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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우한 폐렴 기간에 한 도시 병원 의사가 진상을 알려 사람들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중국의 어느 한 도시 병원의 의사고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얻은 노 제자다.

2020년 설에 우한 폐렴(중공 바이러스) 전염병이 갑자기 우한에서부터 폭발했고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우리 병원은 현지의 지정병원이기에 몇몇 입원 병동은 빠르게 입원환자로 꽉 찼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부족했고 전 직원이 긴급 투입되어 전염병과 싸웠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전염병은 중공(중국공산당) 사당의 독해를 받은 사람들을 도태시키러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정으로 신불을 믿는 선량한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50세가 거의 다 되었고 아이는 대학교에 다닌다. 아들의 비행기가 우한을 거쳐 왔지만 14일 잠복기가 지나서도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노인들도 신체에 문제가 없었기에 나는 별다른 부담이 없었다. 정말로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혜택을 본다.”[1]이다. 그러나 우리 과의 의사들은 아직 젊고 아이들도 어리다. 나는 그들을 위험한 곳으로 보내기 싫었기에 나는 제일 먼저 전염병동에 가겠다고 신청했다.

1월 6일 퇴근했는데 호출전화를 받고 의심 환자 병동에서 일했다. 그러나 닥친 상황은 열악했다. 방호 물품이 부족했고 환자는 급증했고 관리는 엉망이었다. 바람도 통하지 않는 방호복을 입고 꼬박 밤을 새워 일했다. 증상을 묻고 기록하고 샘플을 채취했는데 손은 땀에 젖어 허옇게 되었다. 얼굴, 귀, 콧등, 아래턱은 조여서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산소까지 부족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보호자 출입이 금지되어 혼자 있는 가련한 환자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질병을 걱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장래가 걱정되었다. 나는 만나는 모든 환자에게 파룬따파의 진상과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天理)를 알리고 중공 사당을 멀리해야만 겁난을 이겨내고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상을 알리기 위해 나는 상대적으로 쉽고 안전한 곳에서 증상을 기록하는 대신 일부러 감염구역에서 환자들과 직접 접촉했다. 증상을 묻고 샘플을 채취하고 식사를 배달하는 기회에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대법이 보호하기에 환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종래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노인 환자들을 부축해 화장실에 가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이동식 좌변기를 침대 옆에 놔주고 침대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거들어주었다. 진실한 선량함으로 환자들의 믿음을 얻었고 진상을 알리고 세인들을 구하는데 기초를 다져놓았다.

격리병동은 보호자 출입을 금지했다. 독방을 쓰기에 보편적으로 환자들의 정서는 가라앉고 두려워한다. 나는 대법의 법리로 인도해주고 그들을 위로해주었다. 중공이 무신론을 선전해 사람들의 도덕이 나빠진 것이 전염병이 발생한 근본 원인이라고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가짜 식품, 독이 든 분유, 독이 든 캡슐 등을 만들었고 지나치게 GDP만 추구하기에 환경이 오염되었다. 특히 파룬궁을 박해하고 ‘진선인(眞·善·忍)’을 탄압하고 가짜, 악, 투쟁을 조장했다고 알렸다.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리고 현재 자연재해와 사람으로 인한 피해가 빈번한데 오로지 마음을 수련하고 선을 향하고 중공의 일체 조직에서 탈퇴해야만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받아들이는데 어떤 환자들은 몇 번 말해야 받아들였다. 나는 격리병동에서 몸이 아무리 괴로워도, 방호복을 입고 벗는 것이 아무리 귀찮아도 될수록 병실에 자주 들어가서 진상을 충분하게 알리고 그들에게 톈안먼 분신자살, 자살 등이 가짜 뉴스라는 것을 알렸다. 아홉 글자 진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늘 외우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왜 삼퇴를 하면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또한, 발정념 해 중생이 구도 되는 것을 방해하는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

만날 수 있는 동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진상을 알렸다. 일을 최대한 많이 하고 소통과 협조가 필요한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며 자료를 적을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해 상사와 동료들의 신임을 얻고 찬사를 받았다.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삼퇴했다. 우한과 전국에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면서 의료진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관련 부문은 사망자 수를 자신이 위에다 보고하고 싶은 인원수, 입원해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인원수만큼 보고했다. 실제로는 그 수를 훨씬 초과했다.

