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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문화의 독소를 깨끗이 씻어내다

글/ 쓰촨(四川)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악한 공산당의 감옥에서 살아 나온 것에 대해 나는 무척 긍지를 느꼈고 이것은 지혜와 용기로 싸워 이긴 기적이라 생각했다. 그때 나는 자신이 사악한 당 문화(邪黨文化)의 해를 입어 사오(邪悟)와 머지않았다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수련생이 찾아왔을 때 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우쭐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장엄하고 엄숙한 수련생을 보고 나서 단번에 차이점을 보았다. 나는 속인 중의 영웅이 아니라 대법수련자다. 그래서 대량으로 법 공부를 시작했고 쉬지 않고 끊임없이 법을 배웠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심하게 중독됐는가를 발견했고 법 속에서 계속 자신을 깨끗이 씻었다.

나는 의류회사에서 방직 작업을 하고 있고 생산라인에 있다.관례대로 하면 방직 작업자가 그 이전 공정에서 자신의 물건을 가져와 일을 마친 후에 옆의 회전 바구니에 넣으면 다음 공정을 하는 사람이 가지러 왔다. 한동안 나는 늘 완성한 물건을 다음 공정 사람에게 갖다주었지만, 그날따라 12시 발정념을 하다 보니 시간이 빠듯해 갖다주지 않았다. 오후에 작업장에 막 들어서자 그 사람은 다짜고짜 내게 따졌다. “왜 물건을 갖다 주지 않았나요?”라며 몹시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 순간 나는 멍해지면서 그렇게 오래 도와주었는데 그가 고마워하기는커녕 나에게 의지하고 원망까지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기계 앞에 앉아 일했다. 머릿속에 사부님의 “당신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이 아주 태연하며”[1]라는 법이 떠올랐다. 그때 경각심이 들었고 자신이 정말 태연한 것이 아니라 불편을 느꼈고 거기에는 상실감까지 곁들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더 깊이 그 느낌을 캐어 보니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좋다고 얘기하기를 무척 바라고 있었다. 진심으로 남을 위해서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 중에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나의 마음에 불편을 느끼는 이것은 질투심이 아닌가? “당신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이 아주 태연하며”[1] 이 한 마디 법이 지속해서 의식 중에 떠올랐다. 사부님께서는 대체 나에게 무엇을 일깨워주고 싶으신 걸까? 갑자기 그 당시의 내 표정이 눈에 떠올랐다.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고 여겼고 이어서 머릿속에 냉전(冷戰)이라는 일념이 떠올랐다. 이건 쟁투심이 아닌가? 아주 깊이 숨어져 있던 쟁투심인바 겉으로는 싸우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힘겨루기하면서 내가 당신을 상대하지 않으면 어쩔 건 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마음의 뿌리를 찾기 시작했고 사악한 감옥에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감옥 경찰과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구성된 감시원)는 각종 방법으로 나에게 공격을 퍼부었지만, 몇 번 교전을 겪으면서 꼬리를 내렸다. 그리하여 갑자기 수단을 바꾸어 단독으로 나를 다락방에 가두었고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두 사람에게 나를 지키게 했고 그 둘이 나와 말도 못하게 했다. 갑자기 자신이 광야에 남겨진 것 같았고 단번에 힘을 쓸 수 있는 기반을 잃은 것 같았다. 그때 제때 안으로 찾아 쟁투심을 닦아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너희들이 나를 상대하지 않으면 나도 너희들을 거들떠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대치하면서도 자신이 인내력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소모했는데 이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라는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하지만 나는 이 더러운 마음을 닦아버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강화했고, 이 마음은 아주 깊이 숨어 있으면서 줄곧 보호를 받고 있었다.

이때 나는 전남편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도 역시 이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심한 박해를 받아 감옥에 있을 때 그는 나를 떠나 다른 사람과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 당시 조금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아주 빨리 기억에서 그를 지워버렸다. 그래서 이 정을 일찌감치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정이 있든 정이 없든 모두 정 속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진정으로 정에서 벗어났다면 그건 자비의 상태여야 한다. 이번 생에 우리는 부부가 되었고 그 역시 대법을 배운 적이 있기에 우리가 맺은 것은 성스러운 인연이다. 지금 그는 사람 속에 빠져 본성을 잃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그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순간 갑자기 왜 감옥에서 나온 후 진상을 알리는 효과가 좋지 않았는가를 깨달았다. 매번 나타난 상황이 거의 비슷했는데 모두 내가 말을 막 꺼내면 상대방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떠났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얘기하지 않고 떠났다. 알고 보니 내 마음속에 숨어 있던 쟁투심과 원망하는 마음이 중생이 구도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퇴직한 노년 교사를 만났다. 그는 우리 아버지와 잘 아는 사이여서 내 상황을 조금 알고 있었다. 몇 마디 안부 인사를 전한 후 그는 아주 진지하게 나보고 마땅히 공산당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듣고서 유난히 귀에 거슬렸지만 참고 평온한 어투로 왜 그래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공산당이 나를 석방했기 때문이라며 만약 풀어주지 않았으면 내가 아직도 안에서 고생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원죄(冤罪)·날조·오심 사건을 조작해 좋은 사람을 감옥에 붙잡아 넣었으니 그것을 청산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바로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지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당신을 풀어주었으니 마땅히 고마워해야 해요….” 그때 나는 아주 괴로웠고 그가 정말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닌가? 하지만 잘난 체하며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나는 즉시 경각심을 느꼈다. “사부가 말했듯이, 당신이 인생 중에서 부딪힌 어떤 일도,당신이 이 수련의 단체에 걸어 들어오기만 하면,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고, 모두 당신의 제고를 위한 것이다.”[2] 그럼 왜 내가 이런 말을 들었을까? 분명히 꼭 닦아버려야 할 것이 있을 텐데 그럼 그것이 무엇일까?

