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 서명
[밍후이왕] 나는 청년 대법제자이고 주변에 접촉하는 이들은 모두 아주머니 수련생들이다. 어릴 때부터 수련생들과 접촉할 때 제 딴에는 법공부가 깊지 않아 아는 것이 많지 않다고 여겨 자신도 모르게 ‘어른 말을 듣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한동안 수련하면서 일부 수련생들에게서 법의 표준에 부합하지 못한 것을 항상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매우 어긋나게 잘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각된 표현은 남의 단점을 항상 지적하거나 질책하고 당신은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혹은 그녀는 그렇게 했어야 한다며 심지어 일부는 질책이다. 그 후에 불만과 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상 속에서는 항상 원망하는 염두가 나타났다. 즉, 이 수련생은 어찌하여 항상 이렇게 법에 있지 않은가. 또 남의 단점만 계속 찾고 남을 전문적으로 수련시키려 하고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어디까지 이탈되었는지를 보지 않았다. 아무튼, 자신의 사상 속에서는 또 늘 남의 잘못만 보는 것으로 변했고 남을 개변하려 했고 자신이 처음 움직였던 것이 정념인지 아니면 사람마음인지를 찾지 않았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 2년 넘게 굽은 길을 걸은 후에야 비로소 점차 알게 되었는데 원래 자신의 사유상태는 모두 구세력의 사유상태가 나의 몸에 강제로 가해진 것이었다.
최근에 사부님의 경문을 배웠다. “나는 당신들과 한 마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말했다. 무엇이 부처인가? 여래(如來)란 진리를 딛고서 여의롭게 왔다는 이런 하나의 세상 사람의 호칭이지만, 진정한 부처인 그는 우주의 보위자(保衛者)이다. 그는 우주 중의 일체 바른 요소를 책임질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서 그것들도 그것들이 법에서 벗어난 후 心性(씬씽)이 있는 위치를 충분히 표현했으며, 그것들이 순결하지 못한 일면을 충분히 폭로하였다. 그리하여 일부 일에서 마땅히 나타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각종 교란이 아주 많이 나타났는데, 이는 우리 오늘날 개인수련을 하는 수련생의 心性(씬씽) 표현과 지극히 비슷하다.”[1]
“이는 우리 오늘날 개인수련을 하는 수련생의 心性(씬씽) 표현과 지극히 비슷하다.”[1] 이 한마디는 나를 깜짝 놀라 깨어나게 했다! 나 이 층차의 개인적인 깨달음은, 구세력이 남을 개변하려 하고 자신을 개변하지 않으려는 사유를 층층이 수련생에게 강제로 가했고 이로써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하고 아울러 이로 인해 그것들이 남길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을 검증해 도태시키고 이로써 수련생을 훼멸하고 중생을 훼멸한다. 그 때문에 오로지 ‘남이 안 좋다’란 생각이 있기만 하면 자신이 또 외래 메시지에 의해 조종당한 것이 아닌지를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이런 강제로 가해진, 남을 개변하려고 하는 사상은 표면에서는 남이 좋아지는 것을 위하는 것 같고 남이 법의 표준에 도달하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원한이 형성되기가 지극히 쉽고 더 나아가 악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무아의 표준에 도달할 수 없고 이로 인해 남의 잘못을 용인할 수 없고 더욱이 남이 잘못이 있지만 고치지 못하는 것을 용납할 방법이 없다. 시간이 길어지면 심지어 눈에 거슬리고 깔보게 되는데 원한이 급증하여 악한 언어로 타인을 공격하게 되거나 혹은 표면에서 표현하지 않더라도 역시 마음에서는 번거로움이 생겨 암암리에 원망하여 참음의 원칙을 위배하게 된다. 선을 논할 여지가 더는 없고 아울러 남이 좋아지게 하고 남이 제고해서 올라오게 한다는 구실로 자신의 단점을 수련하지 않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서로 간에 질책하는 중에 남을 개변하려는 심리적 작용 하에 무의식중에 남이 좋아지는 것을 원치 않고 고의적으로 타인을 해치고 타인을 공격하며 심지어 보복하려는 심리가 형성되어 일종의 원한의 그물이 형성되어도 자신은 모르게 된다. 최후에는 간격이 조성되어 국부적으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여 무형 중에 수련생들에게 더욱 큰 마난을 가져다주면서도 자신은 진짜로 있는 힘을 다했다고 말한다.
동시에 도움을 받은 수련생은 여러분들의 도움에 대해 마땅한 것이라고 여기는데 남들이 만약 법에 입각하지 않고 도움을 주었다면 도움을 거꾸로 주었다고 여겨 마음속에 원한이 생기게 된다. 옛사람들의 “남의 물 몇 방울의 은혜에도 샘물로써 보답해야 한다”와는 천 리 길의 차이가 난다. 이렇게 수련생들 속에서 바로 여러분이 주변 환경이 잘못되었음을 느껴도 분명하게 보아내지 못하는데 이는 생명이 변이된 후의 심리상태이다. 비록 환경이 잘못되었음을 느껴도 여러분은 그 누구도 이런 모순을 더 많이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신(神)이 내려와 사람을 제도하는데, 사람이 신(神)을 십자가에 못으로 박아 놓았으니 사람은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것인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죄를 갚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인간들만이 한 것이 아니라 더욱 높은 층차의 부패된 생명이 조성한 것이다. 그것들은 이 일체를 그것들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다. 일체는 모두 변이(變異)가 발생하고, 변이된 것은 법(法)에서 벗어나서 점차적으로 이렇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어느 한 층의 생명도 모두 감히 그것을 건드리지 못했는바, 일체는 모두 종횡으로 교차하는, 굉장히 복잡해진 요소에 의해 좌우지되고 있다. 이 일체 순결치 못한 것은 모두 제거해야 하는데, 철저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2]
나의 개인 층차에서 구세력의 변이가 수련생 몸에서 표현된 것이라고 깨달았다. 즉 주변 모순이 교차되어 복잡하여 건드릴 방법이 없고 건드리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 배후에는 더 깊은 요소가 있고 사람 표면의 이 한 점의 모순만이 아니다. 물론 이 일체가 불순하면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여러분들이 모두 안을 향해 찾고 진정으로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주동적으로 승화하면 환경은 비로소 변할 수 있는데, 매 사람 모두 이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마난 속에 있는 수련생이나 법에 있지 않은 수련생에게 어떻게 법의 표준에 도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법에 있지 않는 자신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을 바로잡으라는 것이다.법에 부합되면 안을 향해 찾고, 선의적으로 남을 일깨워주면서 가서 하게 된다. 반면 법에 부합되지 않으면밖을 향해 보고 남을 수련시키면서 가서 하지 않는다.
사부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신사신법의 표현이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지 않는 것이 수련생 몸에 반영되면, 바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여기는 법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재삼 요구하게 되고, 대법은 바로 잡을 수 있고 아울러 원용불파하고 좋지 못한 일을 좋은 일로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안을 향해 자신을 닦고 선의적으로 남을 일깨워주라는 사부님의 말씀을 수시로 듣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바로 개인 수련에서 법에 입각하지 않았을 때 구세력이 강제로 가해준 사유라고 생각한다.
이상은 개인의 이해인데, 여전히 자신이 늘 밖을 향해 보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며 고의로 법에서 단장취의하여 법을 해석한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바르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도항-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도항-북미대호수지구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8/4003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