나는 늘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진상을 많이 알려 많은 사람을 구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사람마다 소중하고 그들도 모두 한 지역을 대표하는 중생이며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렇게 중공 사당을 따라간다면 정말로 너무나 가련했다.

후에 나는 또 중환자실로 옮겨갔는데 거기는 더 힘들었다. 근무시간에는 계속 안에 있어야 했고 보안이 더 엄격했다. 나는 비록 병균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처럼 보안을 잘해야 하고 곳곳에서 규칙대로 움직였으며 업무량도 많았다. 외부에서 지원 나온 전문의들의 기록을 도와주었고 간호사를 도와 환자들을 돌아 눕혔으며 노인 환자들이 화장실에 가는 것도 도와주었다. 가는 곳마다 잘하는 것으로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한 할머니는 마침 내가 의심 환자실에서 근무할 때 진료받은 분이었다. 그 당시 그 할머니가 침대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부축해주었기에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만났을 때 몹시 기뻐하면서 “우리는 정말로 인연이 있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갈 때마다 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늘 아홉 글자 진언을 외우라고 알려주었다. 후에 그녀는 빨리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언니는 내가 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났고 형부는 호흡기관이 이미 마비된 상태였으며 한 달 동안 적극적으로 치료했으나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뜬 그날 나는 당직이었고 두 시간 동안 심장 응급조치를 했지만 살리지 못했다. 나는 간호사 둘과 함께 시체를 수습하고 시체전용 팩에 안치시켰다. 지니고 있던 옷가지들까지 함께 넣어 보내드렸다. 그들 가족은 모두 입원했거나 격리되었기에 올 때도 혼자였는데 돌아가실 때도 혼자인 것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다. 사람의 생명은 모두 소중한데 그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유감스러웠다. 그것은 나태한 마음, 두려운 마음과 체면 때문에 사람들이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해서는 안 된다고 나를 자극했다.

한 환자는 나의 손아래 처남의 동창이었는데 이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아주 적극적으로 질병 예방통제부문의 직원과 협조하면서 지난 3주 동안의 행적을 상세하게 되짚어 보았다. 그 당시 질병 예방본부 직원은 자료를 적으면서 개인 정보를 누설하지 않겠다고 서명까지 했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오히려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그의 개인 정보를 누설했다. 그 때문에 그는 사회여론의 압력이 컸다. 인터넷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들 가족은 정신적 압력이 아주 컸고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게 되고 직장에 가서도 영향받을까 봐 두려워했다. 손아래 처남은 그들을 보살펴 주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 병원에 입원했기에 전화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부러 퇴근 시간에 그들이 입원한 병실에 가서 방호복을 입고 그를 만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정보가 누설되었기에 치료를 거부하면서 시장과 교섭하겠다고 요구하고 있었다. 당직 의사는 뜻하지 못한 일이 생길까 봐 내가 안에 오래 머물면서 그들을 위로해주기를 바랐다. 그것은 내가 그들과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나눌 수 있기에 내가 바라던 바였다.

나는 당시의 형세와 결합해 중공이 정치 업적으로 인민들을 기만한 것과 이용 가치가 없으면 버리는 수법을 예를 들면서 진상을 알렸다. 그들에게 아홉 글자 진언을 외우라는 것을 알리고 삼퇴시켰다. 그들은 나의 진심 어린 관심에 감격했고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체험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 피하면서 다가오지 못하는데 당신은 이렇게 공을 들이면서 나를 보러 왔네요.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고 말했다. 후에 그들은 나를 진정으로 믿을 만한 사람으로 여겼고 늘 나에게 전화를 했고 위챗으로 증상에 대해 문의했으며 치료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어떤 치료방안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야 할지 말지 등에 대해서도 문의했다.

