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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서 직장까지의 수련 길

글/ 대만 가오슝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련 동기

어려서부터 의문 한 가지가 저를 괴롭혔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등의 의문입니다. 이공계를 전공한 저는 과학지식에서 저의 의문의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줄곧 종교 중에서 답을 찾았고, 출가한 사람처럼 조용하게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살고 싶었으나 가족이 받아들이지 못해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13년 9월 저는 중산대학에서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수련생 교수님의 수업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알게 됐고, 수련생의 정념과 도움으로 예전의 종교를 떠나 대법제자의 행렬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순서 있는 배치였습니다.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수련생들이 교류하는 것을 듣고, 관광지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저도 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중산대학에 시쯔완(西子灣) 관광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오후 제가 관광지에서 전시판을 펼치고 발정념하며 가부좌하고 있을 때 관광지 수련생이 저를 불렀습니다. “수련생입니까?” “네.” 그는 또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결가부좌를 하지 않으세요?” 당시 저는 마침 ‘천안문 분신 거짓 사건’ 전시판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분신한 사람은 가부좌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에서 요구한 결가부좌가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이 수련생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끄러워하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신수련생입니다. 아직 결가부좌를 하지 못합니다.” 관광지 수련생은 미소를 지으며 “신수련생이세요? 그러면 시간을 잘 활용해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얼른 다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법 공부가 따라간다면 곧 돌파할 수 있다. 법 공부를 잘해야만 비로소 법을 실증할 수 있고, 법 공부를 잘해야만 더욱 잘할 수 있다.”[1]

대학교에 다닐 때는 시간이 많아 대량으로 법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법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세상과 격리된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많은 속인 친구와도 멀어지게 됐고 사상이 속인과 거리가 생겨, 수업이 시작되면 저는 대법서적을 펼치고 법공부를 했는데, 학교 강의에도 아무런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법공부 중에서 자신이 극단으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얼른 자신의 상태를 조정했습니다.

학생에서 직장까지의 수련 체득

1. ‘9평’을 읽고 진정으로 타인을 위해 생각하다

대학에서 석사까지의 기간에 학교에는 중국에서 온 교환학생이 있었는데, 이것은 중국 중생에게 진상을 알리는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 학생을 접대하는 학습 친구를 신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 학생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도 마음을 닦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공항에서 처음 중국 학생을 맞이해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열정적이면서도 자세하게 그들에게 학교와 부근의 환경을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풍토와 민심, 사회 인문의 차이도 교류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대만의 많은 명소에 파룬궁 수련자들이 진상을 알리고 있다고 언급하며 저 자신도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이야기하자, 갑자기 그들의 안색이 변했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빠르게 다른 화제로 바꿨습니다.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이제야 그들이 중국에서 이렇게 지독하게 세뇌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다른 방식으로 더욱더 지혜롭게 그들을 위해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나중에 안으로 찾으니 저는 그들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집착에 따라 진상을 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9평’을 한 번, 두 번, 세 번 읽기 시작했습니다. 매번 볼 때마다 악당에 더 깊은 인식이 생겼고, 진상을 알리는 응대 방식을 더 잘 알게 됐으며, 동시에 대법제자가 왜 매체를 만들어야 하는지, 왜 역량을 강화해 중공 악당을 폭로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공산사령(共産邪靈)을 폭로한다는 것은 사람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9평’은 사악에게독해 받은 일체중생을 구원하는 것으로, 중공 악당 당원과 중공 최고권력기구 중의 사람과 보통 세인(世人)을 포함한다. 목적[目地]은 각계 중생들이 모두 중공 악당 배후의 요소가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도록 하는 데 있다.”[2]

한번은 제가 중국 학생 10여 명을 데리고 아리산 관광지로 놀러 갔습니다. 목적은 그들에게 진상을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리산에는 우리 수련생이 만든 진상 거점이 있는데, 아주 오랫동안 걸어서 마침내 진상 거점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중국 학생들과 이곳에서 화장실에 들르자고 하며 모두 휴식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진상 거점에 가서 진상을 알아볼 줄 알았는데, 생각밖에 그들은 멀리 피해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 전시판 앞에 가서 수련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중국 학생 두세 명이 저를 찾으러 왔고, 수련생들은 매우 기뻐하며 우리에게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제가 가져갈 만한 책이 있는지 물으니 수련생들이 ‘9평’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이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제가 먼저 한 권을 받으니, 한 중국 학생도 따라서 한 권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저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진상을 말했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중국 학생 여러 명이 대법에 대한 관념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구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으니 사부님께서는 제게 하나의 정확한 길을 알려주셔서 저를 크게 격려해주셨습니다.

