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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확고히 믿고 시련을 건너다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어릴 적부터 깊은 큰 산속에서 자랐습니다. 마을에는 열 몇 가구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철이 들 무렵부터 이 세상에 산다는 게 너무 재미없었지만, 자신이 마치 무엇인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법을 얻은 뒤에야 저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하며 왜 이 세상에 왔는지 알게 됐습니다. 아주 기대하며 고생스러운 기다림 끝에 사존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98년 3월, 고모의 소개로 저는 대법 수련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저는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될 수 있어서 더없이 영광스럽습니다.

1. 기쁘게 대법을 얻다

1998년 3월 어느 날, 저는 고모 집에 갔습니다. 고모는 제게 파룬궁(法輪功)을 소개해주면서 보서(寶書)인 ‘전법륜’ 한 권을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반본귀진(返本歸眞)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저는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10시간 넘게 일했고 점심 휴식 시간을 이용해 법공부를 하고 연공했습니다. 처음 법공부를 하러 갔을 때, 방에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이 그곳에 앉아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 시청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네모난 노란색 손수건 하나가 매 사람의 몸 위에서 텔레비전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이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저는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두 와서 불법(佛法)을 공부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존의 설법을 다 보기 전에 출근 시간이 되어 저는 아쉬워하며 사존께 작별 인사를 드렸습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저는 출근하러 가야 합니다.’ 제가 마당까지 걸어갔을 때, 부지불식간에 두 다리가 가볍게 바닥에 꿇어앉는 것이 느껴져 마음속으로 ‘어떻게 된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저는 그것은 주원신(主元神)이 존경하는 사존께 무릎 꿇어 절을 올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해 5월 11일은 어머니의 날이었던 것으로 분명 기억하고 있습니다. 점심에 퇴근하면서 저는 곧바로 연공장으로 갔습니다. 매일 오후 2시가 넘어서야 퇴근했습니다. 그날 점심에는 1시가 좀 넘어서 손님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조금 일찍 법공부를 하러 가도록 도와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방에 들어가서 사부님 법상 앞에 앉았습니다. 사부님 법상은 4살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또 8살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양미간 사이에는 붉은 점 하나가 있었으며 기품이 넘쳐 보였습니다. 이어서 또 ‘솨’하고 다른 모습으로 변하더니 지금 법상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현상을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떤 과학자가 해석할 수 있을까요? 오직 부처님만이 진정한 과학자입니다. 저는 사부님과 대법과 갈라놓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 사부님께서 천목을 열어주시다

평소 저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법공부를 하고 연공했습니다. 음식점에 매일 오후 4시에 출근해 손님이 오기 전에 저는 ‘전법륜’을 공부했습니다. 불빛이 매우 어두워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제가 어느 줄을 봐야 하면 글씨가 곧 매우 검고 크게 확대됐습니다. 어떤 때는 그 페이지의 법이 가지각색으로 나타났고 때때로 글자가 여러 빛깔의 파룬으로 변했으며 가끔은 사존의 두상(頭像)으로 변했습니다. 사존께서 ‘전법륜’에서 “나의 책은 글자마다 모두 나의 형상과 法輪(파룬)이며”[1]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았습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천서(天書)라고 이야기했는데 알고 보니 ‘전법륜’이 바로 천서였습니다!

한동안 수련하자 저는 서쪽의 큰 산이 금빛 투명한 큰 산으로 변하고 처마와 나무가 찬란한 빛을 내뿜었으며 벽에 붙어 있는 그림 속 인물, 꽃과 새는 모두 진짜처럼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연공할 때, 벽에 걸린 시계의 12개 숫자가 파룬으로 조합을 이뤘고 또 한 번은 커다란 한 쌍의 ‘희(喜)’자로 조합을 이룬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사존께서 저에게 연공의 자신감을 더해주고 격려해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 사존의 법신은 어디에나 있다

