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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의 보살핌이 있어, 우리 가족은 신기함을 만나다

글/ 쓰촨(四川)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여곡절이 많았던 나

예전에 나는 우여곡절이 많았고 온몸에 질병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에 위층에서 떨어지면서 받침돌 모서리에 머리를 박아 기절했다.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는데 피에는 기름이 둥둥 떠 있었다고 했다. 이웃들은 모두 살 가망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40년대 초, 쓰촨의 농촌은 매우 빈곤하고도 낙후하여 병을 치료할 데가 전혀 없었다. 부모님은 토박이 의사를 모셔왔고, 약재를 입으로 으깨서 상처에 덮어주었다. 상처는 서서히 좋아졌는데 이웃들은 모두 내가 명이 길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또 한 번은 부모님이 밭일하러 간 사이에 혼자 심심해서 집 뒤에 있는 나무에 오르려 했다. 그 당시 아마 4살이 좀 넘었던 것 같다. 우리 집 뒤에는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가 있었는데 나무에 오르지도 못하고 넘어져서 아래턱에 구멍이 생겼다. 어릴 적부터 구강염으로 고생했고 중이염, 회충증에도 걸렸으며 머리카락도 엉성하여 사람들은 나를 노랑머리 계집애라고 불렀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신체가 서서히 좋아졌다. 1971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1984년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 두 대 사이에 끼였는데 큰 난을 피하지 못하고 오른쪽 다리가 분쇄성 골절이 되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얼굴이 변형되어 수술 받았는데도 나는 전혀 몰랐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며칠이 지난 후였다. 그때야 아픔을 느꼈는데 통증 때문에 밤낮으로 잠잘 수 없었고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어 식구들을 속상하게 했다.

나중에 어머니는 점을 보았다. 점쟁이는 “그녀는 죽지 않아요. 귀인 셋이서 보호해주고 있어요.”라고 했다. 뼈를 잇는 수술이 제대로 되지 않아 철판으로 고정했는데 뼈가 자라지 않아 의사도 조급해했다. 후에 교통사고 처리를 마무리할 때 사진을 검사했는데 결론은 수술할 때 성공적으로 잘하지 못해 재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장애면 장애지요. 목발을 짚고 걸어 다닐 거예요.”라고 했다. 결과 주요책임은 차주에게 있고 나는 일하다 다친 것으로 처리되었으며 3천 위안(한화 약 50만 원)을 보상받았다. 나는 장애가 된 다리로 출근했는데 매일 진통제를 먹고 진통제 주사를 맞으면서 버텼다.

다년간 당(黨) 문화의 독해(毒害)를 받았기에 승리욕이 강했고 타인을 용서할 줄 몰랐으며 언제나 누가 더 높은가를 따졌는데 특히 가정에서 더 심했다. 게다가 직장 일로 과로하여 몸과 마음이 지쳤고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고혈압, 뇌혈전, 삼차신경통 등 증세가 있었고 트라이글리세라이드가 높았으며 내외치질, 변비, 노이로제도 있었다. 또 통증에 의한 만성 불면증으로 저녁에 잠잘 수가 없었다. 한때는 자살할 생각도 했었는데 아들과 딸이 너무 어려 죽을 수가 없었다.

대법을 수련하니 몸이 가벼워지다

나는 그렇게 1996년까지 견디다가 그해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궁을 접했다. 책을 보고 나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것임을 깨달았다.

파룬궁은 너무나 신기했다. 법을 배우고 연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신에 거대한 변화가 생겼는데 각종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병이 없고 온몸이 가볍다는 말의 뜻을 뚜렷이 느꼈다. 분쇄성 골절이라고 하던 다리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었고 더는 아프지 않았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금은 심지어 가부좌를 두 시간 넘게 해도 다리는 아프지도 저리지도 않고 잠도 잘 자며 밥도 잘 먹는다.

