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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이 나를 개변시켰다

글/ 중국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강산은 변하기 쉬워도 천성은 변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람의 오랜 세월 형성된 성격을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중공 악당이 통치한 몇십 년간, 중화인에게 강제로 무신론을 받아들이게 하고, 신불에 대한 신앙을 우매무지(愚昧無知)라 말하며, 공자 맹자의 도를 봉건사상이라 했다. 역대의 탄압, 학대로 선량하던 중국인을 피비린내 나는 공포 현실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을 타도해야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현실 사이에서 생존하지 않으면 안 되게 했다. 무신론의 세뇌 주입 하에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을 뒤로하게 하고 윤리와 예의가 사라지게 했다.

남편은 농촌 사람이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1995년 우리가 결혼할 때 시아버님이 우리에게 600위안(한화 약 11만 원)을 주셨다. 친정 형편도 좋지 않아 나는 우리 스스로 노력해 생활을 개선하려 했다. 우리는 개인 사업을 했는데 휴식 시간이 거의 없어, 아들이 8개월 때 남편이 시아버님을 모셔와 아이를 돌봐달라고 했다. 아버님은 성격이 좋으시고 밥도 잘하시며 우리를 생각해 돈을 아껴 쓰셨다. 개인 생활 습관이 달라 아버님이 하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나의 말투가 좋지 못했지만, 아버님은 개의치 않으셨다. 나는 아버님의 성격이 좋다고만 생각하고 자신을 고치지 않았다. 친정어머니가 보고 그러면 안 된다고 뒤에서 나를 나무라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신경 쓰지 않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뭐 어때, 아버님이 먹고 마시는 것도 나는 따지지 않고, 매년 명절과 생일 때 옷을 사드리는데 다 내가 산 거야. 난 지금 다른 사람들과 비하면 효도하는 거라고.” 나는 정말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2012년 우리는 다시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나는 다시 대법 서적을 들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리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대로 했는가? 사부님은 우리에게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으라고 했다. 나는 찾았는가? 시아버님은 우리 이 집을 위해 많은 헌신을 하셨는데, 하루 세끼 밥을 하고 또 아이를 돌봐야 했다. 나는 이런 것은 보지 못하고 조금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며,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뭐라고 했다. 표면으로 보면 우리가 아버님을 모시는 것이지만 사실을 아버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다. 나는 현재의 변이된 관념, 악당의 이념으로 일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고 있었다.

현재 중국인은 대다수 부모를 자식의 현금 인출기, 돈을 주지 않는 가정부로 여겨, 부르면 곧 오고 가라면 바로 가는데, 이미 전통 윤리가 없어졌다. 나도 이렇게 생각했는데, 우리가 결혼할 때 아버님이 돕지 않았으니 지금 건강하실 때 우리를 좀 도와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감사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사부님의 법을 보고 지금의 자신을 보니 정말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는 사부님 법의 요구대로 하며 자신을 개변하겠다고 결심했다.

그해 아버님이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나는 아버님께 발 씻을 물을 떠다 드렸는데 아버님이 잘 듣지 못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발 씻으세요.” 아버님은 깜짝 놀라셨다. “네 신랑한테 떠온 거냐?”, “아니요. 아버님께요. 어디서 씻으시겠어요. 침대에 앉아서 아니면 의자에 앉아서요?”, “그럼 침대에 앉아서 씻자.” 나는 대야를 바닥에 놓고 발 닦을 수건을 땅에 휙 던지고 바로 방에 들어왔다.

방에 들어와 나는 흐뭇해하며 남편에게 나의 공로를 자랑하고 싶어졌다. 입을 열기 전에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발 씻는 물을 갖다 주는데 왜 그리 불친절해.”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랬어요? 불친절했어요? 난 모르겠는데!” 정상적으로 하는 말에도 말투가 선하지 않았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정말 무섭다. 나는 즉시 깨달았다.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악당이 지금의 여인을 여장부로 만들어, 여인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다 말살시켰다.