우리 병원은 다른 병원에서 온 전문의와 본원 의사들의 교대 근무가 빈번해서 만날 수 있는 동료들이 더 많았다. 퇴근하면 모두 병원 통근차를 타고 쉼터로 이동했는데 쉼터에서 걸어 다니면서 말할 수 있고 방도 넉넉하고 1인실도 많아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진상 알리기에 편리했다. 나는 매일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모두 잘했기에 체력과 정력이 넘쳐 일도 잘 할 수 있었고 모든 조건을 이용해 동료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리고 중공 박해의 사악함, 가짜신문의 약점을 찾아내 보여주고 삼퇴하고 평안을 보장받는 의미에 대해 알려주었다. 평소에는 정말로 그들과 만날 그런 기회가 없었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호텔에 가서 격리된 다음 다시 돌아와 일했다. 격리 기간 나는 생각나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진상을 알렸다. 우리 과의 당 지부 서기는 평소에 아주 적극적으로 공산당의 일을 했기에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진상을 알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그녀가 그룹 채팅에 현지 정부 관원들은 위에서 문책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도시 지정병원인 우리 병원에서 우한 폐렴(신종코로나)으로 진료받은 환자 수, 확진자 수, 사망자 수를 허위로 보고한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하는 글을 몇 번이나 올렸다. 나는 그 기회에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낸 것부터 내가 연공하고 이익을 보고 몸이 건강해진 것을 알렸고 톈안먼 분신자살에 대해 알렸으며 마지막에 평안하게 겁난을 넘기기 위해서 삼퇴하고 평안을 보장받으라고 했다.

중공이 사악을 주입해도 선량한 생명의 본성을 가리지 못한다. 오직 당신이 진심으로 그(그녀)를 구하기만 하면 중생들은 모두 그 진정한 선을 체험하고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나는 어느 날 내가 아는 친척이나 친구가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할까 봐 두렵다. 죽었다면 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이고 만회할 수 없는 크나큰 유감이 될 것이다.

50여 일 동안의 일을 마치고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현재 중국 사당은 입당 절차를 간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한 폐렴과 일선에서 싸우는 많은 젊은 의료진 중 대부분은 비정규직으로서 월급이 2천(한화 40만 원 정도)여 위안이 좀 넘는데 가련할 정도로 낮다. 사당은 그들의 월급을 올려줄 생각은 하지 않고 비상시국을 틈타 입당 신청서를 논하면서 그들을 속이고 있는데 이것은 그림의 떡으로 요기를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염병 기간에 의료 보조금을 타기 위해 근무 일정표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제출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증거물로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여 작성해서 보냈다. 그러나 보조금은 아직도 받지 못했다.

애초 외부의 일꾼들과 의료진들에 대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일부 전염병동의 의사는 분개하면서 그룹 채팅에 그 당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것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고 사진을 찍고 쇼를 하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라며 보조금을 받지 않겠다고 올렸다. 이것은 우리 병원 의료진들에 대한 모욕이고 보조금을 받지 않겠으니 사진이 없다는 공문을 발행하라고 하면서 포기했다. 사당은 정말로 이용 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린다. 중공 사당은 전염병을 속여 전 세계를 해쳤음에도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뻔뻔하게 전염병 퇴치 모범이고 구세주라고 선전한다.

세인들이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세인들은 중공의 자화자찬하는 선전에 속지 말아야 하고 증오심을 불러일으켜 시선을 딴 데로 돌리려는 술수에 속아 자신들의 눈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중공이 붉은 마귀임을 똑똑히 보아내고 멀리해야만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 법회설법’

 

원문발표: 2020517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17/4050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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