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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 속에서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년을 돌이켜보면 대법제자는 비바람 속에서 온갖 고난을 겪어왔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사부님이 계시고 ‘진선인(眞·善·忍)’이 있으며 대법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초기시절을 돌이켜보면 경찰차 사이렌 소리, 경찰의 노크 소리, 노동교양소 안에서 타닥거리는 전기봉 소리를 가장 듣기 싫었습니다…… 시련 속에서 겪은 그 모든 일체는 업력을 제거하고 몸을 정화하며 경지를 승화시켜 대법 제자의 위덕을 성취하여 우리에게 가능한 한 빨리 반본귀진(返本歸眞)하게 독촉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박해 속에서 가정의 시련을 만나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은 광적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부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여 실정을 반영할 준비를 했습니다. 파룬따파는 불법(佛法) 수련이고 진선인에 따라 마음을 닦아 선을 향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므로 국민에 대해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으며 진선인은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하지만 청원하러 가기도 전에 천안문에서 납치당하여 경찰차에 올랐습니다. 결국, 현지로 돌려 보내졌고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을 2년 당했습니다. 노동교양소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후, 시어머니와 남편은 제가 후손의 앞길에 영향을 줄까 봐 절대 저를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딸을 데리고 갈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이혼했으며 나중에 수련생의 소개로 한 수련생과 결혼했습니다.

남편에게는 70대의 부모님과 딸 두 명이 있었습니다. 이 새집으로 온 후, 자신이 대법 제자였기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잘해서 온 가족을 기쁘게 해줌으로써 법을 실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관계를 여전히 좋지 않았고, 언제나 갈등이 겹겹이 쌓였습니다. 당시 자신을 수련할 줄 모르고 안으로 찾을 줄 몰라서 어려움이 생기면 자신이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몰라서 수련이 매우 어려웠으며 마음은 늘 고생스러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수련하는가?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이 갈수록 많아졌고 시련을 넘는 과정에서 늘 심성을 지켜내지 못해 남편과 자주 다퉜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졌고 늘 자신에게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남편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 시부모님은 갈수록 늙었습니다. 시아버지가 병이 생겨 침대에 누워 일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도와야 했고 시어머니는 병까지 많아서 저와 동서 그리고 두 시누이는 어떻게 시부모님을 모셔야 하는지 의논했습니다. 두 시누이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동서는 또 시내에 살고 있어서 우리의 생활 압력은 매우 높았습니다. 저는 두 시누이에 대해 불만이 생겨났습니다. 그때 저는 자신이 신중하지 못하여 이 가정을 선택하여 이렇게 모시기 힘든 시부모님과 사리에 밝지 않은 시누이를 만나게 된 것을 매우 후회했습니다.

고난 속에 광명이 있다

나중에 저는 수련생의 교류문장에서 수련생이 진정하게 수련하고 착실하게 수련하며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면서 안으로 찾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막 꿈에서 깨어난 듯 격차를 찾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봤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잘하고자 하는 배후에는 보답을 바라고 칭찬 듣기를 원하며 좋은 말 듣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며 원하는 바에 도달하지 못하면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쟁투하는 마음이 생겨나며 독선적이고 자고자대(自高自大) 하며 자아가 강하고 이기적인 등과 같이 당 문화가 매우 강했습니다. 저는 오직 법 공부를 많이 해야만 진정하게 자신을 바꾸어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량으로 법 공부를 시작했고 심성에서 자신을 닦았으며 더는 어떤 사람의 부족함을 보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1] 오직 법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이 어떠한가는 보지 않으며 진실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고려하고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명리정을 내려놓아야 하고 자비로운 흉금이 필요했습니다. 정말 자신을 내려놓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위할 수 있을 때, 저는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어떤 일과 시련 그리고 시험에 부딪히든지 모두 사념(邪念)이 생기지 않아야 하고 정념으로 상대방을 가지(加持)해야 하고 모두 심성을 지켜내야 하며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하게 체득했습니다.

