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수련생을 ‘돕는’ 생각을 갖고 그들을 도울 때 남의 위에 서서 수련생을 향해 지적하고 수련생의 단점을 늘 지적하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그녀가 한 말 한마디에 대해 분석한 후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고 있었다.
이 이틀 동안 나는 자신의 행위가 아주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무엇하러 갔는가? 수련생을 다스리러 간 것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당신의 主意識(주이스)가 반드시 또렷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한 세트 공법은 당신자신을 수련하기 때문에 당신은 명명백백한 상태에서 제고해야 한다.”[1] 그렇다면 나는 왜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전적으로 남을 수련시켰는가? 자신을 높이높이놓은 것이다.안을 향해 찾는 것에 대해 한 가지 관념이 있었는바, 관을 넘는수련생들은 모두 잘 수련하지 못해서 비로소 문제가 나타난 것이라고 여겼다. 바로 이 관념이 자신을 높게높게 놓은 것이다.
두 가지 일이 나에게 크게 와 닿았고 나로 하여금 깨닫고 철저히 개변하게 했다. 내가 남보다 수련을 잘한 것이 아니라 잘 수련된 일면은 모두 넘어간다. 그녀는 단지 어느 문제에서 깨닫지 못한 것이고 전반적으로 어떻게 수련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볼 수 없고 오로지 사부님만이 정확히 보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는 이전처럼 그렇게 공리공론을 늘어놓지 않고 자신의 법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말하지 말아야 했다. 마치 자신이 더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나는 겸손함을 배워야 했다. 이렇게 하니 관을 넘는 수련생의 장점이 보였다. 그들은 전혀 자신을 표현하는데 급급하지 않았고 남을 반격하는 데에 급급하지 않았고 자신을 아주 낮게 놓았는데 이 모두는 내가 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진짜로 깨어나듯 깨달았다. 나는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당신들을 도와주러 온 것이 아니고 당신보다 강하지 않고 당신들도 자신이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하고 우리 함께 제고하고 함께 정진하자고 했다.
1. 자신의 격차를 보다
수련생 A는 관을 넘는 수련생 갑과 을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고 나에게 시간이 있으면 오라고 했다. 나는 가보았지만 내심에서 우러나 한 것이 아니고 진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법을 외우고 싶다고 말했고 갑은 나에게 법을 외우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물었다. 듣고서 마음속에 일종의 억압감이 있었다. 그렇다. 법공부하고 법을 외우는 것이 법에 동화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사심 없이 타인을 위하는 생명이어야 하지 않는가? 마땅히 즐겁게 수련생을 도와야 하는데 어찌하여 억압되는가? 도대체 누가 억압하는가? 수련생 A는 70여 세이고 수입이 없으면서 남편은 암에 걸려 수술을 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또 관을 넘는 수련생 두 명을 자신의 집에서 먹고 자게하며번거로워하지 않았다. 그 경지가 없다면 진짜로 해낼 수 없다. 나는 그녀의 선에 감동되었다. 그러나 늘 어떠한 것이 참여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주변 수련생들이 관을 넘으면 마치 자신과 상관없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가 맞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오늘 이 일에 부딪힌 것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어떤 원인으로 자신의 세계에서만 살게 조성되었고, 여러 사람과 정체를 형성하지 못하는지 안을 향해 찾으니 사부님께서 나를 깨우쳐주셨다. 이는 장기간 중공의 운동에서 조성된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심이 없고 냉담하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고, 생명을 경시하는 구세력의 그런 것이다.박해를 보아도 상관하지 않는 사상이 조성한 이런 부정확한 상태가 자신에게반영된 것이다. 수련생의 말이 그것들을 건드렸고 그것들이 억압을 느끼는 것이다. 발정념하여 그것들을 제거했다. 억압감이 없어졌고 마음이 좋아졌다. 나는 그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싶어졌다.
오후에 마당의 지붕 아래에서 법공부했다. 모기가 날아다니고 여름의 더위로 나는 아주 괴로웠다. 밖의 햇볕은 강렬하여 눈도 적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부적응은 나를 조용해지지 못하게 했고 입으로 법을 읽지만, 오히려 무엇을 읽고 있는 건지 몰랐다. 수련생 A와 관을 넘는 두 수련생은 마치 이 일체에 대해 감각이 없는 것처럼 아주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이 외재적인 일체는 전혀 그들의 마음에 영향 주지 못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무엇하러 왔는가? 수련생을 도우러 왔는가? 어찌하여 입정 능력이 조금도 없단 말인가? 70세 되는 수련생과 마난에 처한 두 수련생보다 못한가!
