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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법공부를 견지하여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5년 5월, 아내는 대법을 수련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배우라고 권했다. 그 당시 나는 작은 회사를 차리고 설비를 들여 바삐 보내고 있었다. 나는 연공하여 돈을 벌 수 있는가?돈이 없으면 되는가? 라고 말했다.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이 아주 강해 노력하여 돈을 벌어 현지에서 유명해지려고 생각했다. 후에 아내가 연공한 후의 변화를 발견하고 한가할 때 ‘전법륜’도 보았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돈을 좀 많이 벌어서 집을 잘 안정시켜 놓으면, 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나는 다시 도를 닦겠다.’ 나는 당신이 망상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 부모형제를 포함한 그들의 운명, 그것이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밖에, 당신이 뒷근심이 없고, 당신이 어떤 번거로움도 없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편안하고 편안하게 거기서 연공(煉功)을 한다고?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다.”[1] 이 단락을 보았을 때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수련을 하리라 다짐했다. 그것은 1995년 8월이었다.

대법을 배운 후, 나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마작(麻將)을 노는 등 예전의 일체 불량한 습관을 전부 버렸다. 몸의 질병은 치료하지 않았는데 전부 사라졌고 기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컬러TV와 영상 player를 사서 수련생들과 함께 인근 지역과 부근의 촌에 가서 법을 전했다. 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틀어주고 그들에게 연공을 가르쳤다. 인근의 촌에 선후로 몇 개의 연공장을 건립했다. 그 당시에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우리 집은 연공장이었다. 매일 저녁 법공부를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연공을 했으며 모두들 정말로 비학비수(比學比修)하여 심성이 아주 빨리 제고되었다. 매일 사는 것이 아주 충실하고 기쁘고 행복했다.

1.박해 중에서 법을 실증(證實)하다

1997년 7월 20일, 박해가 시작된 후, 우리 연공장은 나의 집이었고 수련생들도 늘 왔기에 그들은 나를 골간, 소위 말하는 우두머리로 생각했다. 7월 23일 저녁에 파출소에서 나를 촌으로 호출해갔다. 소장은 나에게 파룬궁을 계속 수련하는지 물었다. 나는 우리 수련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일을 하고 사람과 사회에 모두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계속 수련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나를 파출소로 데리고 갔다. 향 간부들은 두 시간마다 번갈아 가면서 찾아와서 나에게 수련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했지만 나는 쓰지 않았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7월 27일 현성의 구치소로 나를 연행하여 15일 동안 감금시켰다. 내가 보증서를 쓰지 않았다고 집으로 돌아온 후3일 만에 또 강제로 15일 더 감금했다. 집으로 돌아온 9월 3일 우리 집에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던 사람들은 모두 12명이었다. 저녁 8시쯤에 우리는 강제로 파출소로 연행되었고 TV,영상 player, 비디오 테이프 등을 전부 빼앗겼다. 파출소에서는 우리에게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낮에 햇빛 아래에 서 있게 했다. 9월 4일 오후에 현 공안국에서 파견한 사람이 왔는데 우리를 또 15일 감금시켰다. 그 당시 사부님께서 우리의 심성을 가장 높은 위치로 올려 주었기에 법에 대한 견정함은 반석 같아 사악의 전향을 거절했다. 10월 말 나는 불법 노동교양 3년을 선고받았다.

나는 협조하지 않아 형기가 4개월 연장되었고 또 다른 교도소에 감금되었다. 2002년 말에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들을 다른 교도소로 보냈다. 나머지 몇 명은 밤낮없이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수련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때까지 전화시켰다. 마지막으로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3박3일이 지났을 때 악독한 경찰은 “누가 당신보다 못한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전향했는데 당신은 왜 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 당시 나는 이가 전부 빠졌다.) 나는 “당신들은 그 마음을 접으세요, 이 세상에 나만 남는다 해도 나는 전향하지 않아요.” 그들은 나를 전향시킬 수가 없었다. 악독한 경찰은 잠을 재우지 말고 지켜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교도소 측에 반영했다. 그렇게 3박 4일이 지난 후에 나는 다른 대대에 배치되었다. 2003년 초 어느 날, 갑자기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첫날에는 두 사람이 부축하여 화장실에 갈 수 있었는데 두 번째 날에는 두 사람이 부축해도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그것은 두 다리에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소변을 방안에서 보았다. 나는 무엇 때문인가를 생각했다. 나를 전향시키지 못하자 사악이 그런 방식으로 기한이 만료되었으니 몸에 병이 있어 놓아준다고 말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절대 그런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고 정정당당하게 돌아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깨닫자 넷째 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었다. 그리하여 2003년 2월말에 전체 수련생들의 협조 하에 나는 교도소에서 나왔다.

