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흔들린 이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 이 두 대가 흔들거려 나는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말할 때 수구하지 않으면 아팠고, 시고 차고 뜨겁고 매운 자극에도 아팠다. 좋았다 나빴다 했다. 좋을 때는 아프지 않았지만 어떤 때는 뭐가 돋아나 음식 먹을 때 걸리적거렸고, 어떤 때 돋아난 것이 줄어들면 정상 이와 같았는데 조금 쓰러져 힘을 쓸 수 없을 뿐이었다.

내가 취한 방법은 우선 안으로 찾아 수구 문제, 심성 문제가 있는지를 보고 찾은 후 얼른 제거했다. 두 번째는 발정념으로 다른 공간의 나를 박해하는 모든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했다. 어떤 때 한마디 말을 더 했다. ‘내 이의 고통을 다른 공간에서 나에게 이를 아프게 한 사악에 배로 되돌린다.’

한번은 이가 또 아팠다. 너무 심하게 아파, 아픔이 좀 완화된 후 나는 아픈 이와 소통했다. 나는 아픈 이에게 말했다. “이야, 너는 내 몸의 일부분이기에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주왠선(主元神)의 말을 들어야 한다. 내가 잘하지 못한 부분은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고 자기를 잘 닦을 거다. 그러나 너는 사악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고 그것의 지배, 통제를 받아서는 안 되며 그것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악을 도와 나쁜 짓을 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도 죄를 짓는 것이다. 내가 대법에서 20여 년 수련했으니 너도 혜택이 많은 것이 아니니? 내가 수련 원만하여 사부님 따라 돌아갈 때 너도 나를 따라 돌아갈 것이 아니니?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니? 네가 사악의 말을 듣고 나에게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자지 못하게 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해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영향 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너를 도태시켜야 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고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일이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전에 내 이가 아플 때 남편이 아이스크림을 샀는데 먼저 사놓은 작은 푸딩이 너무 작아 덜 얼어 아픈 이가 빠지지 않았다. 그 후 또 남편에게 얼음 공장에 가 큰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 하고 냉장고에 넣어 준비해두었다. 아픈 이빨과 잘 소통하여 필요 없는데 왜 아이스크림을 사야 하는가? 말하자면 길다.

10년 전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남편이 밖에서 막 사 온 흰 팥빵을 먹다가 팥 속에 들어있던 모서리 있는 큰 돌에 하마터면 위 이 두 대가 부러져 떨어질 뻔했다. 너무 아팠다. 가족(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음)이 기어이 나를 데리고 증거(돌)를 가지고 그 빵 가게를 찾아가 배상 받으러 가자고 했지만 나는 연공인이기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번거로움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조심하지 않은 겁니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열심히 밥을 먹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겁니다.” 그 상한 이빨은 1년 넘게 쓰러져 있었는데, 어느 한번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하나를 채 다 먹기 전에 두 이가 잇따라 고통 없이 빠졌다.

한번은 어린 외손녀가 우리 집에 와 밥 먹을 때 떨어질 앞니가(이갈이할 때) 걸리적거렸다. 나는 외손녀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했는데 몇 입 먹지 않고 이가 빠졌다. 그래서 나는 그 모양 그대로 아이스크림을 준비해 이 아픈 이 두 대에 대응하려 했다. 그 결과 이가 나아 아이스크림을 줄곧 냉장고에 두고 먹지 않았다. 하루는 남편(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음)이 냉장고를 정리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발견하고 나에게 먹을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가 나아 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남편은 말했다. “사 와도 당신이 먹지 않은 걸 보니 상처가 없어지니 아픔을 잊은 거구먼. 아프다고 했다가 또 아프지 않다고 했다가, 고생스럽고 또 필요 없는데 두어서 뭘 해. 뭐가 아까울 것 있어?” 나는 남편의 잔소리가 끝이 없는 것을 보고 더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좋아요. 내가 먹을게요.” 두어 입 먹었는데 그 아프지 않던 이빨이 즉시 아파서 눈물까지 났다. 아주 빨리 아픔이 오른쪽 얼굴까지 뻗쳤다. 오른쪽 귀, 눈, 목 밑, 오른쪽 뇌신경까지 따라서 아팠다. 그 고통은 정말 언어로 형용할 수 없다.

아픔 속에서 나는 갑자기 내가 이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을 알고 얼른 이에게 내가 옳지 않고 진선인(眞·善·忍) 우주 법리를 위배했다고 사과하고 말한 대로 할 것이라고 보증했다. 반드시 할 것이라고 했더니 이 아픈 것이 점점 가라앉았다. 그다음 모든 아픈 증상이 다 사라졌다. 여기에서 나는 깨달았다.