저는 묵묵히 자신이 잘하도록 요구했고 더는 두 시누이를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았으며 시부모님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그분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더 많이 위해줬습니다. 시어머니는 매우 감동했고 시어머니는 아흔 살에 수명을 다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두 시누이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을 닦아 없애고 따뜻하게 대접하고 그녀들을 대했습니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 후부터 내심에서 그녀들을 존경했고 더는 과거의 일을 따지지 않았으며 저는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습니다. 설에 아들에게 그녀들을 보러 가게 했습니다. 나중에 시부모님의 비석을 세워주게 되었을 때 두 시누이가 돈을 내려고 하자 저는 남편과 상의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시누이가 준 돈을 받지 말아요. 시누이도 연세가 많은데 자신들이 쓰도록 남겨주죠.” 저는 두 시누이와 만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하고 화기애애합니다. 정말로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전법륜)였으며 진선인이 우리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산후 풍파

남편의 아들은 일할 때 힘이 없었고 특히 허리를 삐끗한 이후로는 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저는 동서와 의논해서 아들에게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기술학교에 다니게 했습니다. 형님은 스자좡(石家莊)에 살고 있었고 그녀에게 기술학교를 찾아봐달라고 했습니다. 몇 년 공부해서 졸업한 후, 운 좋게도 괜찮은 일을 찾았고 연봉도 높았으며 아들의 혼사도 치렀습니다. 2017년 며느리가 임신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고 며느리에게 1천 위안(한화 약 17만 원)의 건강 보조식품을 사줬으며 그 후 출산용품도 준비해줬습니다. 산후 동안 저는 아이를 안고 밥하고 청소하며 기저귀를 빨았습니다. 아이는 하루하루 자랐으며 매우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평소와는 달리 한바탕 소동을 벌이면서 제가 옳은 곳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아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신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저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었고 저는 심성을 지키면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여전히 그들을 잘 대해줬습니다.

저는 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무슨 일을 잘못했는지 말해주면 고칠 수 있으며 아들이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남편은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큰어머니 집에 관한 일이었는데 아들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매우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제가 아들 일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고 돈을 씀에 있어서 개의치 않고 곳곳에서 빈틈없이 잘 돌봐주면서 그들에게 먹이고 입히는 것에 있어서는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아들이 저와 한바탕 소동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이것은 아무 일도 아니며 저의 심성을 높이라는 것이며 저를 시험하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남편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며느리가 산후조리 기간 몸조리를 잘하도록 해야 마땅한 것이므로 저는 마음이 매우 평온했고 원망과 미움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아들이 남편에게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고생스럽게 매일 우리를 위해 걱정해주시는데 저는 어머니에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점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저는 내심으로 사부님께 매우 감사드렸고 제가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준 대법에 감격했습니다.

돈을 빌리다

2019년 정월, 남편의 딸이 장사하려고 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얼마를 빌리든지 저는 개의치 않았으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3만 위안(한화 약 5백만 원)을 모았습니다. 딸이 급히 필요한 것 같아 저는 전화를 걸어 딸에게 가져가서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진심이었고 담담했습니다. 딸은 저의 진심을 느끼고 말했습니다. “엄마, 제가 이자를 드릴게요.” 저는 말했습니다. “안 줘도 돼. 가져가서 쓰렴.” 저는 호신부 하나를 꺼내어 사위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너희는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렴. 너희는 평안 무사할 거고 장사가 잘될 거야!”

사위는 호신부를 받아 매우 소중하게 지갑에 끼워 넣었습니다. “매일 외우고 매일 외울 거예요.” 나중에 그들이 정말 매일 외웠다고 했고 저는 매우 담담했습니다.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더 없었습니다. 딸과 사위는 저에게 관심을 더 기울이며 저를 이해해주었습니다. 시내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많이 사다 주었고 옷도 자주 사다 주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딸과 매우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정말 대법이 저에게 순정함을 주었고 선량함을 주었습니다.

불법으로 재산을 몰수당하다

2019년 5월 31일 아침 7시 조금 넘어서 누군가 노크했습니다. 저는 누군지 물었고 공안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안전검사라며 문을 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 집은 매우 안전해요. 검사할 필요 없어요. 당신들의 신분증을 보여줘요. 저는 기록해두겠어요.” 그들은 강제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와 함부로 물건을 뒤지고 재산을 몰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크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어서 와서 보세요. 물건을 약탈해가요.”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왔습니다.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한 부녀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들[파룬궁(法輪功) 제자를 가리킴]은 마음씨가 고와요.”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마을에 늘 삼륜차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어도 당신들은 상관하지 않고 파룬궁(수련생)을 상관하는데 이렇게 신나 보이네요.” 어떤 사람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가세요. 납치당하지 말고요.” 저는 분위기를 틈타 떠났습니다.

