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사존께서 법을 전하신 초기에 법을 얻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로 절뚝거리며 오늘날까지 걸어왔다. 수련하면서 곡절을 겪었고, 이야기가 매우 많지만 하나하나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는 없다. 여기에서는 단지 자신이 사악한 당에게 불법적인 감금을 당한 일부 단편적인 일이 써내어 수련생과 교류하고자 한다.
자신의 인색 귀착점을 찾다
나는 과거에 자신의 근면함과 지혜에 의지해 편벽한 산촌에서 벗어나 거액의 재산을 가진 농촌 청년으로서, 고향 사람들은 장래가 밝고 재능이 있으며 영리한 데다 손재주도 있는 능력자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정에 책임질 줄도 아는 좋은 청년이라고 칭찬했다.
딱 젊고 유망한 삼십 대 시절에 과로로 몸이 지쳐 유해성 감기가 늘 나를 찾아와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고 심하면 수액을 맞았다. 특히, 나날이 타락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담배, 술, 마작 이런 각종 나쁜 습성에 물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고, 먹고 마시고 놀며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여겼는데, 자신이 이미 위험의 변두리로 미끄러진 것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주역, 팔괘, 점치기 등 술류의 것들과 기공에 취미가 있어 항상 이런 유의 서적과 자료를 수집했다. 한번은 고등학교 동창이 어떤 기공을 소개해줬고, 나는 즉시 아들과 이웃 아이를 데리고 연습하러 갔다. 하지만 적지 않은 돈을 쓰고도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했으며 몸은 마찬가지로 허약했다.
그래서 다른 기공으로 바꾸려던 차에 운이 좋아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해 들었고, 전혀 주저하지 않고 대법 수련으로 들어섰다.
수련하고 얼마 안 돼 내 마음속이 단번에 환해졌고 사람이 왜 세상에 왔는지, 그리고 마땅히 어떻게 사람됨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수련 법문이며 내 인생의 귀착점이고, 인생의 진실한 의의는 반본귀진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인생에 대한 신심이 충만해졌다.
20여 년간 나는 병 없이 온몸이 가벼웠으며 보기에도 젊어져 실제 나이와 열 살 이상 차이가 나 보였는데, 곧 60세가 되지만 사람들은 늘 40세 남짓한 줄 안다.
수련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선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생활상에서 오염된 담배, 술, 마작 이런 나쁜 습관을 제거했다. 그리고 어떻게 분수를 지키며 사람으로서 됨됨이를 갖춰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이 고덕대법을 곁에 있는 가족, 친척, 친구, 이웃 및 생활 업무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널리 알렸다.
우리 집도 화목해지고 이웃과도 화합이 잘 되었으며, 파리 대가리만한 인생의 고만한 작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도 담담해졌다. 비록 과거처럼 그렇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사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법을 얻은 주위의 수련생 한 명 한 명을 보면, 원래는 약을 달고 살았으나 건강을 회복하고 얼굴 혈색이 좋아진 이가 있고, 가정이 파괴되었으나 부부가 법을 얻거나 부부 중 한쪽이 수련하면서 다시 사이가 좋아진 예도 있었으며, 매년 마을 간부들이 누차 밀린 공출미를 독촉해야 했으나, 수련하면서 사람이 좋게 변해 지금은 간부의 독촉이 없어도 자진해서 가장 좋은 식량을 공출미로 앞당겨 바치는 등등의 일도 있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이 계속 생겨났다. 다들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를 하면서 각자 법을 얻고 수혜를 입은 후의 그런 행복감을 나누었다.
아무리 고생스럽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자신이 대법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이 대법의 넓은 은혜 속에서 목욕하며 사회 풍기가 양심을 향해 회귀할 때, 장쩌민 깡패 집단의 마수가 대법을 향해 뻗쳐왔다. 천지를 뒤엎는 탄압이 시작되어 사존께서 모함을 당하시고 대법이 먹칠을 당했으며, 대법제자는 유언비어로 모함을 당했는데, 순식간에 온 하늘과 땅이 캄캄해져 검은 구름이 드리우니 온 중화 대지가 사악의 안개 속에 뒤덮였다.
나 역시 이곳 현지에서 사악이 박해하는 요주의인물이 되었다. 경찰이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것은 일상다반사였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공정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수차례 불법감금을 당하고 훗날 불법적인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수차례 중공 장쩌민 깡패 집단에게 박해를 당하면서 고생스럽게 일궈낸 생활 내원-몇십만 위안의 가산을 사악에게 몽땅 다 털렸다.
생활 내원이 없어져 나는 어쩔 수 없이 막일로 생존했다. 그러나 20년간 중공의 잔혹한 박해도 진수 대법제자의 최초의 심원은 바꾸지 못했으며, 나는 언제나 진선인(眞·善·忍)을 굳게 믿고 일을 함에 우선 다른 사람을 먼저 고려하면서 상대방에게 선념을 남겼다.
내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울 때, 사부님께서 진상을 명백히 알고 있는 정직하고 선량한 한 젊은이를 내 곁으로 보내주셔서 그에게 노동기술을 배웠다.
가장 처음으로 받은 일은 어떤 집의 시멘트 바닥을 깨부수는 힘든 일이었다. 그때 내게는 단 하나의 생각만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만 하면 생존하는 데 희망이 있을 것이니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두렵지 않다.’ 사장은 내게 큰 전기 해머를 주었고, 나는 5cm 두께의 시멘트 바닥을 전기 해머로 한 조각 한 조각 부쉈는데, 아래에 보일러 파이프를 깔기 위해서였다.
