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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자료 제작 중 수련체험

글/ 중국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허베이의 한 작은 현(縣) 소재지에 산다. 올해 70세로, 1998년에 정식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다. 법공부를 진지하게 하고부터 나는 수많은 불분명한 법리를 진정하게 알게 됐고, 사람이 왜 세상에 왔는지, 사람에게 왜 그렇게 많은 고통이 있는지 알게 됐다. 이전에는 항상 하늘이 나에게 불공평하다고 여겼지만, 법공부를 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사람의 인연 관계와 업력으로 인한 것임을 알았고, 파룬따파가 사람을 반본귀진(返本歸眞)하게 하는 고덕대법(高德大法)임을 알았다.

이치를 알게 되자 내 심정은 개운해져 더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그를 관심하며 돌보았다. 자신에게는 법의 표준을 엄격하게 요구했고, 얼마 되지 않아 내 병도 모두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내 변화를 본 남편도 변해서 나를 잘 대했을 뿐 아니라, 내 수련을 적극 지지했다. 우리 일가가 이전처럼 격렬한 충돌이 없이 화목한 가정이 된 것은 사부님과 대법이 곧 무너질 이 가정을 행복하고 아름답고 원만한 가정으로 바꿔주셨기 때문이다.

좋은 날을 맞은 지 2년도 되지 않은 1999년 7월 20일부터 질투심에 사로잡힌 소인배 장쩌민이 파룬궁을 상대로 잔인한 박해를 일으켰다. 7·20에 나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불법 체포와 벌금형을 받았다. 2001년 5월, 나는 수련생들과 함께 베이징 천안문에서 법을 실증하다 납치당해 돌아왔고, 구치소에서 반년을 넘게 불법 감금당했다. 2012년에는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악인에 의해 공안국으로 납치됐고, 또다시 악명 높은 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됐다. 귀가 후에는 즉시 대법의 큰 물결 속에서 각종 방식으로 세인을 구하는 일에 투입됐다. 각기 다른 사람에게 진상 편지를 보내고, 노란 종이와 나일론 천을 사다가 진상 족자를 만든 다음 대면해 진상을 알렸다. ‘9평 공산당’이 발표된 후, 나는 수련생들과 함께 집마다 방문해 삼퇴를 권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위험에 처할 때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와 도움 덕에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대략 8~9년 전, 협력하던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자료를 만드세요!” 내가 말했다.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돼요. 전 많이 배우지 못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게다가 병음 자모조차도 모르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협력하던 수련생이 나를 격려하며 말했다. “잘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수련생이 나에게 자료를 만들게 한 것이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일 수도 있으니, 그렇다면 내가 이 길을 반드시 잘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 한 송이 작은 꽃이 피어났다.

