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에 대해 잘 몰랐고 다만 어머니가 수련 후 너무 친절해지시고 혈색도 좋아지셔서 나도 배우고 싶었다. 대법 서적을 본 후 이것이 바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거라고 느꼈으며 어머니와 함께 법을 학습하고 연공했다.
그때의 나는 수련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퇴직할 때쯤 그때 수련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배우지 못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신경문을 발표하셨으며 그중에 ‘퇴직하여 다시 연마(退休再煉)’를 읽고 문득 사부님께서 나를 보고 하신 말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열심히 수련했으며 시간만 있으면 연공하고 법공부를 했고 만약 우리 집이 법 학습장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수련생들이 우리 집에 와서 법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때는 몇 시부터 단체 연공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날도 밝기 전에 수련생들이 왔으며 매일 아침 연공을 하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웠다. 금방 법을 얻었을 때 꿈을 꾸었는데, 조상의 묘지에서 파란 연기가 피어올라 많은 사람이 와서 구경하고 부러워하면서 그들은 “우리는 누구인가 했는데 바로 너였구나”라고 말했다.
그 세월 동안 정말 더듬더듬 걸어왔고 때로는 조금 잘하고 때로는 법에 있지 않았다. 1999년 7·20 중공의 박해 전까지 법공부는 우리 집에서 했으며 신기한 일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련 전의 나는 유난히 겁이 많아서 밤에 밖에 나가지도 못했지만 수련한 후에는 전혀 겁을 먹은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저녁 수업이 없다고 하셔서 나는 재빨리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제시간에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석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나를 잠시만 기다려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일념에 사부님께서 도와주셨고 내가 법 학습장에 도착하니 아직 법공부를 시작하지 않았고 녹음기 고장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며 내가 도착하자 고쳐졌다. 나는 깊이 감동해 사부님께 감사드렸으며 이런 신기한 일들은 아주 많다. 중학교 다닐 때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면서 금방 폭우가 쏟아질 기세였다. 나는 쏜살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사부님께 마음속으로 ‘제가 집에 도착한 후에 비가 내리면 좋겠습니다’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집에 도착하자 폭우가 내렸다. 7·20 이전에 나는 비를 거의 맞은 적이 없었고 매번 피할 수 있었다.
4·25 때, 나는 톈진에서 공부했지만, 이 일을 몰랐고 수련생들과 함께 상황을 설명하러 가지도 못했다. 학교로 돌아간 후 어느 날, 공청단 서기가 재판을 하듯 우리 반에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는 학생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평소에 겁이 많았지만 바로 일어서서 용기 내어 대법의 좋음을 알려주니 친구들은 손뼉을 쳐줬다. 마음속의 큰 시름을 던 느낌을 받아 아주 홀가분했으며 계단 내려갈 때 몸이 가벼워 사부님께서 격려해 주셨음을 알았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숙소에서 법공부를 몰래 하다가 나중에는 떳떳하게 했다. 처음에는 좀 두려웠으나 마음을 굳건히 하고 대법을 첫 자리에 놓았다. 다른 사람이 무슨 책을 읽는지 물으면 나는 대범하게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해주니 동창들은 모두 나를 이해해주고 숙소 동창들도 나를 잘 보호해줬다. 나는 나중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만들어 선전판 유리에 부착했다. 처음에 자료가 없을 때, 나는 수기로 쓴 후 복사해서 여기저기 배포했다. 방학 때 다른 수련생 집에서 많은 자료를 받아와서 학교에 가서 부착하고 배포했다. 매번 자료를 부착하는 것은 심성 시험이었다. 마음가짐이 좋고 머리에 잡념이 없으면 자료가 훼손되는 일이 없으며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효과도 나쁘고 금방 뜯겨버린다.
