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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와 소업을 명확하게 구분하자

글/ 헤이룽장(黑龍江)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달 전 어느 날 밤,나는 갑자기 오장육부가 너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누워도 안 되고 앉을 수도 없었는데, 이런 경우가 이전에 세 번(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 있었지만 이렇게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숨도 못 쉴 정도였고 숨 쉬는 것조차도 아팠다.

나는 더는 참기 힘들 때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불렀다. ‘사부님, 사부님, 저는 참기 힘듭니다!’ 나는 이 말을 외쳤을 때, 옳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인가?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중생을 위해 감당하신 것이 너무 많다. 더는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해 감당하게 하실 수 없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만약 소업(消業)이라면 제자는 감수할 것이고, 구세력의 박해라면 저는 가지지 않겠습니다. 누가 준 것이면 그에게 돌려줄 것이며 저는 가지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겠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책임지고 주관해 주세요.’ 신기한 것은 이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나의 오장육부는 순식간에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이 일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악의 박해와 소업이 우리 몸에 반영될 때의 아픔과 괴로운 느낌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박해는 인정하거나 감당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분간할 수 없을 때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관해 주실 것을 부탁해야 한다. 우리는 구분할 수 없지만, 사부님께서는 명백하게 구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사악은 우리를 박해할 수 없고 마땅히 제거해야 할 업(業)은 우리도 제거하게 된다.

개인의 인식으로는 ‘병업(病業)’이 왔을 때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세 가지 일에 영향 주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상황임) 우리는 심성 상의 문제를 찾아봐야 하며, 혹은 무슨 집착을 내려놓지 않아 틈을 타게 된 건 아닌지 찾아봐야 한다. 수련인은 병이 없는데 왜 우리에게 ‘병업’ 현상이 나타나는 것인가? 안으로 찾으면 꼭 뿌리를 찾을 수 있으니 그것을 제거하고 제고해 올라와야 한다.

 

원문발표: 2020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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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4/4006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