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베트남 수련생, 중문 ‘전법륜’을 외운 수련 과정

글/ 베트남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0년 대학에서 공부할 때 법을 얻은 베트남 수련생입니다.

1. 법을 외워 수련 상태를 돌파하다

당시 ‘파룬따파의해(法輪大法義解)’를 봤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의 많은 경서는 아주 명확하게 말하지 못했고 모두 아주 모호하게 말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외웠다고 한다.”[1] “나이가 많거나 기억력이 좋지 못한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 능력이 있거나 젊고 기력이 왕성한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외워야 한다. 아마 내가 제출한 요구가 너무 높을 수 있다.”[2]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법을 외울 수 있다면 아주 좋겠지만 그리 자신이 없었으며 베트남어로 법을 외우는 것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젊기는 하지만 ‘기력이 왕성한 사람’은 아니며 읽는 것은 괜찮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같은 대학의 수련생 한 분을 만났는데 법을 얻은 지는 저보다 1년 늦었지만, 그는 이미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논어(論語)’부터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좀 놀랐으며 그때야 법을 외우는 것이 도달하지 못할 만큼 높은 것은 아니라고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 뒤 베트남어로 ‘논어’를 외우기 시작했고 그런 다음 멈추고 말았습니다. 이미 쉽지 않다고 생각해 책 전부를 외우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이후 저는 밍후이왕에서 어떤 수련생의 교류를 보게 됐는데 그는 한 단락 한 단락씩 외울 수 없다면 한 구절 한 구절씩 외우라고 했습니다. 매 구절을 다 외우고 그다음 한 단락 한 단락 외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한 구절은 외웠기에 이미 머릿속에 있고, 즉시 생각나지 않을 수 있을 뿐이며 두 번째로 한 단락 한 단락을 외우면 기억이 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에 공감하지만 외우기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제 이런 경험을 다른 베트남 수련생과 교류하자 그녀는 즉시 외우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그녀는 ‘전법륜(轉法輪)’을 한 차례 다 외웠습니다.

나중에 저는 난관(難關)에 부딪히고 좀처럼 넘을 수 없어 그녀와 교류하자 그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저와 교류했던 것이 그렇게 좋았는데, 당신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군요. 빨리 외우기 시작해 보세요. 저는 아주 좋다고 느낍니다.” 그 후로 그녀가 이렇게 ‘전법륜’을 네 번이나 외웠다고 들었으며 지금은 얼마나 더 외웠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녀에게서 격려받아 저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외울 수 있었고 지하철에서도 외울 수 있어 아주 편리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구절씩 외웠기에 비교적 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외우니, 쉽다고 생각됐고 법에 대한 이해도 큰 진전이 있었으며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법리도 깨우치게 됐습니다. 저는 시간을 다그쳤고 오래지 않아 제4강까지 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많은 부족함을 찾았고 부딪혔던 그 난관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베트남어로 외우는 것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중문으로 외우기는 용기가 나지 않았으며 게다가 교란이 좀 있었기에 법 외우기를 견지할 수 없었습니다. 2014년 어느 날 저는 색욕심을 넘기가 매우 어려우며 어떻게 해도 배척할 수 없다고 인식했는데 그런 나쁜 사상이 또 나타났습니다. 정젠왕(正見網)에서 수련생의 관련 교류 문장을 찾아봤습니다.

경서 ‘파룬따파의해’를 읽는데 그중 한 단락에 “나의 책을 읽으면 그것을 없애버릴 수 있는데, 책을 읽을 때 나가는 것이 모두 공이고, 모두 법이라 소업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1]라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갑자기 밝아졌으며 색욕심과 모든 집착심을 제거해버리려면 법을 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법을 외우자!’ 사존의 설법 학습을 통해 저는 색욕심이 다시 생기면 곧 ‘전법륜’을 외웠습니다. 제6강에서 말씀하신 법에서 사부님은 “욕(慾)과 색(色),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기에 이런 것들을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한다.”[3]라고 하셨습니다. 연속 81번을 외웠고 사상 중에 색욕에 집착하는 잡념이 있게 되면 다시 81번을 외웠으며 잔잔한 물처럼 조용해질 때까지 외웠습니다.

저는 희망을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한 구절만 81번 외우고도 효과가 좋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한 구절을 익숙하게 외웠습니다. 그다음은 한 구절을 외울 수 있었으니 한 구절 더 외우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두 구절을 익숙하게 외우게 됐습니다. 그럼 또 한 구절 외우자고 했고 세 구절을 외웠습니다. 천천히 한 단락의 법을 중문으로 잘 외울 수 있게 됐습니다. 한 단락에서 시작해 저는 같은 방법으로 한 단락 더했습니다. 점점 한 단락 한 단락을 더하게 됐고 ‘전법륜’ 제6강 ‘연공초마(煉功招魔)’를 다 외울 수 있게 됐습니다.