내가 졸업을 앞두고 언니가 우리 학교 연구생으로 입학해 우리는 언니의 숙소에 작은 자료점을 만들었다. 우리는 스스로 자료 인쇄를 시작했다! 보통은 언니가 자료를 다운로드해 인쇄하고 내가 배포했다. 언니가 몇 번은 자리를 비워 나에게 자료를 다운로드하고 인쇄하라고 했는데 나는 몹시 어렵게 생각했으며, 태어날 때부터 겁이 많아 인터넷 접속하는 것도 두려웠고 두려워할수록 사악은 나에게 무서운 정경을 만들어줬다. 어떨 때는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고 어떨 때는 접속했지만 자료를 다운로드하지 못했다. 어떨 때는 주변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울려도 나를 향해 오는 것처럼 느껴져 지레 포기했다. 그때 나는 언니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있어 두려움을 돌파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따로 떼어 놓으셨고 대학 졸업 후 나와 언니는 서로 다른 지역으로 갔으며 나는 마침내 두려움을 버리고 집에 작은 자료점을 만들어 자급자족했다. 나는 자원이 좀 낭비되어,다른 사람에게도 자료를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셔서 우연한 기회에 현지에서 수련생을 만나, 마침 그들도 자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한두 명에게 공급하기 시작해 지금은 열 명 남짓한 수련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자료를 제작하는 과정도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이며 다른 수련생들과 협조하면서 마찰도 생기고 오해도 있을 수 있다. 어떨 때는 기기가 고장 나 자료를 잘 제작하지 못했지만, 수련생들은 나에게 돈을 주지 않아서 내가 고의로 그랬다고 오해받을 때도 있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변명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변명하지 않고 안으로 찾으면서 문제점을 찾으면 속이 확 트였다. 자료를 제작하면서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을 때도 있었으며 어느 한 번은 TV를 보면서 자료를 제작하다가 자료의 질이 떨어져 수련생들에게서 꾸지람을 받았다. 자료 제작은 순정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며 마음속으로 자료 하나하나가 내 집착심 때문에 사람 구원하는 효과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고, 매 하나의 자료가 최대한의 작용을 해 세인을 구원하고 좋은 사람, 인연 있는 사람만 볼 수 있고 나쁜 사람이 보지 못하기를 바랐다. 어떨 때는 대법의 이치를 알면서도 자료 제작 시 마음 상태가 불순하고 보통 사람의 마음에 이끌리기도 해서 지금 생각해보니 부끄럽고 사부님께 죄송했다.
결혼 후 남편은 수련하지는 않지만 내 수련을 아주 지지했다. 그는 수련생들이 매주 우리 집에 와서 법공부하는 것에 동의했으며 우리 집에서 이렇게 법공부를 한 지 10여 년이 됐다. 내가 임신했을 때, 수련생들은 처음에는 나를 돌봐주려고 우리 집에서 법공부를 했다. 나중에는 법을 배우는 수련생의 가족이 때때로 반대해 우리 집에 왔으며 결국 우리 집이 법공부 장소가 된 지 이렇게 여러 해가 됐다. 수련생들에게 우리 집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심성을 시험하는 일도 있었다. 수련생들이 우리 집에 법공부를 하러 오겠다 해서 나는 모든 일을 미루고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기다렸지만, 수련생들이 오지 않아 화가 치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과시심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우리 집이 깔끔한 것을 보여주고 싶은 나쁜 마음이 작용한 것이다. 어떨 때는 주변 상황에 따라 두려워하고 사악이 나를 주시하지 않는지 걱정되는 마음이 생기면 수련생들에게 발정념을 많이 하라고 알려줬다. 나중에 수련생들은 나를 위해 고려해 우리 집이 자료점이니 법공부를 하기에는 부적합하다며 다른 수련생 집으로 옮겼다. 우리는 매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지속해서 법공부를 했으며 법 학습장에서 법공부를 하는 것은 매우 좋았다. 때로는 자신의 안일한 마음 때문에 게으름을 피웠지만, 법공부를 적게 하면 정말로 세 가지 일하는 것에 영향을 주었다.
나 자신에게는 아직도 좋지 않은 안일심, 색욕심, 과시심, 두려움, 명리심, 질투심 등이 있으며 이렇게 오랫동안 제대로 수련하지 않고, 사부님께 정말 죄송한 일이 많은 것 같다. 앞으로 꼭 노력해 정법 노정에 따라가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겠다!
원문발표: 2020년 4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2/4032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