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매체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위난 속에서 사람을 구한 체험

글/ 홍콩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존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홍콩 매체 최전선에서 일한 체험을 여러분과 교류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2002년 NTD가 홍콩에서 뉴스팀을 편성한 후 줄곧 매체 그룹에서 전담 직원으로 지금까지 17년 동안 몸담고 있습니다. 2005년 ‘대기원시보’는 홍콩에서 일보로 바뀐 이래 홍콩에서 인력이 부족해 우리는 NTD 뉴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대기원 보도도 겸해 진행했습니다.

2013년 6월 대기원 홍콩 신임사장이 취임하면서, 원래의 가정식 작업에서 정상적인 관리 및 운영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새로운 도약을 했습니다. 무료 배포에서, 올 4월 1일부터는 정식으로 유통되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판매가는 한 부에 10위안이었습니다. 올 7월에는 핍박으로 철수한 적이 있지만, 현재 홍콩 백여 개 신문 판매점에서 ‘대기원시보’를 살 수 있습니다.

올해 6월 반송중(反送中) 운동 이래 홍콩 시민은 중공에 저항해 세계적 이슈가 됐고 ‘천멸중공(天滅中共: 하늘이 중공을 멸하다)’이 도처에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천상 변화이고 사람을 구하는 좋은 기회라고 깨달았습니다. 대기원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 지역 매체 채널을 개척하고 사장이 직접 조율했습니다. 많은 해외 수련생이 사심 없는 노력으로 우리는 영상 부서, 실시간 뉴스 부서를 설립했습니다. 유튜브 채널 내용도 현장 생방송, 특집 보도, 초점 취재, 시민의 목소리를 영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 다국어를 사용해 홍콩 사건 보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매일 수십 건의 짧은 영상을 게시했고 짧은 몇 달 사이에 우리 채널 예약 구독이 빠르게 늘어났으며 매일 조회 수는 400만이 넘었습니다.

몇 달 사이에 대기원의 명성은 크게 올라갔습니다. 항쟁 현장에서 시민은 대기원이라는 말을 듣기만 하면 모두 우리를 매우 존경했습니다. 인터뷰하고 직접 방송하고 화면에 나오는 우리 기자들을 시민들은 다 알아보았습니다. 많은 시민이 우리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간 대기원과 파룬궁에 고마워했습니다. 또 예전에 우리 매체를 오해했다면서 지금 우리에게 사과한다고 단 댓글도 많았습니다. “파룬궁 수련생을 대상으로 한 중공의 생체장기 적출 진상은 모두 정말이었네요”라고 말한 네티즌도 있었습니다.

지금 홍콩 주류 매체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중공에 협조해 항쟁자를 말살하는 상황에서 대기원은 홍콩 사건을 진실하게 보도해 시민이 진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경로가 됐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중문대학 방어전에서 홍콩 경찰은 하루에 2000여 발의 최루탄을 마구 쏘아 60여 명의 학생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6·4(천안문사건)의 재판’이라고 불리는 홍콩 대사건은 다음날 대기원과 다른 한 홍콩 친민주파 신문에서만 보도했고 다른 홍콩 매체는 모두 항쟁자들을 말살하려는 친공 단체들의 광고를 실었습니다. 우리 신문사에서 찍은 제1면 사진은 홍콩의 유명 가수가 페이스북에 올렸을 뿐만 아니라, 미국 주류 매체에서도 게재했습니다.

매체는 특별하게 진상 알리는 법기이기에 우리는 대법제자의 책임이 중대하다는 것을 느꼈고, 이는 우리가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었습니다. 제가 매체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고 끊임없이 집착을 닦아버리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존의 자비로우신보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몇 가지 체험을 여러분과 교류하겠습니다.

악의 핵심에서 법을 실증하고 사심과 원망을 제거하다

홍콩은 중국의 한 지역으로서 중공은 97년 이전에 많은 중공 스파이를 홍콩에 파견했습니다. 97년 이후엔 더욱 노골적으로 홍콩 정치에 뛰어들면서 홍콩은 줄곧 국제뉴스의 중심이 돼, 크고 작은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본 매체에서 보도한 사건 이외에도 예를 들면 평소 경제, 연예 뉴스에서도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연예계 유명인들은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대기원 인터뷰를 거의 다 거절했기에 일선 기자들은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많은 경비원이 기자를 막아서 유명인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현지 몇 개 큰 부동산 소유주들도 우리의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매일 많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저의 가장 큰 수련 체험은 수련인의 마음으로, 발생한 모든 것을 대하고 시시각각 자신에게 대법제자라는 것을 일깨우자 언행이 자연스럽고 의젓해졌다는 것입니다. 과정 중에 지혜로 진상을 알리고 또 확고하게 사부님을 믿으면 차츰 장이 열렸고 닫혔던 문이 열립니다.

