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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에서 뛰쳐나와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다

글/ 쟝쑤(江蘇)대법제자

[밍후이왕]나는1998년 말에 법을 얻은 노 제자이다. 20여 년 동안 생명의 길고 긴 과정에서 단 한 순간이지만 바로 이 짧은 순간에 생명은 법 중에서 깨끗이 씻겨졌고 재창조할 수 있었다. 아래에서 자신의 수련 중의 체험을 써서 사존께 보고하고자 한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들의 지적을 바란다.

1.정을 끊고 돌파해 나오다

일을 기억할 때부터 나는 부모에 대한 원망은 매우 깊었고 그들이 일함에 불공평하다고 여겼으며 늘 자기도 모르게 부모님들은 여동생 편만 들어줬다고 생각했다. 특히 엄마의 그런 공연히 생트집을 잡는 시정아치의 습관이 눈에 거슬렸다.

수련 초기에 부모님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억울한 마음이 떠올랐다. 내가 13개월 될 때,여동생이 곧 태어나려고 하자 타향에 있는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이렇게 나는 어릴 때부터 남에게 얹혀사는 고생을 겪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어서야 부모님 옆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냉정함뿐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엄마는 외할머니가 나에게 사주신 새 옷도 벗겨서 여동생에게 줬다. 점점 나는 집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성인이 되자 나는 마치 채무자처럼 임금을 다 부모님에게 바쳤고 결혼할 때도 빈 몸으로 남편의 집으로 들어갔다.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나는 일체 불공평한 것은 자신의 업력으로 온 것임을 깨닫고 마음속의 원망도 점점 옅어졌다. 어느 하루, 삼촌은 부모님의 연세가 많으니 내가 보살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커서까지 부모님과 다른 세계의 사람인 것을 생각했다면,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연공인이고 대법의 요구대로 “일을 함에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할 것이다”[1]라고 했는데 하물며 부모님을 보살피는 것은 자식의 의무이기 때문에 나는 바로 동의했다.

우리 집의 거주 면적은 좀 작고 부모님은 또 단독으로 살고 싶어 하셔서(방이 두 개 있어 나와 아이는 각자 방 하나씩 사용했다) 나는 부모님과 그들의 집을 팔고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집을 사자고 상의했는데 부모님은 흔쾌히 동의했다. 나는 이렇게 하면 그들의 요구를 만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내가 부모님들을 보살피는 데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부모님 명의로 집 3채가 있었지만 큰 집 두 채는 이미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명의 이전해줬다. 오직 원룸만 남았는데 시가로 겨우30만 위안(약 5천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새 아파트를 사려면 최소한 7, 80만 위안이 필요한데 부모님 손에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명의로 된 단 하나뿐인 아파트를 팔아 급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집을 팔기는 쉽지만 사는 것은 아주 번거로웠다. 비록 새로 사려는 집의 면적이 원래보다 좀 컸고 아파트 층수도 좋았지만, 부모님은 집 구조가 맘에 안 들고 채광이 안 좋다고 하시면서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약 반년 동안 오가면서 고생했어도 적당한 아파트를 사지 못했다. 결국, 아이가 해외로 유학 간 사이에 부모님은 억지로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아이가 방학해서 돌아오면 어쩔 수 없이 호텔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울면서 “친할아버지가 저에게 방을 줬지만, 저는 머물 곳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재빨리 아이에게 엄마의 잘못이니 적당한 집이 있으면 바로 사자고 타이르면서 사과했다. 그 후부터 아이는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에 부모님도 집을 사자는 말도 없었고 이렇게 우리는 이미 10여 년을 같이 살았다.

생각에 이렇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시간이 길어지자 부모님은 또 예전처럼 나에게 트집 잡았다. 방이 너무 작아 불편하다고 했고, 암암리에 내가 그들의 돈(집을 판 30만 위안)을 떼먹었다고 하기도 했다. 가끔 또 두 사람은 맞장구를 치면서 TV가 문제 있다고 하고 또 냉장고 질이 좋지 않다고 트집 잡았다. 종종이것을 바꾸면 또 저것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는데 TV만 이미 세 대를 바꿨다.

처음에 부모님이 무리하게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참았지만 참지 못했을 때는 몇 마디씩 해석하기도 했다. 나는 후에 이런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점점 마음에 두지 않게 됐다. 어느 하루,엄마는 남동생,올케 앞에서 내가 그들의 돈을 떼먹었다고 말했다. 이때 평소에 말이 없던 남동생은 갑자기 화를 내면서 “큰 누나가 어머니를 보살피면 집은 큰 누나한테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와 둘째 누나도 집 한 채씩 받았잖아요. 다시는 소란을 피우지 마세요.”라고 말하자 엄마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남동생이 간 후, 나는 억울한 눈물이 쏟아져 나왔으며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사존께 ‘사존께서 저를 도와주세요. 제자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때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머리에서 생각났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 그렇다면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한 초상(超常)적인 사람으로서는 이런 이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을 돌파해야 한다.”[1]

나는 가슴이 흠칫했고 입으로는 한 번 또 한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렇다면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한 초상(超常)적인 사람으로서는 이런 이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을 돌파해야 한다.” 갑자기 나는 ‘한 연공인으로서 법의 표준에 따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니 열류가 온몸을 관통했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아보았다. 부모님의 표현은 바로 자신이 정에 집착해서 가져온 번거로움이 아닌가? 정에 집착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불공평하다고 여겼고 일체는 모두 인연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질투심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여동생을 감싼다고 원망했고 또한 자신은 어머니를 보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수련인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비심이 부족한 것 때문에 부모님이 나에게 트집 잡고 괜히 말썽거리를 만들었던 것이며, 문제는 모두 나에게 있었던 것이었다.

