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수련생 A와 밍후이왕 내부 메일로 연락해온 지 10여 년이 되었다. 비록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상대방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지만,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초기부터 지금까지 서로 협조하고 신뢰했다.
연초에 그 수련생은 한 가지 일로 내게 세 번 물었고 나는 세 번 답해주었다. 나는 평소 바쁘기에 답장을 보낼 때마다 간단하게 적었다. 나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여전히 물었다. 사실 세 번째 답장을 보낼 때는 귀찮아진 데다 최근 2년 동안 그와 연락이 뜸해지면서 그의 신분을 의심했다. 그가 같은 질문을 네 번째 했을 때 나는 예의 없이 “이렇게 계속 반복해서 질문하니 당신 신분이 의심스럽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화가 났음을 알 수 있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최근 한동안 당신과 연락하고 싶지 않았고, 당신의 사유가 매우 부정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도 분노의 한마디를 날렸다. “사부님께서는 ‘상대방이 어떠어떠하다고 그들이 본 것으로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부정적인 사유가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요?”
나는 메일을 보낸 후에도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고 계속 그의 단점만 생각났다. 그는 항상 자신이 대단하고 남보다 강하다고 생각했으며, 말할 때는 항상 남보다 위에 있었다.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그는 끝장을 보듯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마치 탐정 같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화가 많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부님의 설법이 분명하게 생각났다.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의견에 충격(衝擊)을 주고 당신의 목소리를 눌러 당신이 기분 나쁘다고 느끼거나,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의 어떤 문제를 견주어 당신에게 반대 의견을 제출하거나, 혹은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 당신이 불편을 느낄 때면, 당신은 일어나서 반대하고 변명한다. 그리하여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마저도 꺼리지 않는데, 가장 선의적인 변명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모두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박수) 왜냐하면, 당신이 대법을 제1위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이 제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다.”[2]
나는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억지로 화를 누르고 이 일이 나의 무엇을 건드렸는지를 찾았다. 나를 이렇게 화나게 한 것은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인가? 원망하는 마음인가? 의심인가? 나는 한 무더기 사람 마음을 찾아내고는 발정념으로 제거하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겉으로는 발정념하고 있었으나, 머릿속은 그 수련생이 나쁘다는 생각만 들며 잠시도 잠잠해지지 않았다. 이 생각은 저녁까지 계속 떠올랐고 심지어 법공부할 시간에도 떠올라 화를 누를 수 없었다.
나는 냉정해지려고 하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를 찾아보았다. 나는 이 일을 처음부터 정리해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 분노를 유발했는지를 찾아보았다. 그 수련생이 내게 “부정적인 사유가 강하다”고 했을 때 곧바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화가 났고 모멸감을 느꼈던 것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찾은 후 ‘그 수련생의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부정적인 사유가 강하다고 했으니 오늘부터 이것을 제거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른 사상의 방해를 돌파하고 이렇게 생각하자 온종일 들끓던 좋지 못한 잡념이 몇 분 만에 멈추었다. 놀랍게도 그에 대한 화가 단번에 전부 사라지고 마음이 조용해졌다.
나는 온종일 나를 불평하게 만들고 그 수련생에게 화를 내게 한 사상의 근원이 바로 ‘부정적인 사유’였다는 것을 비로소 의식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에 의해 건드려졌고 내 앞에 폭로되었으며, 그것은 내가 그것을 의식하고 제거해버릴까 봐 두려웠기에 필사적으로 내 사상 속에서 그 수련생이 좋지 않다는 염두가 반영되어 나오게 했고 나와 그 수련생을 이간질했으며, 내가 밖을 향해 찾도록 유도하여 그가 한 말이 바른 것인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근원이 ‘부정적인 사유’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란을 배척할 수 없었고, 잡초의 이파리만 보고 이파리만 필사적으로 베어냈지 그 뿌리는 뽑지 못했다. 그래서 이파리는 여전히 필사적으로 자랐고 내가 그것의 뿌리를 찾아 뽑았을 때야 자연히 사라진 것이다.