1. 이가 아픈 것은 절대로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반드시 안으로 찾고 잘못이 있으면 바로 고쳐야 하고 사악이 틈을 타지 않게 제때 자기를 바로잡아야 한다.

2.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우주 중에서 정부(正負)생명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음양(陰陽)과 상생(相生)의 이치이다.”[1] 법에서 우리는 사람 자신에게는 선악이 동시에 존재함을 안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 신체 각 부분 조직 장기도 선악이 동시에 존재하며 하나의 정체(整體)이고 또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다. 문제가 나타나면 가급적 그들과 소통하고 법리로 그들의 선한 일면을 일깨워주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들도 선악의 겨룸에서 자기를 바로 놓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처럼 사람의 선한 일면을 일깨워주어야지 악한 일면을 건드리지 말아야 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 더군다나 대법제자는 모두 수련 중에서 대법에 동화되고 있다.

3. 관념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많은 관념이 형성된다. 이런 관념이 사람을 좌우지하고 심지어 사람의 일생을 좌우지한다. 대법제자는 아직 사람 중에서 수련하기에 대법의 지도가 있긴 하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법에 부합되지 않는 관념이 형성될 수 있다. 내가 아이스크림으로 이를 빼려고 한 사례와 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대법으로 대조하고 후천 관념을 개변하고 제거해야 명석하고 이지적이며 관념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4. 구하지 않는 것과 구하는 것. 대법제자는 법에서 고층의 법리는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고 구할수록 없다는 것을 안다. 구하는 것은 제일 좋지 않은 사람 마음, 집착이다. 내가 처음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이가 빠지는 것은 구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얻은 것이다. 두 번째는 구했기에 효과가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시기적절, 떨어져야 할 때가 되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수련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야 한다.

5. 쉽게 포기하지 말자. 사람들은 이가 아픈 것은 병으로 치지 않지만 아프면 숨넘어갈 것 같다는 말이 있다. 어떤 수련생은 이가 아프기만 하면 한번 고생으로 영원히 편안해지려고 병원에 가 뽑아버린 다음 틀니를 하고 만다. 수련인의 입장에서 자기를 찾지 않기에 생각과 하는 방법이 속인과 같다. 이도 생명이고 당신 몸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체는 바로 작은 우주인데 당신이 그것을 뽑아버리고 버리면 많은 미시 하의 생명도 따라서 도태된다. 수련인은 다른 사람을 잘 대해야 하지만 자기 몸의 각 장기를 포함하여 자기도 잘 대해야 한다.

흔들리는 이는 아프고 우리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 고생하는 것은 수련인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우리의 먹을 복에도 영향 준다. 이것이 바로 집착심을 버릴 때가 아닌가? 수련인은 배를 채우면 된다. “입의 집착 없도다”[2] 나는 이 역시 우리 수련인이 마땅히 도달해야 표준이라고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발생한 매사에 모두 우리 마음을 어떻게 놓느냐를 보아야 한다. 나도 노년 수련생(이제 몇 달 지나면 70세임)이기에 나와 같은 노년 수련생과 연구 토론하려 한다. 우리가 수련한 것은 성명쌍수의 우주 대법이기에 우리 노년 수련생 중 상당히 많은 일부분 수련생의 생명은 연장된 것이다(나를 포함하여).

우리의 생명은 우리 수련에 따라 연장된 것이다. 본성의 생명이 연장되고 본성의 생명의 각 장기도 잇따라 연장된 것이다. 물론 모종의 원인으로 좋은 부분으로만 연화되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내가 말한 것은 정상적인 정황일 경우의 상태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관념도 따라서 변해야 한다. 나이가 많아지면 이가 흔들려 뽑아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것은 정상적인 생리 현상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람 관념이고 사람 인식이다. 법에서 우리는 성명쌍수 공법은 몸을 젊은이 방향으로 변화되게 할 수 있음을 안다. 젊은이 방향으로 변화되면 우리 몸의 각 부분, 장기도 포함하여 젊은이 방향으로 변해야 하지 않는가? 그럼 우리가 쉽게 포기하고 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연공인으로 놓고 말하면 일념지차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의 생각에 빠지면 사람 상태이고 정념, 신의 생각이면 바로 신의 상태이고 초범적인 상태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개인 층차에서의 인식이므로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세간을 향해 바퀴(輪)를 돌리노라’
[2]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도(道) 중에서’

 

원문발표: 2019년 1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26/37085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