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집은 삼대가 모두 수련인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아래 마난을 지나왔고, 사부님께서는 우리 가족의 몇십 년 된 원한을 풀어주셔서 우리가 박해를 부정하는 동시에 거짓말에 독해된 중생을 구하게 해주셨다. 일체는 사부님에 의해 안배되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사부님의 안배를 따라야 함을 나는 깊이 깨달았다.
나는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집이 세서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요구했고 우리는 모두 아버지를 두려워했다.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온몸에 병이었고 자주 화를 냈다. 어릴 때 가장 무서운 것은 부모님의 싸움이었다. 한 번 싸우면 온 집안 물건을 내동댕이쳤다. 아버지는 대장장이였으므로 고칠 수 있었다. 내던진 물건이 고장 나면 다시 고쳤고, 고치고 나서 다시 내던졌다. 집 안에 있던 양동이, 국자, 주걱, 뚜껑에는 모두 철로 덧댄 자리가 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일생 동안 아들을 갖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도와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 다섯을 낳았고 다섯 딸은 딸을 한 명씩 낳았다. 아버지는 열 번이나 남자아이를 기대했지만,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가장 어린 외손녀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술을 마시다가 또 딸이라는 말에 무겁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사내 아들이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집안에는 아들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었다. 여러 해 전에 외지고 가난한 농촌에 가서 큰언니에게 데릴사위를 찾아주었다. 가난한 지방의 남자는 부리기가 좋고 잘 따를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큰 형부가 워낙 성격이 강해 아버지와 직접 맞서다 보니 결국 두 집안은 서로 상처를 입었다. 유리를 깨거나 소를 끌고 가는 일이 벌어졌고 법정에서 재판을 벌였다. 몇 년 후부터 아무도 아버지 앞에서 큰 형부를 언급하지 못했다. 말하기만 하면 아버지는 화가 나서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다. 큰 형부도 우리 자매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을 저질렀다. 우리는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모두 원한을 풀지 못해서 뒤얽혔다. 정말로 ‘끊을 레야 끊을 수 없고, 정리해도 여전히 어지러워서’ 누구도 풀지 못했다.
가족들이 잇달아 법을 얻다
사부님의 법연(法緣)이 우리를 이끌었다. 1999년 초, 나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어머니도 2002년에 법을 얻었다. 이후에 자매들도 잇달아 법을 얻었다. 당연히 큰언니는 제외였다. 그런데 큰언니의 딸이 법을 얻는 인연이 있었다. 대법은 우리 가족에게 은덕을 주었다.
어머니가 법을 얻기 전에 마을에서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다. 한 집 한 집 이어서 불이 붙었고 우리 집까지 붙으려고 했다. 이 긴박한 순간에 갑자기 바람 방향이 바뀌면서 불길이 우리 집을 피해갔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말했다. “당신 집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신의 가호다!” 법을 얻은 후 나는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우리 집을 돌봐주셨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바로 “온몸에 병이고 매일 싸우는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죽으면 끝이다”였다. 하지만 파룬궁을 배운 후로 어머니는 완전히 변했다. 모든 병이 나았고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60여 세의 사람이 원기가 넘쳤다. 어머니가 말했다. “전에는 항상 죽고 싶었는데 지금은 파룬궁을 배우고 나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게 되었다. 다시는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 파룬궁은 우리 가족을 햇빛으로 가득 채웠다.
어머니가 불법적인 판결을 받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먹구름이 뒤덮이고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매일 생활에는 보이지 않은 압력이 느껴졌다. 항상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마음을 엄습했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2012년 봄, 갑자기 언니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어머니가 경찰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이 일은 나와 연관이 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듣고 나온 첫 번째 반응은 바로 두려움이었다. 항상 마음을 강타하던 두려움은 더욱 강렬해졌고 심지어 도망가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때 자주 만나는 수련생을 만나 함께 교류했는데 그는 나에게 힘을 주었다. 함께 법공부와 교류를 하고 나서 내 마음은 안정되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1] 나는 그 두려움을 돌파하기로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찾으려고 했다.