나는 이 일로, 비평을 마주하고 받아들인 다음, 이 비평에 따라 안을 향해 찾아 이러한 집착이 있음을 인정하고는 그것을 단호하게 제거하고 배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평을 배척하지 않으면 반드시 제고할 수 있다.
착오를 덮어 감추지 않고 담담하게 마주하면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나는 비교적 좋은 밍후이 교류 문장을 보면 사이트의 메일함에서 링크를 걸어 수련생 A한테 보내는 습관이 있다. 하루는 메일함을 열어보니 그에게서 메일이 와 있었다. 그는 딱딱한 어투로 “당신이 정말 바쁘다면 내게 추천 문장을 보내지 마세요. 바쁘지 않으면 문장을 보낼 때 문장이 바로 열리는 링크를 보내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그 메일을 보고 화가 났으며, 너무도 어이가 없어 더는 그를 상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답장을 보내지 않고 바로 메일함을 닫아버렸다.
10분 정도 지나서 나는, 내가 그 수련생에게 전해준 문장에 건 링크는 천지행(天地行)에서는 바로 문장을 열 수 있지만, 사이트의 메일함에서는 바로 열 수 없고 주소를 복제한 후에야 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전에는 그가 문장을 바로 열 수 있도록 매번 주의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링크 주소를 보냈다. 그러나 최근 몇 번은 그렇게 하는 것을 잊어버렸기에 사이트의 메일 속에서 전한 것은 천지행에서만 직접 열 수 있는 링크였다. 내가 소홀했다.
나는 그에게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려고 다시 사이트의 메일함에 들어가서 메일을 보냈다. “어찌 된 일이죠? 내가 보낸 것이 직접 열 수 있는 링크가 아니었나요?” 내게 잘못이 없다는 투였다. 나는 내 답장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답장을 본 후 내가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화를 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메일함에서 나왔고 이 일은 잠시 지나갔다.
몇 시간이 지나 밍후이왕을 보자 이 일이 생각났다. 왠지 일이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마음속에서 완전히 넘어간 것 같지 않았다. 문제가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 수련생에게 보낸 메일이 얼마나 교활한지를 의식했다. 나는 문제의 원인을 알면서도 답장을 보내면서 어찌 된 일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꾸몄다. 이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덮어 감추려 했을까? 나의 착오를 덮어 감추려 한 것일까? 그가 나를 억울하게 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려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만약 그가 그 메일을 보았다면 내게 다시 회신하기를, 그 링크는 바로 문장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밍후이왕 홈페이지 초기 화면으로 연결된다고 할 것이다. 그다음 나는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척하고 이때 내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인데, 이 가설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법을 실증함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쌍방의 시간만 낭비할 뿐이지 제고에 무슨 좋은 점이 있단 말인가?
나는 몹시 부끄러워 급히 메일함을 열었다. 다행히 그 수련생이 아직 메일을 보지 않았다. 나는 즉시 메일을 삭제한 후 미안하다고 회신하면서 “제가 세심하지 못했습니다. 이후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라고 솔직히 말하고는 원인까지 간단히 알려주었다.
다음날 “정말 고마워요! 미안합니다. 당신을 오해했어요”라는 답장을 받았다.
