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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수련 속에서 순정으로 나아가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우리 집은 자매가 셋이다. 나와 언니는 할머니께서 키워주셔서 초등학교에 가서야 부모님 곁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성격이 급해 쉽게 화를 내셨고, 성격이 거칠고 욕을 잘하시며 손찌검도 하셔서 어머니는 항상 매를 맞았다. 환경의 영향으로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철이 들었고, 아주 고집스럽고 까탈스러우며, 체면을 중시하고 남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며 쟁투심이 강한 성격이 됐다.

1999년 나는 회사에서 파룬궁 수련생 세 분을 알게 되면서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그런데 수련한지 한 달 만에 베이징에서 1만 명이 청원하는 ‘4.25’일이 발생했다. 그 시기 분위기는 점점 긴장되어 주변 수련생들이 잡혀갔고, 또 어떤 수련생은 수련을 포기하거나 일부 수련생은 책마저 당국에 제출했다. 나는 법을 늦게 배워 아는 수련생이 많지 않았고 연락하는 수련생도 점점 적어졌다.

1. 가정의 난을 지나다

내가 법 공부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외부환경의 방해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가정환경에서 심하게 방해를 받았고 온 가족이 내 수련을 반대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우리 집은 풍비박산됐고 가족 중에 몇몇 어른들이 박해로 사망했기에 부모님들은 사당(邪黨: 공산당)을 무척 두려워하셨다. 대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려고 어머니는 회사에 와 나를 감시했고 출퇴근할 때는 남편이 데려다주고 마중을 나왔다. 나는 그들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TV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좋은 것을 알지만 좋아도 연공하지 말라고 했다. 가끔은 그들 때문에 나는 화가 나서 계속 울었는데 그들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수련환경이 파괴됐다. 그 당시 아이는 어렸고 나는 또 출근해야 해서 천천히 느슨해졌다.

2002년쯤에 나는 거리에서 한 수련생을 만났고 나에게 아직도 대법을 수련하는지 물으면서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이 있는데 필요한지 물었다. 나는 필요하다고 했다! 사부님의 설법을 배우고 나는 전부 이해했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리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심에 감사드렸다. 사부님의 정법 형세를 알고 나는 잘 수련해 정법 노정에 따라가기로 했다. 나는 매일 시간만 있으면 진지하게 법공부를 했다. 법공부 중에 남편이 퇴근해 나는 급히 대법 책을 감췄는데 처음에 시어머니가 이를 보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두 번째로 남편이 돌아왔을 때 내가 책을 감추는 것을 보고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책을 보려면 떳떳하게 봐야지, 왜 몰래 보니?” 나는 듣고서 이는 사부님께서 시어머니의 입을 통해 나를 점화하시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 당시 나는 생각했다. ‘맞아. 이 법은 얼마나 좋은데 내가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왜 정정당당하게 배우지 못해!’ 나는 그때 남편에게 말했다. “저는 대법을 배울 겁니다.” 남편의 표정은 심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법공부만 하면 안 되고 수련생들과 같이 대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붉은 종이와 노란색 염료, 붓을 샀다. 붉은 종이를 길게 잘라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를 썼다. 쓰고서 바닥, 침대, 소파에 놓고 말렸다. 수련생이 나에게 잘 썼다고 말하면서 가져가서 붙였고 계속 쓰라고 했다. 하루는 마침 쓰고 있는데 남편이 일찍 퇴근해 돌아왔고 나는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 그는 화가 났고 나에게서 종이를 빼앗다가 몇 장이 찢어졌다. 남편은 착하고, 성실하며, 듬직하고, 영리하며, 교양이 있는 사람인데, 결혼한 이래 그가 항상 나에게 양보를 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좀처럼 언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가정과 아이를 위해 수련을 포기하라고 했다. 관을 넘을 때임을 알고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아주 고집스러웠고 나에게 대법과 그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만약 나에게 반드시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대법을 선택할 것이고 대법은 내 생명의 뿌리임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아주 실망했다고 말했다.

