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화둥(華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임상전문의인데 현장의 진료로 아주 바쁘고 지친다. 일하면서 나는 늘 곤혹과 모순을 느낀다. 나는 일하면서 서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환자들이 돈을 적게 쓰면서 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하려 했지만, 오히려 이런 것이 책임자의 의도와 다르고 책임자는 매달의 수입이 얼마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료들이 늘 방법을 생각해서 상사와 가까이하려고 하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할 줄 모르기도 했고 어떤 일은 양심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어떤 때 우수한 사람을 선출할 때 도덕의 최저선도 없는 사람이 선출되고 경쟁에서 우세를 차지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몹시 아득했고 늘 길 잃은 작은 산양처럼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몰랐다. 1996년 초,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봄바람이 우리 가족에게도 전해왔고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는 감로수처럼 우리의 마음에 흘러들어왔다. 우리 대 가족 중에 몇십 명이 연속으로 법을 얻어 수련을 했다.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보고 나서 진선인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것을 알았고 인류의 도덕이 추락해도 나는 따라서 변하지 않았다. 원래 정말로 신불이 일체를 제약하고 있었고 선조들에게서 내려온 “선악에는 보응이 있고 사람이 하는 것은 하늘이 보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고 반드시 끝까지 수련하여 사부님을 따라가리라 다짐했다.
현장의 진료는 아주 바빴다. 법을 얻고 나서 과거에 득실을 따지는 관념을 바꿨고 진선인으로 지도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생각했고 아무리 지쳐도 항상 웃으면서 환자를 대했으며 환자의 입장에 서서 돈을 실용적으로 사용하게 했다. 오직 병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나는 가장 싼 약을 썼고 의료 안전을 보장하는 선에서 될수록 환자에게 최소한으로 입원하게 했다. 환자가 나에게 선물, 돈을 줄 때 될수록 돌려보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에 앓던 만성 비염, 천식, 부인과 병이 사라졌다. 나는 대법을 더 소중히 여겼고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더 엄격하게 요구했으며 여러 차례 약품의 인센티브와 리베이트를 거절했으며 늘 환자들이 위급하나 돈이 없을 때 힘을 보탰다.
명예와 이익을 담담하게 본 후 나는 몸이 더 가벼워졌다. 나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홀가분함과 상쾌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늘 현지 단체 파룬궁 홍보 활동에 참가했다. 당직을 서기 전 한 시간 반의 점심 식사시간에라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홍보현장에 가서 수련생들이 상화로운 음악에 맞춰 연공을 할 때 파룬궁 전단지 몇 장을 들고 둘러서서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었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나처럼 속세의 고통을 내려놓고 마음이 대법 중에서 정화되며 대법 중에서 생명이 승화되기를 희망했다.
정의를 위해 용감하게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다
1999년 4월 25일, 톈진 대법제자들이 잡히고 맞고 감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베이징에 가서 진상을 알려 정부의 ‘진선인’에 대한 탄압을 멈추게 하려고 했다. 나는 부모님과 딸을 데리고 우여곡절 끝에 4월 26일 새벽에 베이징에 도착했지만, 경찰들에게 제지당했다. 기차역에서부터 톈안먼까지 경찰들이 가득했고 대법제자들이 경찰에게 잡히는 것을 보았다. 후에 현지 경찰에게 연행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여러 번 지방정부에 편지를 쓰고 시급 책임자들의 사무실로 편지를 보냈다. 시간이 있을 때 많이 이야기하고 시간이 없으면 우리가 적은 진상 편지를 건네주었다.
1999년 7월 21일, 중국공산당이 각지 대법보도원들을 납치했고 파룬따파를 불법조직으로 정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나와 현지 수련생들은 함께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떠났다. 그 당시 정부는 하루 24시간 총력을 다해 비방하고 모함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또 사회적 역량을 총동원하였는데 공안, 정부, 직장, 심지어 우리의 가족들까지 동원시켰다. 전반사회에서 모두 파룬궁수련생들을 포위하고 잡아갔다. 역전, 부두, 각 입구에 초소를 설치하고 도처에서 신분증을 검사하고 가방을 뒤졌다. 그 당시,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7월 말에 우리 지역의 날씨는 아주 더웠다. 우리는 현성의 한 초등학교에 갇혔었다. 서로 다른 현에서 온 대법제자들로 몇백 명은 족히 되었다. 모두 만나자마자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함께 수련체험을 교류하면서 서로 격려했다. 그 결과 연속으로 현지 경찰들에 의해 본 지역으로 압송되어 그 지역 구치소에 갇혔다. 정부에서는 심하게 훈계하기 시작했고 각종 수단을 동원해서 대법제자를 전향시키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 뒤로 나는 한밤중에 몇 번이고 직장의 보안에게 끌려가 직장 내에 감금되었고 출근을 해도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감봉을 당하고 보너스 등 일체 복지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매월 겨우 300위안(약 53000원)의 생활비만 받았다. 우리는 여러 차례 청원하러 갔고 매번 불법적으로 감금되었으며 여러 곳으로 넘겨졌다. 청원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수호했다.
2004년 말에 “9평공산당”이 세상에 나왔고 우리는 중국공산당의 진면모를 알게 되었으며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중생들을 구했다. 우리 현지 수련생들은 서로 협력했는데 컴퓨터기술을 배운 수련생은 자료를 만들었고 어떤 수련생은 자료를 배포하고 어떤 수련생들은 일대일로 진상을 알렸다. 박해를 피하고자 우리는 지역을 나누어 “9평”을 배포했다. 우리는 친척, 친구들의 모임에 가서 친구들을 구했고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을 구했다. 출근해서 휴식 시간에 동료들을 구했고 환자들을 구했다. 교사인 수련생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을 구했고 우리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을 구했다.
