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빚졌으면 갚아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과 교류하는 과정에 우연히 모 수련생이 모모 수련생의 돈 3만 위안을 빌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 또 모모 수련생의 돈 5만 위안을 빌린 수련생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또 그 후 어떤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에게서 20만 위안을 빌렸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수련생은 사회 보험 때문에 돈을 빌렸고, 어떤 수련생은 동업하여 장사하려고 돈을 빌렸고, 어떤 수련생은 투자하여 공장을 지으려고 빌렸다고 한다. 마지막에 장사도 못하고 공장을 짓지 않았는데도 돈을 수련생에게 갚지 않았다. 이미 몇 해가 지났는데도 지금까지 갚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 일을 들었으니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법제자는 매일 법 공부를 한다. 우리가 법을 배우는 목적은 시시각각 법으로 우리의 일언일행, 일사일념까지 지도하기 위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매우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빚진 것은 갚아야 한다.”[1] 수련인으로서 이 법리를 다 안다. 당신이 수련했다고 당신이 빚진 것을 무효로 하는 것이 아니다. 속인이 빚졌으면 갚아야 하고 수련인이 빚졌으면 마찬가지로 갚아야 한다. 속인은 이생에서 갚지 못했다면 내생에 이어서 갚아야 한다. 우리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내생이 없다. 수련하려 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면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 빚진 것을 갚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다.

수련생이여, 어찌하여 질질 끌어 지금까지 끌면서 빚을 갚지 않는가? 수련이라, 무엇을 닦아야 하는가? 우선 자기의 생생세세 모든 바르지 않은 요소부터 닦아야 하지 않는가? 빚진 것이 바르지 않은 요소가 아닌가? 모르게 빚진 것도 갚아야 하는데 게다가 법을 얻은 후 빚진 것임에랴? 빚을 지는 것은 인위적으로 자기에게 고난을 더하는 것이 아닌가?!

대법제자의 제고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 매 하나의 제고에는 모두 사부님의 심혈이 스며있다. 우리가 어찌 이렇게 대법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는가?! 어느 날 정법이 끝나면 빚진 것을 갚지 않으면 울어도 안 된다.

다음은 내가 겪은 몇 건의 빚 갚은 일을 써 빚진 수련생에게 조금이나마 제시가 되길 바란다.

1. 전생에 산토끼 한 마리 빚져 이생에 3만 위안을 갚다

1995년 내가 막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법원의 전화를 받았다. “아주머니가 주식을 가지겠으면 3만 위안을 가지고 와 주식을 바꿔가고, 주식을 가지지 않을 거면 주식 수속한 것을 가져오세요.”

통화가 끝난 후 나는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몇 년 전 나는 모 회사 비상장주식 5만 위안어치를 샀다. 그해 이 회사에서 주식을 가져온 이튿날 작은 여동생의 남자 친구가 경영한 한국에 목편을 수출하는 가공공장이 돈을 잘 벌어 현지 한 국영기업에 합병되었다. 그해 연말 공장에서 여동생의 남자 친구를 법원에 고소했다. 공금 3만 위안을 사적인 용도에 썼다고 고발해 법원에 수감되었다. 여동생은 정황을 안 후 나에게 말했다. “남자 친구가 나에게 먼저 대달라고 했는데, 나온 후 그가 나에게 갚아 주겠다고 합니다.” 나는 그때 손에 그렇게 많은 현금이 없어 막 가져온 이 회사 주식 3만 위안을 꺼내 법원에 저당 잡혔다.

여동생의 남자 친구는 나온 후 조만간에 나에게 갚아 주겠다고 했다. 몇 달 후 여동생이 그와 헤어졌다. 주식이 아직 상장하지 않았기에 이 일을 잊어버렸다. 3년 후 주식이 상장한 후 법원에서 전화를 걸어서야 나는 이 일이 생각났다. 여동생은 나를 데리고 그녀 전 남자 친구 집에 갔는데 그의 부모가 집에 있었다. 부모 한 분은 중풍 후유증으로 다리를 잘 쓰지 못했고, 다른 한 분은 발음이 똑똑하지 않았다. 이 정경을 보고 우리는 돈 갚으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몇 마디 말을 건넨 후 나왔다.

여동생은 월급쟁이고 나는 자영업자였기에 이 돈을 이렇게 내가 갚았다. 나는 원망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좀 불편했다. 내가 불편하긴 했지만 나는 수련인이기에 세상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여동생에게 아마 내가 그에게 빚진 것일지 모르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밤 12시 30분 취침한 후 나는 또렷한 꿈을 꾸었다. 꿈에 나는 어느 한 생에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그 생에 내가 사는 곳에 어느 날 저녁, 내가 집 홍문루(紅門樓)에서 나가 놀았다. 그때 나는 10살 넘은 아이였는데 마침 사냥꾼이 몸에 꿩, 산토끼를 가득 메고 나의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산토끼 한 마리를 골라 들고 우리 집 홍문루에 들어간 후 그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이 사냥꾼이 바로 여동생의 이생의 전 남자 친구였다.