또 한번은 내가 법공부를 하는데 그가 보게 됐고 그 당시 마침 큰 비가 내렸는데 그는 빗속에 서 있었다. 내가 그렇게 전화해도 그는 받지 않았다. 나는 시험이 또 왔다고 생각했다.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아야 했다. 나는 책을 들고 진지하게 법을 보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 그는 스스로 집에 돌아왔고 그 며칠 동안 가정의 분위기는 아주 긴장됐다. 그는 몇 차례 나와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모두 수련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하루는 그가 나에게 이혼하자고 했고 나는 평온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잘못한 일이 있고 당신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했다면 내가 고칠게요. 당신 누나에 대한 존경이 부족하다면 내가 고칠게요. 가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고칠게요. 아이에 대해 교육을 잘하지 못했다면 내가 고칠게요. 만약 이상의 이런 일들을 내가 모두 아주 잘했는데 단순히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나와 이혼한다면 그럼 나는 바로 서명할게요. 그것은 당신이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흑백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듣고서 바로 나가버렸고 다시는 이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2.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하다

2003년 나는 매장 하나를 임대해 식품을 팔았고 나중에 또 다른 쇼핑몰로 매장을 확장했다. 장사는 아주 잘 됐다. 어떤 고객은 제품을 사지 않고 나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 익숙해진 후 나는 대법 진상을 그들에게 알려줬다. 남편은 출근해야 해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나는 바빠서 쩔쩔맸다. 늘 밥도 먹지 못했고 법공부도 못했으며 아이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아이는 집안의 돈을 몰래 가져가서 PC방에 갔고 숙제도 하지 않아 남편이 두 번이나 선생님에게 불려가서 꾸중을 들었다.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연공도 하지 못해 내 마음은 늘 초조하고 화를 잘 냈다.

2007년 나는 매장을 전부 임대하고 쉬려고 했다. 남편은 처음에 동의하지 않았고 나는 남편을 설득해 임대를 준비했다. 한 동창생이 내 매장에 여러 번 왔었고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것을 봤는데 나중에 임대하려면 본인에게 달라고 했다. 나는 그녀 입장에서 이 매장을 인수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그녀에게 최근 2년간 장부를 보여줬다. 그녀는 가족과 상의한 후 이 매장을 인수하기로 했다. 금액을 이야기하고 나는 그녀를 도와 제품을 받아주었고 그녀에게 비법도 전수해줬다. 돈을 지급할 때 그녀는 나에게 5천 위안(약 86만 원)을 적게 줬다. 그리고 나에게 기어코 차용증을 써주겠다고 했다. 나는 동의했다. 갓 시작해 두 달간은 아주 장사가 잘됐지만, 그 후부터는 잘되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일부 고객들이 나만 찾고 나를 보지 못하자 제품을 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객을 성심껏 대하고 제품을 사든 사지 않든 따뜻하게 인사하며, 오늘 제품을 보러 온 고객이 내일은 제품을 사는 고객이 되며, 제품도 정품이고 가격이 적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품질을 일정하게 보증하고 단골을 잘 잡고 새로운 고객도 잘 잡아야 하는데 내 고객 관계도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장사가 안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찾지 않고 오히려 나를 비난했다. 또 동창생들에게 내가 그녀를 속였다고 말했는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그 며칠 동안 나는 화가 나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체면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다. 수련인으로서 이런 일에 부딪히는 것이 우연일까?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실과 득의 관계를 말씀하셨다. 나는 안으로 찾은 후, 자신에게 아주 강한 이익을 구하는 마음, 원한심, 체면, 쟁투심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도 각종 마음을 제거해야 할 때이기에, 나는 법으로 대조해 어떤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닦고 자신을 바로잡을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굳히니 바로 홀가분해져서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다. 남편의 뜻은 이 장사를 우리가 다시 인수해 이어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수련생들과 이 일을 교류했고 수련생은 다시 인수하면 내 수련에 영향을 줄 것이고 시간이 점유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치가 있다고 느껴 다시 인수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나는 이 일에서 마땅히 잘 처리해야 함을 느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200만 위안(약 3억 4천만 원)이 있는데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면 이 돈을 당신이 가질 수 있는데 당신은 가지겠는가?’ 나는 대법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결정을 내리고 그녀에게 2만 위안(약 344만 원)을 돌려주고 그녀가 나에게 써준 차용증을 그녀 앞에서 찢어버렸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대법제자이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고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주 감동했고 내가 이렇게 할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내 마음은 태연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동창들도 탄복했다.