내가 친척들 앞에 나타났을 때 놀라서 낯빛이 변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자네를 찾고 있다던데, 도망쳐도 늦을 텐데 어째서 돌아왔나?” 나는 그에게 말했다. “현재 중국 법률에 의하면 파룬궁은 위법이 아니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나는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공안국에 가려고 합니다. 그들이 불법입니다.” 친척은 곧바로 긴장을 풀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 “아, 원래 그랬구나.”
공안국에 가서 국보대장을 만났을 때 그는 놀랐다. 그들은 당시에 이 일을 크게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몰래 나를 찾으려고 했다. 내가 정정당당하게 그들 앞에 나타나서 왜 사람을 잡아갔는지, 어떤 법률에 근거했는지 묻자 그들은 갑자기 큰일이 없다고 느꼈다. 사람이 다 왔는데 무엇을 뒷조사하겠는가? 이 일은 4년 후 어머니가 감옥에서 나올 때 한 파출소 경찰이 직접 나에게 말한 것이다.
그때부터 6개월 동안 우리 네 자매는 셋이서 짝을 짓고 휴가를 내어 어머니 일로 뛰어다니기 위해서 시간을 잘 조율했다. 우리가 간 곳은 시와 지방의 정법위, 공안국, 검찰청, 법원, 인민회의, 정치협상회의, 민원사무소, 민정국, 파출소, 간수소 등 이었다.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가서 진상을 알리고 어머니의 석방을 요구했다.
사람 마음이 나와서 일에 이끌리면 현지 수련생들이 우리를 일깨워줬다. 이 과정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을 위주로 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점을 바로잡았다. 일 처리 중에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에게 말했고 기차를 타면 승객과 이야기했다.
변호사를 선임할 때 현지의 한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았는데 변호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통지를 정법위에서 받았다. 수련생들과 교류를 통해 우리는 인식했다. 일을 성사시키는 것 외에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과정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 언니와 수련생들은 많은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이런 방식으로 변호사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파룬궁은 위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는 현지 변호사들에게 전파되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기연을 안배하시어 베이징 변호사와 연결해 주셨다. 변호사와 협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변호사에게 의지하지 말고 변호사에게도 진상을 알리라는 수련생들의 당부를 기억했다. 우리는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을 위주로 했다.
봄에 붙잡혀 간 어머니는 겨울에 판결을 받았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우리는 모든 친척과 주위 사람들에게 개정시간을 알렸다. 그날 집안에서 20여 명이 왔다. 큰언니와 형부도 왔다.
개정이 되기 전에 우리는 어머니가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는 증서를 썼다. 나는 이 증서를 손에 들고 마음속으로 분명해졌다. 표면적으로 우리는 친척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실 서명한 사람들은 모두 이 일에 태도를 표명한 것이고 이것은 그들이 구도 받는 기연이다.
법원은 우리가 이렇게 많이 온 것을 보고 경계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왔으니 무겁게 판결해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동요하지 않았다. 개정이 되고 나서 이렇게 추운 날씨에 슬리퍼를 신고 얇은 옷을 입은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추워서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어머니가 거대한 압력을 받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파룬따파는 좋고, 자신은 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므로 무죄 석방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변호사도 법률적 각도에서 어머니를 무죄 변호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불법 판결 4년을 선고받고 현지 여자감옥에 갇혔다.
아무도 어머니가 불법으로 수감된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 감옥에 갔을 때 어머니가 수감되었다는 말을 경비원에게 들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울었다. 울음소리에는 정과 걱정, 억울함이 있었다. 옆에 있던 수련생이 큰 소리로 말렸다. “뭐 하세요?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잊었나요?” 나는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했다. ‘맞아. 나는 대법제자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할 일을 잘해야 해.’
우리는 매달 어머니를 보러 갔다. 어머니를 보러 가는 것은 우리 자매들이 모여서 서로 정념을 가지하는 기회였다. 우리는 매일 저녁 함께 발정념을 해서 감옥에 있는 어머니를 가지해주기로 약속했다.