어느 날, 저는 삼륜차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늦을까 봐 조바심이 나서 저는 매우 빠르게 탔고 조심하지 않아 한 70대 노인을 부딪쳐 넘어뜨리면서 노인이 자전거 밑에 깔렸습니다. 저는 놀라서 멍해졌습니다. 사람이 다쳐서 침대에 누워 일어날 수 없게 되면 저는 어떤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저와 함께 출근하던 사람이 다가와 저를 도와 차를 일으켜 세우고 노인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습니다. 노인을 살펴보니 별 탈 없이 무사히 그곳에 서 있었고 다친 곳이 없었습니다. 법신의 보호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기적이 나타날 수 있을까요! 한 70대 노인이 차에 부딪혀 넘어졌지만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자를 보호해주신 사존께 비할 바 없이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역사상 진 한 가지 빚을 갚았습니다.

또 어느 날 아침 저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길 양쪽에는 노점상들이 있어서 저는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조심하지 않아 경찰차에 부딪혀 넘어졌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 경찰관이 내 앞에서 서서 “당신은 죽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살펴보니 자전거는 망가진 곳이 없었습니다. 덜렁대고 변변치 못한 이 제자가 또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온갖 걱정을 다 했으며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거의 나의 일체를 소모하였다.”[2] 이 두 마디의 법을 들었을 때 저는 실성하고 통곡했습니다. 제 생명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대법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을 걷습니다.

4. 먹구름이 뒤덮인 날

1999년 초, 큰 재난이 다가올 무렵 저는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꼈고 대법을 생각하고 사부님을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저는 마치 사부님께 깊은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잡초밭에 서 계시는 모습을 본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분명 대 재난이 오게 됐는데 몇 명의 제자가 지나올 수 있는지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1999년 7.20부터 사악한 공산당은 파룬궁에 대해 광적인 탄압을 시작했고 대법제자는 베이징에 올라가 법을 실증했습니다. 7월 22일, 저는 음식점에 휴가를 내고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에 갔습니다. 막 도착해서 경찰관에 의해 한 공터로 끌려갔고 스피커로 끊임없이 대법을 모함하는 말을 방송한 다음 우리를 각각 다른 방에 수감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을 왜곡하는 비디오를 틀었습니다. 밤에는 호적 소재지 경찰관들이 우리를 데려갔습니다. 이튿날, 저는 음식점에 출근했고 사장은 여기에서 나를 쓰지 않겠다며 출근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직장을 잃었고 집에는 아이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잇달아 찾아온 것은 같은 해 11월 11일, 제가 세를 맡은 집 소재지에서 스피커로 끊임없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집을 세주지 말라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집주인도 연루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대의 치안요원이 우리 가게에 와서 손님을 내쫓았고 나에게 3일 안에 이사 가라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물건을 거리에 내다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우리 친정, 숙부가 사는 방 세 칸짜리 집에 같이 머물렀습니다. 숙부와 숙모는 매일 저를 보면서 제 수련이 그들에게 번거로움을 줄까 봐 두려워 우리 오빠에게 내가 여전히 수련하는지 물었고 오빠도 이 일로 나와 크게 다투었습니다.

그해 겨울에는 눈이 3일에 한 번 크게 내리고 이틀에 한번 작게 내렸습니다. 제 남편은 간염에 걸렸지만 매일 자전거를 타고 왕복 50~60리 길을 달려 출근까지 했습니다. 두 아이는 외지에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불편해 그의 선생님 집에 머물렀습니다. 딸은 주말이면 돌아왔고 저는 삼륜차를 타고 몇 리 밖에 가서 딸을 마중해 데려왔습니다. 겨울밤은 길에 눈이 매우 미끄러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저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아무리 고생스럽고 어렵더라도 저는 확고하게 걸어 나가려 했습니다. 제가 건너는 매 한 가지 시련은 모두 저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더욱더 가깝게 했습니다.