정말 신기했다! 그 수련생과 십 년 넘게 메일을 주고받았으나, 그는 거의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었다. 전에는 불쾌한 일이 발생해도 그가 사과하는 일이 없이 거의 모두 나의 사과와 잘못 인정으로 종결되었다. 나는 화가 나서 여러 번 그를 질책했으나, 그는 모든 일에 그가 옳다고 하면서 사과하지 않았고, 단지 한두 번 억지로 사과를 받아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사과했다! 일에 부딪혀 안을 향해 찾으니 정말 신기했다. 내가 안을 향해 찾고 상대방을 질책하지 않거나 나의 착오를 덮어 감추지 않으니 평화로운 상태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였고, 이로써 진정한 변화가 와서 자신을 제고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을 바로잡고 “당신이 사과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라고 회신했다. 이 일은 작은 일이었으나, 나는 큰 문제점을 덮어 감추고 있었다.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자신을 수련함에 당신이 여기는 자신의 고통ㆍ감정의 충격ㆍ心性(씬씽) 교란 등 이러한 일을 좋은 일로 간주해야 한다.”[3]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마음이 움직일 때, 기쁘든 화가 나든 원망하든 자신을 찾을 수 있다면, 자신 공간장 속의 부패 물질이 법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과 행위가 나타나도록 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조금 낮게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일에서 안을 향해 찾아야 비로소 빨리 제고할 수 있다. 나는 그에게 사부님의 ‘로스엔젤레스법회 설법’을 보라고 제의했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며 내가 그를 점화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사실 나야말로 그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했다. 이번 작은 일에서 나의 교활함을 알게 되었고 잘못을 덮어 감추려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떠한 일에 부딪혀도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닦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험하게 되었다. 이번 일로 나는 선의로 그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그는 받아들였다. 나는 전에는 그가 이기적이라고 여기면서 안을 향해 찾지 않고 그를 사납게 질책했으며, 한바탕 난리를 치면서 그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오로지 밖을 향해 던지려고 했다. 그가 받아들일 수 없게 했던 것이었다. 나는 점점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게 되었다.
진정으로 집착을 마주하면 부패 물질은 소멸한다
나는 내게 있는 큰 문제 한 가지는 바로 비평이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집착의 근본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항상 이파리를 둘러싸고 찾을 뿐 뿌리를 파내지 못하는 것인데, 사실 나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초래한 문제이다.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통해 질투심이 매우 사악하고 좋지 못한 마음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것이 싫었고 그것을 지니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으면서, 내게 그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것이 너무나 사악하다고 느꼈으며, 내 몸에, 내 공간장에 그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내게는 그런 마음이 없다고 여겼다.
몇 년 전에 나는 수련생들과 함께 한 가지 항목에 참여하면서 이 마음이 나의 공간장에서 얼마나 강렬한지를 비로소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여전히 인정하지 못했고 직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게 질투심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수치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수련했는데도 어찌하여 아직도 이런 마음이 있단 말인가?’ 나중에 이런 마음(물론 다른 마음도 있었다)의 교란으로 모순이 갈수록 격렬해졌고 더는 다른 수련생들과 협력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당시 나와 모순이 있었던 수련생과 오랫동안 원한이 있었다. 뼈에 사무치는 원한으로 형용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나는 이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늘 발정념하여 이 좋지 못한 상태를 제거했으나, 별로 개선되지 않고 2년 정도나 지속하였다. 어느 날 밤 가부좌하고 발정념할 때 마침내 단호하게 인정했다. ‘이것이 바로 질투심이자 원한이다. 나는 그것을 지니지 않겠다. 절대로 그것이 나의 공간장에 남아 있도록 하지 않겠다.’ 이렇게 하자, 마치 머릿속이 파내진 것 같았다. 나는 오랫동안 발정념했다.
그날 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귀에서 젓가락 같은 크기의 핏빛 벌레 두 마리를 파냈는데 아주 메스꺼웠다. 또한 한 장(一丈) 길이에 젓가락 굵기의 회충 세 마리가 나왔다. 그 긴 회충을 밖으로 잡아당겼는데, 그것들이 내 손에 감겨 있는 모습이 너무나 메스꺼웠다.
이 꿈은 아주 생생했기에 꿈에서 깬 후에도 회충이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 온종일 드는 것이 정말 괴로웠다.