이때 자신의 격차를 보았다. 그런 오만방자하고 잘난 척하며 자신이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이 사라졌다. 내심에서 그들을 존경했다. 얼마나 좋은 수련생들인가! 후에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관을 넘던 그 수련생은 A의 전기요금을 절약하려고 지붕 아래서 법공부한 것이었는데 관을 넘는 수련생은 남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아주 부끄러웠다. 수련생 A가 밖에서 법공부하자고 하여 자신이 법을 잘 배우지 못하게 되었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은근히 있었는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2. 수련생을 돕는 과정 중에 나는 관 하나를 넘었다
다음날 또 시간이 되었는데 가야 하는가? 이렇게 하다가 법을 배우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한동안 미적거리다가 그래도 가자고 했다. 고생하는 것이 아닌가? “몸을 고달프게 하고(勞其筋骨), 마음을 괴롭게 하는(苦其心志)”[2] 이는 심성을 제고하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남이 해낼 수 있는데 나도 해낼 수 있다.
A의 집에 도착했고 이번에는 지붕 아래서 법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지은 서쪽 방이라 밖보다 더 나았다. 그러나 그날 마침 정전이라 방안이 몹시 더웠다. 나는 작은 의자에 앉았고 한참 지나서 온몸에 땀이 흘렀다. 관을 넘는 수련생을 보니 몸의 고통과 정신적 압력을 감당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법을 읽었고 덥다고 귀찮아하지 않았다. 수련생 A는 또 바람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이 번잡하고 조급하면서 또 조용해지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늘 더워서 마음과 정신이 조용해지지 못하고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또 졸렸고 자고 싶었으며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무릎 꿇고 법공부했다. 갑자기 이름 모를 불같은 뜨거움, 괴로움이 마음속으로 올라왔고 즉시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등에는 콩알만한 땀방울 범벅이었고 더위를 먹은 느낌이었다. 한가지 사상이 들어왔다. “너는 더위를 먹었다. 집에 가라. 에어컨이 있는 방에서 시원하게 있으면 나아진다.”
그러나 수련생들의 정념의 작용하에 나도 정념이 생겼다. 나는 더위를 먹지 않았고 이 한 강의를 견지해서 배울 것이다. 비록 이 염두가 그렇게 강대하지 않았지만 나온 것은 정념이고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주셨다. 한참 지나서 온몸이 시원해지고 손등의 땀도 사라졌다. 사부님께서는 이 한 관을 넘도록 나를 도와주셨다.
사실 전에 나는 같은 증상이 두 차례 나타났고 머리에서는 사람의 관념이 통제하여 더위를 먹었다고 여겼다. 그 결과 한번은 연공장에서 중도에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한 번은 밖에서, 나는 부근의 마트에 가서 시원하게 바람을 쏘여야 했고 또 차가운 음료 하나를 샀다.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여 아주 큰 마난을 불러왔다. 여기서 상세히 말하지 않겠다. 이번에 나는 관념을 바꾸었고 사부님께서는 내가 이 한관을 넘도록 도와주셨다. 은사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관을 넘는 수련생과 대조하니 나는 자신의 몸에서 당문화의 표현을 보았다. 강세, 강압, 자신이 대단하다고 남을 강박하여 자신의 법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들이다. 남들이 반응이 없을 때 또 어투를 강조하여 한마디 한마디 반복하고 마땅히 이렇게 수련해야 한다, 이렇게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고 했다. 자신을 강조하고 남이 받아들이도록 강박하는데 남의 스승이 되려고 하고 오만방자하고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것이 자심생마의 표현이 아닌가? 그들과 같이 있으면 평화롭고 압력이 없고 마음이 편안하다. 자신을 생각해보면 남들이 나를 말할 때 받아들이지 않고 불복하고 반박하고 남의 약점을 공격하는데 이것이 당문화의 표현이 아닌가? 남들이 말할 때 늘 사이에 끼려 하고 말을 뺏는데 이것이 당문화의 투쟁이 아닌가? 진짜로 수련생을 도우려고 온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나에게 여기에 와서 자신의 문제를 찾게 하신 것이다!
지금 나는 늘 자신에게 적게 말하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상관하고 계시기에 나는 더는 남을 가르칠 필요가 없고 수련생에게 지적할 필요가 없는데, 당신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고 당신은 마땅히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남편은 어떻게 하고, 밖에서 수련생은 어떻게 수련해야 한다고 상관하는 것, 하늘을 상관하고 땅을 상관하고 사람의 사상과 행위를 상관하고 늘 일체를 장악하려는 작풍이 당문화의 그 한 세트가 아닌가? 사실 일체는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부님께서 장악하고 계신다.
내가 이런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사악한 것들을 제거할 때가 되었다. 이런 것을 인식하고 나의 마음은 아주 홀가분하게 변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하고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린다. 제자는 여기서 은사님께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드립니다!
적절치 못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대원만법-3. 동작설명’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3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3/13/4023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