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39세고 16살 때 대법과 인연을 맺었다. 1996년 나는 막 고입시험을 보고 처음으로 ‘전법륜’을 보았다. 단번에 ‘업력의 전화’ 페이지를 펼쳤는데 책이 왜 이렇게 좋은가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는 쟁투심이 강하고 ‘무신론’에 가로막혀 책을 깊이 보지 못했다.
17살 때 나는 심각한 피부병에 걸려 고등학교 학업에 영향을 주었다. 그때 부모님은 모두 법을 얻어 나에게 ‘전법륜’을 보라고 건의했다. 나는 대략 2주 정도 보고 심각한 피부병이 나았는데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고 수능 압력이 크고 단체 법공부 환경이 없고 마음을 닦을 줄 몰랐으며 안으로 찾을 줄도 몰랐다. 3개월 본 후 책을 점차 내려놓았고 간혹 한 번씩 책을 보았다. 수능시험을 보고 방학때 법공부를 잘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 1999년 7월 9일 수능을 마친 후 법공부를 잘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사당이 대법에 대한 탄압, 비방, 유인비어를 시작했다. 부모 주변의 사람들도 사고하게 됐고 나는 더 어찌할 바를 몰랐고 점차 대법에서 벗어났다. 그때 하늘 땅이 온통 암흑인 것 같고 마음속에 늘 근심이 가득했으며 인생에 짧은 즐거움은 있었지만, 생명은 혼돈 속에서 떠돌아다니고 귀착점이 없고 고민으로 가득 찼다.
2003년 어머니는 대법을 수련해 악인에게 납치됐고 징역형을 받았다. 마음속 고통은 더욱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고 무감각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법이 인생을 비춰주지 않으니 얼마나 가련하고 얼마나 무기력했겠는가?
2007년에 이르러 나는 대법을 벗어난 몇 년 동안 많은 잘못을 한 것을 알았다. 이렇게 되면 나는 더는 희망이 없다. 인간세상의 번화함, 명리정(名利情)이 사람을 유혹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한걸음씩 멸망으로 걸어가게 한다. 나는 가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끝내고 싶었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대법만이 고해에서 벗어나게 구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 나는 대법을 굳건히 수련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법을 얻었을 때 확고한 의지가 없고 진심으로 수련하려는 결심이 없어 대법을 떠나게 됐다.
그해 겨울방학, 나는 집에 돌아가 처음으로 ‘전법륜’을 통독했는데 최고의 불법을 얻은 느낌이었고 마음은 진동, 격동,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나를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 나는 반드시 사부님의 손을 잡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으며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겠다.
착실한 11년의 수련에서 나는 가정관을 돌파했고 새벽에 일어나 연공하는 관을 돌파했으며 자신의 쟁투심, 질투심, 당문화를 닦아버렸다. 자신이 조금씩 승화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자신이 최근 3년 동안 직함 승진 과정에서 수련 제고한 과정을 글로 적어 위대하신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2008년 석사 대학원 졸업 후 나는 사부님의 배치 아래 순조롭게 성급 3갑 중의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그때 함께 병원에 온 동료는 사적으로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여기 오면서 누구를 찾았어요? 돈은 얼마 들었어요?” 나는 놀랐다. 속으로 여기에 오려면 사람을 찾고 돈을 내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함께 병원에 들어온 열 몇 명은 연구생지도교사가 이 병원의 의사이든가 아니면 ‘인맥’을 통해 들어온 것이었다. 각자 돈을 얼마 냈는지는 들어온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 혼자만이 사람도 찾지 않고 돈도 내지 않았다. 면접을 본 후 직접 병원에 들어왔다. ‘인맥’을 따지는 이런 시대에 나는 유일한 예외이다. 이것은 사부님의 배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연도에 따라 2015년 나는 부주임의사로 승진해야 한다. 지표가 너무 적고 승진해야 할 사람은 많다. 그러므로 매년 경쟁은 치열하다. 나는 수련인으로 명리를 담담히 봐야 하기에 직함 승진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깊이 승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임상의사로서 직함도 자기 수준에 대한 긍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가 많을 때는 오로지 치료에만 전념하며 사람을 구했는데, 연분이 큰 환자에게 진상을 알리면 삼퇴한다. 환자가 적을 때 중의고적을 읽고 자신의 중의 수준을 높였다. 여가시간은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는 것을 견지하며 과제를 만들고 문장을 발표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자신이 진행한 연구과제도 없고 발표한 문장은 갓 표준에 도달했으며 과학연구와 상장도 없다. 직함 승진에 우세를 차지하지 않기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진상을 알고 있는 동료가 나의 이런 태도를 이하지 못했다. 동창들도 일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보기엔 수련하는 사람은 ‘바보’ 같았다. 나중에 나는 깨달았다. 내가 승진에 참가하지 않는 것은 세인이 대법을 오해하고 대법제자는 명리에 담담해서 다투지 않고 세간과 맞지 않으며 진보하지 않고 현실을 도피한다는 느낌을 준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평가에 참가해야 하고 언제 진급되면 올라가고 만약 승진하지 못하더라도 줄곧 이름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속인의 사회 상태에 부합되고 세인이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정면적인 인식을 갖게 한다.