2. 홍콩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리며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다

작년 군 복무 기간에 생각했습니다. 사회에 나가서 일하기 시작하면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이 없습니다. 한 가지 소망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것은 바로 홍콩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대하면 홍콩에 한 달간 체류하면서 정성을 다해 법을 실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부모님이 제가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홍콩에 진상을 알리러 가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경제적으로 저를 지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군 복무 기간에 돈을 저축해 제대할 때 홍콩에 딱 한 달 머물 수 있는 비용을 모았습니다.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해 저는 제대하기 몇 달 전에 일자리를 찾아놓고, 홍콩에서 돌아와 이틀 후 바로 취직했습니다.

홍콩에서 매일 전쟁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관광지에서 큰 현수막을 들고 서 있었는데, 옆에서는 친공(親共: 친 공산당) 단체가 모함 선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여행객들이 한 무리씩 현수막과 전시판 앞을 지나가면 저는 미소로 응대하며 발정념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중생이 와서 진상 알기를 희망했고 친공 단체의 거짓말에 속지 않기를 희망했습니다. 이틀 후 한 사악한 자가 와서 소리 지르며 방해했는데, 이렇게 사악한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모함 선전을 하는 곳에 사람은 갈수록 많아졌는데, 저는 제게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들과 어떻게 현 상태를 돌파해 더 역량 있게 사람을 구해야 하는지를 교류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제게 마음을 내려놓고 열정적으로 여행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여행객들에게 대법의 선(善)을 느끼게 하고 그들이 온 것을 환영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라고 건의했습니다. 저는 시험 삼아 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손을 흔들어 보니 좀 어색했고 지나가는 중생의 반응도 냉담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이 만난 사람의 표면상 표현이 어떻든지 상관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중공의 박해 중의 거짓말을 믿은 결과 대법에 대한 태도가 매우 좋지 못하며 대법제자에 대한 태도 역시 매우 좋지 못하다. 그러나 여러분 자세히 생각해보라. 이런 사람들은 모두 중공의 거짓말에 독해됐다.”[3]

저는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상유심생(相由心生)’[4]의 법리가 생각났습니다. 저의 장이 아직 중생의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중생이 태도를 표시하는 것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단번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온몸이 에너지와 용기로 가득 찼습니다. 다시 한번 손을 흔드니 상황이 변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미소를 짓고 어떤 사람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 어떤 여행객은 큰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습니다. 두려움을 제거하니 심성이 제고되고 공간장도 변했습니다.

홍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있습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한 중국 여행객이 전시판을 보며 제게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중국에서 벌써 없어지지 않았나요?” 저는 “대만, 홍콩, 세계 각지에서 아직 많은 사람이 수련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많은 사람이 수련하고 있는데 중공의 지속적인 탄압과 박해로 공개적으로 배우고 수련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듣고 의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사람들 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습니다. “法正乾坤,邪惡全滅. 法正天地,現世現報.”[5] (법정건곤, 사악전멸. 법정천지, 현세현보.) 한 여성이 제 앞으로 와서 선글라스를 벗고 확고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1995년에 법을 얻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옆에서 의심하던 그 여행객은 듣고 깜짝 놀라더니 나중에는 우리를 보고 웃었습니다.

