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의 최대 표현은 바로 자비이다. 그는 거대한 에너지의 체현이다. 그는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모두 해체할 수 있다.”[3] 내가 이해하기로 자비의 에너지는 모든 바르지 못한 요소를 해체할 수 있고, 경찰 배후에 있는 사악의 요소를 해체해 사람의 일면이 대법제자의 선(善)을 감지해 악행을 포기하게 할 수 있다.
1. 검은 소굴에서 진상을 알리다
2002년, 나는 현지 법원에서 터무니없는 3년 형 판결을 받았고, 현지 간수소에 1년 4개월, 감옥에 1년 8개월 동안 불법으로 감금되었다. 내가 감옥으로 납치되기 전, 감옥 안의 동료수련생들이 박해에 반대하며 노동을 거부해 잔혹한 박해를 받았고, 결국 파룬궁 수련생은 일터에 가되,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쟁취했다.
합숙 훈련 중에 한 감옥 경찰이 나에게 잘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더 묻지 않고 가라고 했다. 형사범 한 무리는 ‘전향’ 박해를 벌여 몇 차례 ‘힘겨루기’를 한 후에 나를 ‘전향’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들은 나에게 알려주기를 나에 대한 ‘전향’은 적당히 하면서 시간만 보내다가 감옥 경찰에게 보고만 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녀들은 심지어 내 주변의 동료수련생을 다른 조로 이동시키면서 자신들이 하루 동안 ‘전향’시켜 보내면 내가 눈빛으로 되돌려놓는다고 주장했다. 수감 구역으로 돌아오자 감옥 경찰이 나에게 말하기를 자신들도 나를 ‘전향’시킬 생각이 없으니, 소동만 일으키지 말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만 따라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어디를 가든 대법제자의 칭호에 어울려야 한다. 내가 있던 작업장은 3층이었는데, 1층은 이른바 ‘전향자’ 수감 구역이었다. 어느 날 일 하러 가는데, 1층 입구에 벽보가 걸려 있었다. 사오(邪悟)한 사람이 쓴 대법을 모함하는 글이었다. 당시 내가 있던 수감 구역에는 4~5명의 대법제자가 있었다. 작업장에 도착한 후, 동료수련생들은 이런 글로 중생을 독해(毒害)하게 할 수 없으니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의논했다. 내가 말했다. “먼저 진상 편지를 써서 ‘전향’ 작업장에 보내 진상을 알려요.” 내가 편지를 정성 들여 썼고, 나가서 물을 긷는 동료수련생이 1층 작업장에 가져다 놓았다. 저녁에 퇴근할 때는 칠판이 보이지 않았다. 동료수련생들은 역시 진상 알리기를 잘 했다며 몹시 기뻐했다.
그러나 며칠 되지 않아 그 칠판이 다시 나타났다. 알고 보니 1층에서 칠판을 실내로 들여놓았을 뿐이었다. 나와 함께 밥을 먹는 동료수련생은 지워야겠다고 말했고, 나도 동의했다. 그날은 우리가 더 교류하지 않았는데, 동료수련생들은 그날 모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의논했다.
퇴근할 때 함께 밥을 먹는 동료수련생이 걸레 뭉치를 잡히는 대로 가져왔다. 나에게 한 뭉치를 달라고 하자 그녀는 한 뭉치를 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칠판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가는 복도에는 퇴근하는 형사범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칠판 앞에 도착해 닦기 시작했는데, 겨우 두세 번 문지르자 커다란 칠판을 가득 채웠던 글자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퇴근하는 사람들을 따라 감방으로 돌아와서야 알았다. 동료수련생 몇 명도 칠판을 닦으려 했고, 형사범과 감옥 경찰이 모두 지나간 다음에 키 큰 두 사람이 막고, 나머지 두 사람이 깨끗이 닦으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들은 칠판 앞에 도착해 모두 지워진 칠판을 보았고, 동료수련생 한 명이 흥분하여 말했다고 했다. “정말 위대해요! 정말 위대해요!” 우리 두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닥칠 나쁜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단지 하나의 일념으로 중생을 독해하고 대법을 모함하는 이런 것을 지워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결국, 감옥 경찰은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았고, 그 일은 흐지부지하게 끝이 났다.