또 한 번 아버님께 발 씻을 물을 갖다 드리고, 혼자 발 씻는 것이 힘들어 보여 “아버님, 제가 씻겨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아버님은 의외로 “좋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몸을 숙이고 손을 대야에 넣는 순간 마음에 감동이 일었다. 갑자기 아버님의 어려움이 생각났다. 남편이 9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남편의 두 누이와 7살 된 여동생까지 자식들을 혼자서 다 키우셨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후 또 우리 집에 와서 살림하며 아이를 돌봐주시는데, 나는 철이 없어 또 수시로 아버님께 얼굴을 찌푸렸다. 수십 년간 아버님의 고생이 느껴져 억지로 눈물을 참고 아버님께 발을 닦아드리며 나의 지난날 행동을 후회했다. 그때 아버님이 말했다. “아이고, 나에겐 어디서 이런 복이 왔을까. 이런 좋은 며느리가 있다니, 우리 딸도 이렇게 해준 적은 없다.”, “아버님, 사부님이 저를 개변시켰어요.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예전에 나는 내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그것은 미끄러진 현재 사람의 도덕과 비교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의 법과 대조하니 다 드러났다. 이기심, 질투, 속 좁음, 겉으로는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지만, 이익을 얻으면 마음속으로 몰래 웃고, 다른 사람이 좋으면 겉으로는 축하해주지만, 속으로는 탄복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입으로는 걱정해주지만, 마음속으로는 고소해한다. 인생의 흥망성쇠 중에서 사실 나는 사는 것이 즐겁지 못했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일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정말 내려놓지 못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잘못했는데 또 그를 위해 생각해야 하고 자신의 잘못을 찾아야 할 때가 더 그랬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이니 사부님이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한다. 게다가 사부님이 법리를 우리에게 다 알려주셨는데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내려놓고, 내려놓아 점차 나는 안으로 찾을 줄 알게 되었다. 공평하지 못한 일에 부딪혀도 어떤 때는 태연하게 대할 수도 있었다. 마음이 넓어지고 걱정도 갈수록 적어져 화도 잘 내지 않고, 매일 즐거워 마치 끝없이 웃을 기쁜 일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또 깨끗하지 못하고 일을 진지하게 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나도 곤혹스럽다. 이 결점을 고치려고 해도 이틀이 지나면 또 자신을 단속하지 못해, 자신을 중간에 끼워 넣고 강제로 단속해 아주 괴로웠다. 며칠이 지나 느슨해지면 다시 원상태가 되었다. 이런 일로 남편이 늘 말했다. 옷장의 옷이 한데 뒤엉켜 있고 바닥을 닦아놓으면 내가 밟고 지나가 검은 발자국들이 생겼다. 남편이 신발 바닥을 깨끗이 닦으라고 하면 나는 신발 바닥에 문제가 있다고 둘러댔다. 옷장을 정리하라고 하면 나는 대꾸하지 않고 생각했다. ‘대충 살면 되지, 그렇게 깨끗하게 치우려면 시간을 얼마나 많이 낭비해야 해. 책을 더 많이 보는 게 낫겠다.’ 남편이 “집이 어지러우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깨끗하게 치워야 마음을 조용히 하고 책을 볼 수 있네요.”라고 해 나는 생각했다. ‘당신 그것은 사람 마음, 집착이에요. 날 봐요. 아무리 어지러워도 마음에 들어가게 볼 수 있어요. 그런 것은 마음에 두지 않아요. 얼마나 좋아요. 난 그런 마음이 없어요.’

마침내 어느 날, 나는 그것의 나쁜 점을 인식했다. 진상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이 일이 있어 내가 몇 번 도와서 하다 일의 엄중성을 발견했다. 자료를 만들 때 종이 품질이 같지 않고 마른 정도가 같지 않아 종이가 딸려 들어가는 현상이 있었다. 정상적으로 프린트해 나온 종이는 양면에 다 인쇄되지만, 종이가 딸려 들어가면 한 면은 인쇄되지 않거나, 중간에 한 장이나 여러 장 흰 종이가 나온다. 나는 이 문제를 발견하고 한 장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귀찮은 마음이 올라와 한 무더기를 쥐고 대충 보고는 지나갔다. 한번은 수련생이 인쇄되지 않은 면이 있었는데, 책자로 다 만들고 붙여 놓은 다음에야 발견했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말하는 것조차 미안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제야 사건의 엄숙성, 엄중성을 알았다. 나는 더는 이러면 안 되는데, 생활 속 문제들을 수련 중으로 끌고 왔다. 얼마나 사람을 해치는가!

생활은 수련이 아니지만, 생활 중에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수련 중에서 어떻게 자신을 잘 닦겠는가. 표면으로 보면 집을 치워놓은 것 같지만, 구석구석 살펴보면 먼지가 가득했다. 우리는 평소 생활 중에 먼지를 청소하는데, 수련은 사상 중의 나쁜 물질을 청소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저는 변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통해 점화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자신을 개변하려 하니 모든 것이 변했다. 벗은 옷은 잘 개어 옷장에 넣었고 이불도 반듯하게 개 놓았으며 사무실 책상도 깨끗하게 정리했다. 스스로 자신의 변화가 빠른 것처럼 느껴졌는데, 예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치워도 마음에 들지 않고 대충 표면만 치웠다. 게다가 나의 변화는 전후 1초처럼 금세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게다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서 변한 것이다.

남편에게 나의 변화를 말하니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고, 지금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변화예요.” 그렇다. 우리 수련인이 수련하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이 아닌가? 마음이 변해야, 진정으로 변한 것이다. 나는 대법의 끝없는 에너지를 느꼈다. 사람이 변하려고 하면 대법은 사람을 개변시킬 수 있다.

개변된 후 기분도 많이 좋아졌는데, 어디든 질서정연하다. 게다가 손이 가는 대로 잘 치울 수 있으며, 일부러 시간을 낼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니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생겼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19년 12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31/3881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