친척 중 한 명이 일찍 해외로 나갔다. 그녀가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녀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그해 언니는 만약 사부님을 뵐 기회가 있으면 우리 대신 사부님께 인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소원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나중에 그녀는 해외에서 정말로 법을 얻었다. 처음 법회에 참가해서 사부님을 뵈었고 우리 안부를 사부님께 전했다. 사부님께서 대답하셨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사부는 알고 있다”[2]
이 경문을 보고 우리는 격동해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짧은 여덟 글자(謝謝,謝謝. 師父知道)는 우리에게 무한한 힘과 격려를 해주었다. 우리는 무슨 일을 겪든지, 얼마나 많이 감당하든지, 모두 잘해야 한다. 그렇다. 사부님은 알고 계신다. 사부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일체는 사부님께서 장악하고 계신다. 제자로서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 속에서 사부님의 가호 속에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
우리는 이 소식을 감옥에 있는 어머니에게 알려주고 정념을 가지해주어 반드시 견지하라고 격려했다. 어머니는 마귀 소굴에서 잘 견디고 4년 후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믿음은 견정했다.
사부님께서 우리 가족의 은혜와 원한을 풀어주시다
2017년 2월 초, 큰언니의 딸 샤오차오(가명)가 장쩌민을 고소했다는 이유로 외지에서 공안에 미행을 당하고 납치당했다.
아버지와 큰언니 사이에 쌓인 원한은 가장 깊었다. 큰 형부는 아버지에게 빚을 졌고 여러 해 동안 갚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방 집의 창문 유리를 깼다. 아버지는 큰언니 가족을 법원에 고소했다. 강제집행이 되어 큰언니 집에서 소를 끌고 갔다. 집에 있던 어린 샤오차오는 놀라서 울었다.
나중에 나는 빚진 돈을 내가 줄 테니 아버지에게 갚으면 이 원한이 풀리지 않을까 큰언니와 의논했다. 하지만 큰 형부는 동의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이것은 돈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원한은 내가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자매들도 큰 형부를 원망했다. 그는 말하기 거북한 일을 우리 자매에게 저질렀기 때문에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수련 후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수련인이다. 이 원한을 하늘에 가지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원한을 풀 방법이 없었다.
샤오차오가 납치를 당한 후 그녀와 가까운 둘째 언니가 먼저 현지에 도착해서 한 가지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나와 둘째 언니는 샤오차오 부모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왜 샤오차오 부모에게 말해주면 안 되는지 수련생이 물었다. 나는 집안에 쌓인 원한을 있는 그대로 수련생에게 울면서 하소연했다. 수련생은 듣고 나서 눈물을 흘렸다. “알겠어요. 이것은 당신들 집안에서 풀어야 할 원한입니다.” 이 한 마디에 나는 깨달았다. 큰 형부가 우리 수련인 가족이 된 것은 우리가 이 원한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언니가 놀랄까 봐 걱정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샤오차오가 납치당한 일을 말했다. 언니는 한나절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고 벌벌 떨면서 말했다. “이, 이 일을 어떡하지? 애 아버지한테 도저히 말을 못 하겠는데? 애 아버지가 나한테 욕지거리를 할 텐데? 어떡하지?” 내가 말했다. “내일 당장 샤오차오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해요. 샤오차오는 좋은 아이이고 잘못한 것이 없어요. 가서 데려와야 해요.” 그녀는 집에서 오전 내내 벌벌 떨었다. 저녁에 이불 속에 파묻혀서 몰래 하룻밤을 울다가 다음 날 아침 큰 형부에게 말했다. 결국 그들 둘은 닭과 개를 모두 이웃에게 맡기고 함께 아이를 구하러 갔다.
나는 큰언니와 큰 형부를 기차역으로 마중 나가서 그들을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샤오차이가 있는 도시로 날아갔다.