형사범들은 대법제자와 함께 있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느 날, 형사범들이 한 차례씩 불려 나갔다 돌아왔는데, 무엇을 하고 왔느냐고 물으니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 영상을 봤다고 했다. 동료수련생들은 감옥에서 배치한 5인 연대보증(4명이 대법제자 1명을 감시하며, 대법제자가 감옥이 정한 규칙에 벗어나면 다른 4명의 형사범이 연대 책임을 짐) 신분을 이용해 자신의 이른바 5인 연대보증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대법에 대해 절대 죄를 짓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또 그런 것들이 모두 유언비어이며, 감옥 경찰이 당신들을 망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모든 사람이 동의했고, 감옥의 주장을 믿지 않겠다고 말했다.
감옥 측은 매일 24시간 함께 있는 형사범들이 대법제자의 모든 행위를 인정하고 있어서 그런 방법으로는 중생을 독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형사범들은 그들의 선전을 쉽게 믿지 않았다. 그들은 곧 대법제자를 모두 감방에 가두어 일하러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후 작업장에서 ‘분신자살’ 조작극 등 대법을 모함하는 선전물을 방영했다. 천목이 열린 한 동료수련생은 작업장에 있는 모든 형사범의 목에 밧줄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사악이 중생을 박해하는 것이었다.
형사범이 영상을 본 후 감방에 돌아와 토론하는 것은 악당이 군중에게 싸움을 붙이는 수단이었고, 형사범들이 거짓말을 믿고 대법제자를 증오하게 해 중생을 독해하려는 것이었다. 어떤 조장은 평소 대법제자와의 관계가 괜찮았으므로 대법을 모욕하는 말을 삼갔다. 어떤 사람은 경솔하게 대법을 비방하는 악담을 하며 감방 안의 대법제자와 논쟁을 벌였다. 내가 있던 곳의 조장은 간수소에 있을 때 한 대법제자와 함께 있었는데, 자신이 바로 그 대법제자 남편의 정부였다. 그러나 그 대법제자는 그녀에게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생활을 보살펴 주면서 그녀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박해 진상을 전해주었다. 그녀는 대법제자를 통해 대법의 관용과 자비를 보았다. 그녀는 간수소에서 그 대법제자를 따라 수련을 시작했고, 감옥에 온 후에는 우리의 조장이 되었다. 그런데 감옥의 잔인한 박해로 인해 그녀는 본심을 어기고 수련을 포기했다.
저녁에 조장이 말했다. “토론을 시작하죠. 생각하는 대로 말해 봐요.” 그것은 그녀가 대법제자에게 진상 알릴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내가 있는 곳에는 대법제자가 3명 있었는데, 간호사 2명과 의사 1명이었다. 우리는 의학과 생활상식과 왕진둥(王進東)의 가부좌 방법을 바탕으로 ‘분신자살’ 조작극의 허점을 말했다. 모든 형사범이 조용히 들었다. 모두 듣고 난 후, 한 형사범이 완전히 깨닫고 말했다. “저건 사람을 속이는 거네요. 사람을 속여요.” 다른 사람들은 말이 없었고, 한 형사범은 그녀의 말을 감옥 경찰이 들을까 봐 그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는 아는 게 없어서 때가 되어도 모르고, 말을 못 해요.” 우리 조의 형사범 10여 명은 모두 진상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그녀들이 작업장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녀들이 적어도 마음속으로는 악당의 날조 모함과 파룬따파를 박해하는 진상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원한을 내려놓고 박해를 해체하다
2010년, 내가 있던 자료점이 파괴되면서 동료수련생 A가 납치를 당한 후, 병보석으로 귀가했다. 어느 날 내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A가 매우 불쾌해하고 조금은 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막을 몰랐다. 이튿날 그녀가 현지의 동료수련생을 통해 편지를 보내왔다. 내용을 보니 그녀가 경찰의 협박과 기만으로, 나와 남동생을 알려주었다며 순진하게도 경찰이 우리를 잡아가지 못하게 하고 싶지만, 우리에게 와서 진술할 수도 있다고 했다. 끝으로 자신은 집에 가고 싶을 뿐이라고 썼다. 편지를 가져온 동료수련생은 우리 집에서 한 번 앉지도 않고 가버렸다.
