른다. 파룬따파 수련 이후에도 나는 기자이기에 명칭은 같지만 역할의 성격은 크게 다를 수 있다. 나는 그 차이를 말해보겠다.

중국의 미디어는 당신이 실습생이든 편집장이든 전부 선전부 관할이며 임무는 한마디로 인민을 세뇌하고 ‘당(黨)의 지도’를 수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 알듯이 뉴스의 소중함은 ‘진실’에 있는데 중국 기자는 거짓을 마치 진실인 양 말한다. 실은 속이는 짓이다. 당시엔 내가 쓴 글, 내가 한 말, 내가 한 모든 것이 다 가치가 있었다. 그때 유행하는 옷을 입고 문을 나서면 차로 맞이하고 보내줬으며, 밤에는 언제나 연회가 있었고 지방에 내려가면 경찰차의 호송을 받은 적도 있었다.

감옥의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조사한 것 때문에 나는 불법적인 구류처분을 당했고 업무도 정지당했다. 공산사당(共産邪黨)의 천하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후 나는 다른 언론인으로 변했다. 박해당하는 사람들,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신앙인들을 취재했으며, 만나는 사람에게 파룬궁 진상을 말했다. 내게 원고료를 주는 사람도 없고 봉투를 주는 사람도 없었으나,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쓰며 자주 눈물을 흘렸고 취재에 응한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또 일부러 식사 자리를 수시로 마련해 내가 아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눈물 흘리며 말했다. 이때 나의 펜은 꿋꿋했고 값을 헤아릴 수 없었다. 결국엔 나도 파룬궁 수련자가 됐는데 속세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곳은 내가 본 유일한 정토(淨土)였기 때문이었다.

과거 나에게 익숙했던 작업은 분담 체계였다. 기자가 있고, 편집과 심사가 있고, 제작, 인쇄, 발행 또 사무실 등 일련의 지원체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혼자서 거의 모든 것을 겸직하고 있다. 소박한 차림으로 배낭을 메고 행인과 빌딩 사이를 다니며 CD와 소책자를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나는 버스를 타지 않은 지 벌써 오래됐다. 우리 집을 기점으로 종점까지 타고 가서는 다시 한 정거장 한 정거장씩 자료를 배포하며 되돌아온다.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고, 꾸짖으며 배척하는 사람, 멸시하는 사람, 위협하는 사람도 만나는가 하면 선의를 가진 사람과 감동하는 사람도 만난다. 언론인이 이렇게 하는 게 고생이 매우 많지만, 마음은 편안했는데 내가 입으로 말한 것, 손으로 건네는 것이 전부 진실한 일이고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도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위해서는 어떠한 것도 구하지 않았다. 동정이나 이해를 바라지 않았고 오직 독자(讀者)만을 위할 뿐이었다(우선 그들을 독자 혹은 시청자라고 부르겠다). 진상을 통해 양심을 일깨워주고, 거짓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데 선념(善念)으로 인해 역사의 최후 결정적 시각에 미래가 있게 됐다.

내가 누구라고 하는 명함도 필요하지 않다

과거에 기자는 맡은 분야가 있었다. 예를 들면 정부, 교육, 농업, 위생 등 서로 다른 분야를 대상으로 한 것이 있고, 춘경(春耕)과 양회(兩會)와 같이 다른 시기를 대상으로 한 것이 있으며, 또 특별 기고문, 특간, 지정 기고문 등등이 있었다. 아래로는 각 지역 기자가 있었고, 자신들의 명함을 갖고 있어 관계인을 만나면 나는 누구라고 하며 명함을 건넸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아는 사람은 그래도 괜찮은데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파룬궁이 박해당한 지 20년이나 돼 중국사람 대부분은 생각이 있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 자신을 밝히지 않고 소책자와 CD를 문 앞에 놓아두고 조용히 사라지며, 바쁜 큰길에서는 건네고 받으면 그뿐 마주하지 않고 스치고 지나간다.

중공(중국 공산당)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크게 유행하게 돼 막 도시를 봉쇄할 무렵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한 남자에게 진상 USB를 주었다. 설명하려고 하자 그가 손을 들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우린 눈이 마주치자 나는 즉시 몸을 돌려 떠났다.

한번은 오토바이 수리하는 사람 4명을 겨우 보고 쫓아가서 그들에게 USB를 주고는 사용법과 내용에 대해 말했다. 세 사람은 고맙다고 했지만 그중 한 사람은 쌀쌀한 얼굴로 “그것이지.”하고 말했다. 다른 한 사람이 즉시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말할 필요 없잖아! 보기만 하면 되지!”라고 했다. 특수한 환경과 선의(善意) 모두 특별하다.

한번은 배달하는 젊은이 몇 사람과 방금 헤어졌다. 뒤에서 그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파룬궁이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쓰는데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오직 파룬궁만이 아무 조건 없이 선물을 준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말로 소개할 필요가 없고 명함도 필요 없으며, 많은 사람이 대법제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어떤 때는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두 군데 길을 가봤어도 사람이 없었고 멀리 육교 맞은편 옥외 체육시설이 있는 곳에 5∼6명이 보였다. 어떤 사람인지 몰랐지만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았기에 어쨌든 가서 보려고 했다. 곧장 가보니 몇 명의 노인이 신체를 단련하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순찰하는 사람에게 발각돼 쫓겨날 일은 없었기에 좋았다.

