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가족은 셋인데 남편은 일찍 법을 얻은 노제자다. 대법이 박해를 받은 10년 후에 남편의 영향으로 나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법을 얻은 후, 나는 대법이 너무 좋다고 생각되어 딸을 데리고 함께 공부했다.
그 당시 딸은 중학교에 막 입학했고 공부가 바쁘고 시간도 많지 않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시간이 나면 나와 함께 법공부를 했고 연공은 아주 적게 했기에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대법을 굳게 믿었다. 평소에 문제에 부딪히면 될수록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요구하고 어떤 때 누가 딸을 수련인이 아니라고 하면 기분 나빠했다.
박해 중의 딸
딸이 가오카오(高考-중국의 수능시험)를 보기 전, 남편과 나는 수련생을 구출하는 일 때문에 동시에 납치되었다. 그 당시 딸은 학교 기숙사에 있었고 1주일에 한 번씩 집에 왔다. 평소에는 일요일에 우리가 학교로 가서 딸을 데리고 왔었는데 그때는 고모가 학교로 가서 딸을 데려왔다. 그 당시 고모는 딸이 공부하는데 지장이 될까 봐 말해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딸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계속 캐물으면서 고모한테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후에 고모는 우리에게 “너희 딸은 정말 강해, 너희들이 잡힌 것을 알고도 나에게 안심하라면서 계속 위로해줬어. 원래 나는 집에 와서 맛있는 것을 해주려 했는데 내가 그럴 정신이 없을까 봐 나에게 먹을 것도 사줬어.”라고 말했다.
후에 딸은 고모와 어른들에게 일일이 문자를 보내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니 이 일이 발생했어도 우리를 나무라지 말라고 하면서 우리의 됨됨이를 그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어려움이 생겼으니 반드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딸의 작은 고모는 그 문자를 계속 간직하고 있다가 우리가 돌아오자 보여주면서 “이 아이는 정말 대단해, 그렇게 큰일에도 무너지지 않고 방법을 대서 너희들을 도우려고 했어.”라고 말했다.
한 달이 좀 지나서 남편은 불법으로 갇혔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나는 정념이 강하지 못했고 상태도 좋지 않았다. 딸은 나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사주었고 케이크를 선물해줬는데 케이크 위에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엄마”라고 적어 딸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며칠 후, 경찰들은 남편에게 죄명을 꾸며대기 위해 계속 나와 딸을 괴롭혔다. 경찰들은 세 번이나 학교로 찾아가서 딸을 데리고 공안국에 가서 기록을 만들려고 했으나 두 번은 학교 지도부가 시험을 핑계로 데려가지 못하게 했고 마지막에는 도저히 안 되었기에 경찰들은 강제로 딸을 분국으로 데리고 갔다. 취조실에서 그렇게 많은 경찰이 소위 말하는 증거를 얻기 위해 겁을 줬지만, 딸은 부모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것은 잘못이 없고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고하게 주장했다.
경찰이 무리하게 교란하고 박해했기에 내 휴대전화는 강제로 꺼졌다. 나는 한 수련생의 집에서 지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했다. 딸은 또다시 혼자서 다가오는 시험 준비를 했다. 그 당시 사진을 찍고 돈을 내고 여러 가지 서류를 작성하는 것을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부모와 함께 가서 하거나 부모가 대신해주고 매일 부모님이 도시락을 가져다주었지만, 딸은 혼자서 다 했다. 또한, 친척과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감당해야 했다.