가족은 차를 갖고 마중 나왔다. 밥을 먹었냐고 물어 먹었다고 했다. 잠도 잤다고 했다. 그들은 3년이나 갇혀있었으니 집에 가도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악경이 그들에게 전향하지 않으면 평생 나갈 수 없다. 본 시 교양원에서 기한이 만료된 사람들은 경찰들이 픽업한다고 알려주었다.)

교도소는 집에서 500여리나 떨어져 있기에 집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가 되었다. 집 근처 도로 양쪽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는데 거기에는 수련생, 친척, 당지의 낯선 사람들로 몇백 명은 족히 되었다. 마당에도 온통 사람들로 붐비었다. 수련생들은 또 폭죽을 사다 터뜨렸다. 그 장면은 정말로 감동적이었다.

2.법공부 환경을 창립하다

2006년의 가을 나는 명혜망에서 자료점이 각지에서 활성화된다는 문장을 보고 수련생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자료점을 열려고 했다. 어떤 수련생들은 내가 주요감시대상이라 안전을 고려하여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하는 일체과정이 바로 수련하고 제고하는 것이며 사실은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직 우리가 신사신법하면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아래 작은 자료점 꽃은 아주 잘 피어났다.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의 가장 크고 가장 큰일은 바로 우리 수련생들에게 교란 받지 않는, 안정된 수련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서, 이것이야말로 당신들의 가장 큰 책임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떻게 하면 수련생들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줄 것인가를 생각했다. 2008년 1월 15일 저녁, 나는 늘 걸어 다니던 10여리 길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그것은 사부님께서 수련에서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하는 것을 점화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온 후에 법공부팀을 성립할 것을 아내와 상의하고 나서 주변의 수련생들을 찾아가서 말했더니 수련생들은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법공부팀을 성립했다. 수련생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농사일이 바쁘나 한가하나 일 년 365일 그믐날을 빼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제시간에 와서 법공부를 하면서 오늘까지 평온하게 걸어왔다.

연공장, 법회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환경이다. 나는 매주 와서 주간을 가져가는 수련생과 상의했다. 우리가 시간을 정해서 함께 법공부를 하고 교류하는 것이 어떠냐고 또 기타 수련생들도 올 수 있다고 했더니 수련생들은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큰 길과 멀리 떨어진 수련생의 집으로 정하고 매월 2차례씩 법공부를 하기로 정했다. 법공부를 시작한 지 한동안 되어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다 납치되는 일이 발생하여 우리 집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하기로 변경했다. 한번은 법공부하는 날이 촌의 정치보안 주임 집의 희사와 겹쳤다. 수련생들은 나에게 우리 집이 주요통로인데 치안보안주임의 일이니 파출소사람들이 오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며 바로 문 앞으로 지나다니게 되는데 괜찮을지 물었다. 나는 어느 집이나 놀러 오는 사람들이 있고 단체법공부는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수련환경이라고 말했다. 수련생들은 평소처럼 와서 법공부를 했지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법공부할 날이 되었는데 나는 조금 난감했다. 원인은 얼마 전에 아내와 다른 두 명의 수련생이 부근의 촌에 가서 집집마다 진상을 알리다가 무고하게 신고당해 다른 두 명의 수련생이 납치당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파출소로 연행되었고 구치소에서 15일 동안 감금되어 있었는데 공안국에서 벌금 천 위안(약 17만 원)을 내라고 했다.한 수련생이 찾아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 돈을 내지 않으면 와서 그 수련생을 잡아간다고 했다. 나는 돈을 주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니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잡히기만 하면 돈을 준다면 그 돈은 얼마나 얻기 쉬운가!그들도 잡는 것이 더 힘이 나지 않겠는가? 그들은 감히 와서 당신을 잡지 못해요,듣는 말에 의하면 제보할 때 세 명이었는데 나머지 한명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요. 그 때 마침 단체 법공부 시간이 되었다. 법공부를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머릿속에서 투쟁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만약 법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구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법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구세력 그것은 체포한 것이 잘한 일이 아닌가? 법공부도 감히 하지 못하지 않는가?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정체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영향을 받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법공부하고 교류했다. 15일 후,국가보안대장이 구치소에 가서 수련생에게 돈을 요구했다. 수련생은 내지 않겠다고 하면서 진상을 많이 알렸다. 후에 보안대장은 공안국에 천 위안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수련생은 집으로 갈 여비도 없다고 말하자 보안대장은 부하 직원에게 50위안(약 8500원)을 그에게 여비로 주라고 했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추수할 때를 제외하고 모두 단체 법공부와 교류를 견지했다.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아래, 수련생들의 정체협조아래 평온하게 오늘까지 걸어왔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장춘보도원 법회설법’

 

원문발표: 2020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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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5/3985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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