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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 법을 얻은 후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올해 47세이며 동북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1996년 대학시절 운이 좋게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났습니다. 법을 얻은 과정은 말하자면 다소 신기합니다. 어느 날 새벽에 저는 매우 또렷한 꿈을 꾸었습니다. 큰 부처님이 하늘에 서 계셨고 그 옆에 큰 절과 같은 궁전이 있었습니다. 그다음 저는 날아올랐고 날아서 궁전 안으로 갔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또 같은 꿈을 꿨습니다. 깨어난 후, 저는 ‘내 인생에서 큰일이 일어날 거야.’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 친구의 소개로 저는 인연이 있는 불가(佛家)의 고차원 수련대법인 파룬따파를 알게 되어 반본귀진(返本歸眞)의 길에 올라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법륜’ 보서(寶書)를 통독하고 저는 자신의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진선인(眞·善·忍)’ 우주의 진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며, 자신을 잘 수련해 사회를 이롭게 하고 마지막에 자신의 진정한 천상의 집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출가할 필요 없이 속세에서 수련해도 원만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시에 정말 사부님께서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니, 소문을 들은 자는 찾고, 얻은 자는 기뻐하는바”[1]라고 말씀하신 바와도 같았습니다.

졸업 후, 저는 남부 지방의 한 국영기업에 취직했습니다. 일을 부지런히 하고 성실하게 하면서 좋고 싫은 것을 까다롭게 가리지 않았습니다. 출장경비를 청구할 때에는 저는 어떤 비용은 청구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으며 회사가 재무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탐내지 않고 이익을 점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자신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 선의로 남을 도왔습니다. 책임자와 동료들은 제 업무와 사람 됨됨이를 매우 인정했습니다. 원래는 1년 동안의 실습 기간이 있었지만 저는 반년 앞당겨 정직원이 됐으며 임금도 올랐습니다.

그해에 회사에서 채용한 대학교와 전문대 졸업생은 20여 명이 있었지만 저는 유일하게 먼저 정직원이 됐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비로소 흉금이 넓어지고 이 일체를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저도 관찰을 통해 제 곁의 수많은 파룬따파 수련자들은 모두 저처럼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江澤民) 깡패 집단이 파룬따파와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10월, 저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사당(邪黨)의 ‘행패를 부리다’라는 죄명으로 불법으로 한 달 가까이 갇혔습니다. 직장에서는 ‘상급 책임자들’의 압력으로 저를 공직에서 해고했습니다. 제가 회사를 떠나던 그 날, 작업장의 주임, 사무실 동료들은 모두 울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들은 제가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작업장의 주임은 저 같은 좋은 사람을 더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탄식했습니다.

1년 후, 저는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중공에 의해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2년 넘게 당했습니다. 노동교양소 내에서 사당에 의해 세뇌당한 경찰은 때리고 욕하며 체벌을 가하고 밤을 새우게 하고 협소한 방에 가두며 얼리고 굶기며 노역을 시키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잔혹하게 대법제자를 박해했습니다. 그들이 신앙을 포기하고 ‘잘못’을 뉘우치며, ‘폭로’와 ‘비판’을 하도록 강요했는데 TV에서는 오히려 ‘적당한 봄바람과 알맞은 비(春風化雨)’와 같은 감동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원)는 “전향하지 않으면 화장해버리겠다.”라고 했습니다.

저도 섣달그믐날 머리 위로 두 손을 들어 올려 수갑에 채워져 노동교양소 숙소의 복도 철창 틀에 매달려 연속 7일 밤 동안 꼬박 서서 잠을 자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노동교양소에서 나오던 날, 공안국 경찰관은 경찰차를 운전해 저를 직접 기차역에 데려다줬고, 제가 북부로 가는 열차를 타는 것을 감시했습니다. 회사에도 가지 못하게 했고 모든 개인 물품은 한 가지도 갖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털터리가 되어 북쪽의 도시로 되돌아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대법제자의 책임은 개인의 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이자 진정한 대법제자의 위대함이다.”[2]

버스 정류장에서 진상을 알리다

사당의 음험하고 악랄한 수법은 바로 그것이 한편으로는 대법을 먹칠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이 대법의 저작물과 진상 자료 정보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당이 세상을 속이는 거짓말에 세뇌당해 사상 속에서 파룬궁(法輪功)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생명은 가련한 생명이며 미래가 없는 생명입니다.