2000년 정월, 우리는 또 현 소재지로 이사를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리에게 감히 집을 세주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한 친구 어머니는 좋은 마음으로 우리를 받아줬습니다. 매월 1백 위안(약 1만 7000원)의 월세만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세를 줄 때는 2백 위안(약 3만 4000원)을 받았습니다. 선악에 보응이 따르는 것은 천리입니다.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습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그녀의 아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 한 인터넷 회사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사악한 공산당이 광적으로 탄압해 가족에게 매우 큰 압력을 줬습니다. 아들은 2년간 저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제가 수련하면 때리고 욕도 했습니다. 수련에 사용하는 녹음테이프를 발로 밟아 산산조각을 냈고 고무 튜브로 절 때렸으며 나무 막대기로도 때렸습니다. 저는 온몸이 퍼렇게 붉게 멍들었고 나무 막대기는 몇 군데나 부러졌습니다. 한 번은 저는 한밤중에 연공을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벨트를 풀어 절 때리면서 제 친정에 전화를 걸어 “이 여자가 또 파룬궁을 수련해. 난 지금 그녀를 때리고 있어. 당신들은 아무도 상관할 수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벨트로 제 몸을 후려치고 있었지만 저는 아픈 느낌이 없었습니다. 길을 걸을 때는 오히려 홀가분했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다른 어떤 일을 해도 그는 당신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본래는 좋은 일이지만, 그는 오히려 당신과 늘 맞선다. 사실 바로 당신을 도와 소업(消業)해 주고 있지만 그 자신은 모른다.”[1]

5. 남편이 구원받다

남편이 대법에 대해 죄를 범했기에 2004년 폐암에 걸렸습니다. 병원에 가도 치료하지 못했고 또 많은 빚을 졌습니다. 더 갈 곳이 없게 되자 집에서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대소변을 스스로 가누지 못했으며 들이마신 숨을 내뱉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당신은 대법에 죄를 범했어요. 당신은 얼른 사부님께 잘못을 빌어요. 오직 대법 사부님만이 당신의 목숨을 구해주실 수 있어요”라고 알려줬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나는 일찌감치 마음속으로 (대법을) 인정했어.” 저는 말했습니다. “마음속으로만 인정하는 것 갖고는 안 돼요.” 저는 사부님의 법상을 차려 놓고 남편에게 사부님께 향을 올리게 했습니다. 남편은 침대 위에서 바닥으로 기어 내려와 사부님 법상 앞에서 향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께 절을 하여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런 후, 저는 남편과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남편의 병이 위중해 동작을 완벽히 해내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남편의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시고 남편을 관여해주셨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은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세 사람이 남편 몸 안에 있던 커다란 돌멩이를 옮겨갔습니다. 남편의 병은 매우 빠르게 호전됐고 연공할 때 문 위의 벽에 작은 부처님들이 한 줄로 앉아 계신 모습도 봤습니다. 자비로우신 사존께서 남편을 구해 돌아오게 해주신 것입니다.

남편은 막 수련한 지 2개월 만에 병세가 기본적으로 완쾌되어 안색은 병에 걸리기 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남편의 병이 심할 때 우리 고향 사람들은 우리 집에 왔다가 남편의 모습을 보고 제게 서둘러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2개월 뒤, 그들은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큰 거리를 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남편이 곧 세상을 떠날 암 환자였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친정 식구들은 이 일체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대법의 신비함이며 사존의 무량한 자비의 체현입니다.

2006년 봄, 사악한 공산당이 양회를 여는 기간, 국내안정보위국(국보)의 두 관계자가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책상 위에 ‘전법륜’ 책이 한 권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다짜고짜 몰수했습니다. 모든 대법 자료를 몰수해 가져갔고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발견한 것이라고 논쟁하면서 대법 자료를 그들 책임자에게 가져가 상을 받으려 했습니다.