이 일에서 나는 빚졌으면 갚아야 하고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의 일은 우연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다 사부님께서 장악하고 계신다. 이 일은 표면적으로 보면 여동생의 전 남자 친구가 좀 의리가 없어 보이지만 그가 의리 없는 것은 내가 과거 생에 먼저 의리가 없었기에 이생의 그의 의리 없는 표현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제고시키고 승화하게 하려고 과거, 지금의 모든 사람과 일을 이용하여 우리의 업력을 제거해주셨다. 사부님께서 들인 심혈, 사부님의 끝없는 법력, 우리는 이렇게 위대하고 자비로운 사부님이 계신 것을 행운으로 생각해야 하고 자랑으로 여겨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하신 수련의 기연과 원만하여 귀위(歸位)할 수 있는 계기를 어찌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는가?!

자신도 모르게 빚지고 업을 지은 것을 분명하게 3만 위안으로 갚아 업력을 제거했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

2. 수련생이 준 돈을 갚다

2007년 나는 중공(中共) 경찰에게 납치된 후 불법적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때 딸이 550점 성적으로 비용을 면제받고 중점고등학교에 붙었을 때다. 고등학교 3년과 대학 다닐 때 2년 동안 딸이 쓴 돈을 대부분 현지 수련생이 원조해주었다.

2012년 내가 집에 돌아온 후 여동생이 이 일을 말했다. 여동생의 기억과 수련생의 기억에 근거해 보니 모두 4만 위안이 넘었다. 나는 매우 감동했고 수련생들의 관심과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렸다. 나는 수련생들의 돈은 모두 중생을 구하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나의 딸을 도와 난관을 넘게 해주어 나는 한없이 고마웠다. 딸이 순조롭게 고등학교 3년을 마치고 또 순조롭게 대학에 입학해 공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얼마나 많은 수련생의 관심이 포함되어 있겠는가! 돈은 가치가 있지만, 수련생의 정은 가치로 매길 수 없다! 지금 모든 것이 돈이 최고인 세상 기풍에 대법제자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할 수 있다.

그때 나는 공장을 꾸리고 가게를 내려 했는데 돈 쓸 일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수련생이 준 돈을 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에 관한 법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2]를 기억했다. 마음속의 그 명각(明覺)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수련의 승화보다 더 소중한 것이 뭐가 있는가?! 세상에 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우선 이 돈을 수련생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수련생이 이 돈으로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돈은 써야 할 곳에 써야 돈의 가치가 체현된다. 일단 잘못 쓰면 업을 짓는 추동력이 되어 그것의 가치를 잃게 된다.

3. 빚진 것을 즉각 갚아 주다

2012년 감옥에서 돌아온 후 나는 다그쳐 수련하고 싶었고 또 장사해서 돈을 벌고 싶었다. 감옥에 있을 때 나는 돌아가면 의류 공장을 꾸리겠다고 한 수련생과 약속했다. 예전에 운영했었기에 나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그래서 나는 수련생에게 전화했다. 수련생은 약속대로 왔고 또 차를 빌려 설비 몇 대를 실어 왔다. 공장건물은 이미 세워진 건물이어서 다시 내장 공사하면 사용할 수 있었다.

몇 달 지난 후 나는 무엇이든 다 문제 될 것 없었지만, 유일하게 부족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수속하고 직원 모집, 설비 구매, 재료 구매, 설계 및 판매 등을 모두 나 혼자 하여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았다. 이걸 하면 저걸 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을 유일하게 큰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3]고 말씀하셨다. 막 법을 얻었을 때 이 소원이 지금은 지나친 욕망으로 되었다. 마음의 그 본성이 나에게 반드시 낭떠러지에 이르러 말고삐를 잡아채라고 일깨워주었다. 다시 큰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끊어버리고 마음을 다시 정법 수련, 사람을 구하는 궤도로 바로 잡아야 한다.

