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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행위는 부모에게 거울로 비친다

글/ 신우원(信宇源)

[밍후이왕] 우리 부부는 모두 대법제자이다. 아이를 어떻게 데리고 법 공부하고 연공하며 아울러 아이가 대법 수련에 들어오도록 인도하는가에 대해 일부 교훈과 생각이 있다. 여기 써내어 수련생들에게 참고로 제공한다.

초기에 우리는 방법이 부족해서, 이전에는 아이를 억압해 반드시 우리의 요구에 따라 법 공부하고 연공하게 했다. 그러나 소원과 달리 아이들은 우리의 선을 느끼지 못했고, 강제로 법 공부하는 중에 또한 법리를 인식하지 못했으며, 단지 우리의 요구에 따라 행했다. 그것은 단지 부모의 명에 복종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이렇게 행한 결과가 저도 모르게 아이가 대법에서 멀어지게 했음을 발견했다. 이는 사실 당 문화의 방법인데 아이가 시시각각 모두 반드시 나의 요구에 따라 행해야 비로소 되는 것이었다.

우리 둘은 반성을 통해 두 사람의 이런 방법이 이지적이지 못하고 결과는 필연코 반대라는 것을 인식했다. 우리 두 사람은 교류한 후 아이가 바른길을 걷고 대법 수련에 들어오게 하려면, 반드시 우리 자신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인식했다. 아이를 교육하는 과정 역시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제고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법 공부하는 목적은 법을 얻고 법에 동화하는 것이다. 아이를 교육하는 것도 안을 향해 찾아 제고하는 과정이다. 어린아이에 대한 요구는 어른과 같이 엄격하게 할 수 없고, 우리는 자신의 인내심을 단련할 것이 요구되었는데, 선으로 아이를 인도하는 것이지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법 공부와 연공에 대해 심리적 압력이 있으면 안 되는데, 이로 인해 대립하는 심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식했는데, 만약 우리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단순히 아이를 잘 교육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주요하게 자신을 실질적으로 수련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지 못한 것인데, 어찌 아이에게 타인을 선하게 대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강요는 표면에서 아이가 복종하게 할 수 있지만, 일단 우리가 앞에 있지 않고 외부인과 접촉할 때 그들을 통제할 사람이 없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자아를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평소 그들은 강압적인 단속을 받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아이가 교육받지 못한 표현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평소 좋은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그들이 매일 모두 따끔한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매일 모두 인내심을 갖고 아이와 좋게 말하고 의논하는 말투로 한다면, 밖에서도 어른이나 아이와 태도가 상냥하게 말할 때, 아이들도 잘할 수 있고, 또한 의논하는 말투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교류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매일 호통 치는 방식으로 아이를 교육한다면, 자신의 아이가 다른 집의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의견이 맞지 않으면,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집 아이들과 다툴 것이다. 이는 완전히 우리의 본뜻에 어긋난다. 이는 완전히 우리 스스로가 아이를 정확하게 대할 줄 몰랐기 때문이고 자신을 먼저 바꾸지 못해 조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집안의 어른들이 어떠한 모습이면 아이들은 기본상 어떠한 모습이다.

장기적인 방법은 마땅히 자신을 먼저 수련하는 것이고, 끊임없이 모순 속에서 자신을 실질적으로 수련하고 인내심과 지혜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방법을 생각해 아이가 법 공부와 연공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하고 그들 스스로 매일 모두 법 공부하게 하고 그들 자신을 위해 배우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다.

이 과정은 바로 우리 어른이 자신을 바꾸는 과정이고, 또한 자신을 제고하는 과정이다.

아이의 행위는 부모에게 거울로 비춰주는 것이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잘못을 저지를 때, 우리가 화를 참지 못할 때 바로 즉시 멈춰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자신이 맞더라도, 그들이 잘 되기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도 역시 재빨리 멈춰야 한다. 정서가 이끌린 것은 우리의 어느 집착심이 건드려진 것이 틀림없다. 그럼 자신을 반성하고 제고해 올라와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아이에게 자신이 잘못했다고 진실하게 인정하고 자신이 마땅히 제고해야 한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때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한 것이고 자신이 어느 부분을 올바르게 하지 못했다고 알려줘야 한다. 마치 어른들과 같이 그들과 교류하는 것이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으로써 자신이 어느 부분을 잘못했고 마땅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해야 하며 반드시 아이의 앞에서 사과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과한 이후에는 최대한 똑같은 잘못을 더는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데, 이 한 점이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과는 무척 가치 없게 보인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진심으로 고쳐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어린아이도 눈으로 보고 있고, 그들도 우리의 태도를 배우고 행한다.

자신을 제고하는 것이 바로 그들을 교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다. 부모로서 두 사람 사이는 마땅히 서로 일깨워주고 상대방을 경고하고 서로 격려해주어야 한다. 어른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아이는 무엇을 말하지 않지만 내심에서 이미 좋은 씨앗을 심는다.

중국 이 사회에서 우리는 이미 아주 많은 가정 내부의 극단적인 사건들을 보았다. 이는 사실 모두 매일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누적된 나쁜 결과이다. 어른들은 모두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인지’로 아이를 교육한다. 사실 모두 아이를 강요하는 것이다. 매번 자신의 강요가 성공하지 못하면 더욱 심각하게 계속 견지해 나간다. 사실 이는 아이에 대한 상처가 아주 크고 저도 모르게 그들의 반대심리를 자라게 한다. 아이들의 체격이 어른처럼 자랐을 때 그들은 점차 반항적으로 표현한다. 아울러 어른들은 오히려 상심해 자신이 아주 많이 ‘헌신’했는데 어찌해 이러냐고 생각한다. 심지어 자신이 불효자 한 명을 낳았다고 여기며 좌절한다.

이런 예는 아주 많다. 수련생들 사이에도 아주 많다. 우리의 잘못을 교훈으로 삼기를 바란다.

아이의 행위는 부모에게 거울로 비춰준다. 아이의 잘못을 보고 즉시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한다. 동시에 아이를 이해하고 그들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그들을 존중하고 자비롭고 선한 마음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들과 진솔하게 문제점을 토론하고 그들이 우리도 완벽하지 않고 잘못을 범할 수 있고 괴로워할 수 있고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아이들과 교류할 때 자신이 어떠한 모순, 마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제고하고 어떻게 인식했는가의 이런 사상 과정들을 반드시 교류해야 한다.

내가 이해하는 설득 교육은 바로 모두 다 도리를 이야기하고 문제에 부딪히면 모두 이성적으로 대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알려준 것은 모두 옳은 것이니 너는 내가 말한 대로 하면 좋겠다!” 이런 심리상태로 아이와 교류할 수 없는데, 안 그러면 효과는 정반대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며, 그들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상의 교류는 나의 지금 수련 경지에서의 인식이다.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들이 바로 잡아주시고 교류하기를 희망한다.

바로 내가 마지막으로 수정할 때 내 아이는 끊임없이 나에게 동일한 문제를 물었고 나의 원고는 또 조심하지 않아 삭제되었다. 내가 이미 삭제된 폴더에서 잘못 삭제한 원고를 한창 찾고 있을 때 아주 귀찮은 큰 소리로 아이에게 한마디 하는 것으로 대했다. 나는, 수련은 작은 일에서 끊임없이 제고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지금 나는 아이에게(어린 수련생) 사과할 준비를 한다. 나는 이후에 자신이 최대한 더는 똑같은 착오를 범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원문발표: 202041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1/4032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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