‘9평 공산당’ 책이 발표된 후, 공산당을 탈퇴하는 거센 흐름이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세인이 진상을 알고 ‘삼퇴(공산당, 공산주의청년단,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하게 하고 대법제자가 서약을 실천하고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것은 역사적 사명입니다.

처음에 ‘삼퇴’를 권유하는 일은 저에게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는 두려움과 체면 등으로 가로막혀 입을 열지 못했으며 자신의 변변치 못함이 한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 개인적으로는 수련 중에서 법 공부를 멈추지 않고 지속해서 지켜나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당신들이 법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대법 일을 할 때 많은 일 또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잘하기도 어렵다. 만약 당신들이 법 공부를 잘하면 많은 일이 하기가 쉽고 문제도 잘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법 공부를 해야 한다.”[2]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오늘날의 세상 사람들이, 정말로 절대다수가 모두 고층차에서 법을 얻으러 온 것이라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들은 그저 아주 간단한 생명이 아니다.”[2],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를 구도했다면 당신은 한 신(神)을 구도한 것이 아닌가? 아주 높은 신(神)일 수도 있는데 그에 대응되는 것은 더욱 방대한 천체와 무수한 중생이다. 그것은 어떤 위덕(威德)인가? 이것이 간단한 문제인가? 오로지 대법제자에게만 이처럼 중대한 사명이 부여될 수 있다.”[2]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게 하는 것은 바로 정법에 필요한 것이며, 우리는 무조건 속인의 관념을 내려놓고 노력해 자신의 사명을 완성해야 합니다.

처음 다른 사람에게 탈퇴를 권유할 때 저는 매우 긴 시간을 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매번 두려움과 체면을 내려놓고 조금씩 알렸으며 서서히 경험이 쌓였습니다. 그가 마침내 ‘삼퇴’를 승낙했을 때, 저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드디어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자신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밍후이왕에 ‘삼퇴’를 권하는 것에 관한 글에서 좋은 문구와 단락을 베껴 써가며 수련생들이 이야기한 단계에 따라 이야기했습니다. 남의 것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경험과 방법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 알아챌 수 있었고 상대방이 무엇에 가로막혀 있는지 똑똑히 본 다음 다시 그것에 맞춰 이야기했습니다.

‘삼퇴’를 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법 공부를 중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그 말에 힘이 생겨 그의 후천적인 관념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자비롭고 선한 마음이 있어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효과가 좋아질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알리는 것 외에 저는 또 출퇴근길에서도 알립니다. 2008년부터 시작해 저는 대중교통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고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했습니다. 출퇴근길에 거의 매일 버스에서 만나는 직장인과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됐고 시간대별로 여러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고 익숙해진 후에 저는 진상을 알리기 좋은 주제를 찾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때는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하게 하려고 저는 그와 함께 몇 정류장 전에 내렸습니다. 한동안 출근하면서 저와 두 여성분은 늘 같은 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기다리곤 했는데 점차 익숙해지게 됐습니다. 그녀들은 각각 중간에서 하차했으며 저는 종점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은행 직원이었고 그녀가 근무하는 그 은행이 어디에 있는지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날을 미리 정하고 그녀를 따라 하차해 동행했습니다. 함께 길을 걸으며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아마 제 진심에 감동했는지 그녀는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막 은행 입구에 도착해서 저는 그녀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몸을 급히 돌려 정류장으로 돌아와 출근하기 위해 다음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다른 한 분의 여성은 어디로 출근하는지 몰랐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퇴근하는 버스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저는 기회를 잡고 그녀를 따라 하차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불러 세우고 정류장표지판 옆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깨닫고 삼퇴했습니다.