나는 올해 72살인데 매일 자전거를 타고 아주 먼 곳과 대학가에 가서 진상을 알린다. 삼퇴를 권하는데 지금까지 이미 5만 명이 넘는 인연 있는 사람들을 삼퇴시켰다. 21년이 지났지만 나는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 대 맞지 않았다. 파룬궁은 정말로 신기하다!

대법은 나의 몸에서 기적이 나타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내 가족에게서도 신기함을 나타냈다.

올케의 림프종이 사라지다

96년 전에 올케는 림프종에 걸렸는데 크고 작은 병원에서 모두 약으로는 효과가 없다면서 청두 화서병원에 가서 수술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경제 내원이 없는 시골에서는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996년 5월에 나는 행운으로 대법을 얻었다. ‘전법륜(轉法輪)’을 보자 나는 올케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7월에 나는 보서(寶書)를 모셨고 고향에 가서 법을 전했다. 먼저 생각한 것은 림프종에 걸린 올케였고 파룬궁을 올케에게 소개하면서 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약과 주사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대법을 배우고 연공하며 심성을 수련하면 대법 사부님께서 구해주시는데 돈 한 푼 받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법을 얻은 지 2개월밖에 안 된 나의 의견을 올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올케에게 법공부와 연공을 가르쳐주었고 주위의 한 무리 사람을 동원하여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99년 7월 20일 대법이 박해받을 때 많은 사람이 감히 연공하지 못했지만, 올케는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다. 올케의 암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아들과 딸도 대법을 믿고 지지한다. 지금 올케의 가정도 꽃이 피어 세 가지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자전거도 타고 걸음을 걸으면 바람이 일며 농사일은 못 하는 것이 없다. 주위에서는 모두 올케를 신선이라고 부른다.

막내 올케가 ‘따파하오(大法好-대법은 좋습니다)’를 외우며 사경에서 벗어나다

그것은 2012년의 어느 날이었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올케가 위독하다고 했다. 자궁 밖 임신인데 출혈이 많다고 했다, 수술 후 창자가 서로 엉키는 증상이 생겨 지금 중환자실에서 응급조치한다고 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몇천 리나 떨어져 있기에 그들에게 빨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했다. 하늘 아래 오직 사부님과 대법만이 올케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며칠 외웠는데 기적이 나타났다. 대소변을 볼 수 있고 출혈도 멈췄으며 창자도 정상으로 되었다. 올케는 기쁜 마음으로 퇴원했다. 그들은 대법이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매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고 있다.

작은 제부가 수련의 길로 다시 들어서다

올해 3월 초 어느 날, 작은 여동생의 집에 전화했는데 받는 사람이 없었다. 느낌상, 마치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낮에는 저마다 학교, 직장, 농사일로 집에 있는 사람이 없다. 다음 날 저녁에 다시 전화했는데 여동생의 며느리가 전화를 받았다. 여동생을 바꿔 잘 지내냐고 물었더니 잘 지내기는커녕 제부가 다음날 화서병원에 가서 수술받기로 했다고 했다. 제부의 머리에 혹이 생겼는데 시병원에 입원한 지 한참 되었다고 했다. 집에 와서 씻고 다음 날 화서병원으로 옮겨 수술 받는다고 했다.

나는 그들 식구에게 상서로운 아홉 글자를 외우게 하고 그 본인에게도 외우게 했다. 예전에 그들 가족은 모두 연공했었고 법도 배웠지만 99년 7·20 이후에는 감히 하지 못했다. 나는 가능하게 사부님께서 시간이 많지 않으니 너희를 빨리 대법 속으로 돌아오라고 점화해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기적이 나타날 수 있으니 지금 외워야 하고, 퇴원하고는 수련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할 때 의사는 칼로 쨀 필요 없이 구멍만 뚫으면 된다고 했다. 3일 후에 제부는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제부는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다. 대법의 신기함을 알고 다시는 사당의 말을 듣지 않았다.

 

원문발표: 2019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의 신기함을 전하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7/351935.html