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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의 서약

글/ 타이완 가오슝(高雄)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가우슝 수련생입니다. 올해 2월 법을 얻어서부터 지금까지 수련의 길에서 아직 부족한 곳이 매우 많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아래는 제가 법을 얻은 이 몇 개월 동안 신 수련생의 수련심득으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천만년의 기다림

세상의 미혹 속에서 우리는 모두 천만년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윈린(雲林)의 시골 마을 근처에서 자랐으며 초등학교만 졸업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유를 사랑했고 부모님의 통제와 가르침으로부터 일찍이 벗어나고 싶어 스무 살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자유롭게 살 줄 알았으나 오히려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남편은 도박을 좋아하고 외도했으며 집에 돈이 있는지 없는지를 돌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했고 여러 가지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두 아이와 그렇게 20년을 살아왔습니다. 하루는 저는 인내가 이미 극한에 다다른 것 같다고 생각하여 남편에게 이혼을 제기했습니다. 이혼 후 비록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겼지만 좋은 날을 2년도 채 보내지 못하고 또 한 차례의 큰 차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차 사고로 저의 무릎은 반달 동안 뼈가 부러져 골절되었고 의사는 신체의 신경이 손상되었다고 판정하여 이렇게 3년 내내 집에 누워 있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된 후, 또 7년이 지났습니다. 우연인 듯 보이는 기회에 어린 손녀 친구의 엄마들이 노동자 대학의 봉제반에 가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생활 속의 이런 볼품없는 작은 일은 오히려 제가 천만년을 기다려온 법을 얻는 기연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기간에 수업을 함께한 수강생 중에 파룬궁(法輪功) 수련인이 한 사람 있었고 1년이 조금 지난 후 또 한 명이 왔습니다. 이 두 명의 수련생이 반에서 각 방면에서 사심 없는 노력을 기울여, 무미건조하고 냉랭하던 봉제반에 즐겁고 아름다운 학습 분위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그녀들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공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 저는 호기심에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연마하나요?” 그녀들이 말했습니다.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어요.” 저는 이전에 매우 수련이 하고 싶어 다른 단체를 많이 접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파룬궁에서처럼 이렇게 좋은 사람이 어디에 있나요. 왜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걸까요? 그러면 제가 배우게 되면 이렇게 좋게 변할 수 있을까요? 저도 이렇게 좋게 변하고 싶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한 사람, 당신의 생명 중에 본래 수련이 없었으나 현재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그럼 이후의 길을 당신에게 새롭게 안배해 주고”[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생의 집에 가서 ‘전법륜’ 한 강의를 공부했을 때부터 시작하여 션윈 홍보 부문에 참가하게 되고 9일 학습반에 갔다가 다시 대기원신문을 배포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저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수련의 인생을 펼쳐주셨습니다.

법에 용해되다

9일 학습반에 다닐 때 가부좌하고 다리가 아파 내려놓으면 연마가 헛된다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의 마음속에는 나는 수련을 하고 결가부좌를 하며 연마가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자신이 평생 장애인이라는 것을, 무릎이 끊어진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기 며칠 전에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며칠 후, 그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은 저를 참지 못하고 목 놓아 울게 했지만 저는 아픔을 참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연마하는 것을 견지했습니다. 울음소리가 수련생의 연공을 소란스럽게 한다고 생각하여 모두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량한 수련생들은 오히려 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여 주며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정공을 연마할 때 아픔을 참는 것을 견지하며 다리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비록 중간에 며칠 동안은 견지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1시간 정공도 반 시간 또는 더 긴 시간 동안 아프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고 다리도 없고 몸도 없는 그런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오로지 자신이 소업하는 고통을 감당한 후 바꾸어온 미묘한 경지만 있는 것도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공할 때 바닥이 금색인 것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그물 모양으로 되어 있다가 나중에는 온통 금색으로 변했습니다. 수련생은 그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해주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을 얻기 전 저는 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억지로 보더라도 잠깐 본 다음, 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수련생이 저를 데리고 ‘전법륜(轉法輪)’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매우 좋다고 느꼈고 매우 보고 싶었습니다. 법을 얻고 법을 배우며 연공하고 심성을 닦았습니다. 사부님의 법리를 어떻게 체득하고, 갈등이 왔을 때 어떻게 올바르게 갈등을 대하는지 배웠고, 사부님의 법리를 기점으로 안으로 찾는 것을 배웠으며, 다른 사람을 보지 않고 자신만 보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부님의 “안으로 찾는다”라는 말씀만 들으면 기본적으로 소업할 수 있었으며 정말 너무 좋고 신기했습니다.