한번은 딸의 외삼촌과 외숙모가 가서 딸을 데려왔다. 그들은 대법에 대한 딸의 태도를 알기에 일이 생길까 봐 대법을 보지 말고 수련생들과도 만나지 말라고 설득했고 또 밤늦게까지 우리를 헐뜯었지만, 딸은 묵묵히 감당했다. 후에 딸은 대법이 아니었다면, 사부님께서 지탱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아마 일찍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것이라면서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셔서 이겨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딸이 시험을 보기 전에 나는 방해를 무릅쓰고 집으로 왔다. 딸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고 나를 격려해주고 나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주었으며 내가 강해져서 아빠를 잘 도와드려야 아빠가 빨리 돌아올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시험을 보던 그 며칠 동안 딸은 줄곧 기숙사에 있으면서 나에게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딸도 내가 변호사를 청해야 하고 공안, 검찰, 법원에 찾아가서 아빠를 구출해야 하며 출근도 해야 하기에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험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 딸은 “엄마, 지난 며칠 동안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호신부를 지니고 시험장에 들어갔고 계속 ‘파룬따파하오’를 외웠어요. 나는 사부님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집의 아이들은 복이 있고 대법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끔 시험을 잘 보게 해주고 그들이 더 대법이 좋지 않다고 말을 하지 못하게 반드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실증할 것이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해 딸의 수능성적은 원래 성적을 훨씬 넘어 평소보다 60점 넘게 높았으며 남방의 아주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모든 친척, 주변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모두 아주 놀라워했다. 사부님께서 딸의 소원을 이루어주신 것이었다.
고독 속의 딸
딸은 대학에 입학한 후, 서서히 법공부 환경을 이탈했다. 그 당시 아빠가 불법으로 판결을 받아 딸에게 타격이 아주 컸다. 딸은 독립심이 아주 강해서 어떤 일도 우리에게 번거롭게 하지 않았으며 일이 있어도 혼자서 감당했다. 그러나 아직은 아이였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딸은 아마 그 타격을 회피하기 위해 심리적인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딸은 외모, 몸매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거기에 현재 대학캠퍼스의 오염 항아리 속에서 오염되었을 것이다. 딸은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극단적으로 한 학기에 15kg~20kg을 감량했다.
나는 딸이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빨리 살을 뺐는지 몰랐다. 나는 다만 딸에게 극단으로 가지 말라고 했지만, 딸은 그 당시 듣지 않았다. 후에야 나는 딸이 단식을 너무 심하게 하다가 후에 폭식하고 다시 토하고 하는 방식으로 아주 빨리 살을 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비정상적인 생활과 심리적인 압박은 딸을 우울증에 걸리게 했다.
첫 번째로 의사를 찾아간 것은 대학교 2학년 1학기 때였다. 그 당시 딸은 나에게 말하지 않고 겨울방학에 집에 왔을 때 신경계통의 약을 먹는다고 간단하게 언급했다. 딸이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 나는 진상을 알렸기 때문에 또 중공에게 잡혔다. 그때 딸은 충격이 더 컸고 저녁에 늘 이불 속에서 울었고 하소연할 친구도 없었다. 그 때문에 딸의 우울증은 재발했다. 의사는 딸에게 약을 처방해주었고 그해 여름 방학에 딸은 집에 오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딸은 타지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택했고 집에서 몇천 리나 떨어진 곳에서 혼자 세 들어 살면서 일자리를 찾았다. 4년 동안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기에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때부터 딸은 생리가 오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 회사에서는 나를 이유 없이 해고했다. 딸은 전화해서 나에게 자기가 돈을 벌어 부양할 테니 돈을 벌지 말라고 했다. 내가 그럼 집에서 뭘 하냐고 물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눈물이 났다. 비록 이번 박해로 부모가 두 번이나 잡혀가 불법 판결을 받았지만, 딸은 여전히 우리를 지지하고 대법을 믿고 있다는 것이 기특했다. 내가 매번 딸을 걱정할 때면 딸은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파룬따파 호신부를 지니고 다니거든요.”라고 말했고 딸은 파룬따파 호신부를 침대 머리에 걸어놓았다면서 혼자서 무서울 때 호신부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작년 설에 딸은 집에 와서 우리에게 한 남자가 자기를 쫓아다녀서 한동안 사귀었지만 맞지 않아서 헤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헤어지기 싫어서 집착한다고 했고 거기에다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딸은 우울증이 세 번째로 발작했는데 아주 심각하다고 했다. 나는 딸이 다만 심적으로 우울하고 근무하면서 스트레스가 커서 편안하게 하면 바로 나아질 줄 알았다. 우리는 몇 번 전화해서 딸을 격려해주고 지나가면 괜찮으니 넓게 생각하라고 하면서 아홉 글자 진언을 많이 외우라고 알려주었다.