당시 제 남편은 화가 난 나머지 “당신들에게 수색증이 없는데 함부로 가산을 몰수하는 것은 법에 위배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두 명의 경찰관을 불러와 수색증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날 오후, 남편은 피를 한가득 토했고 5월 11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국보 관계자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지만 합법적인 절차가 없을 때는 함부로 가산을 몰수할 수 없지만, 그들은 오히려 법을 집행하면서 법을 위반했습니다.

6. 박해를 당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잊지 않다

2007년 10월 17일 오후, 저는 마당에서 빨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10여 명의 경찰관이 뛰어 들어와 저를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집에는 연세가 많은 어머니만 남겨졌고 돌봐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로 인해 초조한 마음을 안고 사셨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는 대장이 몇 치나 빠져나왔으며 볼일을 본 후, 다시 손으로 눌러 들어가게 해야 했는데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갇혔고 불법 노동교양을 2년 당했습니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우리 세 명의 수련생은 매일 ‘홍음’을 외웠고 밤에는 연공을 했으며 또 인연 있는 사람에게 삼퇴를 시켰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저는 구치소 벽에 새겼습니다. 그날은 11월 19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구원받은 날이네요.”

2009년 5월, 노동교양 기간이 만료됐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아들과 함께 도시에 살았습니다. 경찰의 교란을 피하려고 아들은 공안 기관에 제가 외지에 있는 자신의 고모 집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2011년 저는 생활고에 쫓겨 우리는 또다시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2013년 초, 저는 한 가정에서 가정부 일을 맡았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저는 거리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사복 경찰관에게 납치돼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그날 밤 저는 눈을 붙이지 못했고 저를 담당하는 관계자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그들에게 진상 자료를 보여줬습니다. 한 경찰관이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자료를 보면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어요?” 구치소 대문을 들어설 때, 문을 지키던 사람이 저에게 이름을 등록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정당당하게 그에게 “대법제자입니다”라고 알려줬습니다. 제게 사진을 찍을 때 저는 그가 절 찍지 못하게 발정념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던 경찰관이 말했습니다. “설마 신통력을 부린 건가요?”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저는 침대 옆에 서서 연공했습니다. 곁에 있던 한 수감자가 저를 발로 차면서 연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상관하지 않고 계속 연마했습니다. 말하자면 이상하지만 매일 긴 밤 동안 잠이 오지 않았지만, 그날은 오히려 매우 잘 잤습니다. 제가 연공해도 그녀는 몰랐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후, 이 일은 뉴스거리가 되어 전해졌고 경찰관은 서둘러 저에게 수감실을 바꿔줬습니다.

한 달도 안 되어 저는 보석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 친척이 구치소에 있었고 저를 찾아와 이야기할 때 제 전화번호 기록부에 그의 장인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우리 두 사람의 집안 관계를 알게 됐습니다. 저를 보호하기 위해 저에게 보석 신청을 해준 것입니다. 명분으로 우리 아들은 5천 위안(약 86만 원)을 내려 했습니다. 아들은 돈을 얼마나 많이 내더라도 저를 보석해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결국 아들에게 돈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반드시 큰 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같은 해 6월, 저는 시장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다시 두 명의 사복을 입은 경찰에 의해 납치됐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힘껏 제 팔을 비틀었고 저를 길가에 세워진 경찰차로 끌고 갔습니다. 저는 가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고향의 여러분들은 사악한 공산당의 거짓말을 믿지 말아요. 대법은 사람을 구하러 온 거예요.” 수감 기간 저는 진상을 알리는 기회를 모두 놓치지 않았습니다. 진상을 아는 경찰관들은 내심에서 우러나 말했습니다. “당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범인)이야말로 사회의 인간쓰레기입니다.” 1개월 후, 또 저를 세뇌반으로 데려가 저를 시의 주요 인물로 삼고 시 관계자를 불러와 저를 ‘보살피게’ 했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매우 무더웠고 38도 이상의 고온으로 정전까지 됐습니다. 그들은 몇 마디 물어본 다음 황급히 떠났습니다.