저에게 이것은 매우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으며 제 수련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색욕심을 제거하는 데 큰 돌파가 있었던 것은 물론 중문으로도 법을 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몇 단락을 외우자 저는 어디를 가든 법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자신감이 훨씬 커졌음을 느꼈습니다.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법륜’ 매 한 글자의 배후가 무수한 불도신(佛道神)이며 가장 높은 곳은 사부님의 법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력이 끝이 없고 하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몇 페이지를 외우자 머릿속이 모르는 글자로 가득 채워졌는데 커다란 힘이 가지(加持)해줬습니다. 만약 정성을 들여 법을 외운다면 어느 때이든 그러한 불도신이 제 잘못이나 부족을 지적해 줄 것입니다. 제 생명이 온통 법에 녹아드는 것 같았고 자신의 역량이 훨씬 커졌으며 사람이 자신감 있게 변했다고 느꼈습니다.

이전에 중국어로 법을 외우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의 중국어 실력은 대학에서 좀 배웠을 뿐으로 중국어 과정에 입문한 셈이지 중국어를 잘한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중국어로 ‘전법륜’을 읽을 수 있으면 이미 괜찮은 것이며 책을 외우기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으로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았으며 게다가 법을 외우는 것이 제 중국어 실력을 많이 향상해줬습니다. 중국어의 어법, 어휘 그리고 구어에 이르기까지 더욱 많이 알게 됐는데 외울 때 머릿속에 법을 넣는 것 말고도 언어도 함께 집어넣게 되며 동시에 법이 저를 가지해주고 지혜를 열어주어 더 빨리 배울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는 중국어를 천천히 익히고 말하는 것도 갈수록 자연스러워졌습니다. 2014년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제 중국말을 듣더니 홍콩에서 왔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는 또 어떤 사람이 저에게 “중국에서 왔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중국어를 잘해야만 법을 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일정한 기초만 있으면 되고 법을 외우면 중국어를 더욱 잘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처음에 혼자서 외웠는데 매우 느렸고 한 단락씩 외워 제2강을 다 외우고 나자 견지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당시 저도 모르게 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법을 외웠는데 그 결과 서서히 효과가 떨어졌으며 적잖은 번거로움에 부딪혔습니다. 저는 다시 통독하는 것으로 바꾼 다음 중국어로는 한 구절씩만 외웠기에 천천히 외웠고 많이 외우지는 못했습니다.

하루는 통독하는 법 학습팀을 찾으려고 RTC 플랫폼에 들어가 봤다가 법을 외우는 팀이 있음을 보고, 베트남 수련생도 한 명 있었기에 매우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들 법을 외우는 팀 수련생들이 ‘전법륜’ 전체를 숙달되게 외우고 있어 법공부 때도 당연히 책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을 텐데, ‘이 베트남 수련생은 얼마나 대단한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 팀에 들어가 어떻게 외우는지 보고는 그렇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수련생들이 한 단락씩 외웠기에 저도 참여했으며 묵묵히 들으면서 혼자 조용히 외웠습니다. 이전에 혼자 외우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됐고 서로 촉진하는 작용도 있고 해서 저는 계속 참가했으며 지금 벌써 제9강까지 외웠습니다.

이렇게 반년을 외우자 제게는 하나의 돌파가 있었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에서 셋방살이하는데 집주인도 수련생이지만 우리는 따로 연공하며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 일어나 새벽 연공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자기 전에 매번 새벽 연공을 하려고 알람을 설정하지만 일어나면 머리가 무겁고 사상업이,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연공은 좀 적게 해도 문제가 없으니 더 자고 일어나서 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자기만 하면 7시까지 잤으며 심지어 더 늦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법을 외우자 저는 알람이 울리고 일어나도 더 자고 싶은 생각 없이 연공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몇 개월을 혼자 연공했습니다. 저는 제 방에서 하고 그들은 응접실에서 연공했습니다. 종종 저는 우리가 같은 동작을 연마하고 있음을 발견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연공 음악을 듣고 저는 제 것을 들었습니다. 가끔 ‘이렇게 하는 것이 좀 웃기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습니다. 7월 어느 날, 저는 아침에 일어나 아래층에 가서 우리 함께 연공하자고 말하며 우리 세 사람이 연공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몇 달을 견지하며 거의 매일 일어나 새벽 연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다른 수련생도 참가해 하나의 연공장이 만들어졌습니다.