당시 우리가 받은 압박은 몹시 컸고, 어리석은 동료수련생에 대해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모두 원망을 품었다. 그녀는 원래 고향을 떠나 떠돌다가 우리 지역으로 왔고, 4~5년 동안 대부분 시간을 우리 집에서 먹고 지냈는데, 어떻게 우리를 쉽게 발설할 수 있었을까?
그런 압박 속에서 한 달을 지냈고, 다시 꿈속에서 A의 원망하는 눈빛이 보였다. 이튿날 내가 직장에 있는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찰이 우리 집 재산을 불법으로 몰수하고 동생을 납치해 갔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침대 위에서 급히 움직이다 경련이 나서 움직일 수 없다며, 나에게 조카딸이 집에 와서 놀라지 않도록 조카딸이 학교를 마치면 직장으로 데려가라고 말했다.
동생이 납치된 후, 내가 받는 압박은 극한에 달해 곳곳에서 내가 납치되는 가상이 보였다. 일이 뜸하면 문 앞에 멈춘 차를 응시했는데, 모든 차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제복을 입은 사람만 오면 경찰로 보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웃 시의 동료수련생은 안 될 것 같으면 집을 나와서 정말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이 1999년 7·20 이후로 숱한 박해를 받고, 많은 친구가 대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수년 동안 우리가 몸으로 부딪치며 진상을 알려 일부 환경을 되돌린 것을 생각했다. 만약 내가 다시 일을 포기하고 떠돈다면 또다시 이들을 대법과 멀어지게 할 것이 아닌가? 나는 떠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마음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지만, 떠도는 것은 사부님의 배치가 아니고, 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만 걸으면 된다. 만약 나에게 정말 위험이 나타난다면 사부님께서 틀림없이 나를 보호해 주실 것이고, 내가 가야 한다면 사부님께서 반드시 나를 일깨워 주실 것이다.
어느 날, 내가 다시 A 꿈을 꾸었는데, 눈빛이 여전히 곱지 않았다. 이어서 내 앞에 큰 도랑 하나가 나타났고,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힘껏 뛰었는데, 간발의 차이로 완전히 넘지 못하고 손으로 반대편 도랑의 벽을 잡게 되었다. 앞에는 작은 집이 있었고, 집 안에는 나의 동료가 앉아 있었다. 나는 동료가 마땅히 나와서 나를 끌어올려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동료가 움직이지 않아 스스로 기어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동료를 원망하며 왜 끌어올려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동료가 말했다. “당신은 수련하려는 것 아닌가요? 당신 스스로 수련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깨어난 후, 나는 그 꿈을 자세히 회상했다. A가 다시 꿈속에 나타났으니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지, 앞의 꿈 두 번으로 인해 나는 로이로제에 걸려 있었다. 동료가 한 말이 무슨 뜻이며, 나는 무엇을 닦아야 할까?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닦아 버리라고 일깨워 주신 것이었다. A도 마가 아닌 대법제자였고, 압박 속에서 잘 파악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내가 늘 그녀 꿈만 꾸면 액운을 만날 것으로 여겼으니, 그것은 구세력이 대법제자 사이의 인연 관계를 이용해 대법제자 사이에 간격을 조성한 것이 아닌가? A에 대한 나의 원망은 구세력이나 할 짓이 아닌가? 동료수련생 사이에도 업력윤보는 있다.