3. 직장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다

홍콩에서 대만에 돌아와 이틀을 휴식한 후 정식으로 직장에 출근하는 첫날, 이 일자리는 유명 기업의 자회사에서 일하는 것인데, 회사와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신입사원인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또 회사가 조건 없이 저를 수개월 기다려주고 제 월급과 학력, 지위가 다른 동료보다 높아지자, 다른 직원들은 질투심으로 아무도 저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의 업무 태도는 하루 일하고 하루 월급만 타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수련인의 요구에 맞지 않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인으로서 당신은 어디에서나 다 반드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6] 저는 생각했습니다. ‘속인 회사에서 대법제자는 주역을 잘 맡아야 하고 이 장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이후에 매번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먼저 용기를 내어 첫 번째로 달려 나와 처리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매일 퇴근하면 땀에 흠뻑 젖었고 또 자주 선배 직원들에게 욕을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참았는데 나중에는 그 사람이 저를 도와 소업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점차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은 제 행동을 보며 느낀 바가 있어 잇따라 지도해줘서 제 조작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혼나는 일도 적어졌습니다. 심지어 회사는 예비 간부로 저를 교육하며 기술고문으로 중국에 기술 지도를 보내려 했습니다. 회사에서 모든 것이 순조로워지기 시작해 저는 경각심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편안하고 편안해서 어떻게 공이 자라겠는가?’ 비록 매일 법공부를 하지만 더 새로운 돌파와 제고가 없었습니다. 아마 이 단계에서의 요구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중국 근무를 이용해 중국 중생에게 진상을 알릴 것인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출국 수속을 준비하던 중에 우연히 한 대기원시보에서 근무하는 수련생과 교류하게 됐습니다. 그가 신문 인쇄공장에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해서 저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고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4.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인쇄공장에 들어가다

원래는 속인 회사에서 퇴직할 때까지 일할 계획이었습니다.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말입니다. 그런데 일념에 모든 계획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말 “제가 가겠습니다”를 하고 난 후부터 제 마음은 평온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속인의 눈에는 밝은 장래가 있는 회사를 떠난다고 하니 주요 책임자와 동료들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장남인 저는 멀리 떠나야 했고, 매월 부모님께 용돈도 드려야 했으며, 제 학자금 대출은 또 어떻게 합니까? 가족이 지지하겠습니까? 집착심이 아주 옅은 줄 알고 살았는데, 명리정(名·利·情)이 다 올라와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난 이런 것들을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표준과 그렇게 멀어 순간 비할 바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중공 악당의 형세를 알아봄에 따라, 저는 매체에 더 많은 인력이 가서 이 형세를 지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진상을 알리는 것과 대법제자 매체의 일을 한 데로 합한다면, 시간을 나눠야 하는 것을 줄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또한 생활 문제를 해결했으며, 속인사회에서 일하는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왜 기꺼이 하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반드시 해야 하는 추세이다.”[4] ‘그렇다. 지금은 정말 반드시 해야 한다. 더는 집착하지 말자!’ 아마 이 일념 때문에 이후의 길이 열린 것 같습니다. 비록 부모님께서 제가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을 알고 노발대발하셨지만 저는 조용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저를 위해서 그러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원에 들어가는 것은 저의 꿈입니다. 부모님도 즐겁게 지내는 저를 보시기를 원하시지요. 그렇다면 제가 가서 한번 해보게 해주세요.”

직장을 그만두기 전, 회사 동료들도 줄곧 제게 관심을 가지며 물었습니다. “매일 즐겁게 일하는 걸 봤는데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어요? 아니면 월급이 마음에 들지 않나요?” 저는 “아닙니다. 여기에서 일한 날들이 저는 정말 즐거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또 호기심을 갖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만두세요?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젊고 아직 꿈이 있고 실현할 사명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해석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제 마음속은 ‘이 인쇄공장에서 법을 실증하는 것은 원래의 소망 때문입니다’였습니다.

올해 5월 13일, 저는 대기원 인쇄공장에 지원서를 내며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자는 이후의 나날에서 더욱 정진하고 전력으로 세 가지 일을 다 하여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끝으로 올해 션윈 프로그램 중의 시 한 수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홍음5 – 그림 속에 빠져들다’

소년은 뜻을 가슴 가득 품고
동량재(棟梁才)를 숭상했다네
영예롭게 고향으로 돌아가나니
이 생(生)은 무엇을 위해 왔는가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각 지역 설법 8-2007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3-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2015년 뉴욕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서: ‘각 지역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2- 발정념(發正念) 두 가지 수인’
[6] 리훙쯔 사부님 저서: ‘휴스턴 법회 설법’

(2019년 파룬따파 대만 수련심득교류 원고)

 

원문발표: 2019년 11월 26일
문장분류: 해외법회 원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26/396190.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9/11/30/1809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