2014년 2월 어느 날, 저는 나가서 진상을 알리면서 호신부를 나눠주다가 악인에 의해 고발을 당해 다시 납치됐습니다. 구치소에서 15개월을 지냈고 그 기간 7곳으로 보내져 3개월 머물렀습니다. 그다음 불법적으로 3년 형을 선고당했습니다. 저는 항소 자료를 작성하지 않았고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에게 3년 형을 선고하는 것은 고사하고 3일이라고 해도 억울해요. 왜냐하면 제 목적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가 있어요?” 자료는 제2 중급인민법원에 제출됐고 1개월 후 기각됐으며 원심이 유지됐습니다.

불법 수감 기간, 저는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매일 아침 단체로 감옥 규칙을 외울 때 저는 법을 외웠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연공하니 어떤 경찰관이 나에게 “다시 연마하면 남자 감방으로 데려갈 거야”라고 겁을 줬습니다. 저는 듣지 않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나중에 저는 7곳으로 옮겨져 3개월간 머물렀습니다. 저를 관리하던 팀장은 나이가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녀는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선량했고 저를 매우 배려해줬습니다.

5월 1일, 총 책임자가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 한 사람은 카메라를 메고 저를 찍으려 했습니다. 저는 녹화하지 못하게 하면서 세상 물정을 몰라 그 물건이 두렵다고 했으며 총책임자는 그에게 나가라고 했습니다. 저를 전향시키기 위해 강경책과 유화책을 함께 써가며 저에게 딸의 앞날을 위해서 수련하지 말라고 권유했습니다. 저는 그 수작을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사악한 공산당이 시작된 역사 등을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는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이 되자 텔레비전에서는 ‘천안문 분신자살’ 등 비디오가 방송됐고 소리를 매우 크게 틀어 저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사악한 공산당의 거짓말은 전 세계의 진상을 알지 못하는 중생을 망쳤습니다.

나중에 저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갇힌 날들 속에서 저는 온갖 시달림을 겪었습니다. 높은 담벼락 안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는 환경이 없었습니다. 그런 고통은 형용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감옥의 세뇌 자료 안에는 사부님의 한 단락의 법이 있었고 아래에는 그들의 모함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각자 필요한 부분만 취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존의 한 단락의 설법만 보았습니다. 그와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여전히 사존의 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비할 바 없이 진귀한 것입니다!

7. 자비는 중생을 구한다

2019년 초의 어느 날, 저는 막 눈을 붙이려 하다가 바닥 위에 흰색 종이 뭉치를 보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하얀 종이는 한 송이의 깨끗한 연꽃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사존의 그 시가 떠올랐습니다. “청정한 연꽃 법에서 생기고 자비는 향기를 풍기네 세상에 감로를 뿌리나니 연꽃 피어 하늘에 가득하네”[3] 저는 이것은 사존께서 저를 한 송이 연꽃처럼 세속에 오염되지 말고 자비로 가서 중생을 구하라고 점화해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저는 나가서 진상을 알립니다. 매번 문을 나설 때, 저는 옷차림을 단정히 합니다. 고상하고 품위 있게 옷을 입고 대법제자의 풍채를 체현하도록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물으면 “당신은 내가 몇 살처럼 보여요?”라고 말합니다. 상대방은 50대 같이 보인다고 말하면 저는 그녀에게 올해 70대가 됐다고 알려줍니다. 그녀는 매우 놀라며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젊어요? 얼굴은 매끈하고 어떤 방법으로 가꾼 거예요?” 저는 상대방에게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고 어떠한 가꾸는 방법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법은 성명쌍수 공법이기 때문에 수련인은 모두 젊다고 알려줍니다. 그다음 다시 상대방에게 진상을 알리면 어떤 사람은 매우 빨리 깨닫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스위스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2-향연(香蓮)’

 

원문발표: 2020421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4/21/4041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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