한번은 홍콩 전 행정장관 량 씨가 홍콩 증권거래소 행사에 참석했을 때 저는 인터뷰를 거절당했습니다. 홍콩 증권거래소는 경비원 세 명을 파견해 행정장관의 눈에 띄지 않게 저를 호텔 밖에서 막았습니다.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찍고 홍콩 기자협회, 거래소 등 각 기관을 고소하고 진실을 알렸습니다. 다음 끊임없이 그들의 뉴스를 다루었더니 차츰 그들이 우리를 받아들였고 더는 취재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장소에서 우리는 홍콩에 상장된 회사의 많은 CEO를 알게 됐으며 이는 우리의 비즈니스 및 금융 뉴스에 매우 중요합니다.

취재를 거부당하는 횟수가 늘면 마음에 원망과 좌절감이 쉽게 생겨 전체 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연예 뉴스를 다루는 촬영 기자는 늘 가로막혀 매번 저에게 나서서 그에게 진상을 알리라고 요구했습니다. 게다가 어투와 태도가 저를 자극했습니다. 저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이런 일이 당신에게서 발생했으면 본인이 자발적으로 진상을 알려야 하고, 적어도 상황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고 지적했고, 동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때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기자 팀 전체 분위기도 나빠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은 모두 반드시 대법제자로서 관용(寬容)ㆍ선량(善良)ㆍ상화(祥和)한 표현이 있어야 하고,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이다.”[1]

촬영기사와의 일에서 제가 다시 또 전화 거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지하철에서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갑자기 제 머리에 들어와 저는 얼른 전화했습니다. 상대방은 매우 예의 있었고 향후 우리에게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일련의 과정 중에 저의 엄중한 사심을 발견했습니다. 전체를 중요하게 보지 않아 진상을 알릴 때 다른 사람의 중생은 한쪽에 미뤄두고 제가 먼저 만난 중생을 구했습니다. 의식한 후 차츰 자신을 바로잡고 팀의 다른 사람을 많이 이해하고 스스로 그들의 압력을 분담했습니다.

수련인의 마음으로 매체 항목을 대하다

매체의 바쁜 업무는 특정 상황에 쉽게 빠질 수 있어 자기가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NTD 매체 특징 때문에 저는 늘 카메라 렌즈 앞에서 뉴스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크고 작은 뉴스 중에서 모두 자신의 보도를 볼 수 있어 저도 모르게 명리에 대한 집착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 뉴스의 조회 수를 매우 중시했고 칭찬하는 말을 듣기 좋아했습니다. 주요 뉴스 보도에서 보도진 사이에서 뉴스를 두고 다투는 상황이 종종 발생해 갈등을 빚으며 수련인의 상태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책임자는 저에게 경제, 연예, 민생 라인의 개발에 중점을 두라고 요청하고, 현지 주요 정치 뉴스를 다른 팀에게 책임지게 했습니다. 줄곧 정치 뉴스를 다루었던 저는 마지못해 대답하긴 했지만, 중대 뉴스를 다루길 좋아하던 저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뉴스를 다루라고 하니 속이 뒤집혀 몹시 속상했습니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주식시장, 경제를 다시 배워야 하고 1천여 개의 상장회사를 다녀야 했으며, 매일 크고 작은 중국 투자기업과 접촉해야 했습니다. 그간 즐겁게 다니던 저는 한동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고 매일 저도 모르게 울고 싶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몇 달이나 지속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2]

저는 신문사를 놓고 말하면 인력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에 더 많은 사람과 만나려면 빨리 사회 각 방면에 자리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해했습니다. 제가 냉정해졌을 때 사부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그 속에서 자기의 자아를 집착하고 명리를 구하는 더러운 마음을 닦아버리고 안목이 더 넓어졌습니다. 차츰 마음이 차분해졌고 더는 불평하는 마음 없이 자발적으로 자료를 발굴하고 더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올해 8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사장은 저에게 모든 인터뷰 조율을 책임지라고 해서 업무량이 많이 증가했습니다. 게다가 홍콩 형세가 매일 변화해 대량의 돌발 뉴스가 발생했습니다. 적지 않은 해외 수련생과 새 동료가 참여했지만 많은 수련생이 홍콩 현지 상황을 잘 몰라 조율과 안배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대법제자는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한 명이 열 명, 백 명과 맞먹을 수 있는가? 여러분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보았겠지만, 중국의 대법제자들이 생사 앞에서 표현해 낸 수련인의 그런 위덕은, 속인으로서는 해낼 수 없는 것이고, 속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3]