그 당시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여러 가지가 이상하다면서 딸에게 재검을 받으라는 전화가 왔고, 딸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병세가 좀 심해졌다. 딸은 나에게 매일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에 빨리 일어난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너무 무거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힘이 없으며 뭘 먹지도 못한다고 하면서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심각할 때는 거기에 앉아서 계속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환각 현상이 생겨 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나와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 딸이 이 몇 년 동안 감당했던 고통을 말했다. 단식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바르지 못한 상태라고 했고 마지막에 앞으로 일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딸은 매일 용기 있게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고 했다. 딸은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싶지만, 병이 자기를 어찌할 수 없게 하여 이미 진료예약을 했다고 했다. 그런 다음 우리에게 우울증 방면의 많은 문장과 우울증으로 자살한 일부 사례들을 보냈다.
다시 수련을 시작한 딸
나와 남편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파룬따파 수련자로서 그동안의 수련하면서 오직 대법만이 딸을 치료할 수 있고 그런 상태를 바꿔주고 딸에게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또한, 딸은 이렇게 여러 해 동안에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줄곧 대법을 굳게 믿고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 것을 지지했었다. 우리가 박해를 받을 때 용감하게 각종 비난에 맞섰고 곳곳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었다. 공안의 위협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딸의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마난이 아마도 딸에게는 기회이고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그녀를 뒤처지지 않게 수련에 들어오게 하는 기연(機緣)일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그 일념을 확고히 하자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즉시 그다음 날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바로 그때 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밥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면서 씹을 힘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가끔 머리가 하얘지면서 눈물을 참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딸을 위로하면서 “얘야, 버티고 있어 아빠 엄마가 내일 갈 거야, 만나면 너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어, 아빠 엄마가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반드시 버텨야 해!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파룬따파하오’를 성심껏 외워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단 연락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상사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상사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래도 그날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다음 날은 토요일이었고 딸이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우리는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병원으로 갔는데 딸은 마침 병원에서 나오고 있었다. 딸이 예약한 의사가 출국했기에 다시 다른 의사에게 예약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딸이 화장을 비교적 진하게 했지만 초췌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고 몸도 아주 마른 것을 보았다. 만났을 때 우리는 “얘야, 아빠 엄마가 왔어, 별일 없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꼭 안아줬다.
딸은 우리를 만나고 아주 기뻐하면서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면서 우리를 데리고 자기의 회사로 갔다. 저녁에는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는데 딸은 좀 많이 먹었다. 딸은 오랫동안 그렇게 먹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다음 우리는 함께 호텔로 갔다. 우리는 침대에 앉아서 말했는데 할 말이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나와 남편은 일부러 우리가 수련한 후의 몸과 마음의 변화, 현재 사회의 일부 불량한 현상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말했다. 특히 전통문화를 교육받지 못한 젊은이들에 대한 영향, 정신이 몸에 대한 영향, 사람의 병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이며 무신론 사상이 사람들에 대한 영향 등에 대해 말하면서 딸이 다시 대법 수련의 우월함과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게 인도하여 딸의 일부 잘못된 인식과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려 했다. 딸도 우리가 계속 교류함에 따라 이전의 바르지 못한 관념을 바로 잡고 우리와 교류했고 그동안 딸이 다이어트를 하면서 생긴 문제, 마음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나에게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더 다이어트를 위해 잘못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12시가 넘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딸은 또 우리와 함께 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했다. 그날 밤 우리는 모두 아주 잘 잤다.
다음 날, 딸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날 딸은 원래 현지에서 동창회가 있었는데 자신의 체력이 지탱하지 못할까 봐 가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느낌과 상태가 아주 좋아 우리를 쉬게 해주고 혼자서 기쁘게 동창회에 참가했다. 오후에 돌아와서 우리를 데리고 영화 보러 갔다. 딸의 기분과 몸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셋째 날은 월요일이었고 딸은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다.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좀 피곤하다고 했는데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보였고 좀 초조해하는 것 같았다. 딸은 다시 화요일에 병원에 가기로 예약했다.