나는 내 생각을 수련생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 속에 투입할 정력과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아주머니는 현지에 돌아가 의류 수선을 할 수 있는 가게를 꾸릴 수 있습니다.” 수련생은 가게 임대를 포함하여 매달 적어도 500위안 돈이 드는데 그럴만한 돈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수련생이 봉급 수입이 없다는 생각이 났다. 그러면 수련생이 돌아가 가게를 낼 임대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사전에 약속한 대로 하면 개업하기 전에 내가 숙식은 제공하나 월급은 없다고 했다. 수련생의 어려움을 들은 후 나는 매우 부끄러웠다. 그때 나는 수련생에게 월급 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현지 수련생이 그렇게 사심 없이 나의 딸을 도와준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감동했다. 나도 대법제자이다. 내가 수련생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왜 돈주머니 끈을 풀어 도울 수 없는가? 나도 가게 낼 준비를 하고 돈을 투입해야 하고 수련생은 나의 친척, 친구들에게 옷을 해주고 기타 잡일도 하느라 가만히 놀고 있은 것이 아니기에 수련생이 들인 대가에 보수를 주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도리다. 나는 무슨 이유로 이 수련생에게 봉급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는가? 또 ‘산토끼’ 일도 나에게 자신은 좀 빡빡하게 살더라도 빚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해준 것이다. 나는 이전에 보수를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의 사람 됨됨이가 이렇게 이기적인 지경으로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우리 현지 수련생의 수련 경지와 비교하면 정말 천지 차이다!

나는 즉시 7,700위안을 꺼냈다. 7,000위안은 그녀 3개월 월급으로 치고 700위안은 그녀가 설비를 운반한 운임으로 쳤다. 수련생은 돈을 받은 후 700위안은 받을 수 있지만, 봉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아주머니는 이 7,000위안으로 작은 건물을 임대하고 가게를 차려 생활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 내가 거듭 권해서야 수련생은 받았다. 나의 마음은 평온했다. 나는 내가 수련의 길에서 또 한 걸음 내디딘 것을 알았다.

수련의 길에서 관이든 난이든 모두 스스로 넘어야 정체되어 나아가지 못 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뒤떨어지지 않고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따라갈 수 있다. 수련 중에 업을 지을 뻔할 때가 있는데 사부님의 법리가 나의 마음 깊은 곳 기억에 있었기에 내가 속세에서 업을 짓는 것을 면했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사부님의 법리로 나의 언행을 지도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4. 받지 말아야 할 돈을 받아 즉시 응보 받다

2012년 봄의 어느 날 나는 시장에 채소를 사러 갔다. 한 개인 가게에서 나는 채소 몇 가지를 고른 후 저울에 달고 돈을 줄 때 줄을 서야 했다. 한참 줄을 서서 내 차례가 됐을 때 계산원이 연속 본인이 아는 세 사람에게 먼저 계산해주었다. 우리 집에 손님이 있어 급히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조급할수록 그녀는 나와 맞서는 것처럼 말이 끝이 없었다.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이 일을 이용하여 나의 조급한 마음을 제거해주신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몇 가지 채소를 다 단 후 돈 계산할 때 그녀는 잘못 계산하여 나에게서 5위안을 덜 받았다. 그때 보복심이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규칙대로 일하지 않고 나를 냉대한 결과라 생각하고 돌아서 떠나려 할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재정 국장이 나에게 한 번 왔다 가라는 전화였다. 나의 월급 지급을 정지하여 해결하는 중이었다.

전화를 받은 후 나는 나에게 즉시 오라는 말을 듣고 공공버스를 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6위안을 들여 택시를 탔다. 국장 사무실에 도착해 보니 문에 쪽지가 붙어있었다. 위에는 분명하게 국장이 아침 8시에 어떤 향에 일 처리하러 갔다고 썼다. 이 쪽지를 보고도 나는 깨닫지 못하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누가 걸어온 전화인지 보았다. 그런데 핸드폰에는 이 기록이 전혀 없었다. 시간에 따라 또 한 번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없었다. 나는 또 1위안을 들여 공공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속으로 내가 5위안을 욕심냈다가 2위안을 더 보탰으니 정말 선악에는 응보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시각각 응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리이다!

나중에야 나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에게 관심 두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고할 수 있는가가 근본이다. 사부님께서는 속인이 나를 냉대하는 표현으로 나에게 쟁투심, 보복심, 이익심을 닦아버리고 승화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나의 표현은 엉망진창이었다. 각종 사람 마음이 낱낱이 드러나 사부님을 실망케 했다! 그런데 나는 안으로 내가 왜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했는지 안으로 찾지 않았다. 보기에는 아는 것 같지만 사실 흐리멍덩하여 이 업을 지은 것이다!