큰 형부를 보고 나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와 이야기할 때 그는 우리 집에서 당한 억울함에 대해서 말했고 나는 이해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일하는 솜씨를 칭찬했고 그는 듣고 나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딸에게 잘못이 없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합법적이며, 그는 마땅히 딸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가만히 들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들이 역사상 범한 일체의 과오를 헤아리지 않으며, 오직 정법 중에서 대법에 대한 이 생명의 태도만 본다고 말했다.”[3] 큰 형부가 예전에 어떤 나쁜 짓을 저질렀든지 그가 대법에 정면적인 태도만 있으면 그는 구도 될 수 있다.
그들 부부는 샤오차이가 납치된 도시에 도착했다. 둘째 언니는 예전의 원한을 내려놓고 큰 형부에게 진상을 말했다. 많은 현지 수련생도 잘 협조해서 사전에 질서정연한 조치를 했다.
처음에 큰 형부는 속인의 방법을 택하고 싶었지만 국보경찰과 접촉한 후 그들이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속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수련생 중에는 변호사, 대학교수, 대기업가, 대기업 직원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안면이 없는 수련생들이 모두 사심 없이 도움을 주었다. 이는 그를 아주 감동시켰다. 수련생들이 말한 이치는 구절마다 그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감탄했다. 결국 그는 큰언니를 그곳에 남겨서 수련생들과 함께 정정당당하게 딸의 석방을 요구하러 가도록 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서 계속 일을 했다.
큰 형부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둘째 언니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자매는 큰 형부와 풀었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큰언니 집안과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현지 수련생들은 어머니가 큰언니에게 전화하라고 건의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촉박해서 기회가 없어질 것이다. 그날 일하러 나갈 때 모두 차 안에 타고 있었다. 둘째 언니는 나에게 문자를 보내 어머니와 연락해서 어머니가 큰언니에게 전화를 하게 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당시 행사에 참석하고 있었고 신호가 아주 좋지 않았고 말소리가 시끄러웠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큰언니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했다. 어머니는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공간에서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셨고 이것은 연결됐다.
큰언니는 차 안에서 이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물었다. “××(큰언니 별명)냐? 어머니다. 샤오차오가 잡혀갔다는데 지금 어떻게 되었니?” 큰언니는 몹시 놀랐다. 하지만 곧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샤오차오 일의 진행 과정을 이야기했다. 형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들었다. 아버지 쪽도 매우 조용했다.
수십 년 동안 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낯설었지만 모든 것이 다시 자연스럽게 보였다. 어머니와 딸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 같았다. 이렇게 전화 한 통으로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정체 협조
큰언니는 더는 소심한 시골 부녀자가 아니었다. 딸의 신앙을 지키고 인간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매일 출근하듯이 파출소, 공안국, 국보처에 가서 용감하게 석방을 요구했다. 매일 수련생들이 돌아가면서 그녀를 데려다주는 것을 견지했다. 수련생들은 그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보살펴 주고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이 사람들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찾지 못할 것이다. 사부님은 정말 위대하시다.
이와 동시에 해외 친척들도 구조에 협조하고 있었다. 중국영사관, 국회의원 등을 찾아갔는데 힘이 아주 크고 영향력도 아주 컸다. 현지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이 서로 몰랐지만 모두 이번 구조에 참여해서 대단히 잘 협조했다. 모두 자아를 내려놓고 진정으로 정체를 형성했다.
샤오차오의 사건은 이렇게 영향력이 컸다. 정말 신기했다. 이 사건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가? 나중에 나는 깨달았는데 바로 사부님의 안배였다. 사부님께서는 샤오차오가 납치된 일을 이용해서 우리 가족의 원한을 푸는 동시에 장계취계해서 관련 있는 모든 수련생이 박해를 해결하고, 정체협조, 정체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불법으로 납치된 지 37일 만에 사악에게 협조를 거부하고, 진술 거부, 서명 거부를 한 상황에서 샤오차오는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 중생을 구하다
2017년 말, 셋째 언니가 고향에서 납치되었다. 당시에 그녀의 가족들은 집에 없었다. 셋째 형부는 외지로 일하러 갔고, 딸 쉐리(가명)는 외지에서 학교에 다녔다. 이틀 후에야 거치고 거쳐서 이 소식을 들었다.