예전부터 나는 감옥에서 나를 관대하게 대한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대놓고 나를 박해하지 않았고 늘 웃었으며 종종 은혜를 베풀기도 했고 심지어 가끔은 경문을 보라고 가져다주기도 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그녀에게 고마움과 의지하는 정이 생겼고 가끔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요구에 협조하기도 했다. 그 순간 갑자기 정신이 들었고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마음이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 나도 그렇게 흐리멍덩하지 않았기에 한눈에 그녀의 위선을 간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바오자에게 내가 사부님의 경문을 보는 것을 허락하라고 했기에 나는 판단능력을 잃었다. 가끔 그들은 경문 한 단락을 갖고 반나절 의논하기도 했는데, 그때 나는 그들이 허튼소리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당시 그들을 속이더라도 내가 법 공부를 할 수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상관없다는 간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전법륜(轉法輪)’의 ‘부체’ 문제를 볼 때 한 줄의 글씨가 유난히 도드라졌다. “나는 수련할 생각도 없고, 나는 다만 부자가 되려 하기에 돈만 있으면 되지, 그게 무슨 상관인가!” 예전에는 이 부분을 읽으면 그 사람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었고 내가 그 사람보다 더 어리석다는 것을 느꼈다. 수련자로서 이것은 법에 대한 가장 큰 불경이었다. “바로 관건적 시각에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아야 한다. 일부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부처마저도 감히 팔아먹을 수 있을 것인즉, 이것이 작은 문제인가?”[3]

무슨 마음이 내가 이렇게 표현하도록 만들었는가? 이때 머릿속에 수련의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든 모두‘나’에서 출발했고 한 바퀴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자신이 법을 배우려고 당시 상황이 법을 모욕했는지, 중생한테 위험한지를 상관하지 않았다. 이토록 더러운 마음을 안고 어찌 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심지어 여러 번 속으로 득의양양해 하면서 겉보기에 공산당이 얼마나 강하든지 여전히 나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법 공부를 하면서 끝내 공산당의 최종목적이 사람을 망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육신을 없애려 할 뿐만 아니라 영혼도 망가뜨리려 했다. “그것의 목적은 매우 분명한데, 바로 중국인의 사상행위를 마치 쓰레기처럼 만들려는 것이다.”[2] 수련자가 아주 간사하게 변한다면 이는 진선인(眞·善·忍)과 반대가 되는 것이 아닌가?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부의 눈은 당신들의 일사일념(一思一念), 당신들의 거동 하나까지, 당신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모두 보아낼 수 있다. 나는 그런 말만 할 줄 알고 가서 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며, 나는 그런 교활한 사람도 싫어한다. 나는 순박한 사람, 착실하고 견실한 사람을 좋아한다. 또한 희망하건대 여러분이 이렇게 다년간의 수련 중에서, 바른 방면으로 지혜를 향상시키기 바라며, 처세에 있어 수확(收穫)이 너무 많지 않기를 바란다.”[4], “특히 중국대륙의 그 환경 하에 있는, 많은 대법제자들은,그 비뚤어진 인성(人性)관계, 비뚤어진 사람의 행위와 비뚤어진 사상방식의 그런 사회 중에서 누구도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기가 매우 어렵다. 비록 대법제자는 대법에 따라 해야 하지만, 당신이 밖에 나가서 만나는 것은 곧 속인사회의 이런 인간관계인바, 전반 사회가 모두 비뚤어져 있어, 그럼 당신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오래되면 또 이 사회의 사람과 사람간의 행위 속으로 뒤섞여 들어간다. 심지어 문제를 사고하는 방식도 사람의 이런 생존방식에 습관이 되어, 바로 이렇다고 느낀다.”[2]

사악한 공산당은 인간의 본성을 비뚤게 하고 우리의 생존환경을 복잡하게 만든다. 하지만 수련자로서 법에서 수련한다면 제때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다. 가끔 자신을 보호하는 습관이 자동으로 작용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진상을 알릴 때 사람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려하고 속에 없는 말을 하는 등이다. 이런 것들은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성스럽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든다.

반드시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잘하여 자신을 잘 닦는 동시에 진상을 많이 알려 더욱더 많은 사람을 구하겠다.

개인적인 깨달음으로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전법륜’
[2]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3]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대폭로(大曝光)’
[4]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12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30/3973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