보통 매체의 취재진은 수십 명인 데다가 여러 팀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인력이 한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선 전문성을 신속하게 갖춰야 합니다. 그다음 사회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어 힘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해 뉴스 사진은 동종업자를 찾았습니다. 일이 생기면 동종업자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각개 큰 신문사 사장님을 만나 뵙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제1선에서 사람을 구하다

2003년 23조 반대(국가보안법 반대)에서부터 보통선거 쟁취에 이르기까지, ‘우산혁명’에서 입법회 선거, 최근의 송환법 시위 등에 이르기까지 홍콩은 정(正)과 사(邪) 대결의 중심이었습니다. 대법 매체는 ‘사악의 입’인 홍콩에서 발붙여야 하고, 사람을 구하는 사명이 매우 큰 것을 느꼈습니다.

6월 12일 홍콩 경찰이 최루탄을 쏜 그 날 새벽, 저는 신문을 다 만들고 동료와 진중(金鍾) 현장에 가보고 싶었는데 동행하려는 촬영기사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동료 한 명만이 카메라를 들어주겠다고 해서 우리 두 사람이 현장에 갔습니다. 제가 촬영을 맡았고 그가 저를 도와 녹음을 해줬습니다. 그때 많은 경찰이 한 무리씩 정부 본부에 진입했는데 그때 저는 아직 기자 조끼를 입지 않았습니다. 촬영했다는 이유로 사복경찰 다섯 명이 앞뒤로 포위했는데 살기등등했습니다. 저는 지금 경찰의 심리상태는 5년 전 우산혁명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마음을 다잡고 매 경찰에게 미소를 지었더니 긴장됐던 분위기가 아주 빨리 완화됐습니다.

그 후 매번 시위 현장에서 생방송을 할 때 저는 선심으로 경찰을 대했습니다. 경찰의 폭행, 살인, 강간 등 범죄 사건이 끊임없이 폭로되자 증오가 커져 시민들은 늘 경찰을 저주했지만 저는 생방송을 할 때 이런 말을 중복하지 않았습니다. 경찰도 우리가 구해야 할 대상이기에 매체로서 우리는 이런 기록을 할 뿐 정서에 이끌려서는 안 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싸우길 싫어했기에 매번 전쟁 영화를 보면 자거나 끝나기 전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6월 12일 홍콩 경찰이 시민에게 최루탄을 쏜 이래 홍콩 형세는 끊임없이 격화되어 전쟁터 같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런 상황이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워 매우 싫어했고 최루탄에 맞을까 봐 두려워 현장에서 안전한 곳에서만 인터뷰했습니다. 그러나 홍콩 경찰은 점점 과격해져 5초에 한 번 최루탄을 쏘았고 하루에 수천 발씩 쏘아 이제 피하려 해도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一個不動能制萬動)!”[4] 제가 마음을 생방송과 인터뷰에 두고 자신은 대법제자이고 우리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굳게 믿고 저에게 발정념을 많이 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을 때 갑자기 최루탄에 대한 두려움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희망이 없을 때일수록 희망은 바로 눈앞에 있을 것이다..”[5]

저는 가장 위험할 때 사람 구하는 힘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면 복면금지법이 갓 나왔을 때 사회에는 홍색 공포로 가득 찼습니다. 기자가 방독면을 껴도 위험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정에 복면금지법이 효력을 발생한 후 혼자 왕자오(旺角)에 생방송 하러 나갔는데, 홍콩 시민이 여전히 두려움 없이 마스크를 끼고 나와 항쟁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음날 퍼레이드를 하러 나온 사람 중에는 학생들도 많이 나섰습니다. 감동적인 인터뷰가 많았으며, 우리 매체에서 보도된 후 사회에 바른 기풍이 올라갔고 점점 많은 사람이 중공의 폭정에 대항했습니다.