6월 18일, 마을에 신고가 들어와서 저는 납치당했고 스자좡 제2 구치소로 보냈습니다. 갇힌 후 신체 검사했습니다. 제가 협조하지 않자 그들은 신체검사를 강행했으며 신체검사 기록철에 저를 대신해 직접 서명했습니다. 이튿날, 6월 19일, 공안국에서 불법으로 심문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제가 무슨 법을 어겼는지 물었으나 그들은 시종일관 답하지 않았습니다. 10일째 되는 날 검찰원에서 불법으로 심문했고 저는 또 그들에게 제가 무슨 법을 어겼는지, 왜 저를 여기에 가두는지 물었으나 그들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헌법에서 신앙은 자유이며 어떠한 법률, 법규, 조례에서도 모두 헌법에 어긋날 수 없다고 규정된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 기자가 장쩌민(江澤民)을 취재할 때, 장쩌민은 말하다가 파룬궁은 ×교라고 모함했고, 따라서 ‘인민일보’에서도 따라서 이렇게 말했지만, 이것은 모두 법률적인 근거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법은 금지 없이 바로 행할 수 있으며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가르치며 파룬궁은 불법 수련으로 정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정부에서 기획 제정한 14곳의 사교에는 파룬궁이 없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또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던 초기에 파룬궁 서적 출판을 금지했지만 2011년에 파룬궁 서적에 대한 금지령은 이미 폐지된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는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사다리를 옮겨 담장을 넘어와 불법으로 재산을 몰수한 것은 약탈행위에 속하는데 경찰은 법을 집행하면서 법을 위배한 것입니다. 또 파출소 마을 간부로서 불법으로 재산을 몰수할 권리가 전혀 없으며 스스로 권한을 넘은 법을 어기는 행위이며 또 법적으로 종신 책임제가 있어서 누가 만든 억울한 사건에 대해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법 집행 기관의 담당자로서 공평함을 파악하고 선량함을 보호하고 지켜주면 선한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또 올해(2019년) 6월 17일, 영국 런던 독립 민간재판소(Independent people’s tribunal)에서 중국공산당의 생체장기 적출은 이미 사실이며 당시 27명의 증인이 있었고 중국공산당은 이미 반인륜범죄, 혹형 죄, 집단학살 죄를 구성한다고 공표했습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는 이미 중국의 파룬궁을 박해하는 사람을 제재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수많은 민주국가도 이 결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검찰원 담당자는 나간 후 파출소로 서류를 되돌려줬습니다.

13일째 되던 날, 남편의 딸이 통화로 파출소 소장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 일은 어떻게 됐어요? 우리 어머니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우리가 데리러 갈 준비를 할 거예요.” 소장이 말했습니다. “어머님 일은 아직 분명하게 조사하지 못했어요. 아마 형을 선고할 거예요.” 딸이 말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훔쳤어요? 빼앗았어요? 무슨 나쁜 일을 했어요? 무슨 법을 어겼어요? 우리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해서 좋은 사람이 된 것밖에 없잖아요? 무슨 근거로 어머니에게 형을 선고해요!” 이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아이들은 매우 바르게 표현했고 바짝 추궁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와 수련생들의 정념 가지 하에 15일째 되던 날 석방되었습니다. 파출소에서는 그들이 저를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직접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갈 거예요.” 파출소에서는 손 쓸 길이 없었고 아이들은 무사히 저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온 후, 마을 사람들이 만나면 물어보았습니다. “맞았어요?” 저는 제가 겪은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많은 물건을 불법으로 빼앗아갔지만 저는 법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저에게 형을 선고하려 해도 법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연공한 것뿐이잖아요.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잡아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어떤 사람은 그들에게 손해배상을 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옛날 수련생을 되찾아오다

우리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는 여러 해가 되어도 연공장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도 않고 들어오지도 않아서 정말 저는 걱정했습니다. 2019년 2월 저는 결심했습니다. 올해 첫 번째 일이 바로 그녀들을 되찾아 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에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지혜가 솟아 나왔습니다. 밤에 저는 전동차에 우리 두 노년 대법제자를 태우고 직접 셋째 언니를 데리고 둘째 언니 집으로 법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우리는 3일 밤을 갔습니다. 두 언니가 감동해 말했습니다. “20리 길을 마다하고 너희가 왔구나. 게다가 밤에 오다니, 너무 불편했겠어. 너희는 더는 오지 마. 앞으로 우리가 연공장으로 갈게.” 정말 그녀들은 연공장으로 갔고 매일 갔습니다. 상태와 오성이 모두 매우 좋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녀들이 이후 수련의 길을 잘 걷도록 축원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녀 두 사람에게 정념을 보태어 주었고 이 두 수련생은 지금 매우 정진하여 중생 구도의 대열에 걸어 들어왔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이 저에게 진선인의 에너지를 주어 제가비로소이 일보까지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악한 박해가 저의 삶을 이렇게 이상하게 복잡해지게 했고 제 수련의 의지를 망쳐버리려고 시도했습니다.

대법의 위덕은 저에게 심성의 승화를 주어 진흙에서 벗어나게 해줬습니다.

제가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주신 대법과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원문발표: 2020121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21/3992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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