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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마음을 제거한 얕은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후에 나는 오래된 아파트단지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나는 한 아파트 건물 정문 앞에 주차하고 내린 후 자료를 주머니에 넣고 현관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줄곧 5층까지 올라간 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배포하여 빨리 끝났다. 그리고 1층 건물 안에 진상 스티커를 붙이고 문을 나선 후 차에 탔다.

차를 탄 후 똑바로 앉아 시동을 걸려고 할 때 머리를 들고 보니 감시카메라 하나가 나를 마주 향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속이 ‘덜컹’했다. 아까 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들어갈 때 감시카메라가 있는 걸 보지 못했구나! 이 아파트단지에 나는 두세 번 왔다 갔는데 처음 왔을 때 일부러 아파트를 한 바퀴 주의 깊게 관찰했다. 전체 아파트 도로와 건물 앞에는 감시카메라가 없었다. 가끔 거주자가 개인적으로 자기 집 안전을 위해 설치한 감시카메라만 있었기에 그 후 또 왔을 때 나는 좀 홀가분했고 이 방면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이 건물 밖에 하나 설치된 줄은 생각지 못했다. 감시카메라는 한 가정집 창문에 설치됐는데 1층에 차고가 있었기에 마침 차고 문을 향해 설치했다. 차고 양옆에 바로 현관문이 있었다.

이 상황을 발견한 후 나의 첫 반응은 ‘소홀했다!’였는데 즉시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고 얼른 발정념하여 제거했다. 이를 승인하지 않았고 사악의 나에 대한 교란과 박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정념하여 자기의 두려운 마음을 제거했다. 발정념하면서도 사람의 관념이 위로 올라왔다. 찍혔으면 어쩌지? 마스크를 썼지만 차 번호판이 찍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올라왔다. 나는 현관문밖에서 찍힌 것인데 아파트 안에는 감시카메라가 없기에 그들이 어찌 내가 배포한 것임을 알 수 있겠는가? 정말 나를 찾는다고 해도 증거가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밖으로 나왔다.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다시 즉시 발정념으로 제거하고 부정했지만, 또 밖으로 나와 나는 끊임없이 제거했다. 이어서 또 다른 생각이 나왔다. ‘아니면 돌아가서 자료를 다 가져올까? 이러면 안전하지 않는가.’ 이렇게 막 생각할 때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고 계속 제거하고 부정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이런 생각이 나오면 제거하고 나오면 제거했다.

이러면서 나는 이 아파트단지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끊임없이 이런 두려운 마음과 좋지 않은 생각이 밖으로 나오면 또 끊임없이 발정념하고 제거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생각했다.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1]

집에 돌아온 후에도 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발정념하여 적지 않게 제거했기에 그렇게 강렬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공부했다. 책을 들고 한참 공부했더니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때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한 점이 있다. 만약 정법시기에 대법에 죄를 범하고 정법을 교란한다면, 이 죄는 용서할 수 없다! 바로 이런 하나의 표준이다.”[2]

이 법을 보고 나는 갑자기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다. 아까 내가 줄곧 자기의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제거한 것은 수련의 각도에서 볼 때 잘못이 없는 것 같다. 두려운 마음이 나온 것을 의식했으니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사람의 관념을 타파하고 아울러 철저하게 구세력을 부정했는데 왜 썩 옳은 것 같지 않을까? 이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기를 찾았지만 자아를 중심으로 한 ‘나’의 두려운 마음, ‘나는’ 마땅히 부정해야 하며 ‘나는’ 승인해서는 안 된다는 등 줄곧 자아를 강조했다. 그러나 감시카메라를 설치한 그 집의 사람이 나의 집착과 두려운 마음 때문에 사악에게 빈틈을 보여 대법에 좋지 않은 행동을 함으로써 대법에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생각지 않았다. 그가 정법에서 소멸되면 그가 대표한 그 체계의 모든 중생도 이 때문에 소멸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나는 이 일에서 내가 잘하지 못함으로 하여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

구세력은 줄곧 이렇게 해왔다. 그들은 대법제자를 ‘테스트’한다는 깃발을 걸고 세인이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게 하고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은 생명을 도태시켰다. 사부님께서는 박해받는 사람은 사실 세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미혹 중에서 사주를 받아 대법에 죄를 짓고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대법제자는 어느 한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더라도 인식한 후 보완할 수 있고 언젠가는 원만할 수 있다. 그러나 속인은 구세력에게 이용되어 대법제자들을 시험하고 대법제자를 성취시키려 하면 그들의 생명은 영원히 끝장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하게 가장 슬픈 일이다! 우리는 그들을 동정해야 하지 않는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내 마음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자기의 안전에만 관심을 두었다. 각 방면에서 고려한 것은 모두 자기였고 자기를 영원히 첫 자리에 놓았다.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도 법과 중생을 앞에 놓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모두 좋은 사람이며, 일할 때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2]

저녁 식사 후 아내가 나에게 한 가지 일을 말했다. 저녁에 장모님이 아내에게 전화하여 아내를 한바탕 훈계하셨다는 것이다. 이유는 며칠 전 아내가 장모님에게 인터넷에서 혈압 측정기를 사드렸는데 측정 결과가 정확하지 않아 아내에게 물건을 반품하라고 했다. 판매자는 이유를 대어 반품해주지 않아 장모님은 화가 나 판매자가 부도덕하고 양심을 어기고 장사를 한다며 이 판매자를 한바탕 꾸짖었다. 욕할수록 화가나 덩달아 아내에게도 일 처리를 잘하지 못한다고 욕한 것이다.

아내가 나와 이 일을 교류할 때 말했다. “엄마가 나를 꾸짖을 때 나는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어요. 나는 오늘 심성 파악을 잘했어요.” 나는 듣고 나서 내가 갓 깨달은 이치가 생각나서 말했다. “당시 장모님이 사람을 욕할 때 당신은 왜 제지하지 않았어?” 아내가 말했다. “내가 어찌 어머니를 제지할 수 있어요? 내가 어머니를 뭐라 하면 어머니가 나에게 더 뭐라 할 거잖아요?” 나는 말했다. “당신은 사람을 욕하면 덕을 잃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당신이 욕먹지 않으려고 눈을 뻔히 뜨고 어머니가 덕을 잃는 걸 보고 있은 거잖아? 어머니가 업을 지으면 장래에 스스로 고통을 겪어야 갚는 것이 아닌가? 관건 시각에 당신은 어머니가 업을 짓더라도 당신은 자기를 보호하려 한 거지.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아내는 듣고 나서 문뜩 깨닫고 본인의 문제를 의식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주의 과거는 사(私)적인 것으로, 사람을 두고 말하면, 정말로 관건적인 시기에는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다.”[2] 이기적인 이 마음이 사람 관념에 이미 뿌리 박혀 일사일념에 다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어떤 땐 매우 사소하고 작은 생각에서도 체현된다.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시시각각 이 이기적인 구우주의 좋지 않은 것이 우리 수련의 길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기적인 마음을 제거해야 자비로 한 걸음 크게 내디딜 수 있다.

“대법 수련자가 자신에게 사(私)적인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면 점차 그것을 극복하라.”[2]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55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5/4048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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