중생들을 시시각각 마음에 두었다. 일하다가 낯선 환자나 동료를 만나면 나는 기회를 봐서 그들을 구했다. 그들은 내 도움을 흔쾌히 받아들여 대법 진상을 듣고 기쁘게 삼퇴를 하여 구원을 받았다. 오늘날 나에게 좋은 직장이 있고 사회에서 직위가 높으며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정이 있으며 아이들이 잘되는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중생을 구하라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늘 기회가 되면 이런 모임 저런 모임에 참가하거나 여행을 한다. 나는 나의 언행, 외모에 주의하면서 그들과 인생에 대해 말하고 사회에 대해 말하면서 서서히 대법진상을 말하여 그들이 자연스럽게 구원을 받게 한다.
때론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거부하거나 나를 욕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안으로 찾아보는데 내가 높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하거나 정에 끌려 겸손하지 못하고 남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해 몹시 후회했다. 어떤 사람은 구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영원히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수련하여 승화하면서 나의 언변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졌다. 다른 사람과 말할 때 지혜가 끊임없이 솟아 나와, 마음 상태를 장악할 수 있어 중생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만을 생각했다.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고 늘 이치를 말해 사람들이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구원을 받게 했다. 나는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우리 위대하신 사부님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바로 나의 옆에 계신다.
나이가 들면서 업무시간이 갈수록 여유로워졌다. 전에는 친구들의 경조사에 시간이 없어 참석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기회만 있으면 돈이나 물품을 들고 가서 참가한다. 매번 모임에서 모두 수확이 적지 않았다. 구원을 받거나 심지어 법을 얻은 중생들을 보면 진심으로 기뻐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다.
우리 가족 중에 100명이 되는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구원을 받았고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법을 얻고 수련을 한다. 나의 동료 중에 거의 300명이 되는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구원을 받았고 우리 병원의 상사들에게도 모두 진상을 알렸다. 중간 관리자 120여 명 중에 70여 명이 삼퇴를 했다. 특히 장쩌민을 고소한 후, 이미 삼퇴를 한 직장 상사가 나를 찾아와서 “남소(濫訴) 무고(誣告)”표를 작성하라고 했다. 나는 “저는 줄곧 ‘진선인’을 견지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려 했지만, 장쩌민 집단은 이유 없이 17년 동안 박해했고 나에게 얼마나 많은 굴욕을 주었나요?”라고 정당하고도 엄숙하게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문을 두드리는 행동”을 하던 경찰들이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 촬영할 때 나는 그 자리에서 그들이 나의 초상권을 침범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법 진상을 알리고 박해에 참여하지 말고 퇴로를 남기라고 권하면서 그들의 신분증을 요구했다. 다음 날, 나는 원장에게 경찰이 나에게 소란을 피웠다고 고소해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정정당당한 수련인이 되었고 만약 낯선 사람을 만나면 방법을 찾아 내가 수련한다는 것과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술자리에서 늘 같은 상에 앉은 사람들에게 잔을 들어 사람들에게 아홉 자의 길언(吉言)을 기억하고 평안을 보장받기를 기원했다.
구원을 받은 중생의 보답
갑은 내 친구인데 진상을 알고 나서 늘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웠다. 일곱 살 된 손녀는 매일 할머니가 외우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 누구와 말하고 있어요?”라고 물었고 그녀는 신과 대화한다고 말했다. 대략 10년 전에 언니 갑은 “대퇴골 종양”을 진단받았다. 병원의 전문의는 그 종양의 99% 이상은 악성이어서 결과가 가장 좋다고 해도 수술 후에 두 다리의 길이가 같지 않아 걸을 때 전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 후의 병력보고서에는 양성 종양이어서 수술 후 두 다리의 길이가 같다고 적혔다.
을은 나의 가족이고 병원에서 일하는데 늘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 박사시험을 볼 때 합격선보다 1점이 높아 박사에 합격해서 한 유명한 지도교수에게 뽑혔다. 현재는 순조롭게 졸업했다.
병(丙)은 나의 친척이고 8, 9년 전에는 걷지 못했다. X-ray에는 무릎관절에 틈이 좁게 나타났고 병원의 전문의는 연골이 닳아서 걸을 때 뼈와 뼈가 닿는데 아프지 않을 수가 있냐며 다방면으로 논의했다. 그러나 나이가 80세이고 당뇨병,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폐심증을 앓고 있어 수술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약을 먹고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해 봐도 소용이 없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아홉 글자 길언을 외웠다. 그러자 24시간도 되기 전에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아침을 먹은 후 장날에 야채를 사러 갔다. 그때부터 걸을 수 있었고 어떤 때 좀 아팠지만 큰 문제가 없었다. 올해 그녀는 89세가 되었다.
정(丁)은 중학교 교사인데 진상을 알고 삼퇴를 한 한 달 후에 남편이 오토바이에 그녀를 태우고 가다가 갑자기 큰 트럭과 부딪혔다. 두 사람은 5, 6m나 날아갔고 속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깨고 보니 남편은 아무 일 없었고 그녀는 어깨가 좀 까졌었다. 나를 보았을 때 “삼퇴는 정말로 생명을 보호해주네요!”라고 말했다.
정법은 이미 마지막을 달리고 있고 아직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 나는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오래된 그 언약을 실현하려 한다.
원문발표: 2020년 3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3/14/4024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