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을 똑똑히 알려 반 박해하고 사람을 구한 경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나는 올해 57세이다. 파룬궁 연공장에 들어온 날부터 오늘까지 23년이 되었다. 20여 년의 정법 수련 중에서 넘어진 적도 있고 잘 넘지 못한 고비와 난도 있었지만 기쁨도 매우 많았다.
경찰이 우리 집에 온 전과 후
2019년 4월 어느 날, 오전에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현 공안국 국내 안전 보위과(이하 국보과라 약칭)의 모모모라고 하면서 나를 만나야겠다고 했다. 나는 “저는 학생들에게 수업을 가르쳐야 하기에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 언제 시간이 있습니까? 한 시간이면 됩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오후 5시에 나는 공안국에 갔다. 거기서 알게 됐는데 한 수련생이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구속당했다. 수련생을 심문할 때 사악한 당(邪黨, 중국공산당을 지칭)의 담당자가 속이고 협박하자 그 수련생은 나를 언급했다.
사건의 경위를 듣고 나는 경찰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자신이 대법으로 얻은 이익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그 수련생의 상황을 물었지만 나는 일절 모른다고 했다. 한 시간 후 경찰은 나에게 기록에 서명하라고 했다. 나는 “신앙은 자유이고,신앙은 합법이다.”라고 쓴 후 서명했다.
집에 돌아온 후 끊임없이 발정념(發正念)하고 자신의 상태를 조절했다. 그런데 이튿날 오전 9시가 넘자 현 국보대대장이 두 사람을 데리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아파트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우리 집 차고에서 그들을 접대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굳이 우리 집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해서 그들을 데리고 올라왔다. 문을 열고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분은 대법 사부님이십니다. 아무도 건드리면 안 됩니다!” 그리고 사부님 법상 앞에 서서 허스(合十)하고 속으로 묵묵히 요청했다. ‘사부님,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고 중생을 구할 수 있게 제자를 가지(加持)해 주십시오.’ 공손히 허리 굽혀 사부님께 인사드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차분하게 말했다. “대법 사부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중국에 한마디 말이 있지요. ‘낙수의 은혜는 솟구치는 샘으로 갚아야 한다.’ 하물며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입니다!” 그들은 ‘수색영장’을 보이고, 두 경찰이 우리 집 방안을 돌아다니며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입장(立掌)하고 발정념했다.
한 경찰이 나의 입장을 제지하면서 고개를 들어 벽에 걸려있는 사부님의 ‘논어(論語)’를 보았다 .그리고 흉악한 기운이 조금 사그라들더니 말했다. “이곳에는 온통 파룬궁의 물건이네요.”나는 말했다. “여기는 내 집입니다!” 그는 더는 말이 없었고 떠날 때까지 벽에 걸려 있는 사부님의 법상과 파룬도형(法輪圖形), ‘논어’를 건드리지 않았다. 나는 내가 바르게 걸으면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처리해 주시고, 또 사악한 당의 도구가 된 경찰도 죄를 적게 짓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찰은 나를 공안국에 데려갔다. 차에서부터 공안국에 도착한 후에도 묵묵히 발정념했다. 약 11시쯤에 입안이 마르고 목까지 건조해졌다. 혀가 뻣뻣하고 말도 하기 힘들었으며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배고픔을 느꼈다. 나는 사악이 술수를 써서 나를 박해한다는 것을 깨닫고 주머니에서 10위안을 꺼내 나를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말했다. “먹을 걸 좀 사다 주시겠어요? 배가 좀 고프네요.”그는 말했다. “이 근처에 별로 먹을 것이 없어요. 조금 있으면 식당에서 식사가 나옵니다.”, “그럼 물 한 잔만 주실래요?” “네.” 물을 마신 후 많이 좋아졌고 계속 발정념했다.
평온하게 ‘심문’에 대응하다
12시 40분에 그들은 ‘심문’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는 모처럼 진상을 알릴 기회였다. 경찰이 물었다. “당신은 언제 파룬궁을 연마했습니까? 파룬궁은 무슨 좋은 점이 있습니까?”