비록 A가 떠돌다 우리 집으로 오고부터 내가 늘 그녀를 생각해주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내가 잘하지 못하고, 서로 간에 큰 간격을 만들자 늘 그것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해 수련 중 수많은 것을 잘 닦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가 어느 일세에 그녀를 해친 적이 있어 그녀의 명백한 일면이 우리에게 원한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동료수련생을 끌어들인 것은 그녀 사람의 일면이 최대의 압박을 받아 심리적으로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심각한 심장병으로 병보석을 받았다는 것은 틀림없이 심리적 압박이 너무나 컸다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의 마음속에서 무거운 것 하나가 ‘확’하고 떨어졌다. 나에게는 원망하는 마음이 흩어져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내가 발정념을 할 때 갑자기 손안에 뭔가가 떨어지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색종이와 그물망으로 포장한 평안과(平安果, 크리스마스 기념사과)였고, 나는 내가 평안해졌음을 알았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3. 신필로 법을 실증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악을 폭로하고 이번의 박해를 폭로하는 것은 바로 힘 있게 그것을 제거하고 억제하는 것이다.”[1] 당시 우리 지역에는 아직 컴퓨터가 없어 우리 지역의 국보대대장(國保大隊長) 관련 정보를 외지의 동료수련생에게 위탁해 인터넷에 올렸다. 그 대대장은 실적을 쌓기 위해 심지어 대법을 수련하는 자신의 친척 부부를 납치하기도 했다. 결국, 남편은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국보대대장은 밍후이왕에 자신의 자료가 올라온 것을 보고 겉으로 큰소리를 쳤다. “이번에는 파룬궁을 잡아넣을 거야. 그들이 밍후이왕에서 나를 화나게 했어.” 나중에 그녀의 대법제자 친척이 협조해 진상을 알리자 그녀는 남편과 함께 탈당했을 뿐 아니라 퇴직할 때는 빼앗아간 대법서적을 모두 그 친척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박해 폭로 자료 작성을 아주 중시하면서 직접 쓰거나, 동료수련생이 쓰도록 격려했다. 쓸 수 없는 동료수련생에게는 말을 하게 하고 내가 간단히 기록한 다음, 집에 돌아와 문장을 정리해 밍후이왕에 보냈다. 어떤 동료수련생은 두려움 때문에 감히 쓰지 못했는데, 내가 여러 차례 격려하자 써내어 밍후이왕과 둥타이왕(動態網)에 발표했다. 많은 동료수련생은 십몇 년, 이십몇 년이 지나 많은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지만, 나는 모두 기억해냈다. 아마 나에게 이런 사명이 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지낸 동료수련생이기만 하면 어느 날에 간수소에 갔고, 어떤 고문을 받았으며, 누가 그랬는지, 공안국에서 며칠 동안 박해받았고, 어느 날에 납치돼 감옥이나 노교소에 갔는지가 거의 모두 내 기억 속에 있었다. 그래서 많은 동료수련생은 박해 경험을 쓰고 싶을 때 나를 찾았다. 어떤 일은 그녀들 자신보다 내가 더 정확하게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한 동료수련생은 잔인한 박해를 받아 지난 일을 기억하지 않으려 했고, 나는 동료수련생을 격려하며 함께 박해 경험을 폭로하는 글을 썼다. 그것은 사악을 폭로하고 박해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우리 지역에서는 보수적으로 말해서 중공의 박해를 받은 동료수련생 중 거의 80% 이상이 밍후이왕에 박해 경험을 발표했다.
나는 악인들 자료를 조사하면서 밍후이왕에 자료를 정리해 보내기만 하면 모든 상세한 기록이 올라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대법제자에게 소란을 피우거나, 대법을 모함하고 비방하는 등, 내가 큰일로 여기지 않은 것도 밍후이왕에서 모두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박해로 공직을 박탈당하고 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해 매일 일하는 시간이 길고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다른 동료수련생들이 날마다 진상을 알려 사람 구하는 일을 다그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상기했다. “신필(神筆)은 요괴인간 떨게 하고 쾌도(快刀)는 썩은 귀신 없애노라. 낡은 세력 법을 공경치 않으니 붓 휘둘러 사나운 파도 멸하노라.”[2] 나는 그렇다면 내가 진상 편지를 쓰겠다고 생각했다. 손으로 쓴 편지에는 친화력이 있고, 마음을 쓰는 정도가 인쇄한 것과는 다르다. 나는 현지의 국보과(國保科) 대대장을 선택했다. 원래 국보대대장은 퇴직했는데, 그녀는 대법제자를 박해하며 출세했고, 우리 남동생을 납치할 때 우리 집 가산 몰수를 지휘했으며, 어머니가 공안국에서 자녀의 석방을 요구하자 대단히 흉악하게 어머니를 밀친 사람이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그녀에게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는 경고를 했고, 그녀가 이미 무슨 무슨 법률을 위반해 추적조사 국제 명단에 올랐으며, 장래에 인간의 법률과 하늘의 응보가 그녀를 처벌할 것이라고 썼다. 이어서 그녀에게 총구를 1cm 올린 이야기를 알려주고, 당신의 위치에서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함으로써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라고 알려주었다. 쓰고 쓰다 보니 나의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져 정말 대단히 소중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았다. 나는 국제적으로 파룬궁이 널리 전해진 형세와 정법 상황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그녀에게 현재 위치에서 자신을 잘 파악해 피의 빚을 진 장쩌민 무리에 연루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 남편의 몸이 모두 좋지 않은 것을 안다며, 그녀에게 ‘나와 아들이 겪은 신화’를 알려주고, 밍후이왕에서 문장 전체를 읽어볼 것을 권했다. 그리고 나는 아예 ‘법광에 동화하다’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나다’ 녹음판을 내려받은 후, 메모리 카드에 담아 그녀에게 발송했다.