어떤 때는 수련인이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행위가 진상을 알리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북방지역의 겨울은 매우 추워서 버스 창문에 서리가 맺히기도 합니다. 창가 쪽 좌석이 서늘하다 보니 앉으려는 사람이 없고 먼저 승차한 사람들은 통로 쪽 좌석에 앉으려고 다툽니다. 그러나 저는 가능한 창가 쪽 좌석에 앉고 통로 쪽 좌석은 나중에 승차하는 사람에게 양보하곤 합니다. 어느 날, 한 중년 남자가 커다란 짐 가방을 메고 승차했습니다. 제 옆자리 통로 쪽 좌석에 앉은 후, 저를 보면서 “당신은 소양을 갖추신 분이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보세요. 저 사람들은 모두 통로 쪽 좌석에 앉으려고 다투는데 당신은 다르잖아요. 타인의 편의를 위해 자리를 남겨주셨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저는 불가의 공법을 수련한다고 알려주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그들과 같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사회 기풍, 개인의 소양을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그는 저에게 자신의 직업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이혼 절차를 처리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지금은 이혼율이 매우 높으며 부부 두 사람은 약간의 작은 일로 걸핏하면 이혼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사회의 혼란함에 대해 유감스러워하고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그런지 아시나요? 중공이 사람들에게 주입한 무신론, 진화론과 유물론에 따라 해를 입은 겁니다. 중공이 사람에게 하늘과 땅에 영혼이 있고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게 했기에 관리가 감히 탐오하고, 부패하며 첩을 둡니다. 전반 사회가 모두 타락했고 사람의 정신이 피폐해졌으며 도덕이 나빠지고 이익만 꾀할 뿐 다른 것에는 관심조차 없으며 빈곤한 것은 비웃지만, 기생은 비웃지 않습니다.” 그는 공감했습니다.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유불도는 중국의 전통문화며, 인간의 기본적 도덕을 유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공이 1949년 정권 수립 이후, 여러 차례의 정치 운동을 벌이면서 전통문화를 파괴했습니다. 파룬궁은 불가공이므로 무신론의 중공과 흉금이 좁은 장쩌민은 거짓말을 꾸며내 탄압했습니다. ‘천안문 분신 거짓 사건’은 파룬궁을 비난하기 위한 것입니다. ‘진선인(眞·善·忍)’이 나쁜 것이라면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것일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제가 그에게 가명을 지어주는 것에 동의하여 ‘삼퇴’를 했습니다. 약 20분 만에 그는 기뻐하며 하차했습니다.

어떤 때에 진상을 알리는 기회가 생각지도 못할 때 오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날이 빨리 어두워집니다. 어느 날 밤, 퇴근길 버스를 기다릴 때, 어렴풋하게 멀지 않은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보았는데 제가 아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미 진상을 알린 적이 있는 남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도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호응했습니다. 그의 앞에 걸어갔을 때야 저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사람을 잘못 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개의치 않아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저는 마음속으로 이 사람 역시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돼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도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또 한 남성을 알게 됐는데 밤에는 회사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낮에는 아내와 함께 가정서비스 중개회사를 운영했습니다. 이 사람은 매우 야무지고 수완이 좋았으며 언변이 좋았습니다. 그에게 ‘삼퇴’에 관한 이야기를 한 후, 우리는 매우 좋은 친구가 됐고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습니다.

한동안 저는 시댁에 있어서 다른 버스를 타고 출퇴근해야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그는 정류장에서 저를 보지 못하자 매우 긴장하며 전화를 걸어와 제가 무사한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전화에서 그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제야 그는 안심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저를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정말 당신에게 사고(사당에 의한 박해)가 발생할까 봐 두려웠어요. 당신은 공산당이 얼마나 사악한지 몰라요!”

또 한 남성은 당원이었습니다. 그의 직장은 매우 좋았으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철밥통이었습니다. 그에게 진상을 여러 번 알려서 그도 진상을 알고 있었겠지만 일에 영향을 줄까 봐 줄곧 ‘삼퇴’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인연이 끊어진 지 1년이 넘었는데, 출근하는 버스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저에게 자신이 곧 퇴직해서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가 퇴직하면 더 만나기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해 다시 한번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가 마음속으로 고민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에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하차하기를 기다렸다가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곧 퇴직하시겠네요. 회사에서도 당신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요즘에는 건강이 가장 중요해요. 무사 평안함이 가장 중요하고요. 당신은 서둘러 그 공산당, 공산주의청년단, 소년선봉대에서 탈퇴하세요.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번에 그는 흔쾌히 대답하며 말했습니다. “그러죠!”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안배에 감사드렸습니다. 아울러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도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拜師)’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북미 순회 설법’

 

원문발표: 202039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3/9/4021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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