처음에는 수련생이 나에게 노트북 컴퓨터와 복사기, 그리고 레이저 프린터를 갖다줬고, 나중에는 아들이 데스크톱 컴퓨터를 설치해 주어 천천히 내 법기가 모두 갖춰졌다. 나는 인터넷 접속, 다운로드, 인쇄, 타자, 대법 서적 제작, 진상 자료와 소책자 제작, 거울형 호신부와 각종 호신부 제작 방법을 배웠다. 수련생들을 도와 삼퇴 명단, 진상 지폐, CD 타이틀과 봉투 등을 인쇄했고, 도안으로 꾸며진 책갈피와 카드를 직접 디자인, 제작했으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가 적힌 미니 족자를 스티커 용지에 인쇄해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면서 손쉽게 붙일 수 있게 했다. 수련생들은 모두 좋아했다. 매년 탁상달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화려하고 정교하게 복스러운 아기들과 세계에 널리 퍼진 대법 등이 표현된 아름다운 탁상달력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야만 그림을 그린 수련생의 고생에 대해 면목이 섰고, 내가 최선을 다해 가장 잘 만들어야만 세인들에게 사랑받고 세인들이 구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현재 가장 큰 한 가지 일은 바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며 많이 구원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장 큰일이다.”[1] 그렇게 많은 세인이 구도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몹시 조급해졌고, 항목을 추가해 힘이 닿는 일을 더 하기로 했다. 나는 또 스티커, 코팅지, 각종 메달, 각종 구슬과 각종 공구를 사고, 밍후이왕에서 각종 견본을 다운로드해 자동차 백미러에 거는 초롱불 등 각종 장식품을 만들었으며, 크고 작은 못 쓰는 CD를 이용해 모빌 장식품을 만들었다. 또 공안, 검찰, 법원과 여러 기관에 수많은 진상 편지를 보냈다. 나는 수입이 없어 생활을 남편 한 사람의 수입에 의존했다. 나는 명절 때마다 아이들이 주는 돈으로 자료점을 비롯한 사람을 구하는 일(지금은 모두 자료점에 씀)에 썼다. 남편은 나를 열렬히 지지했고, 퇴직 후에는 자신이 밥을 했다. 나는 설거지와 채소 씻는 일만 담당했고, 남편은 음식이 다 되면 나를 불렀다. 왜냐하면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았고, 나는 밥상을 차려 내 방에 가져와 밥을 먹으면서 밍후이 방송에 나오는 수련생들의 교류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바빠서 발정념을 잊으면 그가 일깨워 주었다. 스티커를 붙이거나, 자료를 배포하면 그가 늘 나와 함께 가서 했다. 한번은 내가 자료점에 천 위안을 주었는데, 그도 동의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나는 설거지를 항상 이틀 만에 했는데, 남편도 가끔 화를 내며 말했다. “온종일 저걸 하면서 다른 건 아예 신경을 안 쓰네.” 내가 재빨리 다가가 그와 함께 집안일을 하자 곧 그가 말했다. “가서 당신 일을 해요.” ‘9평 공산당’과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을 대량으로 만들어 종이가 많이 필요할 때면 남편이 한 상자씩 들어 지하실로 옮겼다가 다시 쓸 만큼을 꼭대기 층으로 옮겨 주었다. 우리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우리는 가장 높은 6층에 산다. 편의를 위해 우리는 오토바이를 샀는데, 일하러 나갈 때는 안전을 우려한 남편이 나를 데려다주었고, 내가 어디로 가자고 하면 남편이 즉시 나를 데려다주었다. 수련생들은 이런 농담을 했다. “저건 당신 전용 승용차네요.” 남편은 집안일을 거의 도맡아 하면서 나에게 일할 시간을 제공해줬다. 나는 대법과 나를 지지해 주는 그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기계를 잘 몰라 가끔 고장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한번은 프린터의 푸른색 잉크가 다 써서 말라버렸는데, 나는 기술을 지원하는 수련생이 가르쳐 준 잉크 보충 방법을 잊어버렸다. 나는 아들에게 주사기를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공기를 밀어 넣게 했다. 나는 그렇게 하면 잉크가 밀려 위로 올라올 줄 알았는데, ‘펑’하는 소리가 나더니 잉크통에 있던 잉크가 단번에 뿜어져 나와 머리를 숙이고 공기를 넣던 아들의 두 눈과 온 얼굴에 튀었고, 방 안에도 온통 잉크가 튀었다. 아들은 눈을 뜨지도 못한 채 급히 소리쳤다. “빨리 물을 갖다 주세요!” 나는 놀라서 즉시 물을 갖다 줬다. 세숫대야를 수차례 나르고 나서야 눈 속의 잉크가 씻겼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아들 눈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한번은 복사기에 문제가 생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기술을 가진 수련생에게 부탁하려고 찾아갔다. 내가 그 집에 막 도착하니 그녀는 나를 호되게 꾸짖었다. 나는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해 눈물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늘 그 수련생이 왜 나를 그렇게 대했을지 생각했다. 틀림없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반드시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다. 찾아보니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원한, 질투심 등 수많은 집착심이 보였다. 나는 다른 수련생이 내 심성을 향상시켜 주었는데, 내가 화를 내며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마땅히 그 수련생에게 감사해야 했다! 그러자 내 마음속의 억울함과 원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복사기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에 그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서는 미소 띤 얼굴로 들어서며 말했다. “아주머니, 사과드리려고 왔어요. 어제 제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용서해주세요.” 나도 감동해 황급히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각자의 체득을 기쁘게 교류했다. 우리의 마음은 녹아서 하나가 됐다.

늘 시간이 부족함을 느낀다. 나는 매일 3시 5분에 일어나 새벽 연공을 하고, 6시에 발정념을 한 후, 컴퓨터를 켜서 일하고, 정오에 밥을 먹고 잠깐 눈을 붙인 다음, 2시에 법공부를 시작한다. 소그룹 단체 법공부 외에도 나는 스스로 집에서 날마다 ‘전법륜’ 한 강의를 공부하고, 시간이 나면 각지 설법을 읽는다. 저녁에 일하다가 밤늦게 잠드는데, 항상 정확히 3시 5분에 일어나 새벽 연공을 한다. 법공부를 할 때는 깨끗한 판지 한 조각을 이용해 아래쪽 글자를 가리고, 한 단락을 반쯤 외우면서 통독하며 낭독한 후에는 다시 한번 반복해서 외운다. 나는 이전에 ‘전법륜’을 여섯 번이나 외웠기 때문에 법공부를 할 때 쉽게 외울 수 있다.