이 기점을 바로잡고 나는 2017년 평가 참가에 신청했다. 결과 평가점수가 중등보다 좀 앞에 있었다. 본래 두 번째 직무보고를 포기하려 했지만, 그 동료가 줄곧 나를 격려하고 직접 나를 데리고 각 평가위원을 찾아 표를 모았다. 그녀는 매년 평가 심사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평가위원을 찾아간다고 말했다. 평가위원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모두 찾아서 인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 시기에 평가위원이 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일반적으로 원장과 서기)에게 선물과 돈을 준다. 이러면 직무보고를 한 후 최종 순위가 앞으로 된다. 이것은 ‘잠재적인 규칙’이다. 돈을 주고 선물을 주는 것은 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가위원을 찾는 것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동료에게 끌려 차례로 인사를 했다. 결과 낙선했는데 이것도 예상했던 일이다. 본래 1년 만에 직함 승진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나도 마음에 파동이 없었고 자신이 명리에 담담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런 결과도 상관없었다.
2018년 나는 또 신청했는데, 평가점수는 6번째다. 이번에 나는 깨달았다. 평가위원을 찾아 인사를 하는 것이 잠재적인 규칙이지만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다. 대법제자는 잠재적인 규칙으로 가면 안 되고 마땅히 정정당당하게 정상적인 절차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한 명의 평가위원도 찾지 않았다. 직무보고 후 두 번을 합산해 점수를 준다. 나는 총점수가 11번째였는데, 모두 14명이 직함 승진 평가에 참가했다. 나는 틀림없이 승진하지 못할 것이다.
겉으로 보면 2017년과 같이 나의 과학연구 점수가 적고 또 평가위원과 인사를 하지 않아 두 번째 평가점수는 뒤로 밀렸다. 순위는 6번째에서 11번째로 밀렸는데, 이번에는 실망했고 괴로웠다. 갑자기 이전에 지불한 것이 모두 제로가 된 것 같아 부정하게 되었는데, 나처럼 과학연구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과학연구의 뒷받침이 없는 의사는 이후에 직함 승진에 참가할 수 없는가?
나는 대법을 수련하고 있고 선택한 것은 가장 정확한 한 갈래 길이다. 중의고적을 연구하고 의료수준을 높이고 환자를 위해 책임지고 상사가 배치한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업무를 한다. 이것은 모두 수련이고 노력하는데 왜 승진할 수 없는가?
생각해보니 이것은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일과 자신이 선택한 생활 방식은 모두 직함 승진하려는 것인가? 모두 아니다. 그러면 왜 그런가? 법을 실증하기 위해 가장 바른 길을 걷는 것이다. 이 길은 나의 수련의 길이다. 내가 처한 환경은 내가 도를 닦는 장이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되도록 법의 이 한 층의 표준에 따라 한다.
대법제자로 사부님께서 나에게 도를 닦는 이런 장을 주셨다. 자신은 주변의 동료와 환자에게 진상을 모두 알리지 않았다. 이 장을 바른 장으로 바꾸지 못했고 수련의 장으로 바꾸지 못했다. 무조건 잘하지 못했고 합격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법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요구해야 하고, 직함에 승진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수련인에 대해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풀렸다.