나는 말했다. “내가 수련하는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이고 바른 법입니다. 나는 파룬궁을 연마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원래는 메니에르 증후군을 앓았었고 여러 차례 치료했지만 완치할 수 없다가, 파룬궁을 연마한 지 얼마 안 되어 나았습니다. 비염은 아예 사라지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원래 화를 잘 냈고 늘 트집 잡아 시어머니 험담을 했으며 나를 서운하게 했다는 등 늘 남편 앞에서 케케묵은 일을 들추며 시어머니의 잘못을 말했지요. 남편이 집안일을 적게 하고 아이를 별로 안 챙긴다고 잔소리해서 늘 가정불화가 일어났습니다. ‘전법륜(轉法輪)’ 책에서는 수련자에게 갈등을 만나면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제야 알게 됐는데 원래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남편에게 ‘미안해요, 어머님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했는데 모두 내가 잘못했어요.’라고 사과했습니다.”
경찰은 또 물었다. “파룬궁이 이렇게 좋은데 국가에서는 무엇 때문에 못하게 합니까?” 나는 그에게 장쩌민이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은 걸 질투해서 그렇다고 알려 주었다.
그는 계속 물었다. “당신은 파룬궁을 연마하면서 중단한 적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납치당해 감옥에 들어갔는데 특히 두 번째에는 비교적 오래 갇혀 있었지요. 감옥 안에서 지키는 사람이 있기에 연공 할 수 없었고, 몸과 마음이 어떻게 망가졌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출소한 후에야 안 일인데 팔순에 가까운 연로한 아버지는 내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자 목매어 자살하려고 시도했는데 다행히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출소한 후 파룬궁은 정말 너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복이 없었던 것인지 여러 방면에 압력이 너무 높아서 더는 연마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연로한 아버지와 어린 자식을 잘 돌보면서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일은 뜻대로 안 되었습니다. 원래 몸이 허약했던 나는 지병이 도져 점점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나에게 3개 반의 수업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줄곧 미열이 가라앉지 않고 온몸이 무기력했으며 눈빛이 흐릿하고 사고가 둔하고 기억력이 매우 나빴습니다. 강의 중 두서없이 앞 구절을 말하면 뒤 구절을 잊었습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수업의 요점을 명확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많은 의견을 제출하자 강의를 주관하는 부 교장은 나를 찾아와 담화도 했습니다.
집에서 노인과 아이를 돌보기는커녕 자신의 생활도 자립할 수 없었습니다! 20일 간격으로 드러누워 며칠씩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10살도 안 된 아이가 내 옆에 앉아서 말했습니다. ‘엄마, 만약에 엄마가 쓰러지면 우리 집의 지구는 돌지 않을 거예요!’ 그래요!나는 쓰러질 수 없어요, 살아야 해요, 그것도 건강하게 살아야 한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려면 내 앞에는 오직 한 갈래 길밖에 없었어요. 그것은 바로 다시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 방면의 압력을 무릅쓰고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간 후 두 달 만에 몸과 마음은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나는 또 강단에 설 수 있게 됐습니다. 머리가 맑고 사고가 트여 학생들의 수업과 질문에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호평도 받았습니다. 사실 나에게 오늘이 있는 것은 나의 사부님과 파룬따파 덕분입니다. 매우 감사드립니다!”
경찰이 물었다. “모모모의 파룬궁 자료는 당신이 준 겁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아십니까?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수련생은 매우 대단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을 구하니까요. 2000년 전에 로마제국의 황제 네로가 성을 불사르고 기독교인에게 화를 전가하고 기독교인에 대해 고문 박해했을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손뼉 치며 좋아했지요. 하지만 각종 재난과 전염병으로 박해자에게 벌을 내렸을 때, 예수와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데 직접 참여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지역 민중도 크게 손상됐습니다. 파룬궁 수련생이 나와서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는 목적은 사람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공안, 검찰, 법원 계통은 대법제자가 가장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중공에게 도구로 이용당한 후 쓸모가 없으면 없애버리지요. 몇 년 전에 부패 척결할 때 제거된 고관은 모두 파룬궁을 박해한 가장 선봉이었는바 가장 전형적인 것은 저우융캉, 보시라이 등입니다.”
이때 경찰이 갑자기 물었다. “그럼 우리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말했다. “‘총구를1cm 높이 들면’ 됩니다! 당신에게 국보대대장의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이름은 말할 수 없고 지역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의 아내는 차 사고로 마비가 왔다가 대법 진상을 알고 나았습니다. 그는 아내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보았습니다. 진상을 알고 난 후 대법제자가 어디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한다는 제보가 또 들어오면 그는 경찰을 데리고 다른 곳에 가서 수색합니다. 이렇게 그는 일도 했고 대법에 죄도 짓지 않았으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경찰은 또 내가 집에서 가지고 간 ‘명혜주간’ 몇 권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 분명히 말해주었다.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거니까 묻지 마세요. 여하튼 당신에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불법인 건 아닙니다.”
