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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정을 내려놓자 더욱더 성숙해지다(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윗글에 이어)

2. 서약을 실행하고 시간을 다그쳐 사람을 구하다

반년 후 집안의 환경도 변했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게 되자 밥하고 집안일하고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했습니다. 시간이 갑자기 빡빡해지자 잘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사부님의 배치가 있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 집에 갔는데 잘 모르는 수련생이 사용하지 않는 핸드폰이 있는데 문자와 MMS는 보낼 수 있다며 내게 줬습니다. 후에 핸드폰 MMS 전송 기술을 아는 다른 한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나는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MMS를 보내는 것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하에 문자와 MMS를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보내는 것을 배웠습니다.

수련생이 제공한 전화번호뿐만이 아니고 다른 정보도 있어서 대상에 따라 진상내용을 그림과 글을 다채롭게 MMS으로 편집하여 보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구하는 데서 오랫동안 큰 작용을 했습니다. 수련생을 구하는 과정 중 폭로내용을 MMS로 만들어 관련 직장에 보내줘 사악을 떨게 했습니다. 이에 따라 악인(恶人)은 많이 자제됐고 수련생에 대한 박해도 감소됐으며 일도 원만하게 해결됐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MMS를 보는 사람이 적어졌습니다. 밍후이왕에서 녹음 전화하는 기술을 제공해주자 일부분 수련생은 전화녹음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전화를 받는 속인은 아주 많았습니다. 나는 매일 여러 개 전화로 3시간 넘게 했습니다(차의 보조석에 놓는다). 매일 적어도 6, 7백 명이 녹음전화를 다 들었으며 매번 10명 이상 탈퇴했습니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대법진상을 집집마다 전하네 구도된 중생 마음 점차 밝아지고 청성해진 경찰과 민중 보고도 막지 않네”[4]였습니다. 핸드폰이 실명제로 바뀐 후 나는 다른 항목을 선택했습니다.

점차 나의 수련환경도 좋아졌습니다. 아이의 학교를 외할머니집 근처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되자 외할머니가 아이를 좀 봐줄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밍후이왕에 ‘영원’이라는 큰 책자가 있었는데 내용이 전면적이고 기본 진상은 다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세인은 이런 내용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세인이 이 큰 책자를 보기만 하면 끝까지 다 볼 것이고 그들에 대한 영향이 아주 클 것이며(당시 개인체득) 중생을 구도하는 힘이 아주 클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빨리 배포하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현지 곳곳에 한번 돌리고 싶었습니다.

수련생 몇 명이 교류하여 각자 책임지고 협력 라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자료점에서 정기적으로 자료를 공급해주면 몇 명의 수련생이 포장을 책임졌습니다.(수련생의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포장된 자료를 큰 비닐자루에 넣을 때 차례로 배포하여 몇 개 가정이 같지 않은 자료를 받게 했습니다. 내용이 다르면 서로 바꿔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은 배포하는 것을 책임졌습니다. 우리 지역은 시골의 산 지역이고 면적이 비교적 컸습니다. 어떤 길은 복잡하고 멀었고 어떤 마을에는 집이 몇 채 없었습니다. 1년 8개월 걸려서야 기본적으로 한 번 돌았는데 대략 10여만 부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1년 넘게 자료를 배포했고 매번 우리는 800~1000여 부의 자료를 들고 다녔습니다. 큰 책자이기 때문에 무게도 제법 무거웠습니다(대부분 길이 멀고 한 번 가기가 쉽지 않아 매번 여유로 많이 들고 갔습니다). 여성용 오토바이로 자료를 싣는데 언제나 왕복 몇백 리를 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 중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많은 사람의 집착을 내려놓았습니다. 부득이 외출하지 못하는 날이면 쉬고 거의 하루 혹은 이틀에 한 번씩 밤에 나갔습니다. 아이의 숙제를 다 봐주고 아이를 재운 후에야 나갔습니다(두 아이가 개구쟁이라 나가기 전에 어머니가 할 책임을 다하고 나갔습니다. 이렇게 되면 남편도 할 말이 없습니다). 보통 새벽 2, 3시 심지어 4, 5시 돼서야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후 서둘러 아이를 학교로 보냈습니다. 좀 힘들지만, 밤에 배포한 지역은 다시 찾아가라고 해도 찾을 수 없는 외딴 지역입니다. 중생이 어렵게 진상을 볼 수 있게 됐고 이것은 나의 책임과 사명이고 중생이 진상을 알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힘들고 고생한다는 느낌이 없어졌습니다.