병원에서 딸은 우리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기에 우리는 밖에서 딸을 기다렸다. 30분 정도 지나서 의사 선생님은 우리를 들어오라고 하고 우리에게 딸의 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심한 우울증에 신경성 거식증이 있고 또 세 번째로 발작했으며 비교적 심각하다면서 우리가 딸을 데리고 심리치료를 받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수입 약을 처방해주면서 딸에게 운동을 많이 하고 친구를 많이 사귀라고 당부했다. 병원에서 나온 후, 딸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고 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저녁에 와서 딸은 말을 하기 싫어하면서 피곤하다고 밥도 먹지 않고 우리에게 좀 짜증이 난다고 했다. 우리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회사에 일이 있어 먼저 돌아갔고 나와 딸은 아이의 셋집으로 갔다. 방은 아주 작았고 어두웠으며 물건도 널려져 있었다. 나는 딸을 도와 방을 정리했다. 그 후로 딸은 낮에는 출근했고 저녁에 나는 버스정류장에 가서 퇴근하는 딸을 맞아주었다. 매번 차에서 내려 나를 보면 딸은 어린아이처럼 나를 안아준 다음 함께 아래층에 있는 마트에서 먹을 것을 샀다. 딸은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누려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나는 딸이 어릴 적에 나와 함께 법공부 한 일들을 말해주었고 또 딸이 그 당시 학우들과 모순이 생겼을 때 모두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한 일들을 말해주었는데 어떤 것은 딸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또 ‘홍음’ 중의 시를 함께 외웠는데 내가 말해주면 딸은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딸도 아주 흥분했다. 어떤 때 딸에게 ‘전법륜’을 읽어주고 어떤 때는 함께 읽었다. 딸은 ‘전법륜’ 중의 아주 많은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면서 아주 익숙하고 친절하다고 느낌을 말했다. 나는 딸이 서서히 수련의 길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딸이 퇴근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 때 멀미를 해서 버스에서 내린 후에 몇 번이나 토했다. 나는 딸에게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시는 것이니 좋은 일이라면서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다. 딸도 공감했다. 그 후에 그런 일이 몇 번 더 나타났는데 한번은 비교적 심하여 토하고 설사를 했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집에 온 후에 계속 화장실만 드나들었다. 저녁에 잠을 잘 때 딸은 나에게 “엄마, 정말 신기해요, 내가 방금 사부님께서 몸을 청리해주시는 것이다. 좋은 일이니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자 배가 아프지 않고 괴롭지도 않아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아주 기뻤고 나는 딸에게 “사부님께서 상관하고 계시니 얼른 사부님께 감사드려, 그리고 우리 내일 다시 법공부를 하자.”라고 말했고 딸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딸의 상태는 하루하루 좋아졌고 나도 시름을 놓았다. 3주 후에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딸은 내가 가는 것을 좀 아쉬워했다. 후에 나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딸에게 사부님의 경문을 주면서 매일 법공부를 견지하고 일상생활에서나 근무하면서 모두 대법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자신을 잘 돌보라고 당부했다. 딸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나를 바래다주던 그날 회사에서 번거로운 일이 있었지만, 딸은 아주 낙관적이었다. 나는 딸이 이미 변했고 마음에 불법을 담고 있어 어떠한 일도 딸을 넘어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늘 연락했고 딸은 심성이 제고된 후의 일부 표현들을 알려주었다. “상사가 아무런 영문도 없이 나를 혼냈지만 나는 화내지 않았고 변명도 하지 않았어요. 이전에 즐겨보던 영화도 재미없어요, 근무할 때 고객이 욕하면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요.”라는 말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딸은 매일 법공부를 견지하고 아주 정진하며 우리도 계속 딸을 격려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는 딸이 몹시 흥분하면서 생리가 왔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이전에 많은 병원을 갔고 한약, 양약을 적지 않게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는데 현재 책을 보기 시작해서 2개월도 지나지 않아 생리가 정상적으로 온 것이다. 딸은 기뻐하며 나에게 대법은 너무 신기하다면서 우울증이 나았고 신경성 폭식증도 나았으며 생리도 정상이 되었다면서 딸의 기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현재 딸은 매일 불법(佛法)에 빠져있고 건강하고 즐거워한다. 비록 딸은 여전히 나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더 걱정하지 않는다. 현재 딸은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하면서 매일 출근하는 이외의 시간에 다그쳐서 법공부를 한다고 했다. 딸은 아직도 차이가 아주 크다면서 다그쳐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원문발표: 2020년 4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12/4037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