이때 나를 심문하던 경찰이 무거운 짐이라도 덜어낸 듯 서기원에게 말했다. “적어요! 이 말을 적어요. ‘나는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거다, 어떻게 해도 당신에게 말하지 않을 거다.’” 옆에서 기뻐하며 혼잣말하는 경찰도 있었다. “남이 말하지 않겠다는데 내가 억지로 입을 열게 할 수는 없잖아.”
대대장이 나에게 말했다. “기록을 보고 나서 서명하시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뒤에 쓰시오.”
기록은 매우 간단했고 나의 말을 전부 기록하지는 않았다. 나는 뒤에 한 단락을 써넣었다.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이며, 파룬따파를 수련하면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 도덕을 회복시키며 심신이 건강해지게 할 수 있다. 무릇 기연(機緣)이 있어 ‘전법륜’ 책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을 조용히 하고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책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배우고,배우고 나면 또 그렇듯 확고해지는지? 어떤 대법제자는 정말로 자신의 생명으로 대법을 수호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이 말은 매우 확실하다! 오늘날 도대체 누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가? 누가 법을 알면서도 어기고 있는가? 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너무 많은 유감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이 단락을 쓴 후 내 이름으로 서명했다.
대대장은 보고 나서 나갔다가 잠시 후에 다시 심문실로 돌아와 말했다. “당신은 해야 할 말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안 하네요.가십시오!” 나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나를 공안국 대문 밖까지 데려다주고 어떻게 차를 타는지 알려 주었다.
경찰과 담화 시간은 약 3시간이었다. 사존의 가지가 있었기에 나는 놀라지도 두렵지도 않았고 평온하고 온화했다.명석한 두뇌로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고 그들은 그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사부님께서 처리해 주셔서 나의 일자리를 지켰다.
2003년 10월 초, 긴 연휴가 시작되기 이틀 전, 나는 사악에게 납치되어 구치소(간수소)에 8개월 동안 불법적으로 감금됐다가 2004년 5월 말에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불법으로 감금된 두 번째 달에 학교에서는 나의 월급을 전부 공제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교장을 찾아가 나의 업무와 월급 회복을 요구했다. 교장은 당의 연좌정책에 자신이 연루될까 봐 두려워 나의 출근을 거절하고 현의 지도자가 나를 출근시키지 않는다고 발뺌했다. 현의 어느 지도자가 말했는지 찾아가겠다고 하자 그는 나에게 말해주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구치소에서 돌아온 보름 후 남편은 박해가 자신에게 연루될까 두려워 나와 이혼했다. 2004년의 11월~12월에 나는 3살 좀 넘은 아이를 전남편에게 보내고 생계를 위해 심천(深圳)에 일하러 가려고 했다. 전남편은 이 일을 현의 지도자에게 이야기했고 차장이 교장을 찾아가서야 2005년 1월부터 매달 400위안(약7만 원)생활비를 지급해 주었다.
하지만 2005년 10월에 교장은 나를 ‘근무지 이탈’로 현에 보고를 올려 그 해 11월에 월급이 다시 끊겼다. 우리 모녀의 생계가 또 끊겼다. 나는 학교에 가서 교장을 찾고 다른 지도자와 일부 선생을 찾아 이치를 따졌다. ‘나의 상황은 근무지 이탈에 속하지 않는다. 내가 거듭 출근을 요구했지만 교장이 못하게 한 것이다.’
한 교사가 나에게 말했다. “그럼 와서 출근하십시오, 그가 수업을 배치하든 안 하든 그냥 오기만 하십시오.”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點化)해 주시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신다!” 나는 생각해 보고 “좋아요!”라고 말했다. 헤어질 때 그녀가 말했다. “꼭 와야 해요. 만약 오지 않으면 그때가 되면 다른 사람은 할 말이 있어도 당신은 할 말이 없어요. 교장의 계략에 빠지지 말고 오로지 출근만 해요.”
그 후 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에 출근했다. 나에게 수업을 배치하지 않으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했다. 우선 교사 건물 2층, 3층의 양쪽 계단 입구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쓰레기를 한 광주리 한 광주리씩 교문 앞 쓰레기장으로 옮겼다. 며칠 만에야 비로소 다 치웠다. 그리고 대걸레를 가져다가 계단과 복도를 깨끗이 닦았다. 이때부터 나는 주동적으로 교사 건물의 청소 일을 맡았다. 나의 행동은 선생님들의 주의를 끌었다. 몇 주가 지난 후,몇몇 담임선생님들은 이곳의 청소를 학생들에게 분담시키기로 협의했다.