한번은 내가 거의 1만 위안에 가까운 소모품 비용을 들고 예금하러 갔는데, ATM기 두 대가 모두 고장 나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온 교란인지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음이 급해지자 결국에는 ATM기에서 카드 빼는 것을 잊어버렸고, 지갑도 ATM기 근처에 떨어뜨렸다. 지갑에는 진상 화폐 2백여 위안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보고는 공안국에 갖다 바쳤다.
다음날 오후, 나는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나는 경찰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이용해 돈과 휴대전화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국보대대장과 한 남자 경찰이 와서 기록했다. 대대장은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나를 보더니, 직설적으로 나의 정신 상태가 이렇게 좋고, 옷도 격식에 맞고, 안색에도 윤기가 돈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값나가는 옷을 입지 않았고, 유행에 따른 적도 없이 간단하고 말끔하게만 입었다. 대법제자의 바른 마당이 그녀에게 자상한 느낌을 주었고, 그래서 모든 것이 보기 좋았을 것이다.
모든 과정에서 그녀는 나에게 생활을 잘하라며, 모모처럼 집을 외면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통해 그녀가 대법을 겨냥하지 않으며, 정말 개인의 각도에서 자신의 인식에 따라 내가 잘 지내기 바란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아주 바쁘며, 파룬궁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 “모모를 보세요. 그녀는 두 차례나 타지에서 잡혀 왔고 당신은 당신 지갑을 다른 사람이 보고 여기에 보낸 걸 봤어요.” 나는 그녀가 스스로 박해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고, 그녀도 박해에 주동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록상 나는 지갑이 내 것이라는 것만 인정하고, 민감한 문제와 관련된 것은 모두 대답을 거절했다. 그녀가 나의 지갑 속에서 장쩌민을 고소하는 글을 찾아냈는데, 인쇄된 고소장에 고소자가 가명으로 서명한 것을 내가 아직 최고법원에 부치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는 한번 보더니 2015년 것을 아직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고소 편지 아래에 2015년이라고 인쇄돼 있기 때문이었다. 말을 마치고 그녀는 편지를 잘 접어 나의 지갑에 넣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편지 보냈다고 말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사이가 박해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고, 단지 두 친구가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며 한담을 나누는 것 같았다. 두 시간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지갑 속의 진상 화폐 2백 위안을 돌려받지 못한 것 외에 다른 것은 모두 돌려받았다.
나중에 그녀는 공안국장의 압력을 무릅쓰며 진상을 알리다 납치당한 대법제자 한 명을 석방했다. 이유는 그 대법제자의 집에 어린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국장은 그 대법제자를 반드시 구류에 처하라고 했다. 그 대법제자가 석방되어 귀가할 때 부대대장이 그녀에게 대대장과 어떤 사이인지 묻자 그 동료수련생은 친구 사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녀와 대대장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나는 진상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원망하는 마음을 닦아 버리고, 쟁투심을 닦아 버렸다. 나의 마음은 평화롭게 변했고, 편지를 쓸 때는 마음이 정말 자비로 충만해져 경찰들이 정말 가련한 중생으로만 느껴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부여하신 능력 중 일부가 바로 붓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것임을 느꼈다.
20년 동안 나는 사부님의 보호와 인도 아래 부딪히고 걸리며 비바람 속을 걸어왔다. 그러나 오히려 나에 대한 법의 요구에는 너무나 못 미치고, 정진하는 동료수련생과의 차이가 몹시 크며, 날마다 시간이 나는 듯이 빨리 가는 것을 느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3-2003 미국중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2-두려워 떨게 하다’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1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수련경험>언행으로 대법 실증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12/24/3973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