수련하기 전 저는 태도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련 후에는 우호적이고 친절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때 늘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은 ‘어떻게 이렇게 된 거야!’, ‘어떻게 항상 홀가분하고 행복하게 된 거야!’였습니다. 대법은 정말 너무 신기합니다!

구름 위의 서약을 실천하다

제가 법을 얻기 전 경제 수입은 빌딩 청소와 신발 수선을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법을 얻은 후, 근무하던 빌딩의 관리인과 거주자 위원 사이에 일부 문제가 발생하여 저의 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수련생은 그때 저에게 언급하기를 “우리 수련생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만든 신문이 한 부 있는데 신문 배포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서 하게 되면 대법의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할 수 있고 또 일부 수입도 생기게 됩니다.” 저는 듣고 즉시 말했습니다. “좋아요!” 신문을 배달하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조금도 고생스럽지 않다고 생각했고 매우 즐겁고 재미있게 느꼈습니다. 물론 그때의 저는 아직 대기원이 어떤 신문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신문사에 면접 보러 갔을 때, 신문사 지배인은 저의 조건이 매우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어느 날부터 신문 배달을 시작할지 주관하여 통지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딸이 오토바이를 바꾸려고 했고 새 오토바이는 보조를 받아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딸은 제가 신문을 배달할 때 사용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또 신문사에서 신문을 배달해야 한다고 통지가 오면 저는 오토바이가 없이 어떻게 신문 배달을 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딸의 오토바이는 21일 날 바꾸게 되었고 동시에 신문사에서는 저에게 22일부터 신문을 배달하라고 통지가 왔습니다. 이는 저에게 있어서 또 한 차례의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질서 있는 배치의 결과를 목격한 것입니다.

이 신문을 배달하는 일은 제가 매우 기대해왔던 일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저를 긴장하게 하는 것은 제가 길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수련생은 저를 도와 거주자를 찾아주겠다고 말했고 심지어 필요하면 그녀의 아들을 불러와 길 찾는 것을 도와주며 지도를 만들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아주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너무 좋아요! 이러면 저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요!” 말하다가 수련생은 그녀도 이전에 의존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저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의존하는 마음은 사람이 사고하고 싶지 않게 하고 둔하게 변하게 하며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는 것에 습관이 들게 하므로 의존하는 마음은 제거해야 하는 집착심 입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했습니다. ‘맞아! 나에게는 있었어. 그리고 매우 심각해.’ 교류를 통해 저는 이 의존하는 마음을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저 스스로 먼저 길을 찾아보고 찾을 수 있는지 볼게요.” 결국, 저는 의존하는 마음을 제거했고 길은 거의 모두 저 스스로 찾아냈습니다. 알고 보니 길 찾기도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정말 의존하는 마음이 자신의 걸림돌이었습니다.