이번 구조에서는 청년 수련생들이 주력을 담당했다. 쉐리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했지만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온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법공부 팀에 들어간 후였다. 그녀는 아주 순진하고 법리가 분명하며 잡념이 적었다. 셋째 언니가 납치되기 전에 사부님께서는 그녀를 가지해주셨다. 매일 법암기를 견지해서 법리를 깨닫고 수련생과 함께 관을 넘는 중에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고 심성을 제고했다. 사부님께서는 쉐리가 직면한 시험을 디딤돌로 삼아 그녀를 성숙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셋째 형부는 속인이지만 계속 대법을 지지하고 아내와 딸의 수련을 지지했다. 셋째 언니가 납치되었을 때 그는 수십 킬로 밖에 있었다. 하필이면 그 지역에 큰 눈이 내렸는데 그는 소식을 들은 후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고속도로는 입구가 폐쇄되었지만 이와 상관없이 고속도로에서 침착하게 집으로 갔다. 고속도로에는 그의 차 한 대만 있었다. 그는 휴게소에 들어가지 않고 많은 도시를 지나 결국 안전하게 제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그는 비록 수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쉐리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게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사부님께서는 이 과정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기를 요구하신다는 생각이 아주 뚜렷했다. 그녀와 아버지는 매일 공안국에 가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아버지가 그녀를 보내지 않을 때는 그녀는 다른 사람을 몰래 보냈다. 하루라도 가지 않으면 그녀는 스스로 자책했다.
쉐리는 사람을 구하기를 원했다. 마음속에 선념을 품고 석방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파출소장, 경찰, 공안국 국보대장을 마주했을 때 그녀는 그들의 선량한 일면을 보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진상 편지를 써서 직접 만나서 전해주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쉐리의 편지에 감동받았고 마음속의 선념이 일깨워졌다. 그들은 수련인이 말하는 진상에 공감했다.
현지 시(市) 국보대대에 한 유명한 악경(惡警)이 있었다. 전에 그는 많은 수련생에게 고문 박해를 가했다. 쉐리는 아버지와 이 악경을 정면으로 한번 접촉했다. 쉐리가 말했다. “일순간에 나는 이 사람의 생각이 잠시 멈추는 것을 봤어요. 그때 나는 그의 눈에서 선(善)을 봤어요. 이 사람은 아직 구도될 수 있어요. 다시는 그를 ‘악경’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다음날 쉐리의 아버지가 다시 이 사람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말했다. “미안합니다. 집에 일이 있어서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끊었다. 우리는 단번에 명백해졌다. 분명 사부님께서 그를 박해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시고, 집안에 일이 생기게 하신 것이었다. 수련인의 선념이 나오면 사부님께서 바로 세상에 변화를 생기게 하실 수 있다.
이번 큰언니와 큰 형부가 마을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켰다. 샤오차오를 구한 후, 큰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대도시에는 그렇게 많은 엘리트들이 모두 대법을 배우고 있고, 대법을 배운 수련생들이 가족, 친척보다 더 친하다고 알려주었다. 이번에 셋째 언니가 납치된 소식을 듣고 큰언니는 아주 빨리 현장에 왔다. 쉐리를 데리고 가서 각 지방에 상황을 알렸다. 큰 형부도 운전을 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우리 마을에는 사업을 하는 사촌오빠가 있는데 마을에서 약간의 명성을 얻었다. 샤오차오가 납치된 해에 그는 창피해서 술을 마시고 70대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 “작은아버지, 창피합니다. 우리 집에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까?”