나는 아주 빨리 이 항목을 감당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과정 중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초범적인 능력을 주셨습니다. 수련생이 날 태우고 될수록 집과 가깝게 하면 내가 뒤에 앉아서 배포했습니다. 정문 앞 혹은 문 앞의 복도에 던져 넣었는데 명중률이 90% 이상이었습니다. 어떤 자료는 대문 밑으로 밀어 넣었고 어떤 것은 문고리에 걸어놓았습니다. 어떤 때 수련생이 오토바이의 속도를 잘 조절하지 못하고 좀 빨라지면 달리는 오토바이의 관성으로 자료를 목표지점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료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되돌아오며 마침 목표지점에 떨어집니다. 사실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의 옆에 계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 위험한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이 오토바이의 브레이크를 수리하는 것을 잊었는데 큰 굽은 길에서 내려올 때야 생각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뒤쪽 바퀴에 브레이크가 없는데” 오토바이는 급속히 아래로 미친 듯이 내려가지만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한순간 오토바이가 나뭇가지에 걸리고 산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산벼랑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수련생은 날아 산벼랑 아래의 논밭에 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무사했습니다. 또 외딴 산 지역이라 우리가 가면 쉽게 눈에 띕니다. 몇 번이나 포위당한 적이 있습니다. 적을 때 한두 명, 많을 때 20여 명에게 포위당했었는데 물건을 뒤져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의 보호하에 지혜가 생겨 중생을 선하게 대하자 어려움이 모두 해결됐습니다.

수련생의 신임으로 나는 현지 협조인이 됐습니다. 2015년 장쩌민 고소 대 조류 때, 마침내 대법이 받은 모함, 대법제자가 받은 잔혹한 박해를 말할 기회가 있게 됐습니다. 현지에서 나는 장을 고소했고 선두로 답장을 받았습니다. 나는 현지 수련생과 교류하고 모든 수련생을 동원하자고 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한 개 구역을 책임지고 사실에 근거하여 개인 및 가정에 가져다준 손실 등의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기술을 아는 수련생은 편집하고 글로 만드는 것을 책임졌습니다. 그리고 당사자, 본인에게 보내주고 본인이 고소장을 부치게 하였습니다. 현지의 장 고소는 99%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장 고소로 납치당한 일이 한차례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20년 동안 정법을 하셨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모든 항목은 모두 세인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법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이미 모든 중생이 태도를 표명하고 위치를 정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그리하여 나도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는 것을 주요항목으로 했습니다. 우리 현은 크지 않습니다. 많은 노년수련생은 오전에 법공부하고 오후에는 시내에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우리는 젊고 오토바이가 있기 때문에 시골에 내려가 진상을 알렸는데 효과도 꽤 좋았습니다.

2019년 5월의 어느 날. 수련생과 함께 접경지역에 있는 한 마을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촌장이 보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우리는 경찰차 2대에 포위당했고 파출소에 납치됐습니다. 경찰은 오토바이에서 진상자료를 찾아냈고 우리의 신분증을 수색해가서 인터넷으로 나의 일부 정보들을 알았습니다. 내가 협조하지 않자 그들은 나의 머리핀을 빼앗아갔고 신발 끈을 풀어놓고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후에야 그중의 한 사람이 이 지역 국가보안대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과 나는 박해와 박해당하는 자의 관계가 아니고 구도와 구도를 받는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마음이 상서로웠고 줄곧 어조가 부드러웠고 예절 있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는 내게 말려들까 봐 몇 번이나 내 말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끄떡하지 않고 계속 주도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감동받고 귀담아들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TV에서 선전하는 것과 달라요. 저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에요.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무턱대고 배운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믿음은 반드시 자신에 대해 책임져야 하고 반드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아야 해요.” 나는 톈안먼 분신자살로부터 대법은 병을 없애고 건강하게 한다는 것을 알려줬고 우담바라꽃이 필 때 불교 예언에서는 어떻게 된다고 말했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또 중국공산당의 정치운동은 언제나 억울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파룬궁도 예외가 아니고 우리 중국인이 아주 착해서 중국공산당이 말하는 옳고 그름은 언제나 사후에야 역사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를 석방하라고 그에게 요청했고 수련인을 보호하면 공덕이 무량하다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사회와 개인에게 상처와 손실을 가져다주지 않았으므로 죄가 없어요.” 그는 나의 말을 듣고 크게 웃었습니다. “아, 정말로 책을 많이 읽으신 분이에요. 일리 있게 잘 말씀하시네요.”라고 말하고는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말하는 재간이 있다는 것이에요.”라고 말을 고쳤습니다.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수련생과 나를 갈라놓았습니다. 방안이 조용해지고 혼자 남게 되자 이따금 잡생각과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판결을 받을 것이다와 같은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강제로 내게 넣어준 생각입니다. 법을 얻은 일면이 어찌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거하고 배척했습니다. 이렇게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기만 하면 제때에 배척하고 바로 잡았고 그것에 따라 생각하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사부는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다. 당신들도 그것을 승인하지 말고 당당하게 잘하도록 하라. 그것을 부정하고 정념이 충족하도록 하라.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5]