처음의 훈련 기간이 지나서 정식으로 신문을 배달하는 날이 갈수록 가까워졌습니다. 저는 가서 새로운 노선을 찾고 거주자를 찾기 위해 이틀 동안 오후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는 것을 잇달아 포기했습니다. 수련생이 알고 난 후 저에게 물었습니다. “내일부터 신문 배달을 시작하나요?” 저는 말했습니다. “아직 일주일이 있어요. 그러나 길 찾기가 어려워서 저는 줄곧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서둘러 가서 길을 찾아야 해요. 연공하러 갈 수 없어요.” 수련생은 저에게 이것은 교란이며 저를 연공하러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바로 깨달았고 곧바로 나가서 연공했습니다. 결국, 연공을 마치고 나와서 바로 줄곧 찾지 못하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대법제자는 무엇을 해야 하면 바로 무엇을 하면 된다는 것을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먼저 흐트러지고 다음에 구세력의 교란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신문을 배달하기 전 회의에서 주요 책임자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신문을 배달할 때 쫓아오는 개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요?” 저는 말했습니다. “빨리 도망가야 합니다.” 그 자신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법회 교류에 참여한 날 어린 손녀는 학교에서 휴대전화로 바닥에 누워 있는 두 마리 검은 개의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저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왜 이 개를 찍어서 나에게 보여 주는 걸까?’ 결국, 이튿날 신문 배달을 갔을 때, 사진과 똑같은 모습의 두 마리의 검은 개가 매우 사납게 저를 쫓아왔습니다. 저는 당시에 자신이 어떻게 해야 개를 피할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조금 빠르게 운전해서 개를 따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빠르게 운전했으나 개는 더 빨리 달려왔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수련생이 했던 말이 떠올라 큰 소리로 개를 향해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 결국, 1초 전까지만 해도 매우 사납게 쫓아오던 검은 큰 개가 오히려 순식간에 두 마리의 어린 양과도 같았습니다.

신문을 배달하는 일은 갈수록 손에 익숙해져 갔지만, 시험이 또 왔습니다. 제가 법을 얻은 후 딸은 직장에서 연속 3계급 특진을 해서 저는 기뻤지만, 고민도 되었습니다. 딸의 새로운 직위는 자주 출장을 가야 했고 출장 가서 집에 없으면 저는 신문을 배달해야 하는데 집에 초등학교 1학년인 어린 손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게다가 딸도 제가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줄곧 저에게 신문 배달을 가지 말라고 말렸기에 저는 매우 고민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을 찾아 교류했는데 수련생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정체(整體)입니다. 비록 당신의 신문 배달을 도울 방법은 없지만, 당신 집에 가서 어린 손녀를 돌봐주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고생하십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어린 손녀를 돌봐주며 잠자는 것이 뭐가 고생스러운가요. 홀가분한 것이지요.” 이는 저에게 수련생은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 구도를 위해 정말 하나의 정체를 형성했음을 체득하게 했습니다.

수련 후, 발정념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진정하게 발정념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된 것은 신문 배달 이후였습니다. 신문 배달에 익숙해지고 갈수록 손에 익어갈 무렵 마음도 느슨해졌습니다. 머릿속에는 ‘잠시 후 아침밥을 어떤 것을 사서 갈까? 집에 누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유의 일들에 허튼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토바이 한 대가 옆에서 돌진해와 2초 사이로 부딪쳤습니다. 며칠 지나서 또 한 대의 택시가 정면에서 돌진해와 우리 두 대의 차가 모두 급정거하게 되었으며 차는 멈추었고 부딪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멈춰진 거리는 거의 0.1초도 채 안 되어 곧 부딪히게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때 저는 자신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신문 배달하는 것은 사람을 구하고 있는 것이고 신성한 것이며 마땅히 매우 엄숙하게 대해야 한다.’ 이튿날부터 저는 신문 배달 과정에 모두 끊임없이 전념하여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고 발정념을 할 때는 매우 특별했으며 마치 다른 공간에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길은 보기에 매우 달랐고 집도 달랐으며 하늘도 달랐고 색깔은 매우 투명하고 맑았습니다. 분명 30여 년 동안 살아와 더는 익숙해질 수 없는 거리가 어떻게 완전히 다른 곳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걸까요? 평범했던 한 도로가 오히려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게 느껴져 정말 너무 신기했습니다.