나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문제가 생길 때는 자신이 때로는 법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일을 수련으로 여겼고, 수많은 집착심을 닦아 버리지 않았다. 한번은 양면 프린터 속의 토너 가장자리에 검은 얼룩이 생기고, 가끔 토너에 종이가 걸렸는데, 온종일 만져도 고칠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6시 발정념을 한 후에 수리를 계속했는데, 법공부를 못해 마음이 조급해졌고, 토너를 보충한 후에 위쪽 구멍 막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것저것 만지다 다른 쪽을 손보려 하는데, ‘푹’하면서 토너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온통 흩어진 것을 급히 수습했는데, 오후 법공부 때가 되어서는 힘이 빠져 걸레를 들 힘도 없었다.

한번은 프린터 토너가 어떻게 해도 잘 작동하지 않아 기술을 가진 수련생이 와서 도와줬다. 그 수련생은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다며 한바탕 훈계했다. 나는 너무나 억울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료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들에게 기계를 모두 넘겨주고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싶었다.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 따지며 며칠 동안 찾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그 수련생의 입을 빌려 나에게 집착을 닦아 버리고 제고해 승화하게 하신 것이 아닌가? 나는 오히려 깨닫지 못해 쇠뿔 끝을 뚫고 나오지 못했고, 화를 내고 불평하면서 자신을 닦아야 함을 몰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대법제자의 길이 있다. 만약 당신이 바르게 걸으면 교란은 곧 적어진다. 나는 줄곧 말했는데, 당신이 바르게 걸으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사람 마음을 가지고 한다면 비록 대법 일을 하더라도 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표준과 법도는, 해내기가 아주 어렵고, 이 기초가 없으면 역시 해내기가 아주 어려운데, 그래서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2] 법공부를 하며 안으로 찾으니 나에게서 일하려는 마음, 과시심, 원망,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체면, 불만 등 수많은 집착심이 보였다. 나는 어째서 사부님 말씀에 따라 자신을 닦지 않고 훈계하는 수련생을 원망했을까? 게다가 자료를 만드는 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고 사명이었으니 남에게 미룰 수 없었다. 나는 반드시 이 책임을 맡아야 했고, 최대한 그런 집착심을 닦아 버려야 했다.

한번은 외지 수련생이 백미러 장식품을 만든다며 나에게 각인기로 구슬에 ‘파룬따파하오’를 써달라고 했다. 많은 곳에서 이런 장식품을 만드는데, 비용이 저렴하고도 예뻤다. 장식용 술을 이용해 글자가 있는 구슬이나, 작은 표주박에 원보(元寶, 말발굽 모양의 고대 중국 화폐)를 꿰어 매달면 됐다. 대단히 편리한 데다 글자가 또렷하지 않아 사람들도 과감하게 이용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 게다가 진상을 알리려 말문을 트는 데도 사용하기 좋아 아주 좋은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나는 수련생들이 틀림없이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 장식품을 만들기 위해 외지 수련생에게 2천 위안어치의 자료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현재는 차를 가진 집이 아주 많아 나는 우리도 세인을 좀 구도하기를 바랐다. 집으로 돌아오니 나에게 있던 1천 위안에다 아주 빨리 1천 위안이 더 늘어났다. 그때 협력하던 수련생들은 내가 잘못됐다며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외지 수련생들이 많은 곳에서 모두 이걸 만들고 있어요.” 그들이 말했다. “누구든 한다면 잘못된 거예요.” 수련생은 왜 모두 내가 잘못됐다고 하는지 나에게 안으로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세인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데, 어디가 잘못됐을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강경하게 수련생들에게 대꾸했다. “나는 이렇게 할 거예요.”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정말 뼈를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괴로웠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단번에 찬물을 뒤집어썼으니 수련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나는 이런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아 1천 위안을 수련생에게 돌려주고, 외지 수련생에게는 급히 전화를 걸어 자료를 사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줬다. 그러나 이미 외지 수련생은 상품을 주문했다며 자세한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나는 다시 다른 수련생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내가 못하게 됐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사람을 시켜서 취소해드릴게요.”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 아마 지금 여러분은 모두 그것의 어려움을 체험했을 것이다. 어렵기 때문에, 비로소 수련해 낼 수 있는 것이다.”[3]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4]

지난 2년간 기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는 자신을 향해 찾았다. 어느 곳이든 법에 부합하지 않은 곳을 바로잡은 다음에 기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살피면 대부분 고쳐졌다. 안 되는 것이 있을 때는 기술을 가진 수련생에게 전화하면 아주 빨리 와주었다. 지금까지 거의 문제가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시련을 겪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호가 있었기에 나는 평온하게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나는 깊이깊이 체득했다. ‘오직 법공부를 많이 하며 잘 배우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심성을 높이고, 많이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정법 노정을 바싹 뒤따르며 다그쳐 사람을 구해야만 자신의 서약을 더욱 잘 실행할 수 있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8-2007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도항-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1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24/3974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