그녀에게 돈을 준 이 일을 나는 사전에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는 알게 되어 매우 화를 냈다. “왜 수고스럽게 벌어온 돈을 그녀에게 그냥 주지? 우리가 그녀를 속인 것도 아니고 그녀가 스스로 매장을 인수한 것인데!”라고 말했다. 남편은 그녀를 찾아가 따지려 했고 나는 막아서며 말했다. “우리는 이 매장에서 몇 년간 장사했고 아주 순조롭게 돈도 벌고 집도 샀어요. 만약 처지를 바꿔 우리가 인수했는데 손해를 보고 있다면 우리가 무슨 마음이겠어요! 그녀에게 좀 돌려주면 어때요. 그녀가 우리의 매장을 인수해서 손해를 보고 있는데 나도 아주 괴로워요.” 남편은 그녀를 찾아가진 않았지만 아주 오랫동안 화를 냈다.

3. 쟁투심을 버리고 노인을 선하게 대하다

시어머니는 산책하다가 넘어져 허리 디스크가 빠져나왔다. 의사는 시어머니의 연세가 너무 많아 치료할 수 없으니 집에서 요양하라고 했다. 둘째 시누이는 우리 집 아래층에 사는데 평소에는 출근하지 않다가 시어머니가 병으로 몸져누워 보살필 사람이 필요하자 얼른 일자리를 찾아 출근했다. 셋째 시누이는 점심에 시어머니께 식사를 준비해 주다가 둘째 시누이가 오지 않는 것을 보더니 그녀도 오지 않았다. 큰 시누이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는데 아이가 대학을 갔다. 큰 시누이는 아이의 학비를 마련해야 해서 일하느라 오지 못했다.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출근하지 말고 어머니를 돌봐요.”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이기에 그녀들처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계속 우리와 함께 생활했는데 그것은 얼마나 큰 연분인가. 나는 시어머니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시어머니의 병은 신경성 통증이라 앉을 수도 없고 엎드릴 수도 없었으며 또 그녀를 따라서 다녀야 했다. 지치면 앉았다가 다시 걸었고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녁에 통증으로 시어머니는 잠도 못 주무셔서 나는 항상 위로해드리고 배려해드리며 맛있는 밥과 반찬을 만들어드렸다. 어떻게 고생스러워도 나는 항상 싱글벙글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1] 나는 시어머니께 ‘‘파룬따파하오’를 읽으라고 알려드렸다. 내가 사부님 설법을 들을 때 시어머니도 함께 들었다. 시어머니의 통증은 적지 않게 완화됐다. 남편은 내가 정성껏 시어머니를 돌보는 것을 보고 무척 감동했고 누나들은 모두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웃의 몇몇 사람들은 내가 대법을 배운다는 것을 알고 모두 칭찬했다.

한번은 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10분 남짓 한 시간 동안 시어머니께서 나를 대여섯 번을 부르셨는데, 나는 모두 기쁘게 그녀를 도왔고 말투도 부드러웠다. 아이가 말했다. “어머니 진짜 대단하세요.” 나는 말했다. “네 어머니가 누구인데!” 아들은 인정하듯이 웃었다.