6월 1일, 신문사에서는 이전에 속인에게 위탁하여 신문을 배달했던 정기구독자를 정식으로 모두 회수하였기 때문에 신문 배달량이 아주 많이 증가했습니다. 그날 물을 퍼붓듯 세차게 내리는 비에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것은 한 차례의 정사대전(正邪大戰)이라는 것을 모두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모두 매우 엄숙하게 이 일을 보고 대했으며 반드시 잘해야 하고 순조롭게 진상을 모든 정기구독자의 손에 배달하려고 했습니다.

한 주소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어 당황하는 사이에 저는 사부님의 “일에 부딪혀도 놀라지 않고, 침착하고 냉정하며”[2]라는 한마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들고 보니 원래 찾고자 했던 주소가 바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비록 평소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렸지만 모두 ‘순조롭게 완성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한 명씩 잇달아 전송해왔습니다. 당시에 모두 매우 감동했습니다.

어릴 적 약 4, 5세 이전에는 매일 밤, 잠잘 때 모두 한 송이의 구름이 저의 몸을 줄곧 내리누르는 꿈을 꾸었고 자라서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주 많은 사람에게 물었고 그 누구도 저에게 답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에게 물어보니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매우 많은 천상의 신이 앉는 의자가 바로 구름입니다. 당신 천상의 구름이 와서 당신을 찾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이 그것을 잊지 않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매우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교수인 수련생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생겼고 수련생이 벽에 걸려 있는 서약, 이 그림을 가리켰을 때, 저는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그림을 보게 되었고 그림 속에는 뭇 신들이 발아래에 송이 송이의 하얀 구름을 밟고 있었습니다. ‘아! 저것이 바로 나의 구름이었구나!’

사부님의 각지설법을 끊임없이 공부함에 따라 우리는 정법 시기의 대법제자로서 모두 천상에서 사부님과 서약을 했고 사부님을 따라 내려와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문을 배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과 시험에 부딪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두가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신이 애당초 서약한 것을 이행하지 못했고, 당신이 창세주의 요구에 따라 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며, 당신은 주(主)를 기만한 것이다. 당신이 당시의 국부적인 환경과 정법의 노정, 구도받지 못한 중생에게 조성한 손실과 우주의 부동한 층차에 입힌 훼손, 이것은 책임을 져야 한다.”[3]라는 법을 공부하고 사부님께서는 또 “인류는 장차 대심판에 직면한다는 것이다.”[3]라고 언급하신 것을 배웠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심판을 언급하셨고 반드시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하셨다. 물론, 나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대심판을 받게 되지 않겠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구하고 중생을 구하기 위해 너무 고생스러우셨다. 애초에 나는 와서 신문 배달을 하는 것으로 서약한 것인데 오히려 어려움 때문에 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사부님께서 고심(苦心)하게 해주신 배치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구슬 목걸이처럼 한 알이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일세에 사람으로 전생 된 것 역시 헛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저는 반드시 잘하고 반드시 더 잘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맺음말

심득을 쓰는 과정에서 수련생에게 그해에 남편이 저에게 했던 그런 지나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친척이 운영하는 가게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가서 음주하며 즐기고 또 친척으로부터 웃음거리를 사게 되는 등의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아려와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수련생은 제가 비록 남편에게 진 빚을 이미 갚았지만, 법리에서 깨닫지 못했으므로 진정하게 내려놓지 못하였기에 비로소 마음이 아려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생은 저를 힘들게 했던 장면 속에서 저와 남편의 역할을 서로 바꾸어보는 것을 시도해보게 되면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부님의 법리를 대조해보게 되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일을 하게 되면 덕과 업의 물질이 곧 교환 발생하는 것을 제외하고 이후의 정신적인 면에서 똑같은 고통을 더 감당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이 이전에 부딪힌 감당한 고난은 사실 모두 자신이 빚은 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면 자신이 얼마나 아픈가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이전에 다른 사람을 그렇게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법리를 깨닫게 된 일순간, 저는 진정하게 내려놓았고 또 홀가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은 정말 너무 좋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더 잘 정진하여 조사정법의 신성한 서약을 완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순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2019년 파룬따파 타이완 수련 심득 교류 원고)

 

원문발표: 2019년 1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25/396189.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9/12/3/1809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