후에 국가보안대장이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어디 소속인가 물었습니다. “610이에요?” 그들은 직접 대답하지 않고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내게 법률실시를 파괴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모르고 있어요! 모두 억울한 것이에요. 어느 법률실시를 파괴했어요? 나라의 국가주석도 탄압을 받아 억울하게 감옥에서 죽었어요. 파룬궁도 마찬가지에요.”라고 했습니다. 국가보안대장은 크게 웃으며 날 지지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도 알려줬습니다. 그들은 듣고 묵인하고 갔습니다. 기타 시간에는 나는 발정념하며 나에 대한 방해와 박해를 해체했습니다.

저녁에 경찰은 우리를 구치소로 끌고 갔습니다. 구치소에서 우리를 받기 전에 혈압을 쟀는데 수치가 엄청나게 높았고 다시 쟀는데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 만들어주진 가상입니다. 구치소의 기록원은 반드시 큰 병원에 가서 증명서를 가져와야 한다고 하였고 나를 또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또 측정했는데 혈압은 여전했습니다. 병원에서 증명서를 내줬습니다. 이때 놔줄 거로 생각하고 방심하고 발정념을 하지 않았습니다. 구치소에 돌아온 후 기록원은 또 심장병에 관한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또 나를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신기한 것은 심장도 심각하다는 가상이 나타났습니다. 병원에서 증명서를 발급해줬습니다. 다시 구치소로 돌아오는 도중에 한 치의 느슨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발정념하며 이 한차례 박해를 해체했습니다. 구치소에 도착한 기록원은 책임자가 와서 결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 경찰이 내게 운이 좋은가를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한 정념을 보내 사악을 철저히 해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눈을 살짝 감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강한 정념을 내보냈고 가지해 달라고 사부님께 요청했습니다. 순간 사부님께서 붉은 오렌지색 가사를 입으시고 구치소의 하늘에 나타나셨고 대연화수인 두 개의 동작을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어려움을 도와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분 후에 등록하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돌아오는 도중 경찰이 “이번에 원래 판결을 내리려고 했는데 우리가 상급에 보고하지 않았어요. 너그럽게 봐준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나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겁난에 부딪혔을 때, 그 자비심이 당신을 도와 난관을 넘게 하며, 동시에 나의 법신(法身)이 당신을 지켜주고 당신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 하지만 난(難)은 꼭 당신이 넘도록 한다.”[6] “물론 당신들은 필경 앞서 서약을 한 대법제자로서, 당신들의 생명은 필경 대법과 같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큰 법이 있으며, 정념 중에서 대법과 당신들은 같이 있는바, 이는 거대한 보장이다.”[7]

집으로 돌아온 후 지난날의 고통을 돌이켜봤다. 이번의 박해 원인은 어머니에 대한 깊은 정이었습니다. 어머니는 1999년에 법을 얻었는데 2017년에 병업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반신불수의 뇌졸중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어머니의 고비를 넘게 하려고 도왔지만 언제나 가상을 중하게 봤습니다. 밍후이왕에 발표된 병업 고비를 넘긴 관련 문장을 읽어주면 듣기는 하지만 자신을 대조하지 않고 대충대충 넘겼고 주의식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주 조급하고 초조했으며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함을 한스러워하는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완전히 정에 빠졌고 어머니의 상태에 따라 움직였고 어머니를 수련생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법이 나에 대한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자 구세력은 틈을 타서 박해했습니다. 어머니의 상태, 표현에 모두 내가 수련하고 제고해야 할 요소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진정 수련인의 경지에서 어머니 수련생을 도와주는 것은 또한 나의 책임이고 사명입니다.

사부님을 따라 정법하고 수련한 20년을 돌이켜 보면 정말로 감개무량합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에 비할 바 없이 감사드립니다. 더욱 정진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서약을 실행해야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3-선(善)이 보이네’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파룬궁-제3장 心性(씬씽) 수련’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맨해튼 설법’

(밍후이왕 제16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원문발표: 2019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0/3955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