5. 1위안의 응보

여전히 2012년 가을의 일이다. 온종일 가게 일에 바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임무 완성하듯이 했다. 마음이 법에 있지 않아 법을 배울 때 딴생각을 했으며 연공할 때 조용해지지 못했다. 봄에 있었던 일이 나의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돈을 많이 벌려는 마음이 본성을 미혹했다. 몇 달 지난 후 또 잊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여름 방학에 딸이 돌아와 나와 함께 상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타 보지 않았던 공공버스를 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방향이어서 나와 딸은 차를 타고 딸이 돈을 투입했다.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한 남성이 돈을 투입하자 기사가 그 남성을 나무랐다. “위에 푯값이 2위안이라고 쓴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딸은 즉시 나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가 적게 넣었어요. 나는 1인당 1위안인 줄 알고 2위안밖에 넣지 않았습니다.” 딸이 2위안을 추가로 내려 할 때 나는 말했다. “모르는 것은 죄라 할 수 없다. 우리가 다음에 잘하면 된다.” 딸은 말했다. “엄마,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나는 안다고 말했다. 차에서 내려 환승할 때 차를 잘못 탔다. 분명히 우리 집 방향으로 가는 차로 봤는데 차를 탄 후 도착역을 알릴 때 다른 방향으로 가는 차를 탄 것을 알았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어떻게 해도 안절부절못했다. 마음속의 그 괴로움, 자책, 후회, 내심의 느낌은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2012년 전반에 연이어 발생한 이런 일들을 자세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후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익심, 보복심, 공짜를 좋아하는 마음, 다시 생각하니 이것은 몇 위안의 돈 문제가 아니라 심성 문제였다. 자기를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았고 진선인(眞·善·忍)을 실천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대법제자인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속인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이때 나는 나의 심성 표준이 이미 속인 층차에 떨어졌고 심지어 속인 중의 좋은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의식했다.

더 깊이 생각하니 이것은 단순하게 이익심을 제거하지 못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익심 배후에 더 엄중한 마음이 숨어있었다. 그것이 바로 ‘자아(自我)’였다.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나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고 나만 다른 사람을 어떻게 지휘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딸이 2위안을 추가로 내자고 할 때 내가 자세히 생각하니 이 2위안을 탐낸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이 말을 했다면 나는 딸에게 추가로 내게 했을 것이다. “엄마가 얼마나 잘 수련했니? 얼마나 인격이 높고 절개가 굳은가?” 그런데 딸이 ‘먼저 다투어 말해’ 자기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졌다. 나는 ‘어머니의 위엄’을 잃기 싫었다. 소위 위엄은 여전히 집착과 자아를 표현한 것이기에 “모르는 것은 죄라 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한마디 한 것이다. 딸이 두 번째로 사부님의 말씀 “잃지 않은 자는 얻지 못하고”[1]로 나에게 귀띔했을 때 나는 홀가분하게 “안다”고 말했다. 이 “안다”의 배후에는 자기의 허영심과 아주 강한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예전에 줄곧 내가 사장이었기에 내가 다른 사람을 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딸 앞에서 ‘내가 크다’는 마음이 더 엄중했다. 나는 이런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부님의 요구 표준에 도달할 수 있고 어떻게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따라갈 수 있으며 또 어찌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를 인식한 후 자신의 문제가 매우 엄중함을 느꼈다. 나는 이미 일반적으로 오염된 문제가 아니라 심성에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수련, 정진할 시간과 기연을 잃어버렸다. 나는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사부가 문으로 이끌어 들이나 수행은 자신에게 달렸다.”[1] 나는 법을 얻은 후 자기에게 시시각각 법을 가장 크게 보아야 한다고 요구했던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 전에 나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수련을 유일하게 큰 것으로 여기는”[3] 것을 잊어버리고 연이어 ‘자아’가 표현되었고 심성이 폭로됐다. 본성의 일면이 나에게 더는 홀시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각성하지 않으면 나는 다른 한 수련생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4] 나는 대법만이 나를 깨끗하게 씻을 수 있고 대법만이 나를 다시 승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즉시 가게 문을 닫았다.

가게 문을 닫은 후 우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배웠다.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린 이외에 잠을 매우 적게 자면서 전부 법 공부하고 연공했다. 3개월 동안 자기를 조정하고 나 자신 문제에 근거하여 나는 대형 뷔페에서 파트타임 일을 했다. 그중의 수련은 여기에서 쓰지 않겠다.

오늘 이 글을 쓴 것은 빚진 수련생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빚진 것은 갚아야 한다. 그러므로 수련의 길에서 일부 위험한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유의 일들이 나타날 때 당신은 두렵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당신에게 진정한 위험이 나타나지 않게 할 것이다.”[1]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해야 위험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나는 이해했다. 지금 위험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사부님께서 고칠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닌가? 절대 ‘작은 이익’, ‘작은 일’로 일시 흐리멍덩하여 기연을 놓쳐서는 안 된다. 수련생께서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적당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착실한 수련’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서부법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원문발표: 2020년 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16/399063.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