이번에 셋째 언니가 납치되었을 때 큰 형부는 그를 찾아 말했다. “형님, 이것은 우리 가족의 일입니다. 내일 나는 공안국에 가서 석방을 요구할 겁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사촌오빠는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아, 내일 나는 일이 있네. 큰형수하고 아주머니와 함께 가게.” 다음날 큰 형부는 사촌 형수를 기다려 석방을 요구하러 공안국에 갔다.
사실 우리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바로 마을에 가서 서명을 받는 것이었다. 쉐리도 이 방법이 사람을 구하는 힘이 가장 크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셋째 형부에게 말해서 가족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셋째 형부는 계속 대법을 지지해왔다. 이번에 시 공안국에서 국가 보안요원은 그만을 지명해서 위층으로 올라가게 했다. 그가 가서 셋째 언니에게 신념을 포기하라고 설득하게 하려고 했다. 그는 혼자서 여러 경찰을 만나 자연스럽게 가족의 입장에서 왜 파룬궁을 지지하는지 말했다. 결국 국가 보안요원은 그를 설득하지 않고 정중하게 그를 엘리베이터 앞으로 데려다 주고 악수를 하며 인사했다.
서명을 받는 일에 대해서 나는 셋째 형부에게 두 번 말했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내 역량이 부족한 것을 알았다. 이때 둘째 언니가 고향에서 통지를 받고 문서를 제출하기 위해 직접 방문해야 해서 돌아왔다. 나는 우리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 그녀를 오게 한 것은 바로 사부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둘째 언니는 셋째 형부에게 말했다. “집에 이 일이 생긴 것을 보고 매부의 친구들도 모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전화를 걸어 돈을 쓸 것인지 물어요. 우리는 돈은 필요하지 않지만 당신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요. 서명을 해서 당신의 아내가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세요. 모두들 그녀가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아요. 모두 서명할 겁니다. 그럼 어느 날 당신의 아내가 돌아오게 될 겁니다. 당신의 친구들도 아주 기뻐할 겁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을 돕느라고 힘들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 말은 이치에 맞아서 셋째 형부를 움직였고 그는 서명에 동의했다.
서명은 원래 우리 수련인들이 직접 가서 하려고 했는데 셋째 형부는 이미 전화 연락을 받았고 이미 그의 몇몇 친구에게 임무를 할당했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한 구역을 담당했다. 우리는 보고 나서 서둘러 자료 준비에 협조했다. 각 팀마다 설명서, 종이, 펜, 깔판, 인주, 종이 손수건이 준비되면 바로 농촌으로 출발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기초를 만들어주셨다. 다음날 마을에는 가족연회가 있었고 그곳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그곳에서 위에서 말한 사촌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셋째 형부의 친구가 많았는데 주변 4~5개 마을에 사는 사람들 400여 명이 이틀도 안 되는 기간에 모두 서명으로 지지했다. 이 빨간색 지장을 보면 내 마음속은 감개무량하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고향 친척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쪽도 일이 해결되었다. 한 달이 지난 후 검찰청에 서류를 제출하고 셋째 언니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쉐리가 그 일념을 견지한 것처럼 어머니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바로 수련인이 어떻게 진상을 잘 알려 사람을 구하는가 하는 일이었다.
가끔 우리는 사부님의 안배가 무엇인지, 배후의 큰 틀과 더욱 큰 배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사부님의 배치를 깨닫고 사부님의 안배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나는 깨달았다. 배후의 요소는 사부님께서 모두 잘 배치하셨다. 우리는 가서 실천하고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된다.
위에서 쓴 내용을 회고하면서 나는 사부님의 고심한 안배를 깨달았다. 우리는 수련인이다. 때때로 문제를 생각할 때 잘못 생각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사부님께서는 일깨워주시고 점화해 주신다. 우리가 가서 사부님의 안배를 깨닫기만 하고, 절대로 당신이 들은 어떤 말이나 본 일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과 선호도에 따라 선택하지 말며, 겸손하게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사부님의 안배를 따르면 수련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가: ‘홍음2-두려울 것 뭐냐’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12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22/397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