플랫폼에서 법을 외우는 것 말고도 저는 또 우리 지역의 법 외우는 팀에도 참가하는데 대면해 함께하는 환경이 확실히 매우 좋고 플랫폼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됐습니다. 처음에는 ‘홍음4’를 외웠고 이후 진행자가 ‘전법륜’을 외우자고 했습니다. 저는 이 ‘법 외우기 팀’이 매우 좋았는데 순정했고 법을 외우고 나면 마치 씻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상이 깨끗하고 정신이 또렷해졌으며 참가했던 수련생 모두가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2. 이기심을 버리다

속인 중에서의 저는 분투할 줄 아는 사람이며, 의지가 강하고 결기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법을 배우고 법 외우기를 통해 저는 이런 생각이 이기적임을 점차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무엇을 얻으려고 생각하는 것은 속인이 보면 정상입니다. 제가 노력해 얻으려고 생각할수록 결기가 있고 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받게 됩니다. 그러나 법을 외운 이후 하루는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생각해봤는데 “그가 더욱 이기적일수록, 더 많이 점유하려고 생각하는데, 그는 우주의 특성과 더욱 어긋나며, 그는 곧 멸망을 향해 나아간다.”[3]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 물론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모두 그렇게 절대적이라면, 또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것도 일부 불안정한 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이치상 스승의 법신이 책임지고 있기에 다른 사람이 당신의 것을 가져가려 해도 가져갈 수 없다.”[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여러 곳에서 비슷한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 제 이해로는 인생에서 무엇을 얻는가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수련이 비록 운명을 바꿀 수 있지만, 수련도 기본적으로 정해진 것이며 우리의 노력은 다만 표면적인 것으로서 ‘많이 일하면 많이 얻고 적게 일하면 적게 얻는다’라고 하는 이 공간의 이치에 부합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명(命) 중에 있어야만 갖게 되는 것이고 없다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명(命)이 태어날 때 배치된 것이든지 수련을 시작할 때 배치된 것이든지 간에 모두 이미 정해졌습니다. 만약 너무 과분하게 노력한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의 것을 갖게 돼 업(業)을 빚게 되고 타인의 것을 빚지게 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의 종교 수련에서, 불가에서는 공(空)을 주장하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공문(空門)으로 들어가고, 도가에서는 무(無)를 주장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가지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 연공인(煉功人)은 유심연공(有心煉功), 무심득공(無心得功)을 주장한다. 일종의 무위(無爲) 상태의 수련으로서, 오직 당신이 心性(씬씽)을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의 층차는 돌파되며, 당신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면 바로 집착심이 아닌가?”[3]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응당 해야 한다면 되도록 그것을 잘해야 하고 결과가 어떻든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선 “그러나 생명체가 많이 생겨나자 일종의 군체(群體)적 사회관계가 발생했다. 그중에 일부 사람들은 아마 사심(私心)이 증가됨으로써 그들의 층차가 서서히 낮아져 이 한 층차 중에 있을 수 없게 됐으며, 그들은 곧 아래로 떨어져야만 했다.”[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생명이 고층차에서 떨어져 내려온 것은 이기심(私心) 때문으로 깨달았습니다. 경문을 읽으면서부터 저는 구(舊) 우주는 영원히 불멸할 수는 없고 성주괴멸(成住壞滅)을 거쳐야 하는데 이 역시 사(私) 때문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수련은 사심을 버려야 하며 저의 층차에서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4] 그것이 이익이든, 명망, 감정 또는 자신의 의견을 인정받든, 받아들여지는 등등 어차피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며 사심으로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5]라고 하셨습니다.

제 이해로는 무엇을 얻으려고 망상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집착심을 버려야 하며, 우리가 집착심을 버릴 수 있다면 설령 무엇을 얻지 못한다 해도 해탈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련하는 목적은 해탈을 위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집착을 버린 그런 기쁨이 있을 수 있는데 제 경우를 말하면 그런 승화한 느낌은 가뿐하고 미묘하며, 속인 중에서 어떤 것을 얻을 때의 기쁜 느낌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이상은 제 교류입니다. 법을 외웠던 과정을 뒤돌아보면 저는 수련 상태를 돌파하려면 법을 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두 법을 외워 머릿속에 진정으로 법을 담고, 법을 이성적으로 인식해 법에서 제고하며, 사명을 완수하고 서약을 실현해 사부님께서 “정념으로 걸어온 길 신(神)이 세간에 있거니 큰 성취 이루고 돌아가면 뭇 신들이 맞아주리”[6]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보잘것없는 깨달음이니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파룬따파의해-베이징(北京)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회의에서 하신 건의’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파룬따파의해-베이징(北京)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회의에서 말씀하신 정법(正法)에 관한 의견’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시드니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4-감개’

(2019년 싱가포르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1231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31/397590.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