2019년 3월, 우리 과에 한 동료도 직함 승진하려 했다. 그는 ‘3.8모범자’로 평가됐고 성급 과학연구 성과 2등상을 받았다. 나는 은근히 속으로 기뻐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찾아보았다. 이런 기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기뻐하지 않는가? 자신의 작업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는가? 자신이 얻지 못해 직함 승진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하는가? 부러워하는가? 아니면 질투인가?
환자를 관리하는 동시에 과학연구도 하고 과제도 하는 것이 지금 의료계의 큰 환경에서 승진하는 가장 큰 자본이다. 그러나 정력을 크게 소모해야 한다. 내가 한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면 반드시 법공부와 수련의 시간을 지체하고 더욱 큰 정력으로 세 가지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것이 없으면 상사는 당신이 환자만 돌볼 줄 알고 다른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부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가장 사소한 일을 하도록 배치한다. 이런 일은 흔히 많은 정력을 소모해야 하는데 자신의 직무 제고와 직함 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상사의 비평을 들어야 하고 동료의 원망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기 싫어한다.
이 과에서 8년간 있으면서 이런 일은 모두 내가 감당해야 했다. 속으로 나도 고민이 많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하니 이것도 수련의 과정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소화상은 고생을 겪을수록 더욱 쉽게 개공하며, 그 대화상은 향수(享受)할수록 개공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업력의 전화(轉化)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1] 그러므로 내가 하는 것은 ‘불을 때고 밥을 짓는 소화상’이 하는 일이다. 그러면 안심하고 그것을 잘 하면 된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한 작업방식은 문제가 없다. 나의 길은 바른 것이다.
부러워하고 걱정하면 직함 승진은 더욱 불가능하다. 나는 이미 이런 명리를 담담하게 보았고 두 번의 직함 승진을 경험했다. 자신은 이미 직함을 아주 담담하게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왜 기뻐하지 않는가? 자신에게는 아직 질투심이 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나는 질투심을 닦아버렸는데 왜 아직 질투심이 있는가?
자세히 안으로 찾아보니 내가 기뻐하지 않는 근원을 찾았다. 이런 외재적인 ‘빛나는’ 영예가 없으면 기타 연구생 친구와 지도교사는 나에게 생각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대법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런 걱정은 보기에 번지르르하고 마치 대법을 위해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자신의 명리에 집착한다. 단지 이런 마음은 깊이 숨겨져 있다. ‘내가 명리를 얻지 못하면 세인이 대법에 대한 생각이 있게 된다’는 핑계로 덮어 감춘 후 ‘대법’을 구실로 삼는데, 본질은 자신의 명리에 대한 집착심에 있다.
밤에 법을 외울 때 이런 집착심을 똑똑히 보았다. 법을 외울 때 사부님께서 갑자기 나의 머릿속에 일념에 넣어주셨다.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생명이 세간에 온 근본 목적과 의의의 전부이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대법을 수련하는데 쓰고 동시에 세인이 진상을 알게 하고 위타하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나는 마땅히 한없이 행복하고 자랑스러워야 한다. 세인(나의 친척과 친구, 나를 관심하는 연구생 지도교사를 포함해)은 세간의 명리를 얻지 못해도 대법에 오해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명백한 일면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속에 집착이 있어서 세인이 오해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을 똑바로 알고 나는 단번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명리에 대한 집착심을 한 층 제거한 것 같다. 위대하신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수련의 길에서 또 조금 승화하게 해주셨다.
눈 깜빡할 사이에 2019년 5월이다. 세 번째 직함 승진을 신청했다. 올해 신청 시간은 단지 3일밖에 없다. 나는 마지막 날 정오에 우연히 알게 됐고 퇴근하면 신청이 마감된다. 이번에는 자신의 마음가짐이 아주 좋고 승진할 수 있는 것에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건이 구비되면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시험 삼아 신청했는데 막 마감이 된다는 소식을 들은 후 재빨리 진행했다. 인터넷으로 신청한 뒤 자료를 준비하고 인쇄해서 전했다. 퇴근 순간에 겨우 신청했다. 마치 막차를 타는 느낌이었다.