나도 잘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셋째 시누이가 여러 번 우리 집에 와서 트집을 잡으면서 소란을 피웠다. 나는 그녀를 싫어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고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 집에 오기만 하면 시어머니가 사람을 너무 괴롭힌다고 혼냈다. 한번은 시어머니께 하는 말이 너무나 거북해 나는 단번에 화가 나서 그녀와 다투고, 그녀를 내쫓고는 그녀에게 우리 집에 되도록 오지 말고 그녀를 환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내 쟁투심 때문이다. 그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체면 때문에 그녀가 큰 소리로 남을 욕하는 것이 창피했다.

나는 그 당시 내 쟁투심이 마치 비수 한 자루, 양날의 검처럼 남을 해치는 동시에 또 자신도 해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이 내가 아니고 사당의 독소임을 알았다. 나는 그것을 뿌리째 뽑아서 해체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매년 함께 앉아서 식사할 때 마음이 평화롭고 시누이들에 대해 예전 같은 원한이 없고 더는 화를 내지 않는다.

4. 두려움을 제거해 장쩌민 고소에 참여하다

2015년, 자료점에 한 번 갔는데 수련생 몇 명이 바쁘게 고소장을 쓰는 것을 보았다. 일부 수련생은 정리를 돕고 일부 수련생은 우편 용지를 적고 있었다. 나는 마땅히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개인의 진실한 정보를 적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내가 써야 하는지 계속 고민했다. 박해당했던 수련생이 쓰는 것은 되지만 나는 아직 박해받지 않았는데 무엇을 쓸까? 사실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이고 진실한 정보를 적으면 박해를 당할까 봐 두려웠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천상변화는 만약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면, 속인 사회에 어떤 상태도 가져다줄 수 없으며, 그것을 천상변화라고 할 수도 없다.”[1]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이고 대법 속의 한 개 입자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천상이 여기까지 변화했고 또한 사부님의 정법 형세가 여기까지 온 것인데 내가 어찌하여 스스로 숨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자아를 보호하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내려놓아야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2] 나는 나의 공간장이 무척 깨끗해짐을 느꼈다. 열심히 고소장을 쓰기 시작했으며 다 적은 후 수련생이 나를 도와 정리했다. 수련생이 고소장을 보더니 선하지 못하고 쟁투심이 있다고 말했다. 나를 도와 수정해 주었고 내가 보니 아주 좋게 느껴졌다. 개인 정보를 적은 후 나는 그 당시 무척 기뻤다. 두려운 마음이 조금도 없었고 이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알았다.

고소장을 우편으로 보낸 것도 아주 순조로웠고 또 답장도 순조롭게 받았으며 여전히 두려움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지역구 서기가 나를 보고 청원 편지를 쓴 적이 있는지 물으면서 상부에서 명단을 지역사회에 보내줬다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렇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고 우리가 왜 청원 편지를 썼는지에 대해 알려줬다. 나중에 나는 그녀를 도와 삼퇴(중국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해주었고 더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의 나는 이기적이고 오만하며 말할 때 항상 상대방 위에 있었다. 약삭빠르고 남을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고 깔보며, 좋은 말만 들으려 하고 상대방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았다. 마치 고슴도치처럼 온몸이 가시투성이였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다. 아주 많은 것들이 사당 문화였다. 나는 이런 것들을 제거하고 그것들을 없애야 했다. 대법의 가르침 하에,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수련을 배웠다. 모순이 발생할 때 우선 안으로 찾았고 자신에게 어떤 사람 마음이 있는지 찾고 그것이 내가 아님을 인지하고 그것을 빨리 제거해버리고 제고해 올라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 인심이 무거우면 바다 건너기 어렵도다”[3]

사부님께서는 온몸이 업력투성이인 나를 타락한 세속에서 건져내 깨끗이 씻고 시시각각 보호해주셨다. 사부님께 대한 감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오로지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해야 비로소 사부님께 부끄럽지 않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경고하는 말(警言)’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2-심자명(心自明)’

 

원문발표: 2020419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19/4038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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