할 일이 없어서 나는 캠퍼스 안을 돌아다녔다. 날씨가 너무 추워 선생님 두 분이 잇따라 사무실을 제공해 주며 들어와 몸을 녹이게 했다. 그러나 교장은 알고 나서,그녀 둘을 찾아가 사무실 열쇠를 주지 말라고 압박을 가했다. 이 두 선생님은 정의감이 있어서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그 후 교장은 또 나를 찾아와 담화하면서 거짓말과 위협을 가했다. “다시는 학교에 오지 마시오. 집에서 쉬고 있으면 내가 찾아가서 당신의 월급을 지급하라고 할 테니. 만약 그래도 학교에 나온다면 나는 상관하지 않겠소.”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평소대로 학교에 출근했다.
그리고 현 기검위(기율검사위원회,이하 기검위라 약칭)와 현 노동인사국에 가서 상황을 반영하고 나의 월급과 업무를 회복해 달라고 요구했다. 노동인사국 국장을 만나 자신을 소개하자,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며 말했다. “모두들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해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국장님이 보시기에 제가 제정신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파룬궁과 수련인에 대한 말은 모두 우리에 대한 조작이고 모함입니다. 우리는 억울합니다. 국장님께서 좀 도와주세요, 저의 월급을 강등시키지 마십시오.” 내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국장은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돌아가십시오. 회의를 열고 검토해 보겠습니다!” 나중에 나는 월급이 강등되지 않은 걸 알았다.
내가 기검위에 가서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캠퍼스 안에서 기검위의 권위 있는 인사를 만났다.그녀는 다른 일을 보러 왔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직장으로 돌아간 그녀는 내가 학교에서 근무하는 상황을 자신의 윗분에게 말했다. 이에 현 기검위는 학교 사무실에 두 차례 전화를 걸어 나의 임금 회복 절차를 밟으라고 재촉했다.
어느덧 연말이 되었다. 나는 교장 선생님 댁에 찾아가서, 나의 업무와 임금을 회복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회피하며 책임을 미루고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교장 선생님의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의 남편이 한 일을 말했다. “우리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억울함을 당한 것이기에 이 일은 조만간에 청산될 것입니다. 저는 청산이 시작될 때 청산 당하는 사람 중에 교장 선생님의 이름이 없기를 바랍니다. 만약 있게 된다면 그때 저의 마음은 매우 아플 겁니다. 사모님께서 교장 선생님을 설득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에 나의 이름에 서명했다.
하루건너 편지를 교장 선생님 댁에 보냈는데 당시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편지를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그 편지의 역할은 대단했다. 편지를 보낸 이튿날 오전에 교장 선생님은 학교 사무실 주임과 함께 차를 몰고 우리 집으로 와서 쌀과 식용유, 사과와 200위안(약4만 원)을 주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나의 임금 문제로 기검위에 갔는데 연말이라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설을 쇠고 나서 다시 나의 일을 처리해 주러 가겠다고 했다. 나는 연거푸 사의를 표했다. 이 생명이 드디어 명백해진 것을 보고 나는 기뻤다.
7개월 후인 2005년 6월에 나는 모든 월급을 받았고 그 전의 7개월 치 월급도 전부 보충해 받았다. 나는 이것을 경사로 삼고 약간의 선물(캔디, 해바라기 씨, 볶은 땅콩)을 준비했다. 그리고 나의 월급을 회복시켜 준 교장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정의로운 동료가 보내준 성원에 감사드린다는 짧은 편지와 함께 학교의 각 사무실로 보내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었다.
정말 기쁜 일이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나는 구세력의 경제적 박해를 부정했다.
나는 이 문장을 쓰면서 업무를 회복하던 전 과정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하나하나 내가 찾았던 사람들,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역할, 다 그렇게 알맞게 배치되고 질서 정연했다. 특히 나에게 조언을 해준 선생님은, 나에게 조언해준 지 얼마 안 되어 교육청으로 전근했다. 내가 다시 그녀를 만나 감사를 표할 때, 그녀는 뜻밖에도 이 일을 모른다며, 나와 그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건 정말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해 주신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처리해 주셨고, 나의 업무를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1]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원문발표: 2020년 4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4/26/4031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