나는 먼저 변두리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며 “안녕하세요. USB 하나 드릴게요.”라고 했다. 그는 말하지 않고 머리를 저었다. 사기꾼이 많기 때문이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왜 주는 거요? 그건 비쌀 텐데. 못 믿겠어요.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때 한 사람이 갑자기 내게 “당신 파룬궁이지요?”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분이 나에게 “당신은 탈당했습니까?”하고 묻고는 자신은 노(老) 당원이며 벌써 탈당했다고 했다.

분위기가 단번에 좋아졌고 어르신이 말하기를 “봐요. 보세요. 파룬궁은 사람을 속이지도 해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대부분 같은 생각이지요.”라고 했다. 모두 마음을 놓았고 기뻐하며 하나하나씩 받았는데 그중 한 분이 “두 사람이 걷기를 나갔으니 당신께서 내게 두 개를 더 주실 수 있습니까?”하고 말했다. 내가 작별 인사하자 그 어르신이 큰 목소리로 “당신께서 언제 또 올 수 있는지 우리 이야기해 봅시다.”하고 말했다.

한번은 격리벽 밖에서 두 젊은이가 크고 작은 꾸러미를 차에서 꺼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USB를 주며 이 큰 잭은 TV, PC, 소형 라디오, 노래 기계[唱戱機], 차량 탑재기기 등 USB 단자라면 모두 쓸 수 있으며 소형 잭은 휴대전화에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해 줬다. 젊은이는 매우 기뻐하며 “정말 선진적이네요.”하고는 갑자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다.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했다.

도시를 봉쇄하기 얼마 전 남편의 대학 룸메이트가 외지를 우회하여 3명의 공직 상사, 동료와 함께 방문했다. 졸업 후 처음 만났는데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식탁에서 내가 말할 차례가 됐을 때 나는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인류에게는 장차 겁난(劫難)이 있을 것이며 뉴스를 보려면 중국 매체를 봐서는 안 되고 반드시 방화벽 넘어 진짜 뉴스를 봐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중국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한 권의 책을 엘리트들은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그 책은 ‘전법륜(轉法輪)’이라고 말했다.

내 옆에 앉은 숙녀가 갑자기 “당신은 우리에게 편지 보내주는 분 아닙니까?”하고 말했다.

“여러분 모두 까치가 희소식을 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저는 누구일까요? 대법제자와 저는 인간 세상에서 어쩌면 당신의 친구이거나 동창, 이웃, 당신의 직장 동료, 업주, 고객일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지나간 승객이거나 지나간 길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실한 신분은 신(神)의 사자(使者)이며 말겁 최후시기에, 대 도태가 있기 전에 그분의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비결, 난을 피하는 좋은 방법을 당신께 보내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좋은 소식을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값을 헤아릴 수 없기에 돈을 받지 않는다

도시가 막 봉쇄되자 채솟값이 폭등했다. 나는 시금치 한 근을 12위안(약 2080원) 주고 샀는데, 소매점 주인의 말을 들으니 빼앗아 온 것이지 물건이 없다고 했다. 종종 나는 USB를 선물하는데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얼마지요?”라고 한다. 돈을 받지 않는다고 답하면 또 묻기를 왜 돈을 받지 않느냐고 한다. 가끔 농담으로 답하는데 “보세요, 대지(大地)가 우리를 지탱해 주지만 돈을 받지 않지요. 태양이 우리를 밝게 비춰주지만 역시 돈을 받지 않습니다. 정말로 진귀한 것은 모두 돈을 받지 않지요. 자잘한 호신부든 소책자, USB든 모두 신의 자비가 응집돼 있으며 뿐만 아니라 위난(危難)이 올 때 한 사람, 한 가정에 정말로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기에 널리 전파하려고 돈을 받지 않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라 정말 값을 헤아릴 수 없기에 지금까지 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나의 동창 한 사람은 중공의 선전을 믿고 파룬궁 자료를 배포하는 사람 모두 고용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수련한 이후 단 한 푼도 주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자원한 것이라고 말해줬다. 이전에 내 생활권 내에서 나 역시 맛과 품질을 중시하는 축에 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1백, 2백 위안짜리 옷도 입을 수 있다. 한번은 몇천 위안짜리 바지를 3백 위안 할인하기에 하나 산 적은 있다. 그러나 더욱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 수 있게 하려고 몇만 위안을 내놓았고 지금까지 어떤 주저함도 없었다.

나 이 언론인은 중공 매체의 거짓 조작에서부터 대법 진상을 알리고 ‘전법륜’을 학습하며 앉아서 연공도 하게 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세의 자신과 그 ‘진선인(眞·善·忍)’으로 구성된 진아(眞我)가 점차 성숙으로 나아가고 있다.

 

원문발표: 202054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5/4/4047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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