5월 21일 점수가 발표됐는데 올해 여전히 6번째다. 그러나 앞에 지표를 차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기에 5번째와 같다. 신청인은 모두 14명이다. 만약 5명의 지표가 있으면 승진 희망이 있다. 5월 23일 오후 직무보고를 했다. 나를 관심하는 동료는 작년에 나의 순위가 6번째에서 11번째로 떨어진 주요원인은 평가위원을 찾지 않고 상사와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번에 꼭 상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누구는 이미 상사를 찾아 식사 접대를 하고 누구는 서기를 찾았고 누구는 원장을 찾았다고 했다. 서기와 원장을 찾지 않더라도 과 주임을 찾아 좀 말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자신을 과주임에게 돌봐달라는 것이다.
나의 인생, 우주 중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이다. 수련인이 속인을 청해 도움을 청할 수 있는가? 나의 마음은 평온하고 태연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대법 표준에 따라 가늠하고 대법에 따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걸어온 길은 세인, 후세인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 우리는 세인과 후세인에게 가장 바른 길을 남겨야 한다. 그러므로 대법에 따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웃었다. 동료에게 말했다. “대법에 따라 하면 모두 것이 가장 좋은 배치입니다. 나의 것은 결국 나의 것이고 나의 것이 아니면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에도 여전히 누구에게도 인사를 드리지 않았다.
5월 23일, 직무보고 후 결과가 나왔다. 최종 8번째로 됐다. 그러나 앞에 지표를 차지하지 않는 것이 둘 있어 6번째와 같았다. 과 주임은 전화를 걸어 말했다. “다른 사람은 직무보고를 하고 나면 순위가 앞으로 가는데 너는 왜 매년 뒤로 가는가?” 그 뜻은 나에게 사람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평온하다. 이 모든 것을 중히 보지 않았다.
5월 27일 인사과에서 직함 승진을 희망하는 사람은 성 통합시험 참가에 신청하라고 했다. 시험은 승진에서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만약 시험에서 180점을 얻지 못하면 순위가 앞에 있어도 승진할 수 없고 1점도 적으면 안 된다. 이런 상황은 아주 드물지만, 간혹 있었다. 나는 물어보고 시험에 참가했다. 직함 승진에 참가한 사람으로 말하면 시험에 참가한 것도 큰 행운이다. 올해 시험에서 관문을 넘기면 올해 승진할 수 없어도 내년에 우선 고려 대상이 된다.
마음 깊이 감개무량한데, 사부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전체 직함 승진은 바로 하나의 과정이다. 과정에서 시험은 내가 명리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걸음마다 대법의 표준에 부합되는가, 속인을 의지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확고하게 신사신법 할 수 있는가를 본다. 만약 표준에 도달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배치를 주시고 표준에 도달한 보답이 있다.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세간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이 과정에서 제자가 제거해야 할 집착심을 제거해 주시고 평소 깊이 숨겨진 사람 마음을 폭로해 주신다. 매 과정과 단계를 통해 제자가 자신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을 심사하게 하고 법의 표준으로 그것을 가늠하게 하고 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즉시 바로잡게 한다. 이것이 수련의 과정이다.
7월 21일 시험을 마친 후 2순위에 있던 한 동료가 시험에 불합격했다. 나는 6순위에서 5순위로 올라갔다. 만약 올해가 작년과 마찬가지로 5개 지표라면 나는 마땅히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 몇 개 지표인지 정하지 않았고 최종 결과가 없다.
이 일을 안 동료는 대법의 신기함을 칭찬했고 덕행의 중요성을 보았다며 최종 결과가 나오면 밥을 사라고 말했다. 어떤 결과이든지 내 마음속은 태연하고 평온하다. 밥을 살 수 있다. 목적은 밥을 먹을 때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는 것이고 그녀들에게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은 유일한 정확한 표준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이상은 자신이 이 한 층에서 깨달은 것이고 법에 부합되지 않은 점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4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17/4039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