일이 힘들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 있었다. 몹시 더운 여름날, 일을 안 하는 사람도 더워서 온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는데, 이런 중노동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얼마 안 돼 옷을 다 벗어 던지고 통바지 하나 남았는데, 이 바지도 땀으로 흠뻑 젖었고 땀이 다리를 따라 아래로 흘렀다. 물을 마시기만 하면 다 땀이 됐고, 하루에 몇 주전자나 마시고도 화장실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처음 이틀간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인 큰 집을 다 끝내고 이어서 사흘간 또 한 채를 해 총 600위안(한화 약 10만 원)을 받아야 했으나 사장은 300위안(약 5만 원)만 주었다. 수차례 전화를 해서 남은 300위안을 받으려 했으나 사장이 전화를 안 받거나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주지 않았다. 나는 그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주기 싫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은 임금은 받을 희망이 없어 보였다.
어떤 사람은 그 사장의 전동차를 끌고 가버리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라 또 다른 사람은 저렇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이 어떻게 억지를 쓰든지 친구가 어떻게 부추기든 내가 대법 수련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나는 속인과 같은 견식을 가져서는 안 되며 오직 사부님의 말씀만 듣고 상대방에게 선념을 남겨줘야 했다. 나는 어쩌면 사장도 곤란해 이 300위안이 필요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해 더는 그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또 다른 일을 하나 받았다. 나는 친구 한 명을 구해 둘이 함께 공사장에 가서 업주에게 일을 받았다. 이틀간의 임금이 1천 위안(약 17만 원)이라고 했다. 우리는 업주의 요구대로 성실하게 일을 마치고 업주에게 돈을 요구했으나 젊은 업주는 억지를 쓰며 방법을 바꾸어 흠집을 찾아냈다. 나는 심성을 지키면서 그와 논쟁하지 않고 최대한 그의 요구대로 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일을 이미 마친 것을 보고는 여전히 일을 제대로 못 했다며 우리를 집 밖으로 쫓아냈다. 나에게 일을 소개해준 친구는 화를 내며 내가 해놓은 것을 가서 다 망가뜨려 버리라고 했다. 나는 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그럴 수 없다며 친구를 끌고 그곳을 떠났다.
막 시작했을 때는 각종 좌절을 맛봤지만 나는 기가 죽지 않았고, 대법제자는 복이 있으며 사부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생활의 길과 환경을 배치해주실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우리의 신용을 지키는 것을 중시하고 상대방이 얼마나 가혹하고 인색하든지 논쟁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다.
일하며 대법을 실증하다
사부님께서 내게 지혜를 열어주셨기에 무엇이든 빨리 배웠고, 훗날 또 새로운 기술을 배웠다. 대법에서 수련해낸 성실, 신용 덕에 상대방과 접촉하기만 하면 꼭 다음 합작의 기회가 생겼다. 서서히 갈수록 많은 보수를 받게 되었고, 나도 빈 시간을 이용해 다양한 각도로 상대방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렸다. 중공이 왜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지 명백히 알게 된 사람은 흔쾌히 ‘삼퇴’를 했고, 이렇게 생명이 구도되었다.
올해 봄, 우리 지역의 한 공사 현장의 사장이 나에게 나와 함께 일했던 청년 친구에게 빌딩의 공용실에 페인트칠을 해달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 이 친구는 공사 현장에 가 보고는 꽤 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이 일 외에도 현금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었다. 그래서 비교적 힘든 이 일을 내가 하게 되었다. 이런 현장에서 일하면 각 층에는 물도 없고 전기도 없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장은 원료를 공사장 창고에 넣어두고는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근심을 하다가 공사장의 인력진에게 물었는데, 사부님께서 마음씨 좋은 사람을 배치해주셔서 크레인엘리베이터를 운행해 원료와 물 한 통을 각층으로 보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렸다. 그는 내 말을 믿었고, 이런 중요한 일을 알려줘서 고맙다며 흔쾌히 중공 조직에서 탈퇴했다. 다시 그와 마주쳤을 때, 그는 멀리서도 내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한 층 한 층 이 빌딩을 칠했다. 사장은 내가 해놓은 것을 보자마자 아주 만족해했다. 그는 내가 일도 할 줄 알고 성실하기까지 한 것을 보고는 다른 건물, 또 다른 건물도 내게 맡겼다.
어떤 한 공사장은 질적인 부분에 대한 요구가 엄격했는데, 많은 사람이 그 요구에 미달해 벌칙을 받았다. 벌칙 한 번에 벌칙금은 1만 위안(약 166만 원) 이상이었는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모든 품삯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역으로 돈을 더 내야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주시고 대법제자가 수련해낸 지혜를 사용해 폐기물로 각종 보호 커버를 만들었고, 완벽하면서도 빠르게 각 층의 조명기구와 소방설비의 청결을 잘 마쳐 아주 깨끗하게 해놓았다. 건물관리자는 나를 칭찬하고 핸드폰으로 내가 해놓은 일을 찍어 이 프로젝트의 채팅방에 올려 채팅방의 모든 사람에게 내가 창조한 간편한 도구와 높은 작업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 숙련공 모모 좀 보세요. 혼자서 세 명의 일을 했어요. 게다가 이렇게 깨끗하게 해놨어요. 정말 보통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지혜와 역량, 고상한 품성을 주셨기에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을 깊이 알았다.
나는 일을 빠르게 잘했고, 또 사장에게 보조재료와 임금을 적잖게 절약하도록 해주었다. 사장은 일이 다 마무리가 되기도 전에 항상 또 다른 공사장의 일을 맡겼고, 연말에 이익금을 나에게 지급해주었다.
수련생과 교류를 하고 또 세인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썼는데, 이렇듯 참혹한 중공 사악한 당의 박해에서 우리 대법제자가 어떻게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인생을 대하는지를 알리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이 대법 진상을 알아 자신의 생명이 구도를 받고 행복과 광명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1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10/3963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