특별 보도로 주류 인사를 구하다

올해 6월 말, 저는 금융 인사와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현지의 인터넷 유명 인사였습니다. 뉴스 보도 이외에 저는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유튜브에 올려봤는데, 반응이 괜찮았습니다. 두 번째 특별 보도는 한 인터넷 방송국의 유명 사회자를 섭외한 것인데, 정세에 대한 그의 분석이 매우 투철해 우리가 유튜브에 올린 후 급속도로 퍼져 조회 수가 70만에 가까웠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격려해주신 거로 저는 깨달았습니다. 특히 현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일반 사람들은 그들이 인정하는 전문가의 분석을 갈망했습니다. 또한 역사를 기록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팀원 수련생들의 협조로 저의 특별 보도는 일주일에 한두 건에서 매일 한두 건으로 보도했습니다. 업무량이 많이 늘어난 데다 자막, 속타하는 많은 사람의 협조가 필요했기에 수련생 사이에 불평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경영진도 저에게 제가 자신을 실증하는 면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압력을 크게 느꼈고 억울했으며 ‘이렇게 수년간 아무 대가 없이 대법을 위해 일했는데 왜 이해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제가 보도한 전문가가 쓴 자서전을 보았습니다. 책은 모두 엉망이었는데 한마디 말은 제 머리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대기원을 보고 대기원을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대파멸이 있었고 전염병이 발발하고 산사태가 일어나 저는 조마조마하게 사람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깨어난 후 사부님께서 저에게 다그쳐 사람을 구하라고 격려하신 것으로 깨달았습니다. 저는 자신을 정화하고 개인의 불만, 오만함을 닦아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대법 항목을 대했습니다. 그밖에 각 방면의 주류 인사와 연락해 우리의 장은 빠르게 열렸습니다. 이전에 우리를 배척하던 적지 않은 정부 고위 공무원, 엘리트들이 잇따라 우리의 특별 인터뷰를 받아들여 우리 매체의 명성에 매우 좋은 피드백과 반응을 주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런 주류 인사를 접하는 과정에서 진심으로 그들과 친구가 됐고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만에 가서 션윈 공연을 관람했고 어떤 사람은 대법 책도 보았습니다. 그들의 인터뷰 내용도 점점 바른 에너지가 넘쳐 사람을 구하는 데 매우 좋은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무조건 협조인에 협력

대기원 일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에 대해 수련생 내부에는 늘 다른 의견이 있었습니다. 뉴스 보도를 포함해 유통 판매 문제에서나 경영 방면에서나 내부 의견 차이가 매우 커 늘 큰 압력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조건 집행하라.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는가? 많은 때, 문제에 대한 논쟁이 끝이 없을 때, 오직 그가 태도를 표시하기만 하면, 바로 그렇게 하라. 심지어 많은 일은 여러분과 상의할 필요가 없이, 직접 배치할 수 있는데, 여러분은 가서 하라. 무엇 때문인가? 많은 일을 이전에 논쟁하고 논쟁했지만, 나는 여기에 태도를 표명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의도적으로 당신들에게 자신의 사고(思考)가 있고 자신의 길을 성취(成就)하도록 단련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럼 현재 이 한 시기 시간은 이미 충분히 길었으며,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모두 있게 됐고, 상태 또한 마땅히 지나가야 한다.”[6]

신문사가 직면한 압력이 높지만 직원들이 마음이 맞아야 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관건은 직원들이 마음이 맞고 협력을 해야 합니다.

10여 년의 정법 매체 항목에 참여한 일을 돌이켜 보면 가장 큰 체험은 수련인의 마음으로 매체 항목을 대해야 합니다. 지도자도 될 수 있고 일반 대중도 될 수 있어야 하고 버릴 수도 있고 앞으로 돌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수련자는 사람의 마음을 갖고, 업의 빚을 갖고, 집착을 갖고서는 원만에 이를 수 없다.”[7]

저는 매일 아침 새벽 연공을 견지했고 점심에 회사의 단체 법공부에 참가해 수련을 처음처럼 하는 느낌을 찾았습니다. 시시각각 자신에게 속인이 대법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인의 마음으로 법 실증하는 항목을 대할 것을 일깨워주어 매일 힘이 넘칩니다. 저는 법에서 제고해야만 대법제자가 정체(整體)를 이룰 수 있고 사람을 구하는 데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적절하지 않은 점은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2-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3-2003 미국중부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5-2005년 캐나다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10-더 정진하자’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정진요지3-시카고 법회’

(2019년 NTD, 대기원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9년 12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4/3966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