나는 2017년 상반기에 집착심을 직시했다. 우선, 이 집착심의 존재를 승인하고 그다음 주저 없이 발정념하여 그것을 제거했으며,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왜냐하면 이런 집착심이 반영되어 나오면 마음을 조용히 할 수 없어 발정념하는 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집착심을 찾아서 그것들을 제거할 때 다른 공간에 반영되는 것은 거대했고 심지어 직접 이 공간에 표현되었다. 화장실의 깨끗한 욕조에 2~3㎝ 길이에 머리카락 굵기의 붉고 작은 벌레가 나타났다. 2~3마리였던 것이 점점 많아져서 10여 마리까지 나타났다. 그다음에는 붉은색 벌레가 나타나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1~2㎝ 길이에 작은 쌀알 굵기의 검은 색 벌레가 2~3마리 나타났으며, 가끔은 아주 많이 나타났다. 특히, 어느 날 집착심 한 무더기를 직시하고 그것을 향해 발정념한 후 무의식중에 화장실에 갔더니 세면대에 검은색 벌레 10여 마리가 있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점화임을 알았다. 집착심이 대응된 부패 물질을 다른 공간에서 제거한 후 이 공간에 반영된 것이 바로 이 모습이었다. 그런데 발정념을 마친 후 세면대에 벌레가 있는지 보려고 집착할 때면 세면대는 깨끗했고, 무의식중에 발정념한 후에는 벌레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안을 향해 찾고 발정념한 효과가 어떠한지를 벌레의 존재 여부로 가늠하려는 마음도 제거했다.
‘전법륜(轉法輪)’을 외울 수 있어 생긴 집착을 제거하다
나는 2003년부터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기 시작했다. 2004년 하반기에 박해로 반년 정도 멈춘 것 외에는 몇 해 동안 ‘전법륜(轉法輪)’과 다른 대법 서적을 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얻은 것이 많아 일부 문장을 밍후이왕에 발표했다. 나는 법을 외움으로써 수련에서 크게 제고했고 집착심을 많이 제거했으나, ‘전법륜(轉法輪)’을 외울 수 있게 되자 좋지 못한 마음이 많이 생겼다. 잠재의식 중에는 내가 법공부를 잘하여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수련생이 밍후이왕에서 교류한 ‘전법륜(轉法輪)’을 외운 체험을 보았을 때 질투심의 소치로 나도 모르게 ‘수련생이 외운 것이 너무나 부족하다. 나보다 잘 외우지 못했네.’ ‘나는 여러 해 전부터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기 시작했다’와 같은 염두가 나타났다. 심지어 수련생들이 외운 것이 내가 외운 것을 넘어설까 봐 걱정했다. 이 염두는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기에 의식하지 못한 채 제거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한 수련생과의 모순에서 내가 왜 마음의 균형을 이루지 못했는지를 찾아보고는 질투심 때문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남들이 좋은 점을 얻을까 봐 두려웠고 남이 나보다 나을까 봐 두려웠으며, 늘 남을 압도하고 싶었다. 마음의 균형을 이루지 못한 원인이 질투심 때문이라는 것을 의식한 후에 ‘전법륜(轉法輪)’을 외운 수련생의 체험 문장을 보니 진심으로 기뻤다. 수련생이 각종 교란을 돌파하여 법을 외운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모든 수련생이 하루빨리 ‘전법륜(轉法輪)’을 외울 수 있기를 바랐다.
바로 이틀 전 또 더러운 마음을 발견했다. ‘전법륜(轉法輪)’을 외울 수 있는 내가 외우지 못한 수련생보다 낫다고 여겼다. 발언할 때 나도 모르게 자신을 높은 곳에 올려놓았고, 맞게 깨달았고 잘 깨달았으며 수련생이 나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이런 마음을 발견하고는 무척 부끄러웠는바,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마음이 오랫동안 존재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직시하고 의식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것을 제거하고 싶어 곧바로 발정념했으며,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머리 양측에서 강력하게 회전하는 느낌이 들면서 강한 힘이 머릿속의 부패 물질을 밖으로 밀어냈다. 나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집착심을 찾아냈을 때는 항상 사부님의 도움을 받았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좋지 못한 마음이 이렇게 많은데도 싫어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며 제자를 구도해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시간과의 대화’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8-2008년 뉴욕법회설법’
원문발표: 2019년 12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3/3963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