법을 대조하면서 나는 한 걸음 더 안으로 찾아보았다. 부모님은 왜 늘 내가 그들의 돈을 떼먹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집을 판 30만 위안의 돈을 당연히 자신의 돈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바로 돈에 대한 집착심이 자신에게 가져온 마난(魔難)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돈을 부모님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이튿날 오전, 나는 남동생과 올케와 약속을 잡고 어머님을 데리고 은행에 가서 30만 위안을 어머니의 명의로 저축해줬다.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마음속에 몇십 년 짓누르고 있었던 원망이 순간에 사라졌다.

2.중생을 마음에 두고 정념정행하다

사악이 대법에 대한 박해는 이미 인간 세상에서 20년 동안 이어졌다. 20년 동안 대법제자는 고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끊임없는 진상을 통해 많은 생명을 소멸하는 변두리에서 멀리 떨어지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비록 대법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악의 높은 압력과 이익의 유혹으로, 아직도 무심코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련인의 정념정행은 중생들이 구도 되는데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이미 중생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2]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나는 세뇌반(洗腦班)으로 납치돼 박해당했다. 세뇌반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나는 자신을 구도자의 위치로 놓았다. 나는 ‘일체는 사존께서 결정하시고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는 경찰, 610등 관련된 인원, 회사 상사와 가족들을 통제해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게 할 수 없으며 이 일과 연관된 모든 생명은 반드시 정확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라고 생각했다.

세뇌반에 감금된 지 얼마 후, 가족들은 소식을 듣고 찾아와 보자마자 매부는 저에게 “고집을 부리지 마세요, 팔은 다리를 못 이겨요.”라고 말했다. 나는 여동생에게 “너희가 이곳에 온 것은 나를 도와줄 뿐이지 다른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서 상의하자.”라고 말했다. 이때 올케는 남동생에게 인맥을 통하자고 말했다. 나는 “그럴 필요 없고 나는 회사에서 출근할 때 납치됐으니까, 너희는 회사에 가서 요구해라.”라고 말했다. 이후. 남동생과 올케는 끊임없이 회사, 세뇌반 오가면서 내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우리 지역 수련생들이 제때 폭로한 탓에 짧은 시간에 해외 구원 전화가 눈꽃처럼 날아와 큰 폭으로 사악을 두려워 떨게 했다. 세뇌반 보호 경찰의 말에 따르면, 그들(‘610’ 인원들)은 당신(작자)에게 상냥한 얼굴로 대하고, 다른 사람(기타 수련생)에게는 종일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고 심지어 훈계했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밖의 수련생이 제때 구해줬기 때문에 안에 있는 수련생에게는 극대의 지지를 보여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여기에서 나를 구해주신 모든 수련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 싶다!

어느 하루, 나를 납치했던 구(區)국가보안대대장이 세뇌반으로 왔는데 나와 한담하고 싶다고 해서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는 말문을 열자마자 ‘장(江)기소’에 참여했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이 문제는 당신 직책 범위에서 벗어난 것 같은데, 나는 대답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에게 대법제자들이 왜 ‘장 기소’를 하는지는 알려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내가 한 말을 듣고 난 후, 구국가보안대대장은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이더니 일어서서 “나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겠소.”라고 말했다.

또 10여 일이 지나자 나는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나는 나를 ‘전향’시키겠다고 했던 ‘610’인원에게 반드시 바로 이곳을 떠나겠다고 알려줬다. 잠깐 멈췄다가 나는 또 “당신은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은 모두 좋은 사람이란 것을 잘 알고 있잖아요. 만약 어느 날 파룬궁 진상이 천하에 드러나게 되면 당신은 자신의 양지에 대해 어떻게 직면할 것인가요? 당신이 정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자신은 결정 못 하니 주임과 말해 보라고 했다.

이튿날 ‘610’주임은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막 세뇌반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이미 한 번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이번 이야기 줄거리는 간단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그는 나에게 ‘장 기소’에 참여했냐고 물었다. 나는 “당신에게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려줄 수 없고 다만 ‘장 기소’는 합법이고 누구든 ‘장 기소’에 참여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상투적이고 허울 좋은 말을 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그에게 “당신은 파룬궁 진상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 않나요?”라고 묻자 그는 늘 밍후이왕을 본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군자는 위험한 담 아래에 서 있지 않는다(君子不立危牆之下)’라고 알려주자 그는 알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하자 그는 내일 절차를 밟으라고 말하고 떠나갔다.

세뇌반에서 나온 후부터 회사 측은 내가 박해받았던 동안의 날짜를 공휴일로 처리해줬다. 나는 바로 관련된 상사를 찾아가 공휴일에 관광 가겠다고 하자 그녀는 “평소에 나는 당신을 보살펴주고 납치된 후에도 세뇌반에 가서 당신을 보러 갔어요. 하지만 어떤 일들은 나도 난처하니 당신도 이해해줘요.”라고 말했다. 나는 선하게 그녀에게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당신이 무의식중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참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예요. 사실 나는 관광에 대해 아무 취미도 없어요. 하지만 당신과 당신 가족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나는 관광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문득 깨닫고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나의 20여 년 수련 과정을 되돌아보면 법을 얻은 즐거움도 있고, 또 길을 잘못 걸은 후회도 있고, 또 마난 중에서 굳게 지키는 것도 있는가 하면 또 법을 실증하는 장거도 있었다. 모든 일체는 모두 생명이 법 중에서 사람이 신으로 되어가는 길을 실천하고 있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